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슈투트가르트발레단 <까멜리아 레이디>
드라마 발레의 묘미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것이다.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에 의해 창조된 발레 <까멜리아 레이디>의 마르그리트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보다 훨씬 강렬했다.
노이마이어가 슈투트가르트에서 <까멜리아 레이디>를 안무하던 1978년, 뮌헨에서는 <오셀로>를 안무했다. 함부르크에서는 무용수로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출연하는 등 분주한 일정을 보내던 때였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그는 새롭게 안무한 두 개의 작품 모두를 성공시키는 쾌거를 이루었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세차례 공연된(6월 15-17일, 평자 17일 공연 관람)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까멜리아 레이디>는 드라마 발레에서 이 시대 최고의 무용수로 평가받고 있는 강수진의 마력(魔力), 그리고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의 천재성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무대였다.
노이마이어는 과도한 무대장치, 많은 등장 인물을 설정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들의 내면적인 연기와 완급을 조절하는 춤, 그리고 뛰어난 음악 해석력을 통해 드라마틱한 요소를 살려내는 특별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여기에 뒤마의 연극이나 베르디의 오페라와는 달리 공연 속 공연을 설정, 마르그리트와 아르몽 등 <까멜리아 레이디>의 주요 등장인물을 공연 속 공연의 주인공인 마농 레스코에 투영시키는 장치를 더했다.
<까멜리아 레이디>는 마르그리트를 중심으로 한 춤과 연기, 유르겐 로제의 간결한 무대장치를 보완하는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의상, 쇼팽의 음악 등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다. 안무가가 선곡한 쇼팽의 음악은 마치 이 작품을 위해 새롭게 작곡된 것 같았다. 그는 2막과 3막에는 비교적 쇼팽의 여러 종류의 음악을 사용하는 대신, 1막에서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중심으로 춤과 음악과의 절묘한 조합을 이루어냈다.
이 작품은 드라마 발레답게 주인공인 마르그리트 고티에에게 상당한 비중이 실려 있다. 마르그리트 역을 맡는 무용수는 매춘부로서 고급 사교계를 주름잡는 화려함과 진정한 사랑에 눈뜨는 순수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그를 떠나는 비련의 주인공 역을 모두 표현해 내야하는 폭 넓은 연기력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연인 아르망 뒤발과의 2인무 등에서는 기교적으로 어려운 테크닉을 소화해낼 수 있어야 한다.
강수진은 건재했다. 빠른 템포로 변하는 내면의 심리변화를, 쉼 없이 무대 위에 등장하는 긴 동선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장악했다. 그녀는 파리의 시골, 병석에 누운 채, 때론 벤치에 앉아 옛 사랑을 회상하는 마르그리트의 창백한 눈빛 만으로도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파트너로 출연한 아르몽 역의 마레인 라데마케르와 강수진의 파트너십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오랜 호흡이 가져다 주는 완벽함, 캐릭터에 몰입하는 그들의 집중력은 섬뜩할 정도였다. 17일 극중 공연에서 마농 역으로 출연한 강효정 역시 만만치 않은 기량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34년 전에 만들어진 3막 발레 <까멜리에 레이디> 내한 공연은 무용수에 의해 안무가의 작품이 더욱 빛나고 안무가에 의해 무용수의 존재감이 한층 상승되는 기막힌 조우를 확인시켜준 명품이었다.
조주현 댄스 컴퍼니 〈Shaking the mold〉
댄서에게 안무가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확인시켜준 또 다른 공연은 조주현 댄스 컴퍼니의 〈Shaking the mold〉
그녀에 의해 조합된 춤들은 무용수들을 각기 다른 개성의 소유자로 변신시켰다. 안무가 조주현이 그동안 보여준 정형화된 발레 동작에서 벗어난 새로운 움직임 조합과 음악, 의상 등과의 매치를 통한 시각적 판타지는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송보화와의 협력을 통한 각기 다른 재질과 디자인에 의한 의상, 최형오와의 협력을 통해 백색 플로어에 투사되는 감각적인 빛의 조합이 주는 비주얼은 극장예술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댄서들의 에너지가 지속되지 못하는 아쉬움은 다채로운 춤과 음악의 조합을 통해 작품 전편을 마치 한국 전통춤에서 보여주는 정중동의 기운으로 60분 동안이나 끌고 간 안무가의 빼어난 감각에 어느새 묻혀버렸다. 〈Shaking the m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