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피나 바우쉬 <Full Moon>
물을 동반한 메인 디쉬, 그 강렬한 맛깔
장광열_춤비평가

 빼어났다.
 거대한 바위, 폭포수 같은 비와 빗소리와 빛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움, 일상적인 움직임과 조합된 댄서들의 춤, 잔잔한 때론 격정적인 음악들, 그리고 작품 전편을 아우르는 바로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 피나 바우쉬의 <Full Moon>은 밤 하늘 보름달의 만개한 달빛 만큼 황홀함을 선사했다.
 2012년 빔 밴더스의 3D 영화 <피나>에서 보았던 영상미를 통한 감동은 공연예술, 무대예술의 생생함, 생동감 앞에서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다.
 스산한 조명 아래로 흘러내리는 비와 빗소리는 어느 순간 마치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보여졌다. 그 운치는 관객들의 마음을 움켜잡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다양한 움직임 언어를 묘사하는 여자 무용수의 이야기는 마치 비오는 날 친구의 조근거리는 수다를 듣는 것과 같이 친밀감이 있었다.
 빗속에 놓여있는 거대한 검은 바위, 그 주변을 무용수들이 음악과 더불어 질주하는, 첨벙대는, 때론 빗속을 유영하는, 물을 바위에 내동댕이쳐서 만들어내는 물보라의 환상은 인간의 몸을 극장예술의 여러 요소와 접합시킨 안무자의 빼어난 감각이 빛을 발한 순간들이다. 이들 씬은 춤 작품이 빚어낸 명장면으로, 작품 <Full Moon>을 상징하는 산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1부 마지막에, 무대를 비워두고 바위 위로 떨어지는 비를 보여주는 텅 빈 무대와 빗소리가 주는 시청각적 여운은 안무자가 만든 기막힌 타이밍의 예술이었다. 1부에서 붉은색 옷으로 치장한 여인의, 나즈막한 대사를 곁들인 작은 움직임과 일상적 행위들, 2부에서 나이든 한 남성이 바위 위에 올라 등을 보인 채 두 팔을 벌리고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는 장면은 안무자 피나가 만들어내는 지극히 인간적인, 따뜻한 휴머니티가 전해지는 장면들이다.
 반복은 피나의 중요한 안무방법이다. 동작이나 행위를 2-3번 반복하게 함으로써 작품의 이미지를 기억이란 창고에 저장하게 한다. 1부에 보았던 이미지들이 2부에 반복해서 나오기도 하지만, 2부 마지막에 파노라마처럼 전체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장면은 춤을 더욱 강하게 아로새기는, 또 하나의 빼어난 대목이었다.




 똑같은 이미지를 요약하여 보여주었지만, 같은 무대상황이 아니라 주제음악인 “Lilies Of The Valley”가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물보라가 치는 무대에서 쏜살같이 달려와 이루어지는 이 파노라마는 2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불식시켰다. 이 시원하고 기분 좋은 마지막 절정, 그 절정의 강렬함을 위하여 피나는 어쩌면 2부 처음에 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느리고 여유 있게 무대를 끌고 갔는지도 모른다.
 20세기 전체의 역사를 포괄해 현대무용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현대무용이 가장 폭발성을 가지게 된 요인은 인체의 이미지, 인체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함으로써 가능했다. 21세기를 주도하고 있는 이즈음의 무용가들은 인체 자체에 대한 실험에서부터 다른 예술장르와의 접목, 과학 기술, 자연 현상, 그리고 일상생활과의 접목 등 다양한 매체와 다양한 요소들과의 상호작용을 주고받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보여진 이 같은 작업들은 분명 `실험‘이었고, 새로운 시도였다. 그리고 지금도 이 같은 실험은 계속 되고 있다.
 오늘날 샤샤 발츠, 빔 반데키부스,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요아임 쉴로머의 작업들은 ‘댄스 시어터’가 아닌 새로운 단어들로 규정되고 있다. 무용이 주가 되는 크로스오버를 넘어 해체와 융합을 통한 전혀 새로운 양식의 공연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 같은 새로운 토탈 아트 작업은 안무가들만이 아닌 여러 예술가들과의 공동 작업의 산물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나 역시 뛰어난 스태프들과의 협력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댄스 씨어터(Dance Theater) 작업들을 완성해 낸다. <Full Moon>에서 피나의 오랜 파트너 무대 디자이너 피터 합스트(Peter Pabst)의 사실적이면서도 뛰어난 조형미의 무대미술, 조명감독 페르난도 제이콥(Fernando Jacob)의 쏫아지는 비, 뿌려지는 비를 향한 환상적인 빛의 조합은 피나의 여타 작품과의 차별성을 살려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아쉬움도 있었다. 피나는 움직임 언어를 독특하게 만들고는 있으나 모든 무용수가 거의 비슷한 움직임을 구사하고 있었던 점이 그것이다. <Full Moon>에는 몇 개의 메인 디쉬가 있었고, 몇 개의 버려도 되는 이미지들 그리고 몇 개의 지루하지만 기대를 더 모으는 이미지들이 혼재했다. 모든 반찬이 맛있다고 가장 훌륭한 저녁은 아니다. 메인 디쉬가 인상적이면 그 하나 만으로도 기억에 남는 저녁이 된다.
 인간의 감성을 자유자제로 밀고 당기면서 현장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촉각적 감각을 가동시킨 점은 공연예술의 백미였다. 그런 연금술사 같은 피나 바우쉬의 마술을 <Full Moon>에서 보았다.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춤 공연은 이제 한계에 온 것인가? 기계적인 테크닉에서 동물에 가까운 테크닉까지 인간의 몸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만들어 본 안무가들은 이제 조금은 지쳐있는 것일까?
 안무의 거장으로 불리는 피나 바우쉬가 8년 전 2006년에 만든 작품 <Full Moon>을 보면서 평자로서 가진 또 다른 의문이다.

2014. 04.
사진제공_LG아트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