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34회 서울무용제(2013. 10. 29 – 11. 17.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가 20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말하자면 서울무용제는 요즘처럼 축제의 무대가 많지 않았던 시절, 요즘처럼 지원금이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 무용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의 중심이었고 그래서 1년에 한번 대극장용 창작품으로 무용계를 모아낼 수 있는 축제였다.
그러나 그간 시대의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서 기획 방향성을 정하지 못한 채 구태의연한 운영을 함으로써 무용계에서 창작품을 배양하는 본연의 역할을 해오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간 서울무용제의 공연들은 어떤 ‘스타일’을 만들어 내었고, 그 스타일의 대동소이함과 구태의연함이 더 이상 창작품으로써의 매력을 갖지 못하는 바람에 그리 흥미로운 공연을 기대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이 무용제에 참가하는 무용가들은 전체 행사의 예산은 커도 안무자에게 할당되는 지원비는 전혀 넉넉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그야말로 서울무용제에 참가한다는 명예로 위안 삼고 많은 개인적 출혈을 감당하며 대극장 무대를 40여분 채워오고 있으며 동시에 경연에 대한 압박으로 이전까지의 어떤 기준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서울무용제에 대해 그나마 희망과 안도를 하게 된 건 젊은 안무가의 새로운 약진과 8작품 중 6작품이나 한국무용에 기반한 창작춤들로 채워져 뜻하지 않게 한국창작춤의 현주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였고 그 속에서 창작춤의 새로운 부활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작품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국창작춤으로 대극장 무대를 잘 채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이유로는 서양식의 극장조건에 적합치 않은 한국전통춤 양식으로 무대적 변용을 해내는 것도 아직은 길을 찾지 못했고, 한국무용 전공자들이 아직까지도 창작에 대한 교육보다는 전통춤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그들이 큰 무대를 적합한 언어와 장치들로 채우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 된다. 바로 이런 조건 속에서 그들이 극장무대를 완성도 있게 채워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많은 노력으로 이뤄낸 ‘역사적 진보’로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김선정 오은희 최지연의 안무 작품
80년대 이래로 한국창작춤이 30년을 넘기고 있는 이 때에 창무회, 리을 무용단 등은 김매자, 배정혜 1세대를 이을 2세대들의 튼튼히 자리잡고 있으며 이번 출품작에서도 창무회는 최지연 안무의 <꽃, 제비노정기>와 리을무용단은 오은희 안무의 <구부야! 구부구부…>를, 태평무 이수자이자 천안시립무용단 무용수출신인 김선정은 <십이, 후>를 선보였다. 이 세 작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작품들이 이번 공연에서 1세대들이 축적한 것에 기반하여 뚜렷한 양식적 특징과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정 안무의 <십이, 후>는 우주 운행의 원리를 담고 있는 십이지-열두 동물에 대한 상징을 통해 하늘과 땅, 인간의 어우러짐을 다루었다.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과거 국립무용단 스타일의 무용극의 전개를 중심으로 스펙타클하고 역동적인 군무가 주를 이루는 작품이었다. 주역 김재승 등 남성 무용수들의 힘과 박력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작품은 힘있고 스피디하게 진행되었으나 어쩌면 새로울 것 없는 소재와 주제를 새롭게 다루려는 구성적 실험과 시도보다는 과거의 형식을 답습하면서 속도감을 보탠 정도로 신선함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일사분란하고 빠르게 전개되었으나 그것에 대한 예술적 논리성과 합리성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오은희 안무, 우재현 연출의 <구부야! 구부구부…>는 아리랑을 소재로 세월의 고개, 희망의 고개, 눈물의 고개, 정화의 고개의 4장으로 아리랑을 중심으로 “한국적 정서- 삶에 대한 애환과 비애”, “희망과 사랑…평화의 카타르시스, 하나됨”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양 측면의 벽면을 비스듬히 세워 영상을 투사하면서 수묵화처 럼 절제되고 있는 서두는 시선을 충분히 집중시킬 수 있는 아주 새로운 시도였다. 한국적 여인 무용수의 서있는 자태는 그것 만으로 아리랑과 한의 대명사가 될만한 영상이미지였고, 그것을 시적으로 압축시키기 위해 영상이 그녀의 몸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복제시키면서 스크린을 메워나가는 기법은 신선했다. 전반적으로 품격을 흐트러 뜨리지 않으면서 추상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인 초점을 잃지 않으면서 한국적 정서를 다루려는 시도는 리을무용단의 쾌거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진일보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눈물의 고개, 정화의 고개로 넘어가면서 시놉시스의 진부함과 형상화의 구태의연함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크게 아쉬웠다. 춤동작에 있어서도 동작의 수와 힘을 미니멀적으로 압축시켜 적절한 정중동과 내적 힘을 발현해내는 내공의 춤동작으로 보여준 것도 배정혜 선생이 일궈 논 방법론의 무대적 완성으로 볼만했다. 중반 이후의 구성과 연출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고 그러면서 과거로 회귀하듯 진부해지고 말았지만 <구부야! 구구부…>는 한국창작춤이 획득한 예술적 성과를 뚜렷하게 포착하고 무대예술로 완성도를 갖는 길이 그리 멀지 않음을 보여준 수작이었다.
최지연 안무의 <꽃, 제비노정기>는 북한에서 음식을 줏어 먹는 어린 거지를 일컫는 ‘꽃제비’와판소리 흥부가 중 제비가 박씨를 물고 흥부집으로 오는 과정을 다룬 ‘제비노정기’를 연결시켰다. 최지연은 그간의 작업에 대해 “주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나름의 춤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실제 삶의 단명에서 펼쳐지는 빛과 그늘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간 북한의 충격적인 실상을 다룬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에 이은 연작의 느낌을 갖는 이번 작품 역시 우리의 가장 멀고도 가까운 이웃 북한의 실상의 충격성을 다루면서 그것을 포함한 우리의 현실에서의 슬픔과 연민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사회적 현실에 대해 간과할 수 없는 절박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최지연이 스스로 터득한 동시대의 한국춤에 대한 선언이자 출발점이다. 그 주제성을 주춧돌로 깔고 연민의 감정을 주로 하여 호흡에 근거한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팔놀림이 넓은 보폭과 호흡의 급격한 덜컥거림의 춤동작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다. 창작춤 2세대로써 김매자 선생의 무대적 스케일은 이어받으면서 추상화된 미의식 보다는 정서적으로 과거지향적인 경향을 가지며 연민과 한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 그러다 만난 것이 그 정서를 촉발시키는 이 시대의 사회적인 주제이고 이 두가지를 결합시키는 것으로 시대와 관객에 대한 강한 안무욕구를 드러낸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최지연이 진일보 시킨 것은 대극장 무대에서의 시각적, 구상적 구도와 전개의 완성도였다. ‘구원의 사다리’ 처럼, 혹은 간절한 하늘에 대한 기원처럼 보이는 넓은 사다리가 무대에 곳곳에 세워져 있는 가운데 무용수들의 품 넓은 동작과 격렬하게 모였다 흩어지는 구성은 곡선적 출렁임과 수직적 지향이 잘 조화되고 서로를 상승시켰다. 각설이 타령 장면 역시 전체적인 무게감을 덜어내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체를 해치지 않으며 적절한 양념 역할을 하였다. 처음 부분에서 청각적으로는 괴로운 음악이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길게 사용되었던 점과 지나치게 정서표현에 중점을 둔 나머지 전체적인 구성에서의 냉정함을 잃는 것은 최지연이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서울무용제에 참가한 한국창작춤 중에서 대표적인 3작품을 통해 확인된 것은 앞세대부터 이어져 온 내력과 스타일이 30여년의 흐름 속에서 그 다음세대를 통해 보다 세련되고 완성적인 형태를 갖춰 나가면서 무대예술로써의 완성도를 높여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선정이 보여준 보다 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무용극 형식은 안정적인 캐릭터 형상화와 세련된 구성을 더 보완하면 하나의 스타일로써 이어나갈 가치가 있는 것이고, 리을무용단은 주제성이나 압축된 내적 파워와 시적 간결함의 장점 위에 한국춤의 전통적 생동감을 좀 더 포함시키고 극적 전개의 한계를 해결해 나간다면 고유의 움직임 방법론과 표현방식에서 한국창작춤의 뚜렷한 스타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창무회 역시 세련된 정서표현과 고유의 춤 방법론에 무거운 주제에 눌리지 않으면서 자유분방하게 다루면서 동시대적 소재에 참신한 접근을 보탠다면 창작춤의 대표적 일가(一家)로써 묵직하게 자리잡을 것이다. 2013년 가을에 한국창작춤 부활의 징후들을 확인하였다.
1980대 생의 심박수 : 정석순의 <Blue 2.0>
이 작품은 20대의 젊은 안무가와 젊은 무용수들이 만들어 서울무용제 중 가장 젊은 무대였던 거 같다. 그들의 실제적 나이도 나이려니와 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한국사회를 인식하고 그 우중충한 사회마저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상큼하게 뜯어 보고 있는 눈빛이 초롱하다. 정석순은 생긴 것만큼이나 스타일이 일찌감치 뚜렷하다. 움직임의 비트와 빠른 속도, 광적으로 치닫는 클라이막스를 향한 두려움없는 전진 그리고 극단적인 정적 속에 의문과 혼돈을 담아내는 방식이 의도된 일관성으로 작품마다 발견된다.
특히 <Blue 2.0>
영상과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단면들이 춤의 속도감과 파워로 적절히 이어지고 그렇게 전개한 이야기 역시 그냥 표면만을 다루고 섣부른 감정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나름의 해법을 향해 달려나간다. 주인공(정철인)의 몸에 초록 테이프로 결박을 하는 후반 장면은 조금 거칠 긴 했으나 어영부영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는 고민의 생생함이 느껴져 어떤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이전 작에서 자칫 군무의 장면과 주제를 담은 연극적인 장면이 이질적으로 병렬적으로 놓여지던 문제가 이번 작품에서 적절한 리듬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며, 광적으로 치달아가는 군무 역시 정면을 향한 전진 대형을 쓰는 도전적인 장면에도 부담스럽지 않고 작품에 힘을 더해주었다.
주제의식과 감정표현, 장면의 흐름과 군무의 구성 등 무대예술로써의 춤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지점들에서 젊은 안무가 정석순이 자신의 스타일을 양보하지 않은 채 신선한 수작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