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1세기 들어 인문학계는 물질을 재사유하기 시작했다. 문화적 전회의 강풍 속 언어 및 담론이 작동하는 장으로서 몸을 바라보았고 이로 인해 간과되었던 물질로서 몸에 다시 주목한 것이다. 수동체로서 몸이 아닌 그 자체로 행위성을 지닌 물질로서 몸을 강조하였다. 신유물론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흐름은 다양한 관점에서 몸을 새롭게 바라본다. 물질은 시각적 형태를 가지는 실체뿐 아니라 부피와 형태를 지니지 않는 힘, 에너지, 기질로 느껴지는 비실재적 실체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물질은 담론 또는 기술과 구분되거나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함께 얽혀서 형성되는 이종적 복합체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물질은 독립적 개체가 아닌 관계 맺는 상태에서 정동을 일으키는 존재이다. 이러한 개념의 물질은 개체 간 구별적 분리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인간중심주의적 사고 아래 독립적 개체 간 위계를 설정하는 방식을 뒤흔든다. 동시에 서구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 아래 권력의 주변부에 위치했던 다양한 개체들이 체화된 상태로 관계 안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사유한다.
가장 즉물적 예술 장르로서 춤에서 인간 몸은 늘 그 중심에 있었기에 물질에 대한 탐구는 최근의 두드러진 양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담론과 이데올로기의 전장으로서 몸을 강조하는 시기에서조차도 무용가는 춤을 즉물적인 몸과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춤에서의 몸에 대한 탐구는 비인간 존재와 다른 독립적 객체로서 인간 주체를 전제하고 가시적 조형미와 운동성을 토대로 한 특별한 물질성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의 몸을 근간으로 해왔다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동시대 춤계에서는 이러한 시각중심, 능력중심,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의 몸 그리고 비인간 물질을 새롭게 접근하는 시도가 포착된다. 식민, 젠더, 종간 정치학을 폭로하는 동시대 춤에서의 안무적 시도는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에 따른 인류세의 도래, 코로나 팬데믹 재앙, 그리고 물질을 새롭게 사유하는 신유물론의 부상과 떨어져 설명하기 어렵다.
최근 한국 춤계에서 몸을 새롭게 사유하는 안무작 속 주제는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 기후 위기를 성찰하는 반성적 실천, 즉물적인 몸으로의 회귀 등으로 대두한다. 이러한 작업들의 다수가 결국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와 언어, 담론과 분리된 몸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이원론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발견되곤 한다. 반면 국립현대무용단에서 기획·제작하고 김보라가 안무한 〈내가 물에서 본 것〉(2024. 10. 17–19., LG 아트센터 서울)은 체화되고 구체적인 상황에 뿌리내려 있는 자신의 몸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난 새로운 몸 개념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내가 물에서 본 것〉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안무가의 의도, 리서치 내용, 리허설 과정에 대한 내용을 일반적 무용 프로그램북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실하게 전달한다. 이 작품은 안무 당사자가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을 경험하면서 마주한 의학계에서 간주되는 몸을 문제시(mattering)하면서 ‘내가 물(질)에서 본 것’을 공유한다.
무대 위 완만한 언덕과 같은 넓은 은색판이 놓여 있다. 무용수들이 파란 비닐에 싸인 판 위에 엎드리고 눕고 기어 다니면 그들의 몸과 비닐 사이로 신경을 건드리는 마찰음이 울려퍼진다. 파란 비닐을 뜯어내기 시작하고 그 아래 반사되는 금속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공감각적으로 전달되는 금속판의 차가움과 파란 비닐은 안무가의 몸속에 들어오는 의학 기구들과 몸속 체액을 연상시킨다. 비닐에 감겨 있고 비닐로 연결되어 있는 몸들, 판 위에서 미끄러지고 엉켜 있는 몸들은 세포이자 기관들일까. 무용수들이 입은 살색 바디수트에는 마치 피부 안쪽에 위치하는 장기와 같은 구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몸의 내부를 표면화하는 인체 해부학 모형 같기도 한 이 수트는 남녀 성별을 구분하기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몸의 내외부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러한 안팎의 경계가 허물어진 몸 상태는 입에서 흘러나오는 물, 목에서 진동을 통해 울려퍼지는 짐승소리에서도 감지된다.
김보라 〈내가 물에서 본 것〉 ©국립현대무용단/목진우 |
다공성 있는 몸, 피부를 기준으로 경계 지어지지 않는 몸이 의미하는 바는 무용수들이 움직이는 방식에서 더 분명해지고 확장된다. 작품 속 많은 부분에서 무용수들은 뒤로 움직이고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인간에게 시각은 이성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감각으로 알려져 있다. 무용수들은 시각을 포기하면서 의식있는 개별 주체로서의 위치를 내려놓는다. 대신 휘파람, 가글, 물방울, 기계 마찰음과 같은 청각적 자극, 다른 몸과 물체에 대한 촉각적 경험에 반응하면서 다른 물질들 간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무용수들은 엎드리고 그들의 겹쳐진 몸은 하나의 선을 만들어내며, 불규칙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파장을 일으킨다. 두 명이 되었다가 네 명으로 뭉쳐지고 다시 흩어지는 몸들은 엉켜 있어서 몸의 어떤 분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몇 명이 결합되어 있는지 등 형태적 분간이 어려워진다. 그 과정 속 바디수트의 실리콘 부착물은 뜯겨 나가고 몸도 이내 떨어져 나간다.
김보라 〈내가 물에서 본 것〉 ©국립현대무용단/목진우 |
무대 위 무용수는 자신의 두발로 서서 분명한 목적성을 가진 채 움직이면서 존재감을 분출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무용 공연에서 발견되는, 의식을 집중한 상태로 역동성과 개별성을 드러내는 몸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의학적 기준에 의해 재단되는, 불활성적, 기계적인 몸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의학적 기술과 지식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와 담론에 의해서 결정되는 몸에서 벗어나 안무자가 보조생식시술 과정에서 스스로 경험한 취약하지만 기술과 관계를 맺으며 생동하는 물질이 무대 위에 현현한다. 즉 서구 근대적 인간중심주의적 질서에서 벗어난 비규범적이고 주변화된 물질이자 다른 물질과 정동하는 다중적 집합체로 존재한다.
공연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는 인간 몸과 마찬가지로 또다른 행위소로서 작동한다. 작품 프로그램에 명시되었듯, 연습 과정으로부터 추출한 무용수 몸에서 나오는 각종 소리, 의료 기기 소리, 병원 대기실에서 들릴 법한 클래식 음악 등의 녹음된 소리는 공연 당일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실시간으로 조작되어 발생된다. 소리를 인간 몸과 마찬가지로 “마치 살아있는 듯한 하나의 행위자”1)로 본다는 말은 소리가 지니는 자기조직화와 예측불가능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소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지 않지만 결국 인간 몸들이 감각하고 작동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행위성을 지녔다고 보는 것이다. 동일한 관점에서 볼 때 소리뿐 아니라 무대 위에 등장하는 각종 비활성적 물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몸속에 들어오는 각종 난임 시술 기기를 연상케 하는 금속, 거울과 같은 물체들은 무용수가 몸을 다르게 감각하고 몸을 움직이도록 수행한다. 결국 무대 위 모든 물질들은 하나의 행위소로서 수행성을 통해서 물질화된다.
김보라 〈내가 물에서 본 것〉 ©국립현대무용단/목진우 |
몇몇 장면은 안무자가 행위소로서 물체와 인간 몸을 동등하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격정적으로 원을 그리며 뛰는 모습,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고도의 수행 능력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수행하는 모습 등은 공연 중반까지 보여주었던 몸의 존재론적 방식과 확연히 다른 상태를 보여준다. 비인간 물질과는 다른 인간 몸만이 가지는 독특한 잠재성을 드러내는 듯하다. 많은 현대무용 작품에서 나올 법한 강한 운동성을 보여주고 감정과 에너지를 분출하는 몸들이 보여주는 정형성은 작품 후반부의 달걀 및 오목거울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감지된다. 마치 난자를 상징하는 듯한 달걀판을 남성들이 머리에 얹고 나와서 서로에게 굴려주고 이내 한 여성 무용수에 의해서 던져지고 바닥에서 깨지는 장면, 오목거울을 통해 자신의 입안을 확대, 왜곡하는 장면은 다소 틀에 박힌 재현적 표현 방식을 취한다. 작품이 공연 내내 초지일관하게 보여준, 몸의 감각적 상태를 수행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갑작스레 전환되면서 일관성과 몰입감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다소 의구심이 드는 동시에 안무가가 상정한 물질과 몸의 관계에 대해 풀리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내가 물에서 본 것〉은 그동안 춤계에서 수용되어왔던, 자기 통제가 가능하고 높은 수행 능력을 지니며 시각적 조형미를 갖춘 몸의 존재 방식에서 벗어난다. 대신 춤 현장에서 누락되고 배제된 몸들이 물질화되는 동시에 권력과 담론 이데올로기에 잠식되지 않고 관계 맺는 물질적 행위성을 탐색한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면서 위계를 무화하는 정동적 몸을 드러내는 새로운 미학적 실천이자 정치적 도전으로서 평가를 받기에 마땅하다. 크나큰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이 위태로운 몸들이 관객과 정동하는 경험은 흔치 않은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유물론적 철학 이론이 마주하는 난제인 과학주의에 빠지지 않고 물질을 새로이 설명할 수 있는 실천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안무적 사고(思考)의 가치를 드높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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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재호. 〈내가 물에서 본 것〉 프로그램북. 국립현대무용단. 2024, 7쪽.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