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계소식
한국춤비평가협회가 11월 25일 오후 3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지하 다목적홀에서 2021 정기포럼을 개최했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소수의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포럼은 기술의 진보와 전 세계적 팬데믹 상황에서 변동하는 문명과 사회문화 환경 속에 춤의 다양한 현상을 진달하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전망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서정록 춤연구가가 사회를 맡아 진행된 이번 포럼은 채희완 한국춤비평회 회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송성아 춤비평가, 최찬열 춤비평가, 김명현 춤비평가의 발표에 이어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2021 한국춤비평가협회 정기 포럼 현장 ⓒ춤웹진 |
첫 발제를 맡은 송성아 춤비평가는 ‘전통춤 형식론 수립의 필요성’을 주제로 전통춤에 형식론이 부재한 것을 지적, 형식론 수립의 실마리가가 되는 ‘마루’에 주목했다. 전통춤 형식론은 “춤 연구의 일차적 단계인 체계적 기술, 적합하고 효율적인 분석, 가치론으로 이어지는 평가, 여러 춤에 대한 총체적 접근, 그리고 인접학문과의 학제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학문적 토대가 된다”면서 “전통의 올바른 계승과 재창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개발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형식론 수립이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이유를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 악가무극일체의 총체성을 갖는 전통춤은 여러 장르와 뒤엉켜 있어 춤만 똑 떼어내기 어렵고 둘째, 형식론은 다양한 개별단위 춤 구성에 대해 세밀한 분석을 해야 하므로 연구 과정이 복잡해 국가적 지원 없이 단기간 성과를 창출하기 어려우며 셋째, 국가와 민간차원의 연구는 춤사위에 편중되었고, 수립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통춤 형식론 수립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마루’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마루는 “전통음악 용어로 궁중음악에서 집박악사가 박을 쳐서 구분하는 단락이자 민요에서 선창과 후렴에 해당하는 단락”으로 “한영숙과 이애주 선생은 춤에서도 마루가 중요한 단락 명칭으로 통용되었음을 증언했다”고 말했다. 이어 <승무>를 비롯한 전통춤 일반의 짜임새가 마루를 중심으로 구축되는데, “공연환경에 따라 춤을 축소할 때 재구성의 기본단위는 낱낱의 동작이 아니라 마루”라고 설명했다. “춤 구성의 기본단위 마루를 중심으로 할 때 전통춤 일반의 짜임새를 서열화할 수 있고 체계적 규명이 가능하다”며 형식론 수립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송성아, 최찬열, 김명현 춤비평가 ⓒ춤웹진 |
최찬열 춤비평가는 ‘춤꾼과 기계’를 주제로 근대와 탈근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기계 개념을 통해 춤꾼/춤추는 몸에 관해 논의했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언급되는 주요 개념들을 살펴보고, 인간의 신체와 생물체, 물체를 포함한 ‘체’를 기계라고 주장한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주목했다. 특히 인간의 신체는 다른 ‘체’들과 다르게 정신과 신체가 반비례 관계로 연결되며 신체는 언제나 정신에 순응한다고 했다. 데카르트 철학에서 보이는 정신과 신체의 위계 관계는 근대적 춤 공연에서 안무가와 춤꾼의 관계와 닮았다고 피력했다. 한편, 질 들뢰즈와 스피노자가 정의한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복합체인 ‘체’에 관해 뒀는데, 핵심은 인간의 신체는 무엇과 접속했는지에 따라 ‘체’들의 차이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여기’에 거주하는 실존하는 신체가 정체성을 계속 바꾸어 나가는 역능을 최고로 발현할 때 춤은 윤리로 향한다고 주장했다.
김명현 춤비평가는 ‘언택트 시대의 춤과 몸: 현존의 시학’을 주제로 발표, 몸과 현존은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매개의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주장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만들어낸 몸들의 분리는 예술가들로 하여금 몸과 현존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서 아트프로젝트 보라의 <별양>과 로이스 응(Royece Ng)의 <현존>를 통해 존재의 조건인 시간과 공간의 다양성 속에서 달라지는 현존의 양상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지각이 의미를 만들고 현존의 경험으로 나아가려면, 지각을 매개하는 기호나 언어가, 관습적인 틀과 배치되어 낯선 방식으로 지각되어야 현존의 경험에 도달 할 수 있다”면서 “몸이 거기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관객의 몸이 지각하는 몸으로 확장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다시 몸은 무엇인지, 몸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잠재성을 질문할 때”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2021 한국춤비평가협회 정기 포럼 현장 |
발제에 이서 질의응답과 함께 자유 토론 시간을 가졌다. 장광열 춤비평가는 “올해 스페인 마스단자에 출품된 18개의 작품에서 Back to the body, 다시 몸으로 돌아가는 현상을 포착했다”며, “최근 메타버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춤 작업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지, 어디까지 몸이 확장될 것인지”질문했고, 김명현 춤비평가는 “실제 몸이 아닌 또 다른 페르소나로써 생성한 아바타, 즉 의식에서 창조된 아바타는 나와는 분리된 전혀 다른 생명체로서 나타날 것이다”고 예측했다.
이단비 방송 작가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소개하며 “메타버스 내 춤 공연은 손가락으로 버튼을 어떤 식으로 눌러서 움직임을 조합하느냐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것이 춤인지, 아바타의 몸은 무엇인지 또 어디까지 신체로 볼 수 있을지 등 신체 개념이 확장될 거라는 견해를 보였다. 반면, 장광열 춤비평가는 내년 문화부 지원 예산이 메타버스 쪽으로 과하게 편성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평가들은 변화하는 정책과 예술 생태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이에 따른 문제를 진단/제기하고 정책을 견지하며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명현 춤비평가는 “시각예술계에서 코레오그래피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이론을 정립,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반면, 무용계는 수동적이다”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춤계에서 코레오그래피에 관해 논의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한국춤비평가협회 정기 포럼의 발제 전문은 <춤웹진> 2021년 1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