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매회 공연의 컨셉을 다르게 하며, 춤벗과 함께 7, 8종목의 춤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5월 9일 김지영과의 무대는 독무로만 꾸며졌는데, 각자의 춤과 함께 즉흥의 춤판도 벌렸다. 6월 6일 김연의와의 춤판은 현충일을 되새기는 의미를 담아 헌화로 시작하였다. 순국한 이들을 모시기 위해 <터벌림>과 <부정놀이>를 하고 헌시를 낭송한 후, <도살풀이>로 한을 풀고, <승무>와 <씻김>으로 죽은 자와 산 자의 해원을 염원했다. 이날의 공연은 고 김숙자선생의 춤 레파토리를 오랫동안 춘 김수현, 김연의 두 춤꾼이 김숙자 선생에 대한 추모를 겸하기도 하였다. 6월 20일 이권진과 함께 한 무대는 전문 춤꾼과 아마추어 춤꾼이 춤을 주고받으며, 춤의 대중화를 위한 가능성과 성과들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춤판을 기획하였다. 무대 공간도 각 컨셉에 따라 다르게 꾸몄으니, 이렇게 춤판의 컨셉 잡기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전통춤이 보여줄 수 있는 해석과 색깔이 다양해지는 것이다.
춤판이 시작되자 ‘김수현 춤벗 열두마당’의 주인인 김수현이 등장하여 그날의 춤벗을 소개하였다. 간단하게 춤벗과의 인연을 설명하고 당일의 작품도 설명하였다. 이 부분은 마치 TV토크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춤꾼이 각 회의 공연의도와 춤벗과의 짧은 에피소드, 작품 설명을 풀어냈으니, 관객과의 소통이 훨씬 편안해졌던 것이다. 특히 소극장이기에 친근하고 자연스러웠다.
춤의 레파토리는 김숙자류 전통춤과 배정혜류 신무용, 또한 열두 춤벗의 다양한 춤들로 40종에 가까운 춤들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 <터벌림>은 대개 김수현이 독무로 추었다. <터벌림>은 경기도당굿에서 추는 춤으로, 굿 초반에 꽹가리를 치며 굿판의 사방을 밟으면서 부정을 막고 터를 다지는 의식으로서 추는 춤이다. 도당굿춤의 다리 사위인 발뻐드레 동작이 특징적이고, 꽹가리채를 거꾸로 잡고 채 끝에 달린 각색의 천을 휘돌리며 추는 동작이 인상적이다. 또 <터벌림>의 전반부는 터를 벌리는 의미에서 의식(儀式)적 특성이 강하며, 후반부는 춤으로 풀어내는 특성이 다분하다. 발뻐드레 동작에 따라 경기도당굿 춤의 느낌을 가늠할 수 있는데, 김수현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발뻐드레를 구사했다. 6월 6일의 공연에서 <터벌림>은 더욱 의미로왔다.
김수현이 춘 김숙자류 <도살풀이춤>은 그녀의 대표적 춤 레파토리다. 작지만 균형잡힌 체구로 추는 <도살풀이춤>에 기운이 응집되어 있고, 다른 춤꾼에 비해 단단한 느낌이다. 수건을 쓰는 손놀림도 자연스럽다. 다만 본인의 감정을 더 얹어주기를 기대한다. 같은 날 <씻김>의 즉흥에서 표출한 표현력과 자기몰입이 전통춤에서도 보여주었으면 한다.
<풍류장고>는 배정혜 안무의 장고춤으로 신무용 계열의 춤이다. 민요가락 닐리리야-신고산타령-방아타령으로 연결되는 반주에 맞춰 흥과 교태미를 한껏 보여주는 춤이다. 다른 장고춤과 비교하여 특별한 테크닉이 있다기보다는 아기자기한 춤동작과 포즈로 이어지며, 춤꾼의 멋과 흥에 따라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는 춤이다. 김수현이 <도살풀이춤>에서 내적인 응집을 보여주었다면, <풍류장고>에서는 화사하고 흐드러진 꽃밭을 보여주었다.
몇 회의 공연에서 <각설이>로 난장을 터서 마무리했는데, ㄹ무용단의 단골 각설이들이 한판 놀고 갔다. 고 배명균 선생의 안무로 ㄹ무용단의 단골 레파토리이다. 고운 춤을 추던 춤꾼들이 깡통을 들고 나와 각설이타령에 맞춰 각설이의 익살을 부리는 구성이 관객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군무로 획일적으로 춘 대목이 다소 많은 듯 했지만, 각설이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그리고 6월 20일에 올린 춤판에서 <여름향기>와 <풍류소고>는 아마츄어 춤꾼들의 춤이었다. 이권진(서울예대 출강)이 지도하는 비전공 대학생들이 추었는데, 춤의 기량은 떨어지고, 동작에 있어서 서양춤과 섞여 있었으나, 춤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는 그대로 전달되었다. 또한 춤의 표현이 적극적이었고, 스스로 즐기며 추는 모습이 전문춤꾼 못지 않았다. 비전공자들이 춤을 경험하게 하는 일 또한 무용가들의 중요한 역할이다. 춤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표현하도록 하여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이 춤의 대중을 넓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통춤과 창작춤의 구분은 없다.
근래 전통춤 공연은 활황이다. 공립극장의 상설공연 뿐만이 아니라 사설 소극장들도 전통춤 상설 무대를 만들고 있고, 젊은 춤꾼부터 원로춤꾼까지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류파의 전통춤판을 만들고 있다. (사)한국춤예술센터가 주최한 ‘김수현의 춤벗 열두마당’은 단체가 아닌 개인 춤꾼이 전통춤으로 장기공연을 벌리도록 판을 만든 무대였고, 김수현은 춤벗과의 합동공연으로 3개월간의 상설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뤘다.
전통춤 개인 장기공연은 대개 관객에게 전통춤을 가깝게 소개하고자 하는 춤꾼들의 욕구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2011년 창무회의 상임안무가 김지영이 2011년에 대학로 가나의집 열림홀에서 3월부터 12월까지 매월 1회 진행한 “늘춤”은 한 달에 한 번씩 올린 상설춤판이었다. 10회의 상설공연 후 대중의 선호도를 파악했으며, 꾸준한 공연으로 일정한 관객층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들어 성균소극장이 이미 3개월 전통춤 장기공연을 기획했었으니, 중견춤꾼 정연희(정우정연무용단 대표)가 1월부터 3월까지 12회에 걸쳐 “정연희의 우리춤 콘서트”를 진행했었다. ‘여악’, ‘류별로 본 우리춤’, ‘두드려라’라는 주제로 성균소극장에서 열렸었다. 관객들이 상설공연을 예측하고 골라볼 수 있는 기획이었다고 한다.
3개월에 걸쳐 열린 “김수현의 춤벗 열두마당” 역시 관객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에 대한 여러 고민이 실험된 공연이었다. 춤벗 12인을 설정하여 타이틀 롤(춤판의 주인공)을 다양화하고, 또한 각 춤판을 차별화시킴으로써 다양한 관객으로 객석을 채울 수 있었다. 공연의 진행방식도 소극장의 특성에 맞게 솔직하고 정감있게 풀어냈다.
전통춤 공연은 소극장에서 더 생생하다. 관객은 춤꾼의 기량과 감정을 바로 눈 앞에서 감지할 수 있고, 춤꾼은 관객의 반응을 3m 안에서 느낄 수 있다. 그 반응을 흡수해 다시 뿌릴 수 있으니, 전통춤꾼들이 소극장 무대에서 느낀 경험들을 춤 속에서 소화하고 발전시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전통춤 공연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기획과 방식으로 시도되는 경향은 매우 긍정적 현상이다. “김수현의 춤벗 열두마당”이 소극장 전통춤 공연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녀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