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국악원무용단의 변화와 학구적 시도들
김태원_「공연과 리뷰」 편집인

 최근 국립국악원무용단(예술감독·한명옥)의 변화 모색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궁중정재의 재구성 내지 재창작화를 모색한 ‘전통의 경계를 넘어’라는 기획전에 이어 올 연초에는 정재와 창작과의 관계를 모색한 두 차례의 ‘즐거운 토론회’가 있었고, 이어 상반기 중에 다양한 지역성과 스타일을 가진 우리 민속무의 극장예술적 레퍼토리화를 모색한 ‘춤, 마음의 지도―4도(道), 4색(色)’이 열렸다. 그리고 이번 9월 26~27일 사이에 ‘新, 궁중정재―전통의 경계를 넘어’란 이름으로 공연 무대를 작은 무대인 우면당에서 보다 큰 무대인 예악당으로 옮겨 지난해 연말의 기획전을 더 확대한 공연을 벌였다.
 사실 국립국악원무용단은 ‘정재의 재현과 보존’이라는 무용단 존재성의 특수성 때문에 우리 춤계에서는 큰 시선을 모으지 못했다. 그간 현대무용은 물론 한국창작무용이 컨템포러리성을 강화해가며 급변했고, 발레 또한 국립발레단이 재단 법인화되어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전문성과 함께 대중성이 크게 고취되면서 춤관련 뉴스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간 죽어있던 전통춤도 개성적인 기획자들의 출현에 의해 나름대로 독자적 판(예술시장)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그런 사실들에 비견하자면, 국립국악원무용단은 거의 변화를 안 해왔다 할 수 있다.
 내 기억으로는 1990년대 들어 한 차례 국립국악원무용단, 넓게는 국립국악원의 활동방향에 대해 격론(激論)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무엇인가 변해야 한다는 의견과 변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그것으로, 당시에는 전자의 의견도 거셌지만 후자 즉 ‘변화하는 것이 시기상조’란 의견이 우세했다. 그래서인지 90년대 들어 국립국악원무용단은 궁중무 즉 정재의 재현과 보존이란 쪽에 더 무게중심을 두어 활동해왔지 않나 싶다. 그러나 국립국악원무용단의 활동을 더 내밀히 살펴보면, 틈틈이 그리고 때론 파격적으로 어떤 변화를 모색한 춤작업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의 ‘새로운 변화의 시도’는 그때와 좀 다른 방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변화의 방법론(方法論)에 대한 것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국립국악원무용단이 비교적 의식을 뚜렷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곧 막연한 창작적 충동을 억제하고, 전해지고 있는 정재무의 형(型)을 ‘재구성’ 내지 ‘재창작’화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른바 전통재구성무 내지 재창작무의 방식을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예악당에서 올려진 5개의 재창작무 중 『가인전목단』을 모형으로 한 국악원 안무자 심숙경 안무의 『청가아무』, 『향발무』를 모형으로 한 양선희 안무의 『향가』, 『처용무』를 모형으로 한 한명옥 안무의 『오우(五雨)의 춤』이 전통재구성무 내지 전통재창작무의 특성을 많이 지녔다면, 궁중 『검기무』를 염두에 둔 이종호 안무의 『황창의 비(飛)』, 『아박무』를 모형으로 한 이종호 안무의 『상혼(象魂)』은 보다 창작 지향이었다고 본다. 우선 춤움직임이나 구성의 형식상 심숙경의 『청가아무』는 고아(古雅)한 창사(唱詞)의 불림 속에 『가인전목단』의 모란꽃 이미지를 활용한 화무(花舞)와 등(燈)을 이용한 열무(列舞)의 컬러풀하며 우아한 합체(合體)였다면, 『향가』는 향발이 주는 이국적 음색과 신비로운 춤의 분위기를 농밀하게 응축시킨 군무성이 강한 재창작적 춤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오우(五雨)의 춤』은 창작성을 적지 않게 내포하고 있었지만, 춤의 동작과 공간의 구성 형식에 있어서 원형 즉 『5방 처용무』를 깊이 참조한 재구성무에 더 가까웠다. 곧 공연에서 역신(疫神)인 처용이 가면을 쓴 오늘의 인물로, 액(厄) 막음의 몸짓이 비를 뿌리거나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위무(慰舞)의 성격으로 치환되면서, 처용무 특유의 큰 발걸음 옮김과 내디딤, 그리고 강한 소매 뻗침이나 치켜올려 휘돎 등의 동작이 공연에서 그대로 오늘의 몸짓으로 이어져 활달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면서 옛 가면을 쓴 처용과 오늘의 인물들을 대비시켜 과거/현재, 그리고 시·공의 변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침묵 속에 묻고 있었다.
 한편 이종호의 두 안무작은 모두 창작에 가까웠지만, 『황창의 비』의 경우 우리춤의 역사에서 검무(劍舞)는 신라시대 때부터 문헌에 등장하고 있어서 앞서 보여졌던 조선시대의 6인(여성 4인과 남성 2인) 궁중 『검기무』(무용단 안무자 하루미가 인상적으로 재현했다)가 꼭 어떤 원형이라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경우 안덕기·박상주·김청우·김서량이 공연한 4인 남성 검무는 조선시대 여기(女妓)들이 주로 추던 검무보다는 오히려 신라시대의 고대 무예(武藝)에 더 근접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할 수 있다. 안덕기 리드로 넉넉한 공간성과 함께 무게중심을 내려 누르며 수평적 운동성을 많이 구사하였던 이 검무는 나름대로 절제미와 남성적 힘이 느껴졌던 퍽 인상적이었던 춤이었다 하겠다. 더불어 『상혼』은 궁중무의 대칭성과 미니멀리즘을 창작적 측면에서 매우 분명히 노출시킨 의외의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이번 공연의 흥미로운 점은 재현된 궁중정재를 관객이 먼저 보고, 이어 안무자의 재구성 내지 재창작적 작업을 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관객으로서는 보존되고 있는 원형(原型)과 변화되고 있는 변형(變型) 모두를 함께 볼 수 있는 이점이 있었는데, 이것은 우리춤 유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창작의 과정을 함께 보는 흥미로움을 함께 주었다 하겠다. 그런 가운데 관객들은 재현·재구성 그리고 재창작의 단계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마음속으로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춤공연이 줄 수 있는 교육적 효과와 함께 창작의 과정에 대해서도 매우 뜻깊은 시사점을 주었다고 본다.
 국립현대무용단이 발족되어 활동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국립무용단은 어떤 활동을 지향해야 할까?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과 ‘다른’ 국립국악원무용단은 또 어떠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최근 국립국악원무용단의 학구적 모색과 변신의 욕구는 지켜보기에 매우 흥미롭고, 우리춤의 자산에 변화와 풍요로움을 더하는 값진 노력들이 아닐까 싶다.
 지난 30년간 한국무용문화는 전통이냐 창작이냐 라는 매우 단순한 2분법적 구도에 의해 교육되어 왔고, 또 관련한 예술활동을 했다. 그러면서 전통의 경우는 거의 맹목적인 답습과 전수에, 그리고 창작은 또 그 못지않은 관행과 부자연스런 심리적 압박 속에 활동했다. 그러면서 있을 수 있는 ‘중간의 영역’을 못봐 왔다. 그런 점에서 국립국악원무용단의 최근의 춤기획전은 그 중간의 영역을 보도록 하면서, 춤에 대한 사고(思考)와 춤보기의 즐거움을 함께 주고 있다. 

2013.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