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피아 메나르 〈푄의 오후L'après-midi d'un Foehn〉 & 〈소용돌이Vortex〉
신과 천재의 영역을 현대의 기술력과 상상력으로 이어가다...
김혜라_춤비평가

 피아 메나르의 <푄의 오후>와 <소용돌이>는 안무의 개념을 포괄할 수 있는 퍼포먼스 성격이 강했다. “초현실 vs 리어리티”라는 주제로 2013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공연된(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10월 19~22일) 이 두 작품에 대해 피아 메나르는 방법론적으로는 유사하게 접근하였지만 지향점은 각기 다르게 형상화 시켰다. 곧 현실과 환상의 세계 그리고 개인의 허상 세계 탈피라는 면모를 직설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시각적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작품을 공연한 논 노바(Non Nova) 컴퍼니는 1998년에 창단되었으며 무대장치와 연출기법의 방법론에 주력한 단체로 알려져 있고 그 명성에 걸맞게, 안무가의 창의적 상상력·유희적 연출 그리고 단체의 무대 기술력까지 삼박자를 모두 갖춘 탁월한 역량으로 안무방식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사물들이 주체가 되어 춤을 추다

 



 일반적으로 공연에서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는 공연자의 몸짓에 따라 혹은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따라서 오브제가 춤꾼이나 공연자와 동등한 위치이거나 주체적 의미를 생산시키는 조력자에 불과할 때가 많다. 본 공연의 오브제인 일반 비닐봉투와 24대의 선풍기 팬의 풍속과 풍향은 공연의 주체자가 되었고 오히려 공연자가 상징적 역할로 탈바꿈 된 상황이 연출되어 관객에게 신선한 흥미를 유발시켰다.
 공연자인 세실 브리앙(Cèclle Briand)의 사제 같은 의상 매무새로 등장할 때부터 직감적으로 예사로워 보이진 않았다. 역시 무대에서는 하나의 의식을 치르듯 비장하게 비닐인형의 재봉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동시에 객석에서는 마치 다른 세상에 승차하는 양 관객들이 줄지어 질서정연하게 착석하도록 유도되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또한, 극장 한편의 가설원형무대 공간은 스산한 배경음악의 영향도 있었으나, 중력을 거부하며 하늘로 치솟는 비닐인형들의 반란을 유도한 연출적 탁월함으로 인해 꿈을 꾸듯 몽롱한 세계에 와있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두 작품 모두 전반부는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공연은 사랑스런 색감의 주황색 비닐봉투를 오리고 테이프로 붙여서 무대에 던지자 팬의 풍속에 따라 비닐인형이 ‘어느새’ 생명체로 탄생되어 춤추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하였다. 신선한 연출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어서 여기저기서 어린아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탄성이 들렸다.
 하지만 두 작품의 중·후반부는 다른 결말을 보였다. <푄의 오후>에서는 바람에 유영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을 보였으나 <소용돌이>에서는 격한 바람에 집어 삼켜질 것 같은 영혼이 사투를 벌이는 형상으로 진행되었고 흔들리는 내면의 자아정체성을 극단적이며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표현해 서로 대비되었다.


 

 



 <푄의 오후>는 팜플렛에 기술된 것 같이 작품 제목인 푄(Foehn)이 목신(Faune)의 발음과 유사한 언어적 유희성과 드뷔쉬(Claude Debussy)의 <목신의 오후> 음악의 연관성으로 연결되었다. 니진스키(Vatslav nizhinskii)가 목신의 오후(L'après-midi d'un faune)에서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처녀가 비닐인형으로 변신한 듯 비닐인형이 하늘을 유랑하듯 춤을 추며 날아오르는 정교한 모양이 춤꾼 못지않게 아름다워 보였다. 또한 공연자는 마치 자신이 목신이 된 듯 형형색색의 무리들을 한가로이 놀게 도와주기도 하였고, 우산과 지팡이를 이용해 무리를 이끌었으며 커다란 용과의 전투 장면에서는 그들을 지켜내는 용사가 되었다.
 해리포터의 마법학교에서나 있음직한 권선징악의 판타지인 <푄의 오후>는 어린관람객에게는 신비한 마법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였고, 어른들에게는 어린시절 한번은 상상했을 법한 사랑스런 수호천사의 모습을 추억하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이를 조율하는 기술적 메커니즘 또한 흥미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와는 달리 <소용돌이>는 괴기한 형상을 띤 불균형적인 인간이 온전한 생명으로 재탄생 되는 탈피의 과정을 직설적으로 보였는데 공연자인 피아 메나르의 몸을 거대하게 조인 끝이 보이지 않는 비닐더미는 윤리라는 이름의 규율 덩어리이자 자신을 속박하며 균열시키는 사회적인 허상으로 은유되어 관객의 시각과 감성을 완전히 흡수하는 듯 했다.

 공연자는 한참 동안 몸을 조인 비닐을 풀어 헤친 후 그 무더기를 쓰레기통에 집어치우는가 하면 절규하듯 바람에 휘청대는 붉은 색 비닐더미에 압도되어 소용돌이치는 바람 자체로 변해버렸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공연자 가랑이에서 비닐아이를 출산하는 장면과 공연자의 몸을 감싸준 애기집 같은 보호막 비닐과 몸에 밀착된 살색 타이즈를 물어뜯어 찢는 장면이었다. 이 모습을 통해서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사회적 요구는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럽지만 자기 본연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의 처철함은 지속되야 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게 하였다.
 격정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철학을 은유한 무대는 공연이 마치고 한참 후 까지도 그 긴장감이 지속되어 숙연하게 숨죽이게 만들고 있었다.

2013. 12.
사진제공_한국공연예술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