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용단 〈회오리〉
한국춤 현대화의 의미 있는 섬광(閃光)
이지현_춤비평가

 1952년 국립무용단 창단 후 62년이 지난 지금 최초로 해외 안무가를 초빙하여 창작된 작품, 핀란드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테로 사리넨(Tero Saarinen, 이하 테로)이 안무한 <회오리>가 공연되었다.
 그간 국립무용단의 한국춤 현대화의 노력은 한국춤 안무가들이 스스로 현대화하려는 지속적이고 중심적인 시도가 있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드물게 발레와 현대무용 안무가들을 초빙해서 약간은 소극적인 현대춤 언어와 접촉을 시도하였는가 하면, 그 흐름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어져 2013년 안성수 안무의 <단>에 까지 이르렀다.
 물론 그 사이 국립무용단을 놓고 현대화를 고민하는 한국춤 안무가들은 현대춤이나 발레로 무용수들을 훈련시키거나, 우리와 비슷한 춤동작의 기법을 갖고 있는 현대화 된 중국춤 등을 실험적으로 검토하고 참고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일정 그런 시도와 실험들이 공회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춤 안무가들의 상상력과 방법론이 정체기에 빠졌고 관객 역시 식상함을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회오리>는 한국춤 현대화라는 대장정 속에서 우리 관객이나 안무자, 무용수 양측 모두에게 공회전을 끝낼 역동적이고 실증적인 한 지점을 의미있게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안무자 테로는 그의 오래 된 크리에이티브 스텝들인 조안무 헨드리키 헤이킬라와 사투 할투넨, 조명감독 미키 쿤투, 의상 디자인 에리카 투루넨과 함께 <회오리>작업에 참여하였고, 테로의 전작들의 미덕인 간결한 무대, 그 무대를 주제의식에 맞게 환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하는 조명, 무채색이나 풍성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 의상, 거기에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격정적인 춤동작,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요소들을 서로 잘 어울어지게 해주는 종합적인 시노그라피(scenography)가 이번 작품에서도 잘 드러났다.
 거기에 한국 측에서 한국 전통 음악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비빙’(장영규 음악감독)이 음악을 맡고 김미애가 수석무용수이자 조안무를 맡으면서 창작의 중심이 세워졌다.




 그의 춤세계는 주로 유기적(organic)이고 자연적이라는 평을 들어왔고, 그의 대표작 〈hunt 봄의 제전〉(2002) 이후 그의 작품이 환상적이고 정서적인 풍부함을 갖춘 채 ‘제의’로 잘 접근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온 것이 이번에 한국춤의 자산을 이해하고 그것을 현대화할 안무가로 지목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그가 세계적인 유수한 단체들과 작업을 해오면서 갖춘 안무 방법론- 즉, 안무 전 주제와 그 배경에 관한 리서치에 공을 들이고, 자신이 사용할 재료(material)의 특징에 대해 파악하여 그것들을 통일성을 중심으로 구성(composition)하는 것이 이번 작업에서도 힘을 발휘하였다.
 <회오리>에서 그의 안무 철학 내지 근본 방향성은 “안무를 할 때, 나는 궁극적인 여행 혹은 순례의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항상 있었으나 느끼지 못했던 맥박과 심장박동이 그 여행길에서 어느 순간 보이고 들리게 되고 지속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더불어 조류, 전승, 회오리로 이어지는 3장의 작업에 대한 그의 언술은 정확한 주제 개념과 은유로 가득 차 있어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스스로 설정한 주제의식과 무대 실현화 사이의 간극은 어느 안무가 보다도 근사(近似)하다. 그가 안무의 체계를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선포하고 그것을 만들어 내는 고민과 과정이 무대 위에서 정확히 확인되며, 그 결과가 책임감 있게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선포의 내용이 정신세계에 대한 깊이와 격을 갖추었기에 관객에게 집중할 수 있는 안정감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전체적으로 작품은 음악과 동작, 군무의 이동선과 조명을 통해 각 장면의 성격을 만들어 갔다. 초반에 음악은 파도의 들고 남, 오르고 내림이 우리 음악의 핵심적 원리와 잘 맞아 떨어지면서 작품 전체의 도입부를 탄탄하게 만들었고, 파도의 형상을 모방한 동작들이 관객의 호흡을 흡수적으로 조율해 나갔다.
 1장에서 3장의 흐름은 장의 구분을 하면서도 점차 중첩되어 두터워 지고 격렬해지는 확장의 일로로 진행되었는데 테로가 사용한 방법은 관객이 따라가기에 자연스러우면서도 쉽게 느끼게 끔 동작과 구성이 복잡해지고 다양화되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적절하게 혼돈스럽고 원시적인 에너지가 터져 나오게 하는 등 대칭과 정렬의 중심 속에서 그것을 적절하게 흐트러뜨려 대조적 긴장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동작의 발전을 보여주는 전개는 지나치게 교과서스러웠는데, 이는 “그가 동작을 일방적으로 준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용수들이 동작을 어떻게 느끼면서 출 것인가를 강조”(무용수 김미애 인터뷰 내용 중) 한 의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무용수들의 동작 수행에 완벽주의로 과도하게 집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춤동작의 현대화

 

 한국춤 현대화의 관점에서 <회오리>의 가장 큰 성취는 한국춤의 원리를 고민한 현대춤 안무가가 풀어 놓은 새로운 동작들이 산출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이는 국내 안무가들이 시도한 것과 비교해 어느 때 보다도 전면적이었고 집요했다.
 한국춤이 무대의 춤이 아니었기 때문에 갖는 태생적 한계는 극장예술로서 춤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 중의 하나이다. 기마민족의 춤이었으면서도 그것의 흔적은 남성춤과 탈춤 등 민속춤에 미약하게 잔존할 뿐이었고 궁중으로 들어 오면서 급속히 여성화, 기방화 된 동작은 무대화할 때 쉽사리 변형시키기 어려운 지점이었다. 우리의 발디딤에 한국춤의 정수가 숨어 있는 것으로 많은 의미를 부여해온 담론들이 이를 더욱 옭아맸는데, 그나마 여성성을 깨고 민속의 원리를 받아 들인 1980년대 창무회의 초기 작업에서 겨우 무용수들의 하체기와 발이 드러나고 보폭이 넓어지는 변화가 생겨났다.




 이번 테로의 안무를 받아 우리 무용수들이 보여 준 동작들은 보폭을 넓게 벌려 스텝의 폭을 확장해 오랜 시간 동안 동작의 기초는 기마자세를 유지하였고, 그런 하체에 따라 상체와 어깨는 공을 품어 안은 듯이 둥글고 폭이 크게 조절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테로의 안무에서 섬세하게 확장된 동작은 손동작’이었다. 손이 팔에 딸려있는 수동적인 부분으로 기방문화에서 여성미를 전달하는 것으로 전락했던 갈귀 모양의 손동작이 과감하게 손가락의 표현과 다양한 손동작으로 동작을 더욱 풍부하고 섬세한 표현의 것으로 보이게 했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3차원적으로 입체화된 동작이 사선의 방위를 사용함으로써 공간적으로 가장 긴 선과 가장 큰 역동을 만들어 내도록 만들어져 무대를 풍부하고 안정되게 채우는 데 아쉬움이 없도록 안무되었다.
 이런 동작들이 한국춤으로 훈련된 우리 무용수 대부분에게는 아직은 남의 옷처럼 익숙치 않아 보였다. 많은 연습의 흔적이 보였음에도 사실 움직임의 폭을 이렇게 바꾸는 것은 결코 짧은 시간에 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테로가 이 동작이 어떻게 움직여지는 지를 느끼고 추길 바랬던 것도 동작의 원리를 무용수들이 잘 이해하고 그 원리에 따라 움직여서 그 동작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힘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길 바래서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무용수들이 동작을 잘 소화하지 못한 반면 시종일과 작품의 중심에서 닻의 역할을 했던 김미애의 춤은 의상색으로 군계일학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테로의 동작 혹은 함께 만들어 낸 동작을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확대되고 현대화된 것으로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었으며 다른 어떤 춤을 출 때보다 현대의 여성성과 한국의 여성성을 가장 잘 조화롭게 보여 준 고도의 예술적인 춤동작을 보여 주었다.
 테로가 의도했으나 우리 무용수들이 잘 받아내지 못한 동작 중 또 하나는 ‘척추 웨이브’였다. 하체를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다리의 힘이 키워지고 기술을 갖췄다면, 이는 반석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한 척추를 위한 것이다. 모든 표현의 보물창고는 몸통과 팔, 얼굴이다. 말하자면 몸통에 딸린 것들이다.
 아시아의 춤이 정서적이고 표현적일 수 있는 것은 안정된 하체 위에 섬세한 상체 동작을 여유 있게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시아춤은 팔과 얼굴, 목과 어깨는 다양하게 움직여도 척추 자체를 분리해서 움직이는 동작은 발달하지 않았다.
 몸통을 꿀렁거려 표현하는 것은 아프리카의 춤전통에서 강하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현대화한 재즈와 현대무용에서 발달해 있는 부분이다. 특히 무대 위에서 척추가 굳어 있다면, 몸통을 통째로 밖에 움직이지 못한다면 춤의 폭은 엄청나게 줄어들며, 동작이 답답하고 긴장스러우며 방향전환에도 불편하고, 아랫배로부터 올라오는 강렬한 감정을 담아내는 것도 불가능해 진다.
 <회오리>에서 테로는 현대무용수답게 동작의 강력하고 풍부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척추동작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남자 무용수들을 포함하여 아쉬웠던 지점은 그들이 단전에서 기운을 척추로 올리는 것은 훈련이 많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척추의 분리사용과 순차적 사용을 응용하거나 활용하여 자신의 동작으로 소화해 내지 못한 것이었다.
 무대 위에서 확인 된 바에 의하면 그간 단순한 팔동작의 경로와 신파조의 얼굴표정에 갇혀 있던 한국춤 동작은 테로가 확장해놓은 하체의 깊이와 폭, 방향 전환 가능성에 의해 척추의 자유로운 사용을 타고 올라 와 몸통의 방향과 위치, 손의 다양한 동작과 머리의 다양한 위치가 가능해 진 것을 통해 많은 다른 표현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한국춤이 무대에 적응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것은 공간구성에 대한 문제였다. 무대라는 공간에 놓은 무용수들을 어떻게 모으고 흐트리며, 어떻게 이동시키고 정지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역시 극장 속에서 탄생된 한국춤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춤 안무가들에게 이 지점은 상당히 어렵게 다가 올 수 밖에 없다.




 테로의 안무에서 그가 안무의 중심을 잃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자신이 주제 삼은 은유적인 흐름, 그것이 조류가 되었든, 회오리가 되었든 테로는 그것은 무용수 한 몸에서도 그 움직임이 일어나게 했을 뿐 아니라 무용수들이 이동하는 거시적 차원의 공간 사용에서도 같은 원리가 드러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오르고 내리는 파도의 역동성과 회오리의 역동성을 현상에 대한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에너지로 현현시키기 위해 테로가 사용한 방식은 다양한 대형의 사용이었다.
 상수와 하수에 직선으로 의자를 놓고 무용수들을 앉힌 것, 직선과 사선을 교차시키고 자연스럽게 양측면에서 이완하여 걷는 무질서와 그 내부에서 주연 무용수들이 감싸인 긴 것처럼 움직이는 대형, 집단과 꼭지점 솔로를 설정하여 무리 지어서 이동하는 동물의 무리를 모사한 것 등 대형은 상당히 다양하게 창조되고 시도되었다. 여기에 조명이 합세하여 매스게임처럼 보일 수 있는 장면들을 다시 무대 위 일루젼의 공간으로 재창조해내는 등 시각적 움직임 흐름을 주제로 수렴시키는 장치와 지점들이 중심을 잃지 않았다.

 

극장예술로서의 완성도 그러나 비어있는 부분

 

 결국 많은 춤동작들도, 군무를 통한 에너지의 흐름창출도 모두 극장예술로서의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해서일 것이다.
 <회오리>는 테로의 크리에이티브 팀이 이미 갖고 들어 온 안정적 시노그라피(무대, 조명, 의상 등) 품안에서 우리의 음악과 춤에서 호흡과 리듬, 에너지를 잘 끌어내어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갖추는 데 성공하였다.
 몸을 중시하되 무대 메커니즘 안에서 몸에 ‘위치’와 ‘조명’, ‘의상’이라는 변수를 잘 조합하여 몸이 몸에만 머물지 않게 하여 보다 현대성을 확장하게 하였으며, 동작으로부터 작품의 근원이 원리적으로 안정되도록 하면서도 대형의 이동과 조명의 힘을 빌어 무대 위 에너지를 증폭시켰다.
 성실하게 동작의 완성도에 집착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군무가 잘 짜여진 이동으로 구성되었음에도 <회오리>가 우리에게 완벽하게 흡족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테로의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상당한 은유를 통해 형언할 수 없는 깊이로 관객을 흡수해 냈음에도 군무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설명적으로 오래 끌었으며, 군무진과 주연 그룹의 명백한 분리가 어느 때는 적절하고 보기에 편했으나 전반적으로 군무진을 개성 없는 무질서한 무리 정도로 보이게 했던 것은 절대적 시간 부족이라는 현실적 한계도 있겠지만 구체성이 표백된 듯한 지나친 은유가 만들어 낸 추상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극장용 큰 작품을 하나의 접근으로 채우기면 단순해지고, 당연히 지루해 지고 반복적이며 되며 점차 모호해져서 관객 흡입력은 떨어지게 된다. 후반부에 보여준 상당한 집중력과 잘 조절된 크라이맥스가 있었음에도 허전한 부분은 이 작품이 문화적 자원에 대해 실험적이고 학구적인 자세를 잘 갖추었음에도 한국의 동시대를 담아내는 움직임이나, 그런 몸에 대한 탐구와 전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큰 공허함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번 국립무용단의 <회오리>의 기획과 제작은 한국춤의 현대화라는 명제에 분명 의미 있는 시사점들을 남겼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인은 우리의 안무가란 사실을 환기해 본다면 이렇게 초빙 안무가를 통해 좋은 경험을 하는 것과 다른 측으로 우리의 안무가들이 새로운 기회를 갖도록 균형감을 갖고 배려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테로가 탐색해 놓은 것 위에서 한국춤을 위해 또 하나의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는 우리 안무가의 출현을 기대한다. 

2014. 05.
사진제공_국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