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유니버설발레단은 창단 30주년 기념작으로 스페인 안무가 나초 두아토의 <멀티플리시티>(multiplicity)를 야심차게 준비하여 첫 선을 보였다(4월 25-27일,LG아트센터, 평자 27일 공연 관람).
막이 열리고 칸타타 BWV 205 ‘만족한 에올루스’(그리스 신화의 바람신)가 울려 퍼지며 18명의 댄서들이 바흐의 지휘에 맞춰 와르르 몰려들기도 하고 의자 위에서 현란하게 뛰놀며 기운을 발산하는 장면은 갈 곳 없이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던 음표들이 비로소 바흐를 만나 오선보에 쓰여지고 노래되는 기쁨을 묘사한 명장면이었다. |
무반주 첼로조곡의 프렐류드를 배경으로 바흐가 여성 무용수를 첼로처럼 연주하는 유명한 장면은 클래식 발레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로 끊임없는 회전과 굴신(屈伸)을 소화해내야 하기에 여성 무용수의 스태미너와 두 사람 사이의 긴밀한 호흡이 요구된다. 객원 예브게니 키사무디노프와 수석 무용수 김나은은 어려운 연기를 무난히 소화했지만,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건강한 에로스를 만끽하기에는 여유가 없이 쫓기는 느낌이어서 동작의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오히려 2부 초반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펼쳐진 남성 군무의 몸을 던지는 열연 속에서 사그라들기 전 마지막으로 피어오르는 생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두 명의 남자 무용수가 상체를 드러내고 코르셋과 파팅게일을 착용한 채 춘 관현악 모음곡 2번에서는 그 시대 궁정 부인들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유머를 던졌고, 바흐가 흰 마스크를 쓰고 다가온 ‘죽음’과 아끼는 ‘음악’과 함께 3인무를 추는 장면을 통해서는 그 누구도 생명의 숨결이 떠나가려는 순간에 회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였다.
춤을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종속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달리 두아토의 안무는 딱딱한 평균율과 대위법의 구조에서 말랑하고 따뜻한 속살을 끄집어내어 바흐의 음악을 한층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멀티플리시티>를 보면서 통통 뛰어오르고 구르고,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삶에 대한 열망과 사랑을 즉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춤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바흐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천미지’(천상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모토로 성장한 유니버설발레단은 단체의 모태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멀티플리시티>를 가장 아름답게 공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음악을 봉헌하며 신에게 찬미를 바쳤던 바흐의 모습과 유니버설발레단의 모습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공연 시작 전 문훈숙 단장이 무대에 나와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의 다른 어법을 직접 시연하며 꽤 긴 시간 동안 구체적으로 진행한 해설은 관객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려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노력으로 읽혀졌다.
다만,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느껴지는 조금은 얌전하고 순종적인 분위기로 인해 개별 무용수들의 개성은 전체 속에 묻혀 뚜렷이 기억되지 않기도 하다는 아쉬움은 이번 공연에서도 드러났다. 뭔가 한 번 틀이 시원스럽게 확 깨져서 더욱 강인하게, 춤으로 살아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만나고 싶다. 다음 <멀티플리시티> 공연에서는 한층 독립적으로 진화된 유니버설발레단의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