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소영 〈몸의 노래〉
몸을 동반하는 진리 찾기, 춤 작업
김채현_춤비평가

공연 제목이 참 길다. 〈물고기 문어 불가사리 뱀 코끼리 늑대가 흐르는 몸의 노래〉. 제목 속 동물들은 공연에서 출현하지도 묘사되지도 않는다. 제목이 나타내는 바는 그런 동물들의 어떤 무엇이 우리 인간의 몸속에도 흐른다는 것이다. 제목의 근저에서는 동물과 인간을 분리시키는 인간 중심을 깨뜨리고 인간이 동물(그리고 자연 만물)과 한 뿌리라는 시선이 완연하다. 이소영 안무 〈몸의 노래〉는 인간이 동물과 공유하는 것, 즉 원형(原形)에서 춤을 찾고 그 춤으로써 인간의 원형적인 모습과 세계를 환기하는 공연으로 다가온다(10. 11~13., 더줌아트센터, 서울 한남동).



이소영 〈물고기 문어 불가사리 뱀 코끼리 늑대가 흐르는 몸의 노래〉 ⓒ김채현



〈몸의 노래〉는 우선 관행적인 무대 구조를 벗어난다. 블랙박스 바닥에 의자들이 이리저리 흩어진 상태에서 공연 시작 전부터 의자들 사이에 출연자들이 드러누워 있다. 입장하는 관객은 임의로 자리를 잡는다. 바닥 가운데에는 스피커의 조그만 유닛(또는 콘)이 열댓 개쯤 배설되고 이를 연결하는 전선들은 헝클어져 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이 박스 공간에서 공연 중간중간에 출연자는 공간 가운데나 가장자리를 배회하고 박스 모퉁이에 자기대로 멀거니 서 있거나 드러눕고 빈 의자에 앉기도 한다. 관객과 출연자가 혼재해서 이른바 이머시브 공연에 속하겠지만 공연중 관객 참여가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박스형 무대 공연이 흔한 터에 굳이 이 무대 구조부터 살펴보는 것은 〈몸의 노래〉에 내재된 원형(原形) 지향의 발상과 무대 형식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층층으로 쌓인 객석에서 거리를 두고 관망하는 일반적 방식이 아니라 관객이 바닥에 내려앉아 출연진들과 곁에서 하나가 되고 몸을 기울이도록 유인하는 공간 구조다.

LED의 하얀 광선 말고는 다른 조명이 없으며, 공연은 시종일관 밝은 상태에서 진행된다. 공연에서 소리들이 비교적 낮게 들린다. 그 무엇이 스치는 소리, 그 무엇이 뿜어지는 소리, 사람이 입으로 내뱉는 여러 가지 느린 소리, 숨소리, 내지르는 소리, 바람소리, 금속성의 소리들이 박스 공간에서 사운드스케이프를 이룬다. 무대 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출연자들을 이끈 것은 소리였다. 출연자들을 연결하는 것도 소리였으며, 그 연결 상태가 매우 느슨해도 소리는 공연 전체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소리들의 연속에서 순서가 감지되는 것은 아니며, 소리들은 임의로 조합되어 한꺼번에 들리기도 한다. 초두에 고요하게 들리고 중간에 좀 높고 크게 들리며 막판에 잦아드는 것이 소리들의 내적 약속이었던 것 같다. 바닥에 놓인 스피커 유닛들에서도 작은 소리가 났을 것이다. 관객들에게 들리지 않은 이 소리들을 드러누운 출연자들은 듣고 반응하였다.



이소영 〈물고기 문어 불가사리 뱀 코끼리 늑대가 흐르는 몸의 노래〉 ⓒ김채현



지속적으로 변동하는 소리에 반응하는 움직임이 〈몸의 노래〉 흐름에서 중심을 이룬다. 그 움직임들은 눕기, 앉기, 거닐기, 간간이 행하는 서로 손잡기와 부둥켜안기로 나타나며 움직임들에서 인간사의 어떤 구체적 순간이나 관계를 지목할 만한 소지는 감지되지 않는다. 소리에 반응하는 움직임이라 하지만, 특정 소리에 출연자는 제각각의 움직임으로 반응하였다. 말 그대로 일상에서 행하는 사람의 동작들이 물 흐르듯이 제 나름으로 이어진다. 연기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소리 자극에 반응하는 데 초점이 주어졌다. 그래서 동작들은 언뜻 뜬금없어 보일 것 같다. 더욱이 눈을 스르르 감거나 조금 오래 감고 멍하니 앉거나 누운 모습도 자주 보인다. 소리와 움직임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연기를 배제하고 소리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장(場)이 조성된다. 여기서 자연스러움이란 이성-개념의 개입은 가급적 빼내어지고 인간 본유의 감각이 활성화되는 상태로 이해된다. 출연자들의 시선이 관객을 향하는 경우는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박스 공간에서 그들은 각자 자기만의 세계를 꿈꾸듯 하는 모습으로 부유하고 앉고 누웠다. 흔히 말해지는 꿈, 무아의 경지와 의식 사이의 경계선을 헤매듯이 왕래하는 모습들이다.

〈몸의 노래〉 출연자들의 몰입 양상들에서 소리 파동의 자극적인 영향력은 역력해 보인다. 그것은 이성의 간여를 줄여서 원형의 힘에 내맡겨질수록 커질 것이다. 그 같은 원형의 작용을 〈몸의 노래〉는 소리와 움직임의 유기적인 연결이라는 구성을 통하여 몸으로 구현해 보였다. 소리와 움직임의 유기적 연결 측면에서 소리의 자극으로 움직임이 생성되는 것은 뚜렷했던 데 비하여, 움직임이 소리에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다만 움직임의 순간순간 동태를 쫓아 컴퓨터로 음향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작업이 병행되고 있었고, 출연자들이 간간이 내는 잔잔한 입소리를 움직임이 주는 자극의 결과로 주시해볼 여지는 있었다.



이소영 〈물고기 문어 불가사리 뱀 코끼리 늑대가 흐르는 몸의 노래〉 ⓒ김채현



인간이 자연(동물)과 공유하는 원형을 구현하는 무수한 발상의 하나로서, 〈몸의 노래〉는 그것을 몸으로 구현하였다. 공연에서 출연자들은 무엇보다도 자기 내부에 집중하는 몰입감을 견지했을 것이고, 그 순간 각자의 상태, 감정, 기억은 몰입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각자의 상태, 감정, 기억이 몰입을 더욱 촉진했을 것이다. 출연자가 현장에서 느꼈을 내면의 상태는 자기 자신을 향한 침잠, 상대 출연진과 새롭게 만나는 느낌 등 다양할 터이지만, 관객으로서는 몰입 이외의 정동을 구체적으로 감지하기는 어렵다. 개인들의 단순한 명상 작업이 아니라 그것을 대면하는 관객의 공감, 몰입을 지향하는 공연 작업에서 이 점은 향후에 손질되어야 할 것이다.



이소영 〈물고기 문어 불가사리 뱀 코끼리 늑대가 흐르는 몸의 노래〉 ⓒ김채현



우리가 〈몸의 노래〉에서 만나는 것은 익명의 무용수가 아니라 자기와 마주하는 자연인이라 생각되며, 돋보이는 것은 이런 점이다. 자기 내부 곧 내면의 심층으로 향할수록 출연자들 사이의 비가시적인 끈은 단단해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인간) 내면의 심층은 바로 관객과 공유하는 지점으로 확장될 수 있는데, 무대 구성에서 좌석을 불안정스럽지만 자유로이 흩어놓은 동기는 이런 이유에서 긍정적이다. 관객의 호흡이나 앉은 자세, 각도조차 출연진들에게 자극을 주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기보다는 반응, 관망보다는 어울림이 압도적인 공연에서는 관객이 참여자로서 공감하게 되는 상황도 강화된다. 이런 때문에 관객의 연상 활동은 중요해 보인다. 실제 어느 관객은 좌석을 떠나 무대 한 켠에 눕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몸의 노래〉가 공명의 측면에서 힘이 있다는 것이다.

이원론, 인본주의, 인간중심주의를 향해 숱한 이의 제기가 무성한 오늘날 원형이 다각도로 환기되고는 있다. 인본주의 등 그 이데올로기들이 내세우는 진리는 무엇인가? 그런 진리와 여태껏 하대받기 일쑤였던 진실은 구분되어야 한다. 진실은 몸을 동반하는 진리이다. 몸은 일단 개별적이며, 개별자를 존중하는 진리가 진실 아닌가. 진리의 도구인 우리 언어조차 정작 얼마나 많은 몸의 진실을 은유하고 있는가. 그럼에도 진리가 진실을 뒤덮는 사태는 문명사에서 아직도 완강하며, 그 사태는 대표적으로는 이원론이라 비판받는 중이긴 하다. 각별히 유념할 점으로서, 몸을 동반하는 그 진리는 이해되는 이상으로 느껴져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 이성 너머 확연히 존재하는 원형을 찾는 길에서 원형을 몸으로 구현하는 작업, 〈몸의 노래〉처럼 자연(과 동물)에 손짓하고 몸속에서부터 일렁여 느껴지는 진실을 표출하는 춤들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4. 11.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