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퍼포먼스 프로젝트
미디어아티스트가 구현한 이미지 안에 퍼포머가 입장하는 순간, 그것은 미술도 무용도 아니었다. 그 두 장르의 온전한 총체가 완성되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미술인가, 무용인가.
전시공연 형태의 예술 퍼포믹스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는 수많은 미디어가 넘쳐나고 있다. 꼭 미디어라는 기계매체에서뿐 아니라,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 자체를 이미지화한다면 우리는 분명 그 이미지 안의 수많은 사람과 사물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본연의 나, 외면의 상태를 잊고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을 지각하다 보면 내 앞에 모든 풍경이 때로는 드라마, 영화의 사각 모니터 프레임 속 같기도 하고, 혹은 그들의 일상적 동작이 연출된 퍼포먼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 미디어아티스트가 공간 안에서 마치 매직상자와도 같은 빔프로젝션을 쏘아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공간과는 전혀 다른 공간을 제공하고, 또 그곳에 있는 사람이 관객인지, 퍼포머인지, 무용수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시공연 막이 오른다면, 우리는 과연 전시장과 공연장을 구분할 수 있을까? 예술가와 안무가가 만나 제작한 새로운 전시공연 형태의 <미디어퍼포먼스 프로젝트 1,2,3>은 기존에 미술계와 무용계에서 수없이 이루어져 왔던 협업형태의 예술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시각예술가와 무용가의 만남이 아닌, 공연의 직접적인 내러티브를 비롯하여 모든 감정선을 이끌어내는 안무가와의 만난 것이 그 첫 번째 시도다. 그들이 하나의 전시공연을 제작하기 위해 만나고 여러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상대의 세계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또 그 세계를 비롯하여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미술계와 무용계의 분리된 장르를 하나의 시각으로 엮어내기 시작하였다. 우선 전시공연을 위해 개념을 나누고, 공유된 개념의 기억 재생산을 통해 끊임없는 소통의 공감을 관객에게 선사할 것이다.
이 모든 공연은 예술을 지각하고 수용하는 이들의 심리에, 그들의 내면에, 지각방식을 총합해 진심 어린 예술가들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욕망에서 시작됐다. 이제 우리는 전시공연장에서 우리가 늘 보아왔고 이미 지각하고 있는 틀을 깨고 다시금 이 프로젝트에서 상정되는 예술의 언어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영화적인 몰입도 아니고, 전시장에서 느껴지는 분산적 몰입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물리적 공간 안에 발을 디디고 있고, 물질과 비물질이미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을 향유할 것이다. 또 무대가 사라진 뒤 퍼포먼스 동작이 몸으로 지각되는 바로 그 순간 그 움직임들은 시각적 판타지로 획득될 것이다. 우리의 시. 지각의 떨림으로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무대가 미디어아트인지, 퍼포먼스인지 구분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비물질의 이미지를 통해 물리적 공간(갤러리 정미소)에 잠입했으며, 이제 3D 안경 대신에 온몸이 이미지 안에 들어와 있는 지각의 도움으로 눈앞에 펼쳐진 퍼포먼스를 보게 될 것이다. 현실과 가상, 온몸지각과 시각, 비물질과 물질, 미술과 무용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전시공연(퍼포믹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전시, 공연(퍼포믹스)의 창세기
태초에 빛이 있었던 것처럼, 태초에 미술과 무용이 있었다면, 태초에 미디어와 퍼포먼스는 인간의 어떠한 감정을 토로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지각하게 되었을까? 사람이 손으로 무언가 만들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예술은 시작되었다. 또한 사람의 몸이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게 되면서 움직임, 손동작을 시작으로 퍼포먼스는 시작되었다. 물리적 공간이 디지털 이미지 한 장으로 지금, 여기와 다른 공간이 연출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미디어기술은 끊임없이 인간의 확장적 욕구를 완성, 충족해 나가기 시작했다. 원근법의 발달이 인간의 한없는 시각적 욕망을 극대화시켰다면 미디어와 3D 매핑은 시각, 즉 내가 보려고 하는 것과 보고 싶은 차원을 넘어 내가 ‘여기’가 아닌 ‘저기’에 가고자 하는 욕망을 해소시키기 시작했다. 매핑프로그램 기술로 공간의 이미지를 찍은 한 장으로 단번에 다른 공간으로 자아를 이동시켰으며, 그러한 순간이동은 마치 시간을 역행하는 듯한, 혹은 초월하는 듯한 상상을 자극했다.
이러한 온몸 지각의 몰입 형태는 미디어와 공간 3D 매핑이 탄생하는 순간, 영화적인 몰입과는 상이한 이미지 몰입상태를 일구었다. 윈도우 컴퓨터, 스크린의 사각프레임에 가두어둔 지각경험이 아닌 사각 프레임 밖 공간 자체에서 경험하는 시, 지각 몰입을 연출했다. 아니 오히려 온몸의 지각몰입보다는 일상적 몰입공간의 상태인 온몸몰입과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의 판타지(일상)가 가미된 몰입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이렇게 3D 매핑이 이루어진 공간에서는 이미지를 마주하게 되는 별다른 장치가 사라진다. 이미지가 비물질의 영상으로 매핑되어 있는 공간에서는 HMD, 3D안경 같은 장치 없이도 시각을 통해서뿐 아니라 이미지 그 자체를 온몸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가상의 세계에 빠진 것이 아니라, 가상과 현실의 세계에 자신이 조정할 만큼만 가담하고 있는 주체를 바라보게 된다. 이때 우리는 전시장에서 일상적 공간에서와 동일한 지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가미된다면 시각을 배제한 온몸의 감각적인 동작 요소들을 통해 그 상대 관객에게 시각으로만 전달한다. 퍼포머의 온몸 지각으로 발현된 수많은 예술언어는 모두 시각으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감각은 온몸의 지각적 총체이며, 그들이 이미지 안에 놓이게 되는 순간, 퍼포머는 공간과 자아 합일체를 꿈꾼다. 마치 자신의 편안한 공간에 서있고, 누워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이 새로운 지각형태의 경험을 제시하는 전시, 공연의 순간에 놓여있는 자들은 곧 모든 이의 감각언어체계가 얽혀있는 경험을 통해 마치 미술과 무용이 그리고 이미지와 퍼포먼스의 움직임이 특수한 기술 장치를 통하지 않고도 예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실현되는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미디어 퍼포먼스 프로젝트2013
<미디어 퍼포먼스 프로젝트2013>은 세 개의 버전으로 꾸려진다. 첫 번째는 작가 강이연과 안무가 신창호의 만남이며, 두 번째는 하태범과 정보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재영과 변재범이다. 시각예술가와 안무가로 꾸려진 각 프로젝트 팀은 모두 여러 장르와 협업을 전문적으로 시도한다기보다는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꾸려가는 예술가들이다. 각자의 목소리가 분명하며, 예술을 풀어내는 방식 또한 제각기 다르다. 우선 미술과 무용의 만남이라는 커다란 틀을 상정하여 참여 팀 예술가들과 소통을 시작했지만 이 모두가 하나의 예술에 잠식되어 있음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였다. 서로 생각하는 목표는 같지만 각 팀별로 다른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들은 전시공연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미디어 퍼포먼스 프로젝트 1. 강이연+신창호
우선 9월 5일 그 첫 번째 막을 여는 작가 강이연과 안무가 신창호는 각자 자신의 색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하나의 완성된 전시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강이연의 3D매핑 영상은 이미 공간에 투사되었으며, 그 속에 모든 무용가를 품었다. 그리고 창의적인 몸 언어의 동작을 위한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 신창호는 강이연의 영상작업과 자신의 무용언어를 조율해 가고 있다.
미디어퍼포먼스 프로젝트2. 하태범+정보경
설치와 사진 두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에 임해온 하태범 작가는 이번프로젝트를 통해 그간 꾸준히 발전시켜온 영상언어를 새롭게 조명해볼 계획이다. 비디오퍼포먼스로 분류되는 이 두 예술가팀은 영상작업소스를 최종 무대에 오르기 이전에 워크샵, 미팅과 촬영을 통해 획득된 안무가의 채취를 일차적으로 획득하였다. 안무가 정보경의 내적 시선을 무심한 듯 관심어린 시각으로 관조하는 하태범의 카메라 앵글을 통한 이미지 위에 우리는 또 다른 그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현장에서 만날 것이다.
미디어퍼포먼스 프로젝트 3 박재영+변재범
작가 박재영과 안무가 변재범은 모두 자신의 작업실 혹은 무대공간의 정황을 관객의 무대로 선사한다. 그들의 해프닝은 전시공연장에서 스스럼없이 시작되며, 무대는 곧 미술하는 사람과 무용하는 사람의 대립적인 구조, 장르간의 충돌을 비롯하여 사회구조에서 상이한 것들이 결국 하나를 이루어야 하는 표본적 정황을 완성시킨다.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미술가와 무용가의 삶에서 드리워지는 충돌을 시작으로 예술이라는 하나의 울타리에서 꿈꾸는 화합의 상황을 전시공연형식인 퍼포믹스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서로 다르지만 관객을 공감시킬 수 있는 감정을 선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각자의 작업 스타일과 성향을 존중하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있다. 마치 각자의 색을 유지하되 하나의 조화를 꿈꾸면서 각양각색의 감정선을 표현한 영화 <마지막 4중주>처럼 이들은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조율하고 지금과는 또 다른 음색을 선사하기 위한 행위를 지속할 것이다. 우리가 보는 예술의 퍼포먼스와 전시, 퍼포믹스의 찰나는 바로 그 무대현장에서 실현될 것이다.
아트스페이스 정미소 디렉터 이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