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로그 & 사운드>란 작품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공연(1월 8-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평자 9일 공연 관람)은 어느 일면 기존의 정형화된 양식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대부분의 컨템포러리 댄스 안무가들의 작업에서 보여지는 움직임의 배합(무브먼트의 완급 조절과 댄서들의 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테크닉적인 동작 구사) 스타일과는 상당 부문 다르기 때문이다.
　안무가 정지윤은 8명 댄서들의 움직임보다는 그들의 인성(人聲)과 스크린에 투사된 텍스트, 그리고 이동하는 오브제(사격형의 테이블 등)에 더 많이 의존해 관객들과 소통했다. 그 때문인지 작품은 전체적으로 절제되어 있다. 무용수들의 동선을 최소화한 안무가의 움직임 조합은 시작부터 꽤 오랜 시간 지속시켜온 지체(肢體)의 템포와 강도가 언제 무너질까 하는 관객들의 기대를 철저히 무시했다.

　무대 전면 호리존트를 베니어 판으로 막은 벽과 적게는 한 개에서 많게는 일곱 개까지 무대를 점하는 사각형 테이블은 시각적 이미지, 댄서들에 의한 조형적인 이미지 구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여기에 안무가는 댄서들의 몸과 사운드 그리고 텍스트를 기묘하게 배합시켰다.
　사운드는 무용수들의 인성(人聲) 외에도 라디오의 실황 방송, 시계 벨소리, 소형 확성기, 그리고 악기(기타) 소리도 가세했다. 안무가는 의자를 만들기 위해 못질하는 망치 소리, 댄서들이 자신들의 몸을 때릴 때 옷의 재질에 따라, 신체의 부위에 따라 각기 다르게 울리는 소리까지도 사운드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인성(人聲)을 사용할 때도 안무가는 하나의 상황(남녀 댄서의 연습과정)을 설정, 서로 간에 다투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성과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우연성까지도 음미하도록 만들었다.

　작품 전편을 통해 안무가의 감각이 빛난 접점은 인성(人聲)에서의 속도감과 톤, 그리고 문자로 벽에 투사될 때의 그것과 절묘하게 맞물리는 타이밍이다. 댄서들이 한구절씩 내뱉는 텍스트를 같은 속도로 화면에 글자로 투사하는 방식, 들릴듯 말듯한 크기의 사운드를 유지하며 글자를 통해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상대적인 상승효과는, 시청각적인 교감을 동시에 노린 의도된 연출이었다.
　공연 내내 지나치게 절제된 분위기는 중반을 넘어 선 시점이 되면서, 막힌 벽의 한쪽이 서서히 열리면서 그 사이로 들어오는 또 다른 빛의 투사로 인해 변환되었고, 안무가가 점한 타이밍과 빛의 조도가 만들어내는 밀도는 그 여운이 만만치 않게 진했다.

　반면에 살아있는 금붕어가 유영하는 투명한 어항, 흰색의 작은 변기, 빨간 권투장갑, 여성의 발을 정성껏 씻겨주고 머리를 감겨주는 남성, 물이 가득 담긴 물컵을 여성의 등에 올려놓고 등을 숙인 채 이동시키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다. 이같은 다분히 보여주기 식의 나열은 움직임 플러스 사운드 & 다이올로그의 교합이 가져다 주는 분명한 컨셉트의 여운을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너무 많은 장면 설정과 사운드 & 다이올로그를 무용수들을 통해 구현내 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댄서들의 역량과 앙상블의 부족 역시 작품의 완성도를 저해시킨 요인이었다.

　DV8의 안무가 로이드 뉴슨은 ＜Can We Talk About This?＞에서 텍스트와 움직임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관객들과 성공적으로 소통했다. 공연내내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직접 무용수들의 입을 통해 토해냈다. 안무가는 단어에 내포된 의미, 템포, 소리의 고저 등 치밀한 바이브레이션을 통해 그것 자체를 음악으로 치환했다. 무용수들이 내뱉은 대사는 그대로 음악이 되고 무용수들은 그 리듬에 맞추어 자신들의 몸을 거침없이 내맡겼다. 이같은 시도는 곧 새로운 움직임의 창출로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정지윤의 이번 작업에서도 어느 일면 로이드 뉴슨의 이 같은 컨셉트가 읽혀졌다. 이 두 작품이 관객과의 소통과 예술적인 교감에서 차이가 있다면, 정지윤의 경우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는 장면과 내밀함이 결여된 댄서들이었다.
　다음 공연에서 몸과 사운드, 텍스트를 하나의 사이클로 체화할 수 있는 댄서들의 밀도 있는 앙상블이 더해진다면 이번 작품은 그동안 안무가 정지윤이 추구했던 씨어터 댄스적인 흐름에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의미있는 작업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