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태상 댄스프로젝트 〈2014 백조의 노래 SCHWANENGESANG〉
절제와 균형감, 정련화 된 무대
김혜라_춤비평가

 이태상 댄스프로젝트의 <2014 백조의 노래 SCHWANENGESANG>(6월 28-29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가 초연 때 보다 정련화(refine)되어 올려졌다. 두 개의 작품 중 <어린 앵무새와 로미오>는 양성적인 매력을 품은 남자 3인무로 변형되었고, <백조의 노래>는 보이스 뮤지션과의 밀도 있는 2인무로 진행되었다.
 이태상은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묵직한 정치·사회적 사건들에 주목하여 두 작품의 주제로 채택하였다. <어린 앵무새와 로미오>에서는 강자와 약자라는 정치 권력구도를 풍자하였고, <백조의 노래>에서는 아동 성폭력의 어두운 내적 정서를 표현하였다.





 <어린 앵무새와 로미오>는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춤으로 경쾌하게 풀어낸 안무가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회적 권력을 은유하는 주제를 적절히 시니컬하게 표현하였다.
 세 남자 춤꾼인 김평수, 지경민, 전효인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라인을 교차시키며 권력구도를 설정하였고, 에너지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끊어가며 반복되는 동작들을 변형시켰다. 변형되는 동작의 주요 메소드는 한명(로미오)이 한명(앵무새)을 사육시키는 듯 몸에 손을 대면 상대는 수동적인 몸짓으로 반응하는 형태로 구성되었고, 바닥으로 떨어트린 호흡이 마치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관계를 묘사하였다.
 이어지는 2인무는 여성스럽고 연약한 새의 날갯짓과 선비가 노니는 듯 유유자적한 춤가락이 오묘하게 어우러지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안무자가 “작품에서 혼합되는 여러 이미지들의 미묘한 경계와 틈새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한 대목이 생각나는 2인무였다.
 작품의 중반부 즈음 꽤나 길게 느껴진 암전은 약간 당황스러웠는데 안무자의 의도인지 극장 측의 사고인지 의아했지만 아마도 관객에게 낯선 상황을 제시하는 듯하였다. 이후 이어지는 세 춤꾼의 춤은 앞선 스토리 라인을 해체시키듯 정면에 일렬로 선 채 춤 자체에만 몰입하였다. 강자의 우월감은 강자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작품은 좀 전 암전 상황과 강자와 약자를 바라보는 안무가의 시선은 관객에게 열어 놓은 채로 마무리 되었다.




 오직 춤꾼들이 풀어가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짜인 무대는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세 춤꾼은 언뜻 보기에는 춤꾼으로서 균형 잡힌 외모는 아니지만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으로 작품에 집중하게 하는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된다. 안무자가 의도한 사육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육 당하는 것인지에 대한 시선은 전체 작품에서 춤꾼들의 해학적인 몸짓과 지속적으로 전환되는 관계 속에서도 짐작해 볼 수 있게 하였다.
 이 작품의 장점은 여러 번의 세밀한 정련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며, 글로 치면 지독한 탈고의 과정을 거친 노력이 돋보인다. 또한 잉여의 요소가 잘 다듬어져 있는 전체적인 구조가 좋았는데, 심플한 내용과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여유로운 춤사위의 삽입이 쏠쏠한 재미를 주었다. 좋은 작품의 전제 조건은 표현의 객관화를 거쳐 관객에게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는 작품일 것이다. <어린 앵무새와 로미오>는 차지도 넘치지도 않은 단정한 무대로 손색이 없었으며, 주제를 경쾌하게 객관화 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어린 앵무새와 로미오>가 감각적 측면을 부각시킨 반면, <백조의 호수>는 싸늘하고 어두운 정서적 요소에 더욱 무게감을 둔 작품이다. 사각으로 테이핑한 공간은 소녀의 내면이자 감옥 같은 현실을 묘사한 것으로 보였다. 종이 인형 백조들의 시선이 테이핑 된 공간으로 향하고 있듯, 소녀(한지은)는 황량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처연한 정서를 춤으로 품어내었다. 거대한 몸짓에 단정한 흰 드레스를 입은 보이스 뮤지션 문수경이 마네킹 같이 과장되게 조정되는 첫 장면이나 작품 중반부 즈음 무대 중앙에 덥석 주저앉아 토슈즈를 손에 끼고 표현하는 희극적인 장면은 지친 소녀의 모습과 대비되며 피해자의 이중고를 짐작하게 하였다.
 문수경의 소리와 연기는 불안한 소녀 내면을 한 꺼풀 가리는 역할이자, 마스크를 쓰고 소녀를 직시할 때는 냉혹한 사회적 시선을 상징하였다. 성폭력이라는 터부시되는 문제의 피해자이기에 온전히 위로받고 주장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한 사람이지만 두 가지 시선을 품은 무대에서 이 두 명의 실연자는 서로 껴안으며 위로한다. 그리고 거대한 백조인 문수경은 원작 <백조의 호수> 음악에 맞춰 몸에서 깃털을 뽑아내어 바닥에 가득 뿌린다. 안간힘을 쓰며 버틴 소녀는 죽음을 앞둔 백조가 된 듯 고통의 순간을 적나라하게 재현하며 먹먹한 마무리를 짓는다.




 <백조의 호수>는 마크 모리스의 〈swan lake〉 같이 고전을 차용하여 현대화 시킨 여타의 유사한 작업 유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주목할 부분은 중·후반부까지 절제된 감정으로 이끌다가 마지막 한 컷으로 고통과 절규를 강렬하게 각인시킨 설정이다. 이와 같은 극적배치는 전체적으로 춤의 정서와 주제 전달력에서 잔상을 남기는데 효과적 이었다.
 춤 작업에서 특히 사회적 이슈를 상기시키고자 하는 의도라면 감정은 정제시키고 전체 구도에서 객관적인 분석을 거쳐야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태상은 두 작품에 감정과 감성적 측면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전체적인 구도에서 절제와 균형감을 토대로 한 주제 전달력의 극대화 측면은 이 부분에서 탁월한 안무가임을 재확인 시켜주었다.

2014. 07.
사진제공_이태상 댄스프로젝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