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장은 ‘유령의 공간’이다.1) 극장은 스스로를 지우고 허구로 만들어진 현실이 구현되는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인식되지 않는, 완전한 부재가 바로 극장이 작동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극장의 부재성 속에서 작품은 감각의 작동과 소통을 통해 ‘실재적으로’ 구현된다. 관객은 감각의 지각을 통해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목도한다기 보다는 그 현실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 들어가게 된다.2) 극장의 건축적 장치는 감각의 전이와 교감을 일으키고 시공간 개념을 재구성하면서 작품이라는 실재적 총체가 발생한다.
이렇게 극장에서 감각이 작동하는 방식은 정치, 경제적 논리와 역사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극장이라는 유령은 또다른 비가시적 ‘유령들’의 힘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은 일반적으로 극장이 작동되는 방식에 의심하지 않으며 객석으로 입장해 망설임 없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실행한다. 티켓에 적힌 좌석을 찾아가거나, 비지정석인 경우 무대가 어딘지 확인하고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불이 꺼지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길 기다린다.
하지만 동시대 공연예술은 극장의 유령적 존재와 이를 작동하게 하는 장치와 규율을 깨뜨리는 시도를 해왔다. 안무가 황수현은 전통적인 프로시니엄 무대 구조가 작동시키는 감각 방식에서 내재된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 사이의 위계에 크고 작은 균열을 낸다. 소극장 작품 〈검정 감각〉(2019)에서 네명의 퍼포머는 공연 내내 눈을 감고 움직이고 그들의 신체적 취약성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이되도록 한다. 〈카베에〉(2023)의 경우 대극장 무대 위 삼 면을 관객으로 채워서 동굴을 만들어 39명의 퍼포머의 신체 감각이 공명하면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제작한 황수현의 2023년 신작 〈Zzz〉(2023.10.30.~11.12)는 극장의 구조를 급진적으로 가시화하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감각 방식을 전복시킨다.
〈Zzz〉는 식곤증이 생기는 오후 2시에 시작하여 3시간동안 진행된다. 프로시니엄 공연 형태일 때 210명이 입장 가능한 쿼드 공연장에 매회 오직 40명 남짓의 관객만이 참여한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 신발을 벗고 입장하며 객석이 사라진 무대에는 관객이 누울 수 있도록 푹신한 매트, 쿠션과 담요가 준비되어 있다. 낮은 조도 아래 수면 유도 음악과 같은 사운드가 울려 퍼진다. 관객은 어떤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다 이내 눕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안경을 벗은 채 이불까지 덮고 누군가는 차마 모자를 벗지 못한 채 누워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퍼포머로 추정되는 한 인물이 다소 과장된 느낌으로 몸을 늘어뜨리면서 잠을 청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블랙박스 공연장인 쿼드는 다양한 무대 연출이 가능할 수 있도록 객석을 자유롭게 변형 가능하다고 알려졌기에 이 극장에서 객석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는 새로울 것이 없다. 극장의 민낯을 보여주고 이를 다시 허구적 실재로 덮는다면 극장은 여전히 부재한 상태로 남을 것이다. 〈Zzz〉가 급진적인 이유는 극장의 구조를 가시화함으로써 극장의 유령성을 무화시키고, 동시에 실재적으로 가시화 되어야 할 작품은 존재가 흐릿한 유령적 신체로 채워지고 관객은 뭔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없는, 수면 상태로 이끌린다.
황수현 〈Zzz〉 ⓒ대학로극장 쿼드_오석근 |
황수현 〈Zzz〉 ⓒ서울문화재단 |
어느새 사운드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휘파람 소리와 비슷한 구음이 2층에서 들려온다. 2층의 4면에 각각 위치한 퍼포머들은 바닥의 삐거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주 느린 속도로 앞뒤로 걷기를 반복한다. 2층 퍼포머의 행위는 1층 관객 시야에 한눈에 포착이 어렵기에 그들의 신체는 청각적 경험을 통해 감지된다. 시간의 흐름이 무감각해질 무렵 1층 무대 안쪽으로 한 퍼포머가 눈을 감고 등장한다. 구음을 내면서 관객 사이를 천천히 걷다가 다시 멈추면서 눈을 뜨는 행위가 반복되고, 2층의 모든 퍼포머들이 하나둘씩 내려와 동일한 행위를 수행한다. 휘파람 소리가 잦아들고 이동을 멈춘 무용수들의 신체 균형이 흔들거리고 고개가 기울어진다. 이들의 몸은 각기 다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결국 바닥에 눕는다. 자연 소리를 연상시키는 숙면 유도 사운드가 울려퍼지고 거의 암전 상태가 된다. 잠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렸고 주변의 속닥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퍼포머로 출연한 안무가는 천천히 관객에게 다가가 소곤거리면서 말을 건내고, 관객은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뒤척거리며 일어나면서 작품은 끝이 난다.
물리적 상태에 의해서 촉발되는 감정 또는 감각의 전이를 탐구해온 황수현 안무가는 〈Zzz〉에서 퍼포머 간, 퍼포머와 관객 간, 그리고 관객 간의 공동 감각으로 그 영역을 보다 확장시킨다. 퍼포머는 2층에서 대부분 비가시적 상태로 존재하면서 구음을 통해서만 감지된다. 구음근뿐 아니라 몸 전체를 조율하여 내는 퍼포머의 소리는 타인(퍼포머이든 관객이든)과 만나고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이는 1층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퍼포머는 대부분의 시간을 눈을 감은 채 이동하며, 관객에 대한 반응이나 다른 퍼포머와의 관계 설정이 부재하다. 공연에서 퍼포머는 ‘유령’으로 존재한다. 퍼포머는 어두운 조명 아래 자신의 존재를 가리는 검정색 옷을 입은 채 마치 흔들리는 심령 사진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관객은 그토록 기다렸던 퍼포머를 근접한 거리에서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이내 고개를 돌리거나 다시 잠에 든다. 극장이라는 인공적이고 사회적 공간에서 수면이라는 생리적이고 사적인 행위가 가능한 것은 유령의 몸을 가진 퍼포머, 그리고 관객의 느슨해진 감각의 신체 간의 정동 작동에 의해서일 것이다.
황수현 〈Zzz〉 ⓒ대학로극장 쿼드_오석근 |
황수현 〈Zzz〉 ⓒ서울문화재단 |
안무가가 〈Zzz〉에서 제기한 공동감각의 효과로서 잠자는 행위는 유령적 상태를 의미한다. “잠이 들면 우리 안에 있는 유령의 집이 열린다”라는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잠은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통로로서 비물질적이지만 그 흔적을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는 유령과도 같다. 잠자는 상태는 높은 수준의 지적, 감각적 활동이 작동하는 관객의 일반적인 몸 상태와 대조적이다. 그렇기에 잠자기는 극장에서 실재를 ‘실재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 극장의 유령성을 재각인시킨다. 이는 극장을 작동시키는 오랜 권력 구조와 위계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극장 내 잠자는 행위는 미학적 의미를 넘어 그것의 정치성이 함의하는 바가 크다. 잠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아래 잉여적 시간이다. 인적 자본으로 스스로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업가적 주체가 요구되는 사회 논리 속에서 잠은 불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든 욕구, 역량, 관계를 자본화하는 시대에 잠은 자본주의에 의해 침범당하지 않는 자연적 요소로 남아있다. 조너선 크레리는 잠의 이러한 성격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저항으로서 읽어낸다. “역설적이지만 잠은 권력이 정치적 저항을 가장 덜 받으면서 작용을 미칠 수 있는 주체성의 표상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도구화하거나 외적으로 통제될 수 없는 상태, 전 지구적 소비사회의 요구를 회피하거나 좌절시키는 상태의 표상이다.”3) 〈Zzz〉는 무대에 적극적으로 재원화될 수 있는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인적자본으로서 퍼포머의 신체를 동원하는 대신 신자유주의 체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는 인간 주체, 즉 권력의 통치성을 무력화시키는 ‘잠자기’를 실행함으로써 투쟁한다. 따라서 작품에서 잠이 들어서 공연의 일부 또는 대부분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 행위 자체를 통해 관객은 극장에 작동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적 힘의 논리에 저항하는 정치적 주체를 실천한다고 볼 수 있다.
〈Zzz〉는 극장의 유령을 재각인시키고, 유영하는 유령의 몸들이 드러내고, 관객이 잠을 자는, 즉 유령의 상태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유령들의 현존은 극장을 작동시키는 권력을 침범하고 극장을 점거하는 정치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황수현의 전작에서 보여준 세밀하게 진동하고 전파되는 감각의 전이 그리고 공동 감각을 형성하는 힘은 다소 미진하게 다가온다. 삶 속에서 쉴새없이 달려온 개인들이 극장 문이 열리자마자 잠시의 머뭇거림 후 퍼포머가 나오기도 전에 극장의 건축적 장치만으로도 쉽게 잠이 들어버린 경우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어쩌면 안무가는 사회 속 추방당한 잠에 대한 몸의 원초적 요구가 극장의 권력이 작동되는 힘을 마주하고 이를 교섭하는 치열함보다 훨씬 더 강할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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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정우(2011). 「극장: 역설의 시공간」. 『연극』, 1, 19쪽.
2) 서현석, 김성희(2012). 미래예술. 서울: 작업실유령, 325-326쪽.
3) 조너선 크레리(2014). 24/7 잠의 종말. 파주: 문학동네, 47쪽.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