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P 14번째 정기공연(3월 20-22일, 서강대메리홀)은 ‘휴머니티’라는 주제로 김동규의 <Egoism>과 김성훈의 <No Film>을 무대에 올렸다. 10년을 훌쩍 넘긴 이 단체는 90년대까지 동문 무용단의 습성을 별로 거부하지 않은 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의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꾸준히 활동을 해오고 있는 편이다. 동문 무용단의 습성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지도교수를 중심으로 하여 그 중 우수한 제자군단을 형성하여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일반적인 과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인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제자들이 예술적으로 분화발전, 분리독립의 양상을 보이기 보다는 단체의 대표가 뒤 이어 한예종 교수가 되는 아주 전형적인 계파형성의 길을 걷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 교육과 예술이 샴쌍둥이가 되어 분리되지 못하는 비극을 보는 듯 안타깝다. 김성훈 안무의 <No Film>은 몇 가지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전체 주제인 휴머니티에 대해 김성훈은 ‘독재’로부터 그 고리를 푼다. 역사적으로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나치 독재는 사라졌지만 그가 느끼는 현대는 “모든 우연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서로 맞닿아 있는 억압적 공간, 갇힌 공간” 이며 “이 속에서 또는 다른 공간을 향해 나아가려는 개인의 자아를, 심각하게 억누르는 절대적 위압의 실체를 탐색해 봄으로써” 현 시대를 비춰 보려는 의도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이미지화한 사진으로 검은 코트를 입고 피 범벅이 된 얼굴 위에 피 묻은 붕대로 눈을 가린 남자의 상반신, 두 손을 맞잡아 꽉 움켜쥐니 흘러내리는 것은 온 손을 다 적시고도 남을 뚝뚝 흐르는 핏물 등의 사진은 약간의 변색과정을 거쳤음에도 독재에 가해 당하고 피 흘리는 현대적 전사의 이미지로 강렬하다.
막이 열리자 천정에서 한 사람의 체구 정도의 상당히 큰 피 묻은 샌드백 십 여 개가 동시에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 육중함과 그것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는 가히 충격적이다. 마치 그 안에 살육의 결과들이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모자람이 없는 이 장면은 앞으로 이 작품에 대해 빨려 들어가도록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그 안에 사람이 들어있지는 않았고 뒤쪽에서 검은 투피스에 힐을 신은 여자가 비틀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논리적 수순을 따른다기 보다는 감각적 제시의 흐름을 갖는데, 주로 독재와 그 그것과 대조되는 어떤 상황과 이미지들을 논리적 맥락 없이 이어 붙여 놓는 방식을 택했다. 이질적인 장면들이 이런 이미지들을 더욱 대조적으로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김보라가 타이트한 초록색 긴 원피스를 입고 딱딱하고 말라 보이는 몸을 강조하면서 무표정한 얼굴 표정으로 기계인 듯 팔과 다리의 분절적이고 각진 동작을 하면서 파트너와 상수에서 하수로 지나가는 장면은 마치 흑백 영화를 보다가 컬러 장면을 만난 듯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 장면이 정확히 무엇을 담아내고자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인의 묘한 분위기가 김보라 자신만의 스타일화 되고 무르익은 동작에 힘입어 인간이면서 비인간인 어떤 왜곡된 것에 대한 비현실적인 감수성을 자극하였다.
독재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독일병정 제복의 춤은 약간은 희화화 된 듯 호두까기 인형의 장면을 패러디 한 듯 유희적이었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독재의 단면과 대조를 이루도록 설정된 것은 이 작품의 중심인 ‘군무’이다. LDP 스타일이라 할 만한 군무는 감각적으로 매혹적인 선율과 고조되는 리듬 중심의 음악에 신선하게 고안된 동작을 잘 배치하고 반복하여 세련된 속도감과 동작으로부터 오는 쾌감을 관객이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런 군무가 단원들의 작품 마다 비슷하게 반복될 때 그것은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창작성의 고갈 현상으로 보여 식상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김성훈은 스스로 천명했듯이 “답을 찾기 위해 결론을 계획하는 기존의 안무형식을 배제하여 작업의 과정 그 자체를 무대 위에 구성” 하고자 했고 어느 정도는 기존의 안무 형식을 극복해 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누구의 작품에서도 동어 반복되는 그런 군무가 없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으로 보여졌고, 그 외에 김성훈의 안무 역량을 확인 할 수 있는 화려하고 힘있는 군무들로 채워졌다. 정태민, 천종원, 김성현, 이선태 등의 남자 무용수들이 제각각 뿜어내는 춤의 역량과 그것의 조합은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교하거나 정확한 기교를 뚜렷이 보여주거나 거친 듯 활달하며 발산적인 동작을 유감없이 뱉어 내는 춤으로 각각의 춤과 군무에 충분히 흥미를 갖고 빨려 들어 갈 수 있게 하였다. 정말 오랜만에 내용적 정당성에 기반한 의미 있는 군무─휴머니티가 무엇인지 체감하게 한─의 힘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LDP의 또 하나의 문제인 여성무용수의 남성화 문제를 어느 정도는 다른 시각으로 남녀 유별하게 풀어 내어 여성무용수들이 눈에 들어 왔다는 것이다. 길서영의 도시적 분위기와 절제된 표현과 이민영, 위보라, 김보람 등의 춤이 어느 때 보다 눈에 들어 온 것 은 여성무용수들의 제자리 찾기로 LDP 스타일의 진보를 기대할 수 있게 하였다. 마지막에 검은 물감을 통에 들고 나와 흰 바닥에 뿌리며 뭔가를 종결 지으려는 의도의 장면 역시 흔히 수묵화 분위기의 해프닝을 연상시키긴 했으나 어떤 식으로든 작품을 본인의 감각과 본인 식으로 결론을 내려는 의지로 보여 미숙하고 부조화스러움 에도 불구하고 신선했다. 인간에 대한 물음과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 소재를 포착하고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초점과 그 초점을 잃지 않고 결론까지 끌고 가는 힘, 그리고 관념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인간의 몸과 거친 숨을 통해 빚어내려는 김성훈의 의도는 집요하고 순수한 만큼 관객에게 무언의 언어로 충분히 호소력을 갖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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