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무용제전 소극장 공연
‘댄스 초이스 셀렉션’의 몇 가지 소득
이지현_춤비평가

올해 한국무용제전은 연구회 30주년과 제전 25주년을 기념하는 주요한 행사로 준비되었다. 한국창작춤운동의 태동을 주도한 핵심적 무용가들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다부진 출사표(수준높은 컨텐츠 개발과 퓨전을 통한 형식 실험)까지 포함된 기획이어서 한층 관심을 모았다. 특히 아르코소극장에서 4월 19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9명의 안무가에 의해 펼쳐진 ‘댄스 초이스 셀렉션’ 은 신진 안무가들(한국무용연구회주최 신인 안무가상 수상자 포함)을 중심으로 선택하여 장르간 퓨전을 통한 보다 실험적인 무대를 적극 권장한 기획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내가 찾은 공연장의 분위기는 첫날부터 연일 공연티켓이 매진되었고 방석까지 준비되었음에도 극장 밖에는 되돌아가지 못한 관객과 극장직원간의 작은 실랑이까지 볼 수 있는 오랜만의 성황이었다. 물론 하루에 3팀의 공연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객석의 수준은 썰물관객(관련공연만 보고 빠지는 관객)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집중력이 좋고 작품에 따라 박수로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물론 관객이 집중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은 역시 전시된 작품들이 기대이상의 수준을 유지해 주었기 때문인데, 한국무용연구회의 활동은 그간 출신학교, 지역적인 작은 갈래로 나뉘던 무용계 관행속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력을 갖춘 면에서는 독보적이었지만 제전의 기획력과 수준에 있어서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한 그간의 상황에서 반가운 일이다. 특히 이번 소극장 기획은 기획의 의도와 참가한 안무가들이 기대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면서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새로움과 다양함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객석의 집중력은 바로 그 충족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연극, 영상과의 안정적 접목


가장 뚜렷한 발전은 대표적으로 융합이 이루어진 연극과 영상과의 안정적인 접목이다. <그해 오월 (김미숙 안무)>은 아르코의 벽면을 별도의 스크린 없이 하수부터 점차적으로 영상을 펼쳐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록영상으로 시작된 영상은 파도, 불기둥 등으로 바뀌면서 체감적인 사건을 추상의 영역으로 승화한다. 단순한 장면의 접합, 추상적인 그래픽 화면만의 사용이나 기록화면의 나열의 근래의 영상 사용의 추세에서 벗어나 현실성과 추상성을 자연스럽게 전이시킨 점은 작품의 설득력을 배가시켜 준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춤의 구조는 남녀 주인공과 주변 인물 몇몇만을 설정하여 구체적 스토리텔링의 무게를 벗음으로 그들이 표현하는 심리적 갈등과 질곡의 내용을 선명하게 전달하였고 강렬한 타악과 서정적인 노래의 사용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이어나가는 일관성을 잘 획득하였다. 그러나 음악과 춤사위의 강도조절에서 실패해 감정 과잉의 피곤함이 영상과 춤의 여운을 압도해 버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심부담-아버지의 몸 (최병규 안무)>은 제주도 굿의 아버지 찾기-심부담을 모티브로 한다. 무대 상수 의자에 앉아 있는 인형은 철사의 뼈대와 종이로 속이 채워진 아버지이다. 죽은 존재로서의 아버지와 아버지를 기억속에서 되살려 내기, 그 사랑을 구체적인 정면으로 보여주기의 일련의 과정은 연극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관객이 편안하게 공감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섬세하며 친절했다. 최병규는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의 애정과 감성을 소름 돋을 만큼 몸으로, 움직임으로 보여 낸다. 인형의 변화과정으로 자식의 성장과 아버지의 사라짐이라는 일방적 ‘줌’의 역관계를 잘 보여주어 작품은 한층 치밀해졌으며 설명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 춤 동작 과잉으로 넘치지만 오히려 표현에 대한 열정으로 부담스럽게 다가오진 않았다. 이해가능한 춤작품에 대한 가능성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수작이었다.

<페르소나(김현아 안무)> 역시 심리적인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인형, 연기, 웃음소리, 영상등을 별 불편함없이 사용한다. 자아내부의 갈등과 그 통합의 과정을 인형과 주인공이라는 두 개의 자아를 겹치거나 분리시킴으로서 그러나 다시 그것과 더불어 왈츠를 춤으로서 확연히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심리적 갈등은 표정과 웃음소리, 춤동작의 힘을 통해 쉽게 표현되는데 한국춤에서 현대적 의상의 관행을 부담없이 깨는 의상이 이런 표현들과 맞아 떨어져 당당하게 보인다. 이런 정서적 당당함이 기존의 한국춤 감성과는 멀고 연극적 감성과 가까이 있다.

<인형의 집 (최정수 안무)>은 헨릭 입센의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노라의 가출이라는 대 사건을 향해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성장을 박진감있게 보여 줄 것 같은 작품은 예상을 단숨에 깨버리고, 연약하고 사랑스런 노라가 인형같이 단순 리듬에 반복적인 생명력 없는 춤을 추거나 뱅뱅 도는 동작을 대사와 더불어 함으로써 내적충동과 자아간의 갈등은 상투적인 상태와는 역으로 힘이 없이, 어지러운 상태로 모호하게 전개된다. 이 작품은 완성도에 있어서 상황 전달력이 상당히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을 갖는다. 이는 상투적 표현과는 무관한 동작과 대사의 결합방식, 전개의 원칙을 형성하지 않는 데서 보는 사람에게 인지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길을 택해 가 인지가 포기된 틈에 오히려 집요한 인상으로 각인시키는 독특한 구조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관행과 상투를 깨는 것의 긍정적 소득은 바로 의외성의 발견에 있음이 확인되는 작품이었다.



현대춤 언어와의 경계 사라짐


〈z기류〉(안무 윤승혜)와 〈heffy end〉(안무 서경희)는 한국춤의 언어로부터 많이 벗어난 공통점을 갖는다. 춤언어뿐 아니라 전개방식에서도 꽤나 탈주해 있다. 〈z기류〉는 현대적 표현에 대한 욕구와 의욕은 무대에 구조물 설치로 상하 이중적 공간을 창출하거나 음악 'Take 5'를 사용하는 것 등을 통해 충분히 드러났으나 전체적으로 산만함을 정리하지 못함으로서 여러 가지 감각적 자극은 제공하였으나 집중력을 유지시키지 못했다. 〈heffy end〉는 재즈로 훈련된 안무자 자신의 춤 능력과 경쾌한 마임극처럼 희극적인 남녀관계 표현은 즐거움을 선사했으나 상투적인 재즈나 마임식 표현을 몸에 배인 대로 가져다 쓴 것은 더 이상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무용 式 정서표현 변화의 단초


신무용기의 유산으로 이른바 ‘신파조’의 잔재에 대해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는 현대의 정서표현흐름에 적합하지 않아 동감을 형성하지 못하는 정서적 진부함이다. 물론 신무용 초기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공연한다는 것의 힘은 신무용 정체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신무용의 근대성이기도 한 감정표현의 역할은 단순한 7情(喜, 怒, 哀, 懼, 愛, 惡, 慾)도 다양하게 표현해 내지는 못하는 표현적 한계와 감정 표현의 논리적 정당성을 작품 전개구조로 받쳐 주지 못한 채 기존의 표현방식을 답습하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어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이 역사적 전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금의 창작춤이 신무용식 정서표현을 대체할 보다 발전적인 정서표현력의 획득은 춤 자체가 가진 추상성과 정서표현성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함을 섬세하게 살려내고, 그 표현이 살 수 있는 주조와 구성을 강화하는 한편 보다 세련된 표현 언어를 찾는 것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 하겠다.


<까마귀 날다 (최공주 안무)>는 시비, 선악으로 대변되는 현상의 양극적인 분리 문제에 대한 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어 춤의 주제에 대한 도전과 의욕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으나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새로운 표현방식을 개발해 내지 못함으로서 사유에서 일상까지 다양한 범주에서의 양극적 갈등 상황에 대한 정서를 과거까지의 신무용식으로 모호한 정서로 뭉뚱그리는 데 머물렀다.

<井 (고경희 안무)>은 우물이라는 한국의 전통적 소재를 여성의 삶과 결부시켜 제도 속에서 막다른 길로 몰려야 했던 여성과 그 한에 대해 몇 가지 장면 설정(기왓장으로 쌓아 올린 우물의 배치, 여성들이 우물 속을 들여다 봄, 우물 속에 빠진 여인의 등장 등)으로 이야기성을 추상적으로 잘 획득하였으나 새로운 춤언어 개발이 빈약하여 과정지향적인 소재를 현재적 감성으로 되살려 내는 데는 부족함을 보였다.

<봄이 슬프다 (이영림 안무)>는 남자 4명의 힘있는 춤과 사과가 굴러 다니는 독특한 무대였다. 종대, 횡대, 사각점을 형성하는 남자무용수들 그리고 그 사이를 굴러 다니거나 한 방향으로 구르는 사과와 구르는 소리, 그 사과를 베어 무는 행위 등이 신선하다. 봄, 기다림, 욕망, 슬픔, 사라짐, 덧없음 등의 시적 감성을 강하게 유지하는 구조 역시 한국춤의 강점과 잘 맞아 떨어져 그간 잃었던 한국춤의 영역을 되찾아 온 듯 반갑다. 새로운 무대적 시도가 많은 부분을 메우고 있지만 감정과 춤언어 관계에 대한 고민은 아직 진행되지 않아 시적 감성에 맞는 언어들은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번 2011 한국무용제전의 소극장 무대는 연극, 영상과 적절히 결합되어 이해력과 전달력을 확보하고 춤성을 제고시킨 새로운 경향이 뚜렷하게 포착되었다는 것과 한국창작춤 30년이 쌓여나가는 시점에서 오래된 문제인 ‘신파적 진부함’이 대체될 새로운 시적 정서표현성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무대였다. 한국창작춤 안무가들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한다. (전재: 한팩 리뷰, 2011. 6.)

2011.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