신명숙&참무용단〈장금도의 춤 재발견〉






프로그램
 



1. 화관무
 

화관은 여성들이 아름다움과 멋을 생각해서 머리에 쓰는 장식품이다. 본래 화관은 신라 문무왕 때 중국 복식제도를 따르면서 유입된 여성 관모와 유사한 형태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조선여인에 맞는 장식으로 머리에 썼고 정조이후에는 일반 여성들도 특별한 날에 사용을 했다. 근대에서는 기녀들의 화관과 한삼이 같이 착용해서 춤추는 모습이 있다. 화관을 한자로 풀이하면 꽃의 관 뜻으로 종이나 옷감으로 꽃을 만들어 머리에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춤들을 화관무, 화무라고 불렀고 주로 권번에서 춤을 추었다




2. 마지막 예기(藝妓) 장금도 (동영상-김형관)  




3. 1930-40년대 부채춤 (권번부채춤)  

장금도 선생님이 기억하는 부채춤은 13,4살 때 (1942년)경 군산소화 권번에서 두 학생이 양손에 부채를 들고 춤추는 모습을 우연히 엿보다가 스승에게 들킨 것이었다. 스승은 장금도에게 부채를 주면서 춤춰 보라고 해서 췄더니 잘 춘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 부채는 국화, 매화등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고 주 장단이 굿거리, 자진모리였고 가끔 타령장단에 맞춰서 췄다고 한다. 당시 부채춤은 검무처럼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이었지만 선생님이 20살 무렵 어떤 행사에서는 혼자 부채춤을 추었다고 했다.




4. 부채춤을 말하다.  

이윤선 외 2명과 토론 진행




5. 민살풀이춤  

살풀이춤이 치밀하게 새겨 넣은 청자라면 민살풀이춤은 무심한 맘으로 담담히 꺼낸 백자였다. 잘 짜인 살풀이춤이 조각보의 화려함이라면 장금도의 민살풀이춤은 채색하지 않은 결 고운 한 필 비단이었다. 장금도의 고립과 고독에는 송구하지만 춤에는 축복이었다. 단지 수건을 들지 않음이 아닌 한없이 흐르며 구사하는 즉흥이 그랬다. 그것은 우리시대가 새롭게 다시 맞는 위대한 완성이다. -진옥섭저서 <노름마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