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한명옥)이 상반기 기획공연 ‘정재, 역사를 품다’(6월 28, 29일)에 이어 하반기 기획공연으로 ‘전통의 경계를 넘어 - 궁중무용의 변주’를 11월 6, 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올렸다. 국악원 무용단이 의욕적으로 단독 공연을 연이어 기획했고, 이번 공연에서 국립국악원 무용단 작품의 새로운 방향성을 시도했다. 궁중무용의 변주라는 틀 안에서 원형을 해체하여 고정된 형식 속에 갇혀있던 정재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는데, 그간 국악원 무용단의 창작무대가 민속춤 중심으로 구성한 테마공연이었거나, 국악원 무용단의 정체성과 크게 연관성이 없는 창작춤 공연이었던 점과 비교한다면, 궁중무용을 테마로 그 변주를 모색한 이번 공연은 이례적이었다. 국악원 무용단의 정체성을 반영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전 공연과 차별성이 있는 공연이었다.
첫 무대는 심숙경 안무의 〈청가아무(淸歌雅舞)〉였다. 조선후기 창제된 ‘가인전목단’과 ‘춘대옥촉’을 결합하여, 궁중무의 배열도와 동선을 프로시니움무대에 맞추고 정재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꽃의 다양한 표정들을 표현하였다. 꽃을 어르는 춤사위가 훨씬 자유로와졌고, 등불춤은 꽃춤과 잘 어울렸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면을 향하여 꽃을 모아든 후, 사선방향으로 헌무하였다. 정재의 본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좀 더 낭만적인 장면을 기대해봄직 했다.
‘검기무’와 황창의 기록을 바탕으로 창작한 〈황창의 비(飛)〉는 이종호 안무로, 검을 싸움의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기쁨을 나타내는 도구로 설정하고, 또 무예가 예술적 경지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의도로 창작했다고 했다. 검을 다루는 춤꾼들의 기량이 돋보였고, 호흡을 조절하여 춤으로 풀어냈다. 대무(對舞)가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마지막에 종묘제례악의 무무(武舞)와 결합한 부분은 〈황창의 비〉의 의미망을 강화해주었다. 이 대목은 무인(武人)으로서 황창의 충성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고, 또한 『예기』 「악기」에서 말하는 무무의 시원(始原)도 떠올리게 했다.
다음 작품 〈향가(香歌)〉는 ‘향발무’의 향발을 모티브로 창작하였다. 양선희 안무로 의상과 향발의 조화가 전체적으로 색다르게 설정되었고, 이국(異國)적 느낌이었다. 향발무는 조선 초 『악학궤범』에 이미 기록되어 있고, 고려 때부터 전하는 춤이었다고 하는데, 이국적 느낌의 〈향가〉를 보며 ‘향발무’의 원류를 머릿 속에 그려보았다. 많은 장식물들이 향발에 대해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이어서 양선희 안무의 〈춤추는 공명(共鳴)〉이 올려졌다. 〈춤추는 공명〉은 궁중무 레파토리가 아닌 제례악에 사용하는 노도(路鼗)라는 북을 소품으로 작품화했다. 원래 노도의 북통에 달린 귀 두 개를 떼고, 노도의 몸통에 손잡이를 달아 손을 껴서 몸통을 감싸쥐게 했다. 타악 중심의 창작음악을 배경으로 했고, 춤과 북의 놀림으로 전개되었다. 노도 이외의 모티브가 필요했다.
〈상혼(象魂)〉은 이종호 안무로 ‘아박무’를 변주하였다고 했다. 9칸의 큐브에 9인의 춤꾼을 배치했는데, 9칸의 큐브가 마치 악기 아박의 목판 6개를 상징하는 듯 했다. 〈상혼〉에서 안무자는 큐브가 사각의 형식에서 변화하지 않지만 내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려는 모습이 초월적 지향점을 지닌 현대인의 모습을 닮은 듯하다고 했다.
마지막 작품 〈오우(五雨)의 춤〉은 한명옥 안무로, ‘처용무’를 변주하였다. 안무자의 개인 공연에서 초연한바 있었으나, 이번 공연에서 숙성되었다. 처용의 오방무에서 오우(五雨)를 유추한 것은 처용이 용왕의 아들이기 때문이며, 다섯 빛깔의 비(雨)란 온 세상의 비를 말한 것일 것이다. 오우(五雨)는 흘러 흘러 결국 처용이 살았던 바다에서 만나게 될 것이니 … 처용의 한삼춤이 흑장삼의 춤사위로 변하여 분방하고 강한 이미지를 전달해주었다. 가면을 벗은 후의 변화는 미약했으나, 마지막 장면에서 처용 5인을 오버랩시킴으로서 오우가 세상을 구비쳐 결국 바다로 흘러 그곳에 이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처용을 다시 보게 했다. ‘처용무’를 익히 추었고 처용무의 배경을 잘 알고 있는 국악원 무용단원들이 충분히 소화해주었다.
전체적으로 ‘궁중무용의 변주’는 궁중무용의 형식적 측면의 변주가 다소 많았다. 그리고 변주에 입각한 안무 의도를 설명하는데 비중이 많아, 원작을 소개하는데는 다소 부족했다. 사회자의 설명이나 연출에 있어서 원작의 특징에 대한 설명이 보완되어야 한다. 원작을 강조하는 이유는 원작을 잘 알아야 변주된 작품의 특성을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춘향전’이라는 작품이 영화나 판소리에서 계속 리메이크된 것은 대중이 이미 ‘춘향전’을 잘 알고 있으며, ‘춘향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들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궁중무용도 마찬가지이다. 궁중무 원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궁중무 변주 뿐만이 아니라 궁중무 감상의 스펙트럼을 넓혀줄 것이다. 50종이 넘는 궁중정재들은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우리 전통예술의 정수이다. 궁중무용 각각을 춤 작품으로 본다면, 춤의 주제와 작품 창작의 동기, 춤의 배경과 줄거리, 등장인물, 표현방식, 소품 등에서 각각 개성이 뚜렷한 작품들이다.
이번 공연은 국악원 무용단의 2001년 “정재 들여다보기”와 비교된다. “정재 들여다보기”가 큰 틀에서 궁중정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아름다움을 설명한 공연이었다면, 이번 공연은 각 궁중정재 종목의 예술적 특성과 예술성을 깊게 들여다보고, 궁중무용이 현대적 감각으로 만날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시도한 공연이었다. 궁중무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고 본다.
그리고 궁중무용의 전통을 지켜온 국악원 무용단의 이번 작품들은 다른 무용단이나 무용가들이 궁중무를 변주한 작품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주제를 다른 모티브와 연관시키는데 있어서도 국악원이 보유한 예술종목들과 접맥시키켰고, 또한 변주된 작품들 속에서 국악원 무용단 춤꾼들의 정재의 호흡과 춤사위를 구사했다. 이러한 점들이 다른 무용단과 비교되는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차별적인 질이라고 본다. 다음 공연 기회가 있다면 궁중무용의 밑그림에 더욱 관심을 갖기를 당부한다. 그것이 국악원 무용단의 특성을 더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