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라시드 우람단은 알제리 부모를 가진 프랑스 태생의 안무가로 21년부터 파리의 국립무용극장 샤요의 예술감독에 부임하였다. 그는 2000년인 30대 초반부터 안무가로 주목을 받으며 부터 랭스, 파리, 즈네빌리에 등에서 상주 안무가로 경력을 쌓아 나갔고,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테아트르 드 라빌(파리시립극장) 협력 안무가, 2016년부터는 우리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는 요안 부르조와와 함께 그르노블 국립안무센터 감독됨으로서 서커스와 현대무용을 혼합(hybrid)하는 작품을 본격적으로 실험하고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르노블에서의 또 한 축의 중요한 작업은 예술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무는 장기 프로젝트 “그랜드 랠리”를 기획하고, 관객을 예술을 실천하는 새로운 방식의 중요한 부분으로 하는 참여시켜 ‘함께 군무 만들기’ 작업을 진행하였다.
샤요국립무용극장 〈익스트림 바디〉 ⓒ2023 SPAF/옥상훈 |
스파프 개막작으로 오른 작품 〈익스트림 바디〉(컨셉: 라시드 우람단, 10, 6-7. 국립극장 해오름)는 그간 이어온 서커스 전문가들 뿐 아니라 고공 줄타기 선수(highliner)인 나단 폴린과 클라이밍 선수인 니나 카프레즈를 무대에 출연시킴으로써 무대에 익스트림 스포츠 세계를 적극적으로 초대한다. 아크로바틱 외에 다른 영역의 몸의 고수들의 세계를 탐색하며 라시드가 포착한 초점은 그들의 몸의 경험과 그 안에서의 느끼는 내밀한 심경이다. 초반부의 상당 시간은 전면에 나단 폴린의 줄타기 영상의 투사가 이어지고 무대 위에 설치된 줄 위에 그가 걸쳐있음이 보여질 때까지 가상과 현실은 교차되고 연결된다.
샤요국립무용극장 〈익스트림 바디〉 ⓒ2023 SPAF/옥상훈 |
줄타기 영화를 보는 듯한 체험으로 줄타기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손에 땀을 쥐는 긴장과 떨림은 곧 그의 육성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흔히 접할 수 있었던 날 것의 스포츠 채널이나 다큐영화에서와는 또 다른 목소리로 들린다. 이어 니나 카프레즈의 사례도 비숫하다. 그녀의 클라이밍의 순간들, 자세들이 클로즈업되고 그것이 실패하여 미끄러지는 순간까지 관객의 숨은 몰입으로, 놀람으로 자주 멎어야 했다.
샤요국립무용극장 〈익스트림 바디〉 ⓒ2023 SPAF/옥상훈 |
세 번째 사례인 서커스 퍼포머의 부상과 얽힌 죄책감 얘기는 무대 위의 상황과 훨씬 가깝다. 자기 때문에 자기 밑에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다른 퍼포머에 대한 미안함과 부상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고백은 스포츠맨들의 얘기와는 달리 가깝게 들린다. 이는 완성된 형태로 보여지는 공연 장면과 그 이면-그들의 일상과 그들의 내면을 들춰보는 것 같은 느낌을 병합하여 퍼포먼스를 한층 입체적으로 느끼도록 해주었다.
샤요국립무용극장 〈익스트림 바디〉 ⓒ2023 SPAF/옥상훈 |
이 공연의 몰입도는 상당히 꼼꼼히 쌓아 올려지고 계산되어 있다. 마치 산 위의 바람이 느껴질 것 같은 영상의 퀄리티가 가장 먼저 몰입의 상당 부분을 감당했으며(비디오: 장-카미유 고이마르), 이 전체 분위기를 감싸며 스포츠 프로그램이나 다큐와는 다르게 만든 음악(장-밥티스트 줄리엥)은 모든 매체를 연결시키는 주인 노릇을 하였다. 전자 기타의 단선 연주를 미세한 질감까지 느껴지도록 확장된 사운드와 그것의 분위기는 무겁되 우울하지 않고, 장중하되 압도하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만드는 명상(meditation)음악의 힘을 갖고 있었다.
샤요국립무용극장 〈익스트림 바디〉 ⓒ2023 SPAF/옥상훈 |
프랑스 서커스를 사랑하는 한 관객으로서 나는 그들 서커스가 가진 수공업적인 기예의 힘과 따뜻한 몸들의 쌓아 올림의 감동을 알고 있다. 무용과는 다르게 더 많이 체중을 상대의 몸에 던져야 하고, 올려야 하고, 감당해야 하는 지점은 몸쓰는 자들이 겪는 보편적인 자신과의 싸움 뿐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몸으로 감당하는 책임감 같은 것이 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기예를 떠나 인간적 감성과 스토리를 갖춰 다가오지 않으면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이질감을 극복하기 어렵다.
라시드 우람단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통한 색다른 몸경험을 관객이 공유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을 음악과 조명의 잔잔하고 세련된 감각으로 뭔가 진솔한 지점까지 끌고 내려와서, 자신의 안무적 능력을 더한 서커스 움직임과 구성으로 무대 위 퍼포먼스로 승화시키고 종합시키는 전(全) 과정이었다.
샤요국립무용극장 〈익스트림 바디〉 ⓒ2023 SPAF/옥상훈 |
무대 뒤 호리존트 벽을 클라이밍 장치의 벽으로 사용하면서 적어도 바닥과 벽, 두 면(面) 모두에서 몸들을 끌어당기는 중력이 있는 것 아닌가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출연자들의 몸은 찰떡같이 벽에 붙고 떨어지고를 반복했다. 바닥이 아닌 곳에 중력이 작용하는 듯한, 아니 자력이 작용하는 듯한 착각은 그가 그르노블에서 요안 부르조아와 함께 공유하고 개발한 서커스 테크닉의 흡수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퍼포먼스는 익스트림을 경험한 바디들에 대한 헌정과도 같은 따뜻한 감쌈과 배려의 군무의 행렬로,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몸들의 협주’로 ‘겸양의 미덕’을 군무로 보여준다면 저런게 아닐까하는 경지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개성을 주장하지 않는 몸들, 한 점으로 이어지고, 달리고, 연결되고, 교감하는 것에 집중하는 몸들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느끼게 되었을까를 반추해 보았더니 의외의 결론에 다다랐다. 영상의 몰입과 충격으로 숨 쉴 시간을 뺏긴 순간, 퍼포머들의 체공 시간과 공기의 틈 안에서의 몸이 전환하는 찰라의 순간, 서로의 몸을 받고 던지면서 무게와 중력을 느리고 부드럽게 만드는 서로의 호흡을 모으는 순간들이 연쇄적으로 점층적으로 모여 보는 이의 시간을 파고들고 있었다.
이제 안무는 몸, 동작, 대형, 구조 등 보이는 것을 안무하는 것 말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안무하는 것으로 확장되는 것 같고, 라시드는 여러 매체를 끌고 들어와서라도 이 순간을 형성하고 보여주고 있다. 조금은 길게도 느껴지는 호흡을 끄는 듯한, 정지로 보이는 듯한 여운의 시간은 익숙한 입구는 아니지만 친절한 입구가 되었고, 상상할 수 있는 기다림의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명상에 훈련된 관객이라면 산만한 상상을 거두고 평소에 작동하지 않았던 제3의 눈을 떠서 지혜를 꿈뻑 거릴 수 있는 그런 시간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누구에겐 무덤덤하고, 심심하고, 느려터지고 무용이 아닌 아크로바틱 아닌가는 질문을 하게 할 수 있다. 여러 매체를 끌고 들어와 잡탕밥을 만들어 춤의 영역을 비좁게 만든 정체성 없는 작품 아닌가하는 논란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각적인 배려와 고려는 강한데 그 궁극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은 약하다. 딱 거기까지다.
관심이 많다면 앞의 여러 논점을 고민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프랑스 현대춤과 우리의 현대춤 상황과 맥락은 많이 다르다. 깊게 그들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할 일은 그다지 많을 거 같지 않다.
우리 국립현대무용단이 샤요 극장과 라시드 우람단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들의 역사와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공적 자금을 써가며 표피적인 것을 흉내 내거나, 참여적인 관객을 만드는 어떤 프로젝트를 실적 중심으로 복사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