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드쿠플레(Philippe Decouflé)의 발랄한 개성은 대중에게는 독창적인 안무가로 각인된 반면, 예술계 한편에서는 “지나치게 가볍다”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대중성과 만능 엔터테이너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요즘처럼 융복합 예술이 자연스러운 공연의 형태로 익숙하지 않았던 30여년 전부터 자신만의 패러다임으로 작업한, 복합 예술의 선두주자였다. 이미 한국에 소개된바 있는 그의 작품 <샤잠>(Shazam!)(1999)과 <트리통>(Triton)>(2000)에 이어 14년 만에 소개되는 <파노라마>(Panorama)(5월 31-6월 1일, LG아트센터)는 드쿠플레 자신의 무용단인 DCA에서 30년간 안무한 수많은 작품들을 재조합한 작품이다. <파노라마>는 초창기 80년대 작품인 <텅빈 카페>(Vague café)(1983), <점프>(Iump)(1984)와 90년대 작품인 <쁘띠드 삐에스 몽테>(Petites Pièces Montés)(1993), <디코덱스>(Decodex)(1995)에서 부분적으로 발췌되었고, <트리통>, <솜브레로>(Sombrero)(2006), <샤잠> 작품에서는 변형되어 구성되었다고 한다. 관객은 <파노라마>를 보며 안무가 개인의 30년 역사와 함께 진화된 예술성 그리고 형식적 변화를 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필립 드쿠플레의 기발함은 매 작품마다 무대를 상상의 공간으로 만들어 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80년대 급진적으로 활성화 된 프랑스의 새로운 춤인 ‘누벨 당스’(Nouvelle Danse)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그는 춤의 경계를 허물고 타 장르인 문학, 컴퓨터, 그래픽, 음악, 철학, 의상, 서커스, 영화, 비디오 및 회화 등의 형식과 춤을 연계시켜 새로운 기술의 장치적 효과와 움직임으로 결합시켰다. 춤의 다양성과 유동성, 스펙타클(spectacle)함을 지향했던 그의 예술관은 물리적 공간에서 영상과 무대 장치 같은 요소를 통해 한정된 무대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자유자제로 넘나들며 춤의 표현 영역을 확장시켰다고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빔 반데케이부스(Wim Vandekeybus), 다니엘 라리외(Daniel Larrieu), 앙줄렝 프렐조카주(Angelin Preljocaj), 오딜 뒤복(Odile Duboc), 마틸트 모니에(Mathilde Monnier) 등 많은 안무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공연 시작 전 LG아트센터 로비에서 펼친 DCA 단원들의 쇼는 관객의 관심을 한껏 불러 일으켰다. 축제의 분위기를 조성한 <파노라마>는 본 공연에서도 시종일관 지루할 틈이 없이 관객에게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특히 줄을 이용하여 두 무용수가 무대 공간을 가로지르는 팽팽한 힘겨루기, 조명을 이용한 사이보그 같은 가상신체의 움직임, 그리고 미생물 같기도 한 기이한 분장과 의상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여기에 마티외 팡시나(Matthieu Penchinar) 무용수의 입담은 극적 재미를 더하였으며, 게임 속 캐릭터들이 무대에서 벌이는 어수룩한 사건들의 묘사는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그렇다고 <파노라마>가 단순한 볼거리만 있는 것만이 아니라 아련한 추억이 깃든 행위와 영상미를 이용해 보인 미학적 성과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해 보았던 손가락 그림자놀이의 다양한 변형과 무용수들과 장난치는 듯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시각적 볼거리와 추억 이외에도 그는 작품에서 공상적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사각 프레임 틀을 이용한 놀이나 TV상자 같은 소품을 활용한 이미지 연출 그리고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듯한 공간 활용은 관객을 상상 속 유희 공간으로 초대한 듯한 그만의 주된 표현방식이다. 드쿠플레의 아이디어 샘은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지루함을 견디지 못했던 성향과 얼윈 니콜라이, 오스카 슐렘머, 머스 커닝험의 영향으로 기하학의 조형적 공간 사용이나 신체의 가능한 변형성을 연구했던 것이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춤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결국 신체에 관한 것이고 다방면의 연구는 충동적인 표현 수단일 뿐”이라고 밝힌바 있다.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여 절충주의 미학을 지향하지만 그의 예술적 소신은 춤추는 신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의 탁월함은 일상에서 중요하지만 가볍게 지나치는 소소한 상황을 유머와 경쾌함의 무대언어로 변모시키는 능력이다. <파노라마>에서도 그의 예술적 소신은 어느 정도 반영 되었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아크로바틱한 움직임과 다양한 볼거리는 드쿠플레 이전 작품을 잘 모른다고 해도 관람에는 무방한 유쾌함을 선사했다. 그러나 <파노라마> 작품만으로 그를 평가하기엔 아쉬움도 남는다. 그의 이전 작품인 <샤잠>에서 보였던 영상과 편집을 통한 가상과 실제 세계가 빚어내는 기하학적 신체이미지나, <아이리스>에서 보인 환상적인 삼차원의 시뮬라크르(simulacre) 공간으로 변환시킨 기술력과 신체성의 다양한 조합을 보지 못한 무대는 드쿠플레의 능력에 비해 충분한 만족감을 주지 못한 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파노라마>에서 보인 초기 작업에서부터 짚어보는 태도와 예술이 새로운 것만의 창조가 아니라 장르를 재구성해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도 우리 안무가들이 생각해 볼 지점이다. 미숙했던 과거의 작업도 자신이며,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또 다른 창작의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오랜만에 꽉 채워진 객석을 보며 볼만한 춤은 대중에게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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