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기숙 〈저 빛 속에 찬란한 생명이​〉​
국악과 어우러지는 K-발레의 시작
이만주_춤비평가

 발레리나들은 우리 국악의 선율을 탔고, 일곱 별의 천사들은 국악기의 농현(弄絃)과 더불어 그들 또한 발레의 시김새를 보여주는 듯 했다. 발레로 하는 채플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전적으로 서양 음악을 바탕으로 추어지는 발레가 국악과 어우러질 줄이야!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일이 현실이 됨을 보고 사람들은 K-발레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이화여대 무용과 조기숙 교수는 줄곧 마르지 않는 실험정신을 갖고 발레의 현대화, 대중화, 한국화 작업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그녀는 늘 예술 장르 간의 통섭, 예술과 다른 영역과의 통섭을 염두에 둔다. 이와 같은 통섭과 포용의 예술도 실험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포함된다 하겠다. 그녀가 이번에는 발레와 예배와 국악의 통섭을 시도했다.
 2012년 5월 6일부터 11일까지 매일 오전,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채플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조기숙 안무의 발레 공연
〈저 빛 속에 찬란한 생명이​〉​는 우선 복음을 발레로 전하는 시도가 이채로웠고 다문화 사회를 수용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아시아 다른 나라의 일반 유학생을 출연시킨 점이 새로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존이 불가능하고 서로 길항할 것 같았던 발레와 국악의 어우러짐이 특별한 화제가 될 만 했다. 

 ‘가락하고 춤은 한 몸’이라는 우리말에서 알 수 있듯, 춤은 몸의 움직임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예술이다. 춤에 있어서 음악이 바탕임은 동서양이 같다. 그러나 서양음악과 국악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음악이다. 그러기에 수백년 동안, 전적으로 양악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발레를 국악에 맞춰 춘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안무자는 처음에 더 멋지게, 국악의 생음악에 맞춰 발레 공연을 하는 욕심을 내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음악과는 도저히 맞출 수가 없자, 할 수 없이 녹음된 음악을 사용했다. 그 이유는 왜일까?
 양악의 박자와 국악의 박자가 심히 다르고 박자란 개념을 받아들이는 기본 생각이 다르다. 양악의 박자인 리듬은 본래 심장의 박동에 근거하고 있고, 우리 국악의 박자인 장단(長短)은 숨, 즉 호흡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의 1분 간 평균 맥박 수는 72회이고 호흡수는 18회이다. 국악의 박자가 양악에 비해 서너배 느린 것은 이와 연관이 있다. 양악은 음에서 음으로 이어질 때 다음 고정음으로 직선적으로 바로 건너가지만 국악은 단절없이 곡선적으로 이어진다. 또한 연주하는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치밀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발레가 우리 국악과 맞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5명이라는 출연자들을 데리고 이 공연을 무난하게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안무자의 강한 의지와 출연 무용수들의 노력이 읽힌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 끝에 성사되었으리라.
 작품은 크게, 어둠과 절망에서 빛과 환희의 세상으로 나아감을 보여준다. 프롤로그인 ‘골고다 언덕’에서 시작하여 ‘제1장: 어둠의 장막’, ‘제2장: 민초들의 춤’, ‘제3장: 일곱 별의 천사들’을 거쳐 ‘제4장: 빛의 축제로 마무리 지어진다. 절망이자 곧 희망의 단초인 골고다 언덕에서 시작하여 새 세상이 도래함을 예고하는 북소리가 사람들을 깨우고 일곱 별의 천사들이 현란한 춤으로 사랑의 빛이 온누리에 퍼져나가게 한다. 작품의 전개를 따라 음악은 국악의 현악 연주에서 시작하여 타악, 창, 합주로 이어진다. 드디어 모든 어둠이 걷힌 제4장에서는 합주되는 찬송가
참 아름다워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모든 무용수와 특별출연한 외국인 학생들이 등장하여 모두가 구원 받고 더불어 화평을 이루는 빛의 세상을 보여준다. 

 프롤로그에서, 두 남자 무용수에 의해 들려진 프리마 발레리나에 의해 십자가가 형상화되었고, 각 장의 장면에서 어둠, 절망, 깨어남, 일어섬, 희망, 환희, 빛이 발레언어로 매끄럽게 대치되었다. 제4장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몽골에서 온 이대 재학생 2명, 중국과 캄보디아 출신의 학생 각각 1명이 나와 비록 전문무용수는 아니었으나 자기네 민속무용을 보여주었다. 이는 발레 문법에서 ‘오락 또는 약간의 여흥’을 뜻하는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 효과를 내면서 다문화 사회 포용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았다. 하나뿐인 소도구, 내비치는 넓은 긴 천을 활용하여 무대 공간에 변화를 주면서, 앞에서는 어둠을 걷어내고 깨어남을, 마지막 장면에서는 구원 받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특별출연한 두 남자 무용수 남현우, 박시한을 포함한 총 출연자 35명(대부분이 이대 무용과 석박사 과정과 학부생)으로 커튼콜까지 합쳐 25분 간을 삽상하게 이어갔다.
 음악감독에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홍종진 교수, 작곡에 같은 대학, 같은 과 안현정 교수. 1장에서 3장까지는 안교수가 작곡한 곡이고, 4장의 음악은 찬송가
 아름다워라​〉를 역시 안교수가 국악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연주는 한국음악과 2학년 학생들이 했다고 하는데 학생들 연주가 아니라 전문 국악관현악단의 연주처럼 느껴졌다.  아름다워라​〉가 합주로 울려퍼질 때엔 우리 국악의 구성진 맛에, 따라부르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서양 음악의 진수는 화음(Harmony, Combination of Chords)이다. 그러나 우리 국악에 화음은 없다. 대신, 시김새가 있다. 현악기에 있어서 농현(弄絃), 관악기에 있어서 요성(搖聲)이 순우리말로 시김새다. 소리를 떨고 흔들어 다듬고 덧입혀 변화를 만들어 고유한 음색과 다양한 선율을 만들어낸다. 음을 미끄러뜨리고, 꺾고, 밀어올리고, 굴리는 시김새는 양악의 비브라토, 트릴을 넘어 강약(Dynamics)과 장소의 분위기에 따른 연주자의 정서(Emotion)적 교감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양악의 개념으로는 섣불리 설명할 수 없는 시김새는 우리 음악의 강한 생명력을 나타내는 힘의 주체인 동시에 맛과 멋을 내는 요소로 또 하나의 한국적 미학이다.
 한편, 우리 인생에도 농현이 있고, 농익은 예술에는 시김새가 있기 마련이다. 빛의 세상이 이루어지기 전, 그 전초 격으로 일곱 별의 천사들이 찬란한 사랑의 빛을 춤으로 춘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였던 조정희를 비롯하여 오랜 동안 안무자와 호흡을 맞추며 이론을 겸비한 발레 기량으로 독특한 위치를 점해가고 있는 한혜주, 홍세희, 정이와, 장지혜, 김정은, 김미레. 그들은 어느새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등 국악 현악기에 맞춰 발레를 농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발레 뒤집기, 발레 비틀기라 할까. 조기숙은 그간 발레에 있어 무수한 실험과 통섭을 시도했다. 크게는 고전발레 작품인
백조의 호수​〉를 네 번에 걸쳐 공연하며 기존의 원작을 해체 재구성하여 ‘다시 쓰기’를 시도했다. 사랑이라는 궁극적인 주제를 내걸고 그 진화과정을 그리면서 생의 문제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파헤쳤다. 미하일 포킨의 〈빈사의 백조〉, 불새​〉를 해체하여 각각 ‘죽음’과 ‘삶의 환희’로 재구성했다. 힙합, 대중가요, 익스트림 바이크와의 통섭을 시도했다. 장애인, 기업인 카메오, 다양한 국적의 비무용인을 출연시키는 과감성을 보였다. 성소수자의 문제를 다루었고 기업체 안으로 찾아가는 시도도 했다. 창작과 실험에 의해 예술도, 우리의 생도 흥미로워지고 풍부해지면서 사회도 발전한다. 발레의 소위 종주국들에서도 계속하여 발레를 변화시키고 있다. 발레가 어떻게 발전해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각 창작 발레 안무가의 몫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한번쯤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한국적인 발레의 시도.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K-발레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화여대 대강당은 그 옛날 선각자들에 의해 지어진 후, 한때는 긴 세월 동안 한국에서 공연예술을 위한 유일무이한 최상의 장소였다. 그곳에서 6일 동안, 8회(수, 목 2회)에 걸쳐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K-발레를 선보였다는 데서 특별한 의미를 찾는다. 골고다 언덕에서, 절망 속에 희망이 시작되었듯 이번 발레 채플이 이루어진 이화여대 대강당이 있는 언덕에서 K-발레라는 또 하나의 한류가 퍼져 나가기를.

2012.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