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신생 단체 렉나드는 2009년 창단하며 춤을 다시 거꾸로 보자는 뜻을 단체 이름에 담았다. dance를 거꾸로 표기하고, 우리말 다시에 해당하는 접두어 re를 앞에다 붙여 우리말 음으로 렉나드라 지었다. 이 단체의 춤 기본 기법을 굳이 분류하면 한국무용 계열이고, 단원들도 그 계열의 대학 선후배들이다. 한국무용 계열이 춤을 다시 거꾸로 보려고(즉 만들려고) 할 때 일반적으로 상기할 수 있듯이, 렉나드 역시 한국춤 어법과 한국 정체성을 바탕으로 현대 및 해외 사조와의 융합을 단체의 지향점으로 내세운다. 이 계열의 여느 단체들에 비하여 렉나드는 우선 단체명에 영어 식의 조어(造語)를 택하여 단체의 지향을 보다 뚜렷한 개념으로 제시하는 차이가 있다. 이에 곁들여, 향후의 해외 활동을 염두에 둔 점도 단체명 작명에 얼마간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올 연초에 렉나드는 〈에스프레소 에 돌치(Espresso e Dolci)〉(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1. 28~29.)에서 또 하나의 변신을 추가하였다. 독일 현대춤을 선도하는 무용단 자샤 발츠에서 주역으로 활동한 김마마정이 이번 작품의 초빙 안무를 맡았기에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무용 계열과 현대무용 계열 무용수들이 섞이는 작품들은 종종 있고 그래서 한국에서 현대춤이라는 장르가 외연을 넓히는 데 한 몫 한다. 이에 비해 한국무용 계열 단체가 현대무용-현대춤 분야 안무자에게 작품을 맡기는 경우는 생각보다 퍽 드물고 현대무용 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주목해보면 〈에스프레소 에 돌치〉의 안무 방식에는 변신을 탐하는 렉나드의 의지가 담겨 있다. 더욱이 렉나드가 신생 단체로서 단체의 색깔이 아직은 옅은 단계에서 이 같은 변신을 시도하는 사실에서는 다른 한국무용 계열 단체를 향해 문제를 환기하는 뜻도 읽혀진다. 어쩌면 이번 작업은 렉나드로선 대변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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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과 단맛을 의미하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에스프레소 에 돌치〉는 쓰고 달은 세상사가 소재이다. 쓴맛이든 단맛이든 작품에서 그려지는 그것은 지금 30대(혹은 전체 세대)가 겪는 맛들이며, 이들 30대의 쓴맛 단맛은 일례로 지난 가을부터 오큐파이(점령)를 외치며 전세계를 뒤흔들어온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 손쉽게 짐작된다. 이 작품이 오큐파이를 빗대거나 이를 암시하는 부분이 있은 건 전혀 아닐지라도, 작품이 그려내는 바로서 오늘 한국의 현상황에서 젊은층이 겪는 맛은 이렇게 비유됨직하다.
〈에스프레소 에 돌치〉의 세상은 몸은 살아 있되 우선 기분상 살아볼 만하지도 않은 세상이다. 세상을 이렇게 진단할 필요에 따라 이 작품은 소설가라는 존재를 설정하였다. 무대 앞 오른편의 책상 위에는 까만 수동 타자기가 있고 책상 옆에 옛날 유성기(留聲機)와 (호른 같은 크기의) 입이 벌어진 스피커가 놓여 있다. 말하자면 이 부분은 작가 집필실이다.
책상에 앉아 타자기를 치는 사람은 소설가이며, 작품이 진행될 동안 그는 수시로 타자기로 집필하거나 원고를 검토하거나 유성기를 트는 일상 행동을 하며 무대 위 무용수들을 응시하는 모습도 보이곤 한다. 캐주얼한 일상복을 입은 그는 때로는 무용수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자세를 바로잡거나 그들과 대적하기도 하는데, 말하자면 이 작가는 작가의 시점과 무용수의 시점을 번갈아 취하면서 작품을 펼쳐가는 구실을 한다. 〈에스프레소…〉 전체 흐름에서 능동적 시선을 취하는 사람은 오직 작가뿐이며, 그의 행동에 따라 작품 구성에 수시로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때문에, 관객은 〈에스프레소…〉가 소설가의 집필 정도에 따라 전개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에스프레소…〉는 서두를 사물 장단으로 연다. 암전 속에서 휘몰이 가락에 맞춰 등장하는 여남은 사람의 한 무리는 매우 유연하며 빠른 움직임으로 위 아래로 뛰거나 상체를 어르면서 한껏 자유롭게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 부분 이후는 이 공연의 본론에 해당하며, 작가의 집필 활동이 개시되고 작가의 정서는 공연 흐름으로 표출된다.
본론에서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주조를 이루되 여기서 성적인 의미는 발견되지 않는다. 남녀 간에 상당히 거칠게 펼쳐지는 대립의 모습은 대결의 양상을 띠며, 엉켜 붙다시피 하며 상대방을 매치거나 마구 다루는 듯한 이미지들은 한국무용 계열의 단체 공연에서는 흔치 않다. 여기서도 렉나드가 일종의 변신을 감행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이 같은 대립상은 강자와 약자처럼 사회적 권력 관계가 폭력의 관점에서 형상화된 것이다. 그러다 폭력이 갑자기 시들해지면서 폭력을 가한 그 남자들도 우두커니 무대책으로 앉아 있어야 하는데 어떤 공멸(共滅)의 세계가 시사된다. 앉은 남자들이 남성들이 제풀에 쓰러지고, 작가는 그들의 자세를 바로잡거나 추스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 과정에서 슈베르트의 가곡 ‘아베 마리아’와 ‘마왕’이 작품의 내러티브로 재미나게 쓰인다. ‘아베 마리아’는 아이들의 간구를 들어달라는 것이 주제인 점으로 미루어 이 공연에서는 작가가 남성들의 자세를 바로잡는 행위의 뜻을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마왕’은 마왕에 흔들리는 아들에게 마왕의 실체가 사실은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잎 소리라고 달래는 아버지…의 일화가 압축된 가곡이다. ‘마왕’의 가곡이 들리는 부분에 작가와 남성 무용수들 그리고 마침내 전체 무용수들 간의 대결 관계로 확대되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은 한결 흥미로운 해석을 유발한다. 여기서 대결은 마왕의 실체를 둘러싼 갈등으로 풀이됨직하고, 내가 보기에 대결을 유발하는 마왕은 지금 세상에 유령처럼 배회하는 불평등 관계인 것 같다. 이처럼 〈에스프레소 에 돌치〉의 서사(敍事)는 이처럼 상당히 은유적이다.
이후 작가의 집필이 이어질 동안 사람들이 뒤엉키고 비명도 들리며, 의자, 옷가지, 쓰레기 잡동사니들이 무대로 던져진다. 모두가 실신한 아수라장을 앞에 두고 작가가 원고를 검토할 동안 조명기들이 바닥으로 하강한다. 이 상태에서 작가가 유성기를 돌리자 스윙 풍의 재즈 소리가 나고 책상 위의 집필된 원고들은 바람에 휘날려 무대로 흩어진다. 다시 조명기는 올라가고 작가가 비명을 지르며 자기도취 식으로 어르자 사람들이 함께 일어나 집단으로 일렁이며 마침 들리는 사물의 휘몰이 가락에 흥겹게 몸을 싣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작가의 집필을 쫓아 작품 흐름을 구성하는 것은 재미난 착상이다. 그런데 〈에스프레소 에 돌치〉에서 그러한 결말부는 의아스럽다. 문제는 작가가 그렇게 어울려야 할 과정을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점에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객석과의 공감이 옅었다면 결말부의 처리를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감정의 흐름이 약하다는 점에서 기인할 것이므로, 작가와 사람들 간의 관계 설정을 보다 긴밀하게 엮는 식으로 손질이 요구되었다.
앞서 언급했듯 렉나드의 이번 공연은 현대무용에 접근한다든가 가곡과 작가의 집필을 서사의 요소로 삽입하는 묘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렉나드는 지난해 여름 공연에서 일례로 ‘비로자나불에 관한 명상’에서 가부좌를 트는 데서 시작하여 한국춤의 질감을 정갈하며 농후하게 보여주었다. 이번처럼 렉나드는 변신 과정들에서 이런 특성을 중심으로 단체의 고유한 자질을 현대춤 속에서 살리는 양식을 염두에 두는 한편으로 공감대를 높이는 방법도 함께 개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