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유니버설발레단 〈지젤〉
한국 발레의 ‘전문화’를 입증한 수작
문애령_춤비평가

 창단 3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이 6월 13일부터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젤>을 공연했다. 1841년 파리에서 초연된 <지젤>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발레단을 통해 보전되어 전 세계적 명작이 된 낭만발레다. 낭만발레는 이국적, 전원적 배경과 초현실적 세계를 편애하는 공통점을 지녔는데, <지젤> 역시 그러하다.
 소녀 지젤과 평민으로 변장한 알브레히트, 지젤을 사랑하는 사냥터지기 힐라리온, 지젤 친구들과 어머니가 등장해 포도농사를 짓는 독일 라인 강변의 시골 풍경을 보여준다. 사냥 나온 귀족들이 하필이면 알브레히트의 약혼녀 바틸드 집안인 때문에 비극이 구체화되며, 마음의 상처로 실성한 지젤이 지병인 심장마비로 죽는 장면까지가 1막이다.
 2막은 달빛어린 숲속이 배경이다. 결혼 전에 죽은 여인들, 즉 윌리들이 새벽종이 울리기 전까지 차지하는 세계다. 미르타 여왕의 주도로 지나가는 남자를 죽을 때까지 춤추게 하는 윌리들, 지젤의 무덤을 찾은 힐라리온과 알브레히트도 차례로 잡힌다. 힐라리온은 윌리들에게 떠밀려 맥없이 물에 빠져 죽지만 알브레히트는 지젤의 보살핌으로 살아남아 ‘죽음을 초월한 사랑’에 감사하는 결말이다.




 필자는 발레리나 김나은과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주역 이고르 콜브가 출연한 14일 저녁 공연을 관람했다. 김나은은 1막의 소녀 지젤에 보다 잘 어울렸다. 긴 팔 라인이 빼어났고, 파트너 이고르 콜브의 여유로운 보살핌에 힘입어 더욱 어여쁜 소녀가 되었다.
 입단 18년차인 이고르 콜브는 알브레히트라는 인물을 현실로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지젤>의 남자 주인공이 화려한 기교 과시로 갈채 받는 일이 사실은 경박스런 광경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극중 몰입도가 높고, 몸에 밴 기품이 남달랐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고난이도의 균형감을 동반하는 2막 솔로에서 김나은의 긴장감이 전해졌고, 연습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국 파트너들의 숙명 때문인지 파드되 호흡이 간혹 엇나갔다.
 이고르 콜브가 우세한 ‘알브레히트의 <지젤>’은 남자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궁금증을 한층 더 유발시켰다. 화려하고 도도한 약혼녀를 둔 남자, 바틸드 앞에서 주눅이 드는 알브레히트에게 지젤은 어떤 존재인가? 1막 마지막 장면 처리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데, 어떤 이는 시종이 가져온 망토를 두르고 급히 도망치고, 어떤 이는 무대에 남아 울부짖기도 한다. 바람기와 진정한 사랑을 가르는 장면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의 경우는 마지못해 자리를 뜨는 해석이다.
 자고로 발레는 내용이 아닌 춤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있으니, 떠다니는 혼령을 연출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소녀의 죽음인 줄 알면서도, 알브레히트의 속마음을 판단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알브레히트는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해야 하는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기적이나마 얼마간 순수한 마음도 지닌 귀족으로 보인다.




 색다른 연출로는, 1막의 농부 6인무(Peasant pas de six)가 보다 성공적인 해석본으로 자리 잡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몇 년 전부터 기존작의 맹점이던 패전트 파드되(Peasant pas de deux)를 6인무로 공연하는데, 남녀 두 사람이 듀엣과 솔로를 반복하던 것을 나눠 맡는다. 원래의 스텝은 그대로 살리되 출연자를 교체하거나 군무로 구성해 디베르티스망 효과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어느 한 장면도 흘려버릴 수 없는 <지젤>로 발전시켰다.
 힐라리온 역 이동탁, 어머니 역 김애리의 연기도 훌륭했고, 바틸드 역 한상이는 지젤과 알브레히트를 곤혹스럽게 하는 차가운 매력으로 극적인 갈등 고조에 큰 역할을 했다. 로맨틱 튀튀가 다소 무거워 보였으나 소품과 조명은 무난했고, 특히 지휘자 미하일 그라노프스키가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통해 만들어낸 음색은 놀라웠다. 선율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고 느낄 정도로 무대와의 교감이 좋았다. 지휘자와 알브레히트가 대화하듯 소리와 몸짓을 주고받는 모습, 극적 상황을 알리는 음향의 고저, 춤 동작을 돕는 박자와 리듬의 정확함이 깔끔한 무대 완성에 일조했다.




 발레는 인체의 기억을 통해 계승되어왔기 때문에 창작 목록에 비해 현존하는 작품 비율이 놀랍게 낮다. 영상 작업이 활성화된 오늘날에도 근육 안의 어떤 것들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전해져야 하고, 그 차이는 관객 모두가 인간의 기본적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젤>은 유니버설 발레단이 가장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 중 하나로 문훈숙 단장과도 잘 어울렸던 작품이다. 단장에서 단원으로 전해진 발레, 30여년 세월이 녹아든 이번 <지젤>은 한국발레의 성공적 전문화를 입증한다. 연륜의 증표인 세련된 마임 전달력, 군무의 고른 기량과 안정감, 각 장면에 대한 출연진의 이해와 교감이 뿜어내는 자신감이 감동적이다.

2014. 07.
사진제공_유니버설발레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