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4 서울국제공연예술제(10. 4~27.)는 그 모토로서 ‘새로운 서사’를 제시하고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등지에서 펼쳐졌다. 새로운 서사는 동시대라 지칭되는 오늘 이 시대에 새 관점에서 대하는 서사와 시선이라 소개되며, 구체적으로는 아랍·중동·이슬람의 서사, 여성의 서사, 아시아 태평양의 지리정치학과 탈식민지적 서사, 다른 몸·감각의 서사가 예시되었다. 더불어 예술·기술·과학에 대한 비판적 시선, 고전의 재해석 및 해체, 몸의 철학으로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 사운드의 공연예술적 확장과 변주가 포함되었다.
빠르게 탈바꿈하는 문명에 뒤질세라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잇따르는 것이 오늘날 공연예술의 범세계적 상황이다.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제시된 서사와 시선은 그간 공연예술계에서 대두해온 서사와 시선을 수렴하여 참가 단체 선정 등 이전과 차이를 갖는 포맷을 적극 구축하는 방안 아래 설정된 것으로 관측되며, 이런 점에서 새로운 서사로 내세워진 것 같다. 이들 예시된 서사와 시선은 사실 매우 포괄적이다. 그 서사나 시선을 하나씩 충실히 다루기에는 한 해 행사로도 버거울 것이라는 점에서 포괄성에 수반되는 예컨대 수박 겉핥기 같은 맹점부터 생각하기 마련이다. 전과 달리 새로운 서사를 유난히 강조하는 원년이라는 측면에서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의미가 짚어지는 한편으로 향후 최우선 과제는 그에 걸맞은 포맷의 내실있는 구축이 아닌가 한다.
카사비시어터 〈뮤지엄〉 ⓒ2024SPAF/예술경영지원센터 |
올 10월의 이른바 공연 홍수 속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도 일부분 소화해야 하는 사정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2024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연극 공연작 〈뮤지엄〉(대학로극장 쿼드)은 평자의 시각에서 진취적으로 본 주목작이었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서 더욱 그칠 줄 모르는 정치적 폭력을 향한 성찰록이며 다시 보고 싶은 무대였다. 미술관에서 49명의 아이와 한 명의 교사를 죽인 총기 난사 사건 테러리스트가 사형 집행 전 자기 사건의 수사 형사에게 마지막 만찬을 제안하였고 공연은 사형 집행 몇 시간을 남겨둔 (절박한) 시점에 두 사람이 밀폐된 사형집행장 안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를 바탕으로 펼쳐진다.
여기서 대화의 축은 물론 테러에 대한 두 사람의 갑론을박이다. 테러의 정당성과 사형 집행의 합법성을 두고 서로 겨루는 것이 갑론을박의 요지이다. 이 과정에서 억압, 폭력, 권력, 진실 그리고 죽음과 삶에 관한 단상(斷想)들이 쉼없이 쏟아지고 유동할 동안 테러를 향해 흔히 단정적으로 내려진 부정적인 관념들(흔히 말해지는 선입견들)은 뒷전으로 사그라든다. 사형 집행이 임박한 상황에서 감상에 젖긴커녕 〈뮤지엄〉은 특히 테러 자체에 대해서보다는 테러를 둘러싼 권력을 계속 환기함으로써 테러를 또 다른 각도에서 진중하게 성찰하도록 이끈다.
카사비시어터 〈뮤지엄〉 ⓒ2024SPAF/예술경영지원센터 |
〈뮤지엄〉에서 테러에 관한 성찰이 핵심적 주요 사항임은 분명하다. 그에 못지않게 공연의 주요한 관건으로서 눈여겨 볼 요소들은 여럿이다. 객석과 무대 사이의 투과 망사 스크린은 무대 공간을 밀폐된 사형집행장으로 만들되 관객이 그곳을 어떤 뮤지엄처럼 관찰하도록 해서 두 사람의 갑론을박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에 대해 일종의 배심원 역할을 하도록 한다. 무대 한 켠에 노출된 소형 비디오 캠코더는 주로 사형수가 그곳에서 수사관에게 인식되고 처치되는 모습들을 줌인 줌아웃으로 뒤편 스크린에 비춰서 무대 실황 중계를 넘어 권력의 은밀한 불균형을 환기한다. 그 밀폐 공간 안에서 한 줌의 붉은 생고기, 해부대 위에 벌거벗기어 누여진 사형수, 생고기와 사형수를 저돌적으로 다루는 형사의 모습은 실황 중계와 실제 현장의 겹쳐진 이미지들로 마구 밀려들어 온다. 쓰나미 같은 기세라 할까. 드물지도 낯설지도 않은 기법이라 여겨지겠지만 이미지들을 복합적으로 순발력있게 처리해내는 점에서 이미지극의 성격이 농후한 이 공연은 설득력이 상당했다. 이들 이미지를 자세히 보노라면 권력이 암암리에 끈질기게 작용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테러의 정당성과 사형 집행의 합법성, 어느 쪽을 단언하기 전에 〈뮤지엄〉은 우리가 인간의 양심으로 헤아려야 할 점들을 이미지들 속에서 다시 성찰하도록 했고, 무대 언어들은 생기가 넘쳤다.
카사비시어터 〈뮤지엄〉 ⓒ2024SPAF/예술경영지원센터 |
〈뮤지엄〉은 중동에서 활동하는 카샤비시어터의 공연작이다. 이즈음 테러가 잦은 중동 지역이니 만치 그 단체의 작업은 실제 공연 구성에 힘입어 그만큼 현실감이 깊어 보였다. 중동 지역의 서사를 반영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올해 취지에 부합하는 선택이 아닌가 한다. 아시아 태평양의 서사에 해당하는 공연작 가운데 〈새비지 콜로나이저〉(야만간악스런 식민지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제목 그대로 남태평양 사모아 지역 사람들이 겪어온 식민지 역사 현실을 소재로 한다. 공연에서는 제임스 쿡 선장으로 상징되는 식민 지배의 실상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쫓아 묘사된다. 사모아의 실정과 그 사람들의 절절한 심정에 공감하게 되는 공연작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을 터인데, 식민 지배의 새비지스런 행태(와 그로 인한 적폐)의 묘파(描破) 측면에서 미진한 감이 적지 않았다. 말하자면 공연 제목과는 다소 거리가 컸던 것이다. 이와는 별개인 감상 소감으로서, 출연자들이 앉은 걸상과 사진 이미지에 의존하는 구성 및 연출에서 더 나아가 (가령 사모아 지역과 전통의 시청각 영상 등을 활용한 복합적인 구성으로) 평면적인 느낌을 벗어난 버전업이 필요해 보였다.
FCC/투시아타 아비아 〈새비지 콜로나이저〉 ⓒ2024SPAF/예술경영지원센터 |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접촉한 춤공연은 4작품이다.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국내 활동 춤작가의 비중은 높지 않았다. 장르 간의 균형, 해외 초빙 부문을 고려해도 그런 판단이 든다. 게다가 국립현대무용단과의 협력 공연은 국내외 초빙과는 무관할 것이다. 아무튼 관람한 4작품 가운데 정훈목 안무작 〈에즈라스〉, 김보라 안무작 〈내가 물에서 본 것은〉은 별도의 글들에서 다뤄질 것으로 안다. 그 외의 두 작품은 〈콜로서스〉와 〈사람들〉이다. 이들 2작품은 몸의 철학으로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의적 시선 취지에서 이번에 선정된 것으로 소개되었다.
스테파니레이크컴퍼니 〈콜로서스〉 ⓒ2024SPAF/예술경영지원센터 |
먼저, 스테파니레이크컴퍼니의 〈콜로서스〉(Colossus)(거상·巨像, 아르코극장 대극장)가 특이하다면, 왜일까? 지난 몇 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세계 공연예술계에서는 다수의 직접 이동을 삼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국제 교류에 지장이 생겼고, 그 대안으로서 안무 개념만 이동하는 대안이 모색되기 시작하였다. 2018년 호주 멜버른에서 초연된 〈콜로서스〉는 호주 안무가의 작품 개념을 해외로 이동시켜 아시아 여러 곳에서 공연되었으며, 이번 공연도 그 일환이다.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는 이 작품을 ‘넥스트 모빌리티’ 프로젝트의 실험작이라 칭하였다. 이렇게 안무 개념만 이동·이전시키는 유형의 작업은 많을수록 바람직하며, 향후에는 그 안무 개념을 무대화할 한국측 디렉터를 공모하는 것도 흥미진진한 계기를 이룰 성싶다.
〈콜로서스〉는 출연자 50명쯤이 밀착해서 (해바라기의 노란 혀꽃잎들처럼) 둥근 원형을 이루어 꼼짝도 없이 누운 모습을 공연 전부터 보여주었다. 그 둥근 대형을 이룬 사람들이 상체를 일으켜 앉은 상태에서 상체를 굴신하고 팔을 들어올리는 형상들을 애니메이션처럼 만들어내고 둥근 대형 속 가운데서 어느 한 사람이 행하는 손짓에 따라 차례대로 쓰러지는 모습을 마치 도미노게임처럼 연출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들이 모두 일어난 후 원형의 대형은 흐트러지고 사람들은 때로는 단일한 집단으로 때로는 삼삼오오로 관계를 형성하는데, 그 관계의 성격은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층이고 조명의 변화도 많지 않고 음향 또한 선율보다는 리듬 위주여서 일단 젊은층 사이의 다종다양한 접촉과 인연들을 은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스테파니레이크컴퍼니 〈콜로서스〉 ⓒ2024SPAF/예술경영지원센터 |
〈콜로서스〉 중간중간에 다수 출연진이 무대 3면의 벽으로 물러선 상태에서 수시로 교대로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의 몸 배틀을 주시하거나 호흡을 맞춘다. 또 어느 부분에서는 집단 사진을 촬영하는 포즈로 누군가의 지휘에 따라 상체를 놀리고 부들부들 떨다가 집단이 해체되기도 한다. 또 어느 부분에서는 모두 벌레처럼 기어가며 리듬을 맞추다가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끝 무렵에서는 집단이 경쾌한 움직임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며 생명력을 보이고 퇴장하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광기가 서린 독무로 도약을 시도하는 순간 무대는 암전 종료된다. 공연에서 두서너 사람이 형성하는 관계들은 대개 에너제틱하며 그 만남들은 순간적이다. 굳이 젊은층에 국한될 필요도 없이 조화와 다툼을 거듭하는 인간 군상의 양상을 스케치한 〈콜로서스〉에서 개인과 집단의 충돌, 환희나 광기 등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힘들고 빠르게 양상을 바꾸는 추상적 관계들 속에서 춤 구성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몸의 철학으로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측면에서 본다면 공연의 심도는 얕은 편이었다. 초두에 둥글게 누운 상태의 원형 군집 형상은 어쩌면 몸을 위한 찬가(eulogy)로 불릴 만하겠는데, 〈콜로서스〉가 은유하는 폭이 일례로 환희로부터 광기까지 과도하게 넓었던 탓에 몸의 찬가 같은 초두의 그 부분도 매력점이 희석되었다.
지젤 비엔 〈사람들〉 ⓒ2024SPAF/예술경영지원센터 |
그 다음, 지젤 비엔의 〈사람들〉(Crowd, 아르코극장 대극장)에서 무엇보다 집중적으로 접하게 되는 슬로모션의 활용법은 우선 이색적이다. 인습적인 시간 감각을 이런저런 식으로 벗어날 수 있는 춤무대라 하지만 춤무대에서 슬로모션은 의외로 흔치 않다. 그래서 〈사람들〉이 돋보일 것은 당연하되 이는 단순한 인상에 불과할 것이고, 그 다른 속내가 궁금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공연 도입부에서 인디음악 부류의 빠른 음향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등장하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워서는 저마다 아주 느린 움직임(슬로모션)을 지속하였다. 지저분한 길바닥을 암시하듯이 바닥에는 쓰레기 따위가 널려 있으며 남녀가 뒤섞인 그들 중에는 색(가벼운 배낭)을 매거나 후드자켓을 걸친 사람들도 있고 대개는 힙합 분위기의 일상복 차림새다. 그들은 몸을 일으켜 상체를, 몸통을 흔들다가 정지하고 다시 슬로모션에 빠져들고 바닥에 드러눕는다. 또 공연 중에 누운 슬로모션과 선 상태의 슬로모션이 수시로 번갈으면서 두어명씩 서너명씩 짝지어 서로 간에 정서를 나누는 장면들이 자주 연출된다.
지젤 비엔 〈사람들〉 ⓒ2024SPAF/예술경영지원센터 |
드라마틱한 효과를 높이는 방식으로 쓰이는 영화적 슬로모션이 춤에서 응용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에서 슬로모션은 쓰임새가 달라 보였고, 때문에 상식적으로 아는 슬로모션이 아니라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슬로모션 이외에 무대에서 열댓 명의 출연진이 지어보이는 움직임들은 상체흔들기, 밀고밀치기, 껴안기, 서로 쳐다보기, 몸돌리기, 허우적대기, 두리번대기, 쭈그려앉기, 멍때리기, 느린 배회, 쓰러지기 등속이다. 레이브 같은 소모임들에서 떼지어 열띤 기분을 나누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얼마간 환각의 별세계에 빠져든 듯하다. 대체로 정제되지 않은 이들 모습이 쓰레기가 널브러진 도시 뒷골목에서 특히 야밤에 출몰하는 데서 심상치 않은 안무 의지가 유추된다. 〈사람들〉의 슬로에는 상식(적 시간 감각)을 저지하거나 비틀어대면서 일상(곧 세상)의 평안한 질서에 역행하는 심성이 잠복해 있으며, 출연한 사람들의 행색은 이를 더욱 뒷받침한다. 그들이 걸친 색색깔의 옷들은 중저가로 보이고, 그것은 그들의 계층을 암시한다.
지젤 비엔 〈사람들〉 ⓒ2024SPAF/예술경영지원센터 |
말하자면 〈사람들〉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것은 도시 속에서 보이게 보이지 않게 꿈틀대는 부유(浮遊)하는 삶이 아닐까 한다. 떠돌이들...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페트병 탄산수를 마시다가 흩뿌려대는 짤막한 순간마저 그 울림을 갖는다. 출연진 15명의 얼룩덜룩한 옷 색깔은 그들 각자의 사연을 말하는 것 같다. 정제되지도 일률적이지도 않은 저마다의 다소 비틀어진 자기 움직임에서 그러한 인상은 강화된다. 일일이 뜯어보지 않아도 짐작될 법한 사연들... 결정적으로 〈사람들〉의 안무자 지젤 비엔은 아주 느린 것으로써 저 깊은 것을 도려내 보였고, 그것을 우리는 절절한 작업 의식의 소산이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단순단편적인 줌인 차원을 넘어선 슬로모션 선용법이라 할까. 다만 공연의 구성 측면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후반부에서 지겨움을 유발한 점이 없지 않았다. 이를 해소하는 대안으로, 평자의 개인적 발상으로서, 공연 시간을 줄이거나 (관객의) 긍정적 카타르시스를 반영하는 등을 참조해봄 직하겠다.
서두에 언급했듯, 내실있는 포맷의 구축이라는 향후 과제를 위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주최 주관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충실한 전략을 세울 것은 당연하며, 동시에 공연예술계 현장에서 중지와 국내외 정보를 수렴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굳이 새로운 서사라는 모토가 아니더라도 견실한 포맷은 언제나 강조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 재고되어야 할 바로서, 2024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라인업을 구성한 작품들이 어떤 경위로 선정되었는지, 선정(또는 추천)에 관여된 해당 전문인은 누구인지,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팸플릿 유인물과 웹사이트에서도 해당 사항은 눈에 띄지 않는다. 팸플릿에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워크숍페스티벌들, 접근성 안내, 크레딧 사항(주최측과 공동주최측 및 주요 공연장의 담당자의 상세한 명단 명기)이 깨알같이 세세히 정성스럽게 담겨진 데 비하여 정작 선정·초청작 확정 경위와 관여 전문인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없다. 여기에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나, 향후 개선사항이 아닐 수 없다. 상식이 가리키는 대로, 공공 예술제, 특히 대형 공공 예술제에서 포맷·라인업의 구성 과정은 응당 공개를 통해 공유되어야 할 일이다.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