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강민호 춤예술 30년 기념공연 〈길마중〉
30년 춤을 위한 환희의 송무(頌舞)
이만주_춤비평가

 강민호는 세 작품으로 이루어진 이번 공연의 마지막 부분인 제3부 <길마중>에서 공연 내내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었다.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그것은 춤과 더불어 살아온 지난 삶을 인정하는 의미인 것 같기도 했으며, 앞으로 춤예술의 길을 기꺼이 가겠노라는 다짐같이 느껴졌다.  
 강민호의 춤예술 30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지난 6월 7-8일, 강남의 춤전용 M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불혹의 중반에 춤 외길 30 성상을 맞는 강민호는 우리 무용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점하는 무용가이다. 강민호는 중원인 충북의 춤계를 받치는 버팀목이면서 한국 전통춤과 창작춤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남성 안무가이자 기량을 갖춘 춤꾼이다. 특히 그는 우리 민속, 나아가 무속의 전통까지를 이해하고 안무하는 무용가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우리의 전통무를 현대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을 보였으며 무대미술과 오브제로 우리 민화와 무구를 원용했다.
 이번 공연은 1부에 그의 안무작 중에서 레퍼토리화한 <처용-살(煞)>, 2부에는 그의 지인인 신용구의 축하공연인 행위예술 <꿈의 조각을 모으다>, 3부에서는 이번 공연의 타이틀로 내건 <길마중>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인의 영원한 화두이자 집단무의식의 표출인 처용설화는 이미 여러 안무가들에 의해 신화와 주술, 낯선 이방인의 소외 등으로 각기 달리 해석되면서, 특히 창작무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 그에 따른 무의식 속 동경인 성(性)과 불륜이라는 주제로 작품화되곤 했다.
 이에 반해 처용무 전수자인 강민호는 처용무 본래의 기능인 벽사초복에 충실하면서 처용무 특유의 둔중하고 강한 춤사위를 안무에 살리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고려시대 2인 처용무가 조선시대 5방 처용무가 되는 것을 ‘2인 처용무에서 나의 분신인 듯 가장 가까웠던 이가 바뀐 5인무에서 냉엄한 타자가 되어 나의 삶을 가로막는 적이 되는 상황’으로 설정했다. 그리고선 한 인간이 그 삶의 장애를 극복해 뚫고 나가려는 의지를 작품에서 표현코자 했다. 이와 같은 설정은 처음에 처용으로 출연한 안무자 자신이 부인역의 정미영과 정겨운 2인무를 추다가, 그와 출연 무용수 모두(손지혜, 이혜지, 권혜영, 최유민)가 하얀 가면을 쓰고 타자화(他者化)하는 것으로 나타내었다. 하지만 처용가면 대신 하얀 탈을 썼을 뿐 그는 5방 처용무의 기본을 살리는 연출을 보였다.




 무대미술도 우리 민속의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무대 뒤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민화풍의 그림을 그려 놓은 후, 은은한 조명을 비추어 처용설화의 밤 같은 분위기를 살렸다. 스크린은 세 조각으로 엇대놓아, 들고 날 수 있는 무대 속 작은 무대 구실을 했다. 처용무와의 연결성을 갖기 위해 무대 앞쪽 중앙에는 처용가면을 하나 놓았다. 가면의 머리에는 복숭아(天桃)들을 달아놓고 우리 무속에서 신장대 또는 성주대라 부르는 잎이 달린 대나무 가지인 신간(神竿)을 꽂아놓았다. 그는 후반에서 신간을 뽑아들고 춤을 추며 강신과 접신을 시도한다. 그리고는 액을 물리친다.
 마지막 부분은 정미영을 가운데 엎드리게 하고 강민호 자신이 제사장이 되어 나머지 출연자들과 살풀이 내지는 씻김굿으로 모든 부정을 씻고 정화하여 살(煞)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냈다.
 그의 30년 춤은 무르익어 있었다. 초반에 추는 정미영과의 2인무는 정감이 뚝뚝 묻어났다. <처용-살(煞)> 처용무에 바탕을 둔 또 하나의 창작춤이다. 정치(精緻)한 안무와 연출은 계속 막을 올릴 수 있는 레퍼토리로서 손색이 없다.




 신용구의 <꿈의 조각을 모으다>는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날개를 통해 새로운 자아를 찾고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메시지를 담은 이미지 퍼포먼스로 화려하면서도 그 구성이 탄탄했다. 날개를 통해 새로운 자아를 찾고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메시지를 담은 이미지 퍼포먼스였다. 특이한 연출과 작품의 완성도는 그가 왜 해외에서 큰 각광을 받나를 알게 해주었다. 
 <길마중>은 강민호 자신이 지나온 30년 춤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춤인생 30년을 길마중하는 춤이었다. 한국무용 전통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작품은 ‘프롤로그’, ‘길 위에서’, ‘마중물’, ‘회한과 그리움’, ‘꿈꾸는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전적인 춤이면서 앞날에 대한 다짐과 기원이 담겨 있었다.
 작품은 생명을 상징하는 나뭇가지를 오른 손에 든 강민호가, 종이옷을 입고 크고 하얀 지화(紙花)를 입에 문 박송이를 따라 길마중을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무용수들은 큰 지화를 입에 물기도 하고 머리에 이기도 하면서 춤을 추었고, 누워 양발 위에 올려놓는 특이한 동작을 보이기도 했다.




 15살에 춤을 시작한 이래, 춤이 그를 키웠고, 그에게는 춤이 삶의 의미였으며, 30년 세월은 구도의 여정이었다. 강민호는 지나온 반생을 회억하며 공연 내내 흥을 섞어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었다. 끝 부분에서 자축하는 의미로 금싸라기처럼 보이는 수많은 종이 조각들이 춤을 추는 강민호의 머리 위로 계속 뿌려졌다. 머리에 떨어져 장식이 된 종이 조각들은 월계관처럼 보였다.
 강민호의 춤예술 30년 기념공연은 춤 예술과 인생에 대한 환희의 송가, 환희의 송무(頌舞)였다. 살(煞)은 ‘액’과 ‘죽이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기다’, ‘결속하다’, ‘총괄하다’의 뜻도 갖는다. 이틀간에 걸친 기념공연은 춤 인생 30년을 기리는, 신명의 한판 굿이었다.

2014.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