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파라다이스〉
다채로운 시도, 상상력의 부재
장광열_춤비평가

 포탄이 뚫고 지나간 듯 군데군데 구멍 뚫린, 이끼 긴 녹물로 색이 바랜 콘크리이트 장벽. 바흐에서부터 아르보 페르트의 아름다운 선율, 필립 클래스의 미니멀 음악에 노이즈가 섞인 음향과 인성(人聲)까지. 여기에 일정한 크기로 쪼개진 사각형의 돌덩이와 그 위에 놓여진 작은 동식물들. 그리고 18명의 무용수와 한명의 첼리스트.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파라다이스>(8월 5-7일, 평자 7일 공연 관람)는 80분 넘게 이렇듯 쉴새 없이 많은 것들을 쏟아냈다.
 무대 하수에서 상수로 일렬로 무대를 점유한 18명 무용수의 경쾌한 군무로 시작된 춤은 이후 남녀 무용수들이 짝을 이루어 이동하는 군무, 솔로춤 등으로 다채롭게 변환된다.
 작품 전편을 통털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닥에 엎드린 무용수의 등위로 바짝 내려온 돌덩이 위에 두 명의 무용수가 우리말과 영어로 호명하며 사슴, 토끼, 나무, 꽃, 새 등을 올려놓을 때마다 6명의 무용수들이 그 형상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DMZ의 현재를 보여주면서 그 이면의 또 다른 공간을 상징적으로 대비시킨 안무가(홍승엽)의 감각이 엿보인 이 장면은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무용수들의 마임과 춤으로 표현한 재미있는 발상으로, 모방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마임이 더 분명하고 다채로웠더라면 관객들에게 더 큰 감흥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남성 첼리스트의 솔로 음악(힌데미트) 연주와 여성 무용수의 만남, 4명의 남성무용수들이 모자이크하듯 바꿔 끼우는 바닥판 위를 정확히 옮겨 다니며 춤추도록 한 시도는 앞서 전개되어 온 군무 위주의 패턴에 변화를 주기 위한 안무가의 계산된 설정으로 보였지만, 열려진 벽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까지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다.
 안무가는 고개를 활용하고 무용수들의 몸을 짧게 분절시키며 반복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움직임 패턴을 기반으로 무용수들의 몸을 다채롭게 조율했다. 작품 전편에 걸쳐 번갈아 배열한 두 명 여성 무용수의 솔로 춤은 특히 강렬했다.
 그러나 <파라다이스>는 전체적으로 기대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분단의 현실에 직면해 있는 한국인의 심성에서 DMZ을 바라보는 작가로서의 색깔이 엷었다.
 작품은 중반 이후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힘에 부쳤다. 군데군데 다른 작품에서 보여 졌던 유사한 이미지의 중첩, 움직임의 반복, 솔로춤과 2인무 그리고 군무 위주의 움직임 패턴도 그 한 원인이다. 너무 많은 무용수들은 오히려 질 높은 앙상블의 구축에 걸림돌이 되었고, 전쟁의 상흔이 담긴 사실적인 무대미술은 오히려 상상 속의 공간으로 넘나드는 것을 방해했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이후 예술감독의 첫 장편 신작 공연이란 점에서, 창단한지 1년이 훌쩍 넘어선 시점에 마련된 무대란 점에서 춤계의 시선이 모아졌었다. 여기에다 비록 프로젝트 무용단 체제이긴 하지만 몇 차례 기획 공연을 가진 후의 공연이었던 만큼 스태프들의 축적된 힘이 모아진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9 11 테러를 상징한 시 디 라르비 세르키위 안무의 <믿음>에서 보여준 회색 빛 콘크리이트 벽을 활용한 메시지가 담긴 다채로운 장면 구성과 휴머니티, 프랑스 안무가 호세 몽탈보가 란 같은 제목의 작품에서 보여준 비디오 편집기술에 의한 영상과 대중무용과 순수무용의 결합이 빚어낸 독창적인 신선함, 이들 작품이 갖는 작품 자체에 스며있는 고유한 색채, 이는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한국의 국립현대무용단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들이다.

2011.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