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계소식
올해 21회를 맞은 ‘2021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이하 2021 SPAF)’가 10월 7일~11월 7일까지 한 달간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플랫폼 라이브,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등에서 진행된다.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언택트(Untact)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각 작품을 온라인 상영으로 공개했던 지난해 SPAF와 다르게 2021 SPAF는 최근 화두로 떠오른 ‘위드 코로나’ 체제로의 전환에 대비한 대면 공연으로 진행한다.
2021 SPAF는 특정한 주제가 정해지지 않은, 문자 그대로 ‘무제’이다. 인간 기저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공연예술에는 특정된 형태나 한계가 없는 만큼, 공연예술을 향유하는 사람 또한 특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다. 이와 같은 공연예술을 함께 즐기는 SPAF 또한 특정한 주제를 정하기보다는 주제를 정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표현 방법에 대한 자유를 선사하는 22개 작품을 선정했다. 장르 또한 연극, 무용극, 음악극, 참여형 공연, 실험극, 행위 예술극 등 더 다양해졌다.
무용 부문으로 10월 8일~10일 전미숙무용단 〈Talk to Igor_ 결혼, 그에게 말하다〉, 열혈예술청년단 〈움직임이 움직임을 움직이는 움직임〉, 16일 얀 마루시치 〈블랑〉, 아트프로젝트보라 〈무악〉, 17일 얀 마루시치 〈뱅 브리제〉, 22일 YJK댄스프로젝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23일~24일 고블린파티 〈놀이터〉, 29일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정조와 햄릿〉, 모션아키텍트 〈켜(couche)〉, 30일~31일 이루다 블랙토 〈디스토피아〉 등이 무대에 오른다.
한국-스위스 공동창작 프로젝트 〈돌과 판지〉는 스위스 예술가 얀 마루시치가 연출하고 한국인 무용수 정채민, 정지혜, 국지인이 만나 제작하는 ‘돌과 판지’를 주제로 한 3편의 솔로 작품을 담은 프로젝트다. 자연물인 돌과 제조품인 판지, 하나는 압축됐고, 다른 하나는 가볍다. 정 반대성으로부터 물리적 요소(공연)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상상해내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는 전설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어떻게 죽고 싶은가?”라는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질문에 마주하는 얀 마루시치의 참여형 공연 〈블랑〉은 공연이 올라가는 도시를 배경으로 참여하는 관객들이 공동으로 한 편의 시(詩)를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얀 마루시치는 하얀 양복 차림의 백인 남성으로 등장한다. 그는 관객으로 하여금 현대 서구 사회의 권력을 상징하는 하얀 양복에 펜으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얀 마루시치는 공연이 이뤄지는 도시의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시각적, 감각적 무호흡 상태로의 몰입을 표현한 얀 마루시치의 〈뱅 브리제〉는 깨진 유리로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담근 한 남성의 모습을 통해 관객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초인간적인 면보다는 꿈같은 이미지와 사소한 감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얀 마루시치는 약 100분 동안 관객들을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장면들 속으로 질식할 만큼 몰아붙인다. 바라보는 이와 대상 간의 최면적 경험이 일어나도록 유리를 사이에 둔 순환의 정점으로 빠져들게 한다.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정조와 햄릿〉은 권력과 가족에게 상처받은 여덟 영혼의 이야기다. 모두가 최선을 택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남긴다. 한 영혼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정조의 곤룡포와 햄릿의 상복. 자면서도 벗어 두지 못했던 그 옷들은 그들의 불안일 수도, 아집일 수도, 아버지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미련일 수도 있다. 그 옷을 벗기려는 수많은 위협에서 옷을 더 단단히 여미고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미숙무용단 〈Talk to lgor_ 결혼, 그에게 말하다〉 |
전미숙무용단의 〈Talk to lgor_ 결혼, 그에게 말하다〉는 ‘결혼(Les Noces)’을 작곡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i)에게 전하는 안무가 ‘전미숙’의 결혼에 대한 성찰을 움직임으로 담아냈다.. 사랑보다 사회적 필요에 의해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오늘날 결혼 생활의 정서를 드러내면서, 시대를 앞서 삶과 예술을 통찰하고, 의외와 도발로 기존의 관념들을 해체한 스트라빈스키에게 변화된 결혼의 개념과 의미, 현실과 이상에 대해 질문을 건넨다.
직접적인 오브제 없이 ‘몸의 오브제화’를 실현하는 고블린파티의 〈놀이터〉는 고차원적인 놀이터를 무용수들의 몸으로 대신해 만들고 놀아본다. 때로는 몸이 놀이터의 흙보다 부드러워지고, 미끄럼틀처럼 미끄러워지고, 그네처럼 탈것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놀이는 놀이터라는 무대와 함께 변해간다. 건강을 최고로 생각해야 하는 요즘 이 시국, 소독차 방역 연기, 불량 식품들, 놀이터의 흙먼지들처럼 건강하지 않은 것들을 찾아 시간을 되돌려본다.
YJK 댄스프로젝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 Sang Hoon Ok |
YJK 댄스프로젝트의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뉴턴의 사과, 현대 사회의 사과(스마트폰) 등 인류사의 중요한 사건에 등장하는 ‘사과’를 소재로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발견, 탐구 결과의 연장선에 있는 이 시대 인간의 위치와 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우리는 인터넷 세상에서 너무나 쉽게 소통하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자신, 가족, 국가, 본연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봐달라고 이해해 달라고 아우성인 그들은 결국 진정한 행복을 떠올리게 된다.
‘호모 플라스티쿠스’는 ‘플라스틱의 소비를 중단할 수 없는 현재의 인류’를 일컫는 신조어다. 제10회 변산희곡상 수상작인 프로젝트그룹 빠-다밥의 〈호모플라스티쿠스〉의 김지선 작가는 호모 플라스티쿠스의 통용되는 의미를 넘어, 플라스틱이 되어 가는 가상의 존재를 무대로 소환한다.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 지을 수 없는 공간 속에 놓인 네 인물들의 서사를 통해, 환경과 어떻게 다시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이루다 블랙토의 〈디스토피아〉는 ‘디스토피아’라는 제목 그대로 현실의 암울한 미래상을 그린 작품이다. 환경문제와 인간 사회의 이기심을 주제로,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대인들의 비극적 미래를 예측하면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간의 디스토피아 속 멸망을 표현한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이익구조 안에서 소모품이 돼 버린 인간이 스스로 파괴한 삶의 터전에서 죽음의 두려움과 초라한 생존본능을 맞닥뜨린다.
열혈예술청년단 〈움직임이 움직임을 움직이는 움직임〉 |
열혈예술청년단의 〈움직임이 움직임을 움직이는 움직임〉은 2012년부터 창작해왔던 〈SYNCH〉 연작의 마지막 작품의 부제다. 일단 움직임이 시작되면 눈에 보이는, 또 안 보이는 무수한 움직임의 연쇄작용이 시공간을 채운다. 새로운 조합의 움직임이 연쇄작용을 일으켜 또 다른 움직임을 발생시키는 유희들의 콜라주가 작품의 지향점이다.
아트프로젝트보라의 〈무악〉은 고전적인 움직임의 방법에서 탈피해 다양한 움직임의 시도를 발견할 수 있는 춤으로 듣고, 음악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음악과 춤, 장르와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몸으로부터 일어나는 구체적인 소리가 추상화되는 과정을 ‘듣기의 기술’이라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관객의 감각이 수용하는 수준에 따라 이야기는 끝없이 만들어지고 확장된다.
모션아키텍트 〈켜(couche)〉 ⓒBoram Yoon |
보이는 것 너머, 실재와 환상 그 경계의 이야기를 표현한 모션아키텍트의 〈켜(couche)〉는 카를로 로벨리,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쌤앤파커스, 2018)의 "우리가 보는 것은 그저 관습화된 시각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느끼는 감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무용수의 움직임과 영상, 조명, 오브제를 사용한 시각적 자극은 물론, 사운드와 음성을 통한 청각적 자극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무대 언어로 기능하며 매 순간 관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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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SPAF
2021년 10월 7일~11월 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학로예술극장, 플랫폼 라이브,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