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공동체의 춤 신명천지 마당굿 13
오늘 이땅의 새로운 불림을 위하여
채희완_춤비평가

탈춤에는 독특한 극적 약속의 하나로 ‘불림’이란 것이 있습니다. 말뜻대로 장단을 청해 부른다는 것인데, 초혼이기도 하지요. 놀이꾼이 몸짓과 함께 짧은 글귀의 말을 외면 잽이(악사)가 받아 풍악을 잡아주고, 그리고선 춤추게 됩니다. 춤추자면 불림을 해야 하고 이것이 있고서야 춤의 음악이 나옵니다.

시 구절이든 일상 말이든 짧은 사설과(사설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음률과 몸짓이 하나로 어우러진 불림은 그 자체가 시이자 노래이며 소리고 춤입니다. 이 짧은 한 대목이 이들을 이끌어내 엮고 풀었다간 또 어르고 맺고 나아가게 하여 놀이에 굴곡과 매듭을 주고, 또한 앞길을 예시해줍니다.

이런 극적 구실 말고도 불림에는 춤출 장단을 스스로 고르는 선택의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빠르기는 물론 사설의 내용도 그때그때마다 제맘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의적인 현장성이 탈춤의 살아 생동하는 자율적인 열린 구조를 갖추게 합니다. 이에서 즉흥성과 흥겨움, 푸근함과 여유가 생겨납니다. 그러나 좀더 중요하게는 불림이 춤추는 이에게 신명을 불러내 준다는 것입니다.

불림으로 한껏 신을 감아올려 다시 풀어내는 춤을 보면 어깨짓이 절로 납니다. 보는 이의 속깊이 숨은 신명에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이때의 짧은 사설은 이미 신을 받아 모시는 하나의 주문이며 기도이자 초혼이고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신을 불러 말씀을 전하는 무당굿에서의 공수와도 같이 위력적인 힘을 과시합니다. 보는 이는 이 불림 한 마디, 몸짓 하나에 모두 굴복하고 신명의 사도가 되고 맙니다.

숨겨져 보이지 않는 신명을 깨우치는 일은 곧 신명을 은폐시킨 살(煞, 죽음)을 없애는 일입니다.

오늘날 어떠한 불림이 있어 숨어 잠자는 신명을 깨울 것인가. 오늘날 어떤 춤꾼이 있어 이땅의 살을 제거하는 사제가 될 것인가. 이를 온몸으로 일해내는 것이 오늘날 시인, 음악인, 소리꾼과 춤꾼에 짐지워진 과제입니다.

지금 이 자리, 젊고 푸른 춤꾼 새내기들에게 새 세상 열어 젖히는 오늘 이땅의 새로운 불림을 갈구하는 것입니다.

(제31회 신인춤제전 격려사 중에서)




 



제31회 신인춤제전
□ 주최: 사) 민족미학연구소
□ 심사-운영위원: 정기정, 허경미, 최찬열
□ 장소·일시: 부산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5월 31일(토)~6월 1일(일) 14, 16시
□ 〈젊은 춤〉과 〈푸른 춤〉으로 나뉘어져 이틀간 공연하는데, 여기에 이 신인춤제전 출신의 선배들의 작품 4개가 분산, 배치됩니다. 대체로 어둠 속에서, 심연속에서 가느다란 불빛을 찾아 나선 자의 젊은 몸부림들입니다. 간혹 밝음을 향한 몸부림이 반항적이고 무모하고 보기에도 참혹할 정도로 고통스러우나, 바로 그것이 오래된 미래를 예측하는 젊은 몸서리임을 절감하게 해줍니다. 이 점이 이 〈신인춤제전 - 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의 취지이고, 올해에도 이를 기대하는 작품들로 선별되었습니다.
□ 5월 31일 14시, 6월 1일 18시 〈젊은 춤〉
〈디:딤〉(안무, 춤꾼: 신동은),〈페이지를 찾을 수 있습니까?〉(안무: 정수림,춤꾼: 정다래,정은주,김하림,정수림), 〈마지막 다이빙〉(안무: 이제형, 춤꾼: 박민서,이제형), 〈Blind〉(안무·춤꾼: 백다경), 〈심연의 정(井)〉(안무: 임기현, 춤꾼: 남달리, 임기현), 〈‘꼴’깍〉(안무·춤꾼: 박지현, 김주연), 그리고 선배들로서 〈Tic-Tac〉(안무·춤꾼: 정다래), 〈헤엄〉(안무·춤꾼: 강경희)
□ 월 31일 18시, 6월 1일 14시 〈푸른 춤〉
〈괜찮아〉(안무·춤꾼: 김지윤),〈탈피〉(안무·춤꾼: 이윤서),〈야묘(野猫)〉(안무·춤꾼: 궁다빈, 배진아),〈고슴도치 딜레마〉(안무: 정수현,춤꾼: 정수현, 김찬솔),〈고래,심〉(안무·춤꾼: 김경빈),〈청춤〉(안무: 우정제,춤꾼: 김병규, 이형신, 박재진, 이예은, 우정제), 그리고 선배들로서 〈네 개의 눈〉(안무·춤꾼: 하연화),〈의로운 몸〉(안무·춤꾼: 신승민)
□ 행사 진행: 신인춤제전 출신의 이연정, 한지은, 박은지
□ 총기획: 부산의 신진 예술기획 〈문화예술올타〉 (김혜지, 김용호)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25. 6.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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