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홍선미무용극단NU 〈그녀의 잔상〉
페미니즘과 모성애, 과감한 해석
이만주_춤비평가

 안무가 홍선미의 전작들 <센토>(Centaur), <푸른 계곡의 꿈>에서 여자의 몸이 보였다면, <바다에서 온 여자>에서는 여자의 생(生)이 보였고, 이번 작품 <그녀의 잔상>(5월 1-2일, 서강대메리홀 대극장)에서는 여자의 몸과 생이 겹쳐져 보였다.
 여성의 몸에 내재되어 있는 관능적 욕망을 그리든, 또는 여성이기에 갖는 숙명을 다루든 홍선미는 이제 페미니즘(Feminism)을 일관성 있게 다루는 개성 있는 춤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근래 들어 홍선미는 구미연극사의 대표적인 연극 작품을 컨템포러리 댄스로 치환하는 색다르고 흥미로운 작업을 한다. 대사가 주류를 이루는 연극을 대사 없이 몸과 무용언어로 표현하자니 생략, 단순화, 상징화, 은유화의 과정을 거친다. 다른 한편으론 원작의 서사 전달을 위해 증폭과 과장 기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녀는 그 쉽지 않은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2012년 두 차례 공연된 헨릭 입센의 <바다에서 온 여자>에서는 여자의 삶이라는 굴레에 안주하고 싶은 체념과 그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유혹에 굴레를 뛰쳐나가려 했다가, 그 굴레가 여자의 숙명임을 깨닫고 굴레로 돌아오는 서사를 극무용으로 표현해 관객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이번에는 미국 현대연극의 비조인 희곡작가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아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을 아예 제목을 <그녀의 잔상>으로 바꾸어 무대에 올렸다. 오닐의 1924년 작인 <느릅나무 아래 욕망>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 연원을 두고 있는 페드라 컴플렉스-아버지가 맞은 새 부인과 전처의 아들이 사랑에 빠지다가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미국의 뉴 잉글랜드 지방으로 옮겨 현대적으로 바꾸어 쓴 희곡이다. 이 희곡에선 페드라 컴플렉스 외에 주인공들이 농장(토지)을 소유하려는 강렬한 욕망이 갈등과 복선을 이룬다.
 홍선미는 만만치 않은 이 내러티브를 극무용으로 옮기기 위해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가부장제를 뒤엎고 모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감한 각색과 번안을 시도했다. 그리고는 그에 따른 안무를 구현했다. <그녀의 잔상>의 ‘그녀’는 원 희곡에서는 느릅나무로 암시될 뿐 등장하지 않는 어머니이다.
 안무자는 작품을 프롤로그, 7개의 씬(Scene), 에필로그로 구성했다. 탯줄과 자궁을 상징하는 오브제를 사용하여 우리 모두가 어머니의 몸속으로부터 태어난 생명들임을 프롤로그에서 보여준다. 처음에는 욕망과는 상관없는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을 천진한 춤과 놀이로 그린다. 어느덧 어른이 되자, 아들 셋은 소유욕의 화신인 아버지와 대립과 갈등을 일으킨다. 남자 무용수들의 힘 있고 아크로바틱한 춤이 전개된다. 어머니의 환영이 다시 등장하여 남녀의 역할을 바꿔봄으로서 핍박 받고 혹사당한 여성의 괴로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다시 천진스러운 놀이 춤으로 반전된다.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인 젊은 애비(Abbie)가 등장하면서 춤의 역동성과 긴장감은 고조된다. 애비는 늙은 남편 대신, 그의 셋째 아들인 에벤(Eben)에게 사랑과 욕정을 느끼고 에벤은 애비에게서 죽은 어머니의 모성을 발견하고 둘은 불륜의 사랑에 빠진다. 애비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둘 사이에서 탄생한 생명을 죽이고 급기야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파국 끝에 느릅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자 무용수는 4명이 등장하나 서사의 강조와 증폭을 위해 여자 무용수는 7명이 출연한다. 작품의 뒷 부분에서 욕망과 욕정의 춤 사이, 해초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천천히 행진하는 동작의 군무가 비극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아버지 역의 김동은, 새로 맞은 부인 역의 정혜란은 원작자 오닐이 설정했던 이미지와는 다른 감이 있었으나, 그 둘은 최선을 다해 춤과 연기로 작품 속 역할을 소화해 냈다.





 

 안무가 홍선미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단순한 오브제를 상징적으로 활용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극대화하는 탁월한 재능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그녀의 재능은 빛을 발했다. 가부장의 호령, 지시, 권위를 뜻하는 작은 호루라기, 탯줄을 상징하는 대형 고무줄과 서로의 관계 맺음을 상징하는 남자무용수들의 바지에 붙은 멜빵이 등장했다. 작품 중 아버지가 한시도 내려놓지 않고 메고 다니는 걸망태는 끊임없는 소유욕을 상징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대의 분위기를 돋우며 기능적인 오브제의 역할을 담당한 것은 여자의 자궁을 상징하는 커다란 기구(氣球), 대형 공이었다. 이 기구는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으로, 또 남녀가 정사를 벌이는 침대로, 또한 요람으로 그때그때 쓰임새가 바뀌며 효과적으로 기능했다.

 홍선미의 안무 작품을 보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 근래의 작품들에서 남녀의 궁극적인 은밀한 행위가 어김없이 춤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다. 작품마다 다르면서도 고도의 상징성과 미학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푸른 계곡의 꿈>에서는 둥둥 떠다니는 예(例)의 정자와 난자를 상징하는 수많은 공 사이에서 추는 신비스런 군무로, <바다에서 온 여자>에서는 파도의 조명이 비추이는 속에서 남자 무용수와 여자 무용수의 벽을 활용한 춤으로 암시했다. 이번에는 남자 무용수가 기구 위에서 밑을 향해 엎드리고 여자 무용수가 기구 아래 바닥에 누워 대위(對位)하며 추는 폭이 큰 격렬한 춤으로 그려졌다.
 욕망을 나타내는 음악의 절묘한 선정과 비주얼 디렉터, 영상, 조명 디자인의 협업이 원작 ‘느릅나무 아래 욕망’의 분위기를 일구어냈다. 마지막 부분에서 느릅나무를 상징하는 거대한 영상을 배경에 비춘 다음, 점차적으로 작아져 가는 나무 그늘 아래서 비로소 하늘을 쳐다보는 대단원의 장면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안겼다.
 홍선미가 구사하는 다양한 미장센(Mise en Scene)과 춤동작, 오브제의 효과적인 활용, 일관되게 견지하는 페미니즘적 시각이 화제가 될만한 또 하나의 극무용을 탄생시켰다. 

2014. 06.
사진제공_홍선미무용극단NU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