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의정부예술의전당 ‘이 시대의 우리 춤’
춤 사각 지대의 주목 프로그램
김채현_춤비평가

의정부에서 춤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좀체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연전까지 창무국제무용제가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렸었고 최경실 등 몇몇 안무가들의 춤 공연을 본 적도 있다. 이 같은 사정에 비추어 의정부를 춤의 사각(死角)지대라 해서 그리 과장된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런 와중에 6월 하순 1주일 동안 ‘이 시대의 우리 춤’이 의정부예술의전당이 선정한 춤들로 열렸다(6. 17~23. 의정부예술의전당). 이 행사는 또한 의정부예술의전당 10주년 기념 기획의 일환이기도 해서 앞으로 전당의 행보를 주시해볼 만하다. 말하자면 의정부가 춤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도권에서 자체 기획으로 예술춤을 이렇게 며칠간 올리는 선례가 성남아트센터에서도 몇 해 전에 있었다. 그러나 대개의 수도권 공공 공연장들이 예술춤과는 거리를 두거나 도외시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의정부예술의전당의 이번 행사는 각별하게 수용되어야 한다.

 ‘이 시대의 우리 춤’은 의정부시무용단(단장: 이미숙)의 ‘환생 최승희’ 공연으로 이틀간 서막을 열었다. 개막작 ‘환생 최승희’는 최승희의 원작과 최승희류 작품으로 구성되었는데, <보살춤> <소매춤> <목동과 처녀> <옥적곡> <손북춤> <쟁강춤> 등 10편의 소품들이 대극장에서 올려졌다. 최승희의 공연이 드물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는 최승희 100주년이라 이 공연은 그런 맥락에서 의미가 깊다. ‘이 시대의 우리 춤’에서 이 시대의 범위를 넓게 잡으면 이번 공연도 연관성이 분명하다. 이 공연이 최승희 100주년 기념 공연으로 열린 만큼 그 의미를 좀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실행될 필요가 있었다. 예컨대 최승희 관련 간략한 세미나나 토론회를 덧붙인다든가 관련 글을 팜플렛에 게재전파하는 등의 방법으로 최승희를 되돌아보는 것은 물론 ‘이 시대 우리’ 춤의 의미를 한층 살림직 하였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 다음 닷새 동안은 백현순, 최병규, 서미숙, 이해준, 신종철, 박영애, 이원국, 김영영 등 중견 안무가들과 서연수, 정정아, 원혜연, 변재범, 김동규 등 신진들의 안무작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공연은 장르와 소재에 아무 제한 없이 고르게 선정하여 근자의 우리 춤 흐름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 닷새 동안 필자는 나흘 관람하였다. 이번 선정작들은 모두 서울에서 활동하는 안무가들의 재연작이고 우리 춤의 동향을 소개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편이었다.

 출품작 가운데 최병규의 <심부담(尋父譚)>은 내러티브 전개 면에서 뚜렷한 공감을 획득한 작품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제주도의 이공본풀이에 나오는 설화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짤막하며 간결하게 전개되었는데,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해부함으로써 아버지의 가치, 그리고 가족의 가치를 성찰하도록 유도하는 작품이다. 관객들이 수용하기 용이한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하면서 간략한 움직임들을 비교적 다양한 구도로 펼치고 이른바 한국 정서가 깃든 내적 표현을 가미하여 아버지의 소외와 같은 오늘의 현상을 관객이 되돌아보도록 하였다.
 

 


최병규 안무작 <심부담>

 


 밥 먹는 행위를 춤으로 소재화하는 작업은 아직 흔치 않다. 서미숙 서발레단의 <아 따블르>는 불어로 밥먹자(à table)는 뜻을 단서로 밥 먹는 행위를 식욕 즉 욕망의 관점에서 포착 확대하였다. 네 개의 테이블(따블르)을 시종 같은 두 사람이 간혹 이리저리 재배치하는 과정에 따라 성직자 차림새의 인간들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나름의 욕망을 표출하였다. 전반적으로 바로크 풍을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직자들의 몸자세는 일정한 절제미를 기조로 하면서도 그 같은 절제의 이면에 욕망이 원초적인 기제로 내밀히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너무 직설적일 가능성이 있어 그런지 안무자는 테이블에 음식을 올리지는 않았으며 음식 대신 여성이 등장하여 여러 성직자들과 교감하는 관계를 이어갔다. 전반적으로 절도 있는 구성을 보여 주는 가운데, 이 작품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과 성직자들 간의 관계가 일반적인 양상으로 묘사되고 움직임 역시 소략하여 작품이 전하는 심도는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신종철의 〈Pull down a blind〉는 세상을 한 판의 놀음으로 보는 시각에서 풀어갔다. 중간 중간에 경쾌한 리듬감을 타는 춤들이 등장하는 한편 서로 융합하지 않은 채 동떨어진 인간들의 느린 행렬 등 작품은 삶의 부조리한 그리하여 고독한 양상들을 신종철 특유의 다양한 움직임으로 묘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 작품에서 마술사 같은 인간은 시종일관 외따로 외마디를 짖어대고 자기 혼자만의 놀이에 취하며 또는 혼자서 고통에 절은 듯한 움직임들을 취하였다. 그의 외마디는 다른 인간에게 전이되고 그런 양상은 다시 반복될 것 같은 조짐이다. 〈Pull down a blind〉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은 필연성이 옅으며, 묘사되는 인간들의 모습들은 서로 거리가 떨어진 만큼 세상은 정연하지도 않다. 일테면 부조리한 세상의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모습들이 이리저리 엮이는 상황들은 관객 스스로 줄거리를 조립하도록 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필요로 한 것은 명료한 얼개였다.

 


신종철 안무작 〈Pull down a blind〉


 백현순의 <구지가>는 지난 4월 한국무용제전에서 발표되었다. 거이 작품은 거북을 불러내는 원시제의를 오늘의 욕망 구조에 대입하였는데, 작품이 3부분으로 구획되면서 3부분들 사이에 연결성이 약하고 또한 2부에서 현대적 욕망이 평이하게 묘사되어 표현의 강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었으나 춤 전개가 힘 있으면서도 풍성하게 처리된 부분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백현순 안무작 <구지가>

 


 이해준이 출품한 <새벽 출정>은 그가 오랜 기간 꾸준히 추구해온 파르티잔 연작의 하나로서 억압적인 시대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부유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점은 연극-춤 및 대사, 노래의 총체극적 작품 구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양식이었다. 이에 따라 작품의 규모는 스펙터클 차원이었고,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을 적극 활용하고 소화하는 특성을 보였다. 총체극의 여러 요소들에다 브레히트의 소외(혹은 소격) 효과와 퍼포먼스 스타일을 결합시키는 작업은 춤계에서 실제로 드물다. 전체적으로 스펙터클한 분위기가 짙은 이 작품은 이삼십년 전 한국의 현실을 연상시키는 억압하는 사람/억압받는 군중의 그러한 대립 구도를 오늘의 시각으로 다시 패러디하면서 대립의 실체를 환기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춤들이 점진적으로 망각해온 듯한 일종의 사회적 돌파력을 작품은 강조하였으며, 흔히 총체극에서 결여되는 경향이 농후한 춤성도 <새벽 출정>은 놓치지 않았다. 총체극적 춤으로 소통함에 있어 국내 춤의 현단계에 비추어 그 메타포를 성취하는 방법을 적극 개척해야 하는 연장선에서 이번 작품 구성에서 거칠게 처리된 대사나 일상 동작들 같은 부대 장치들 간의 조화가 더 긴밀해져야 할 것이다.

 


이해준 안무작 <새벽 출정>

 


 이수연의 <그 속의 나>, 원혜연의 <나 거기에 그들처럼>, 정정아의 <커플>은 소품의 묘미를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그 속의 나>는 피아노 소나타 선율과 함께 여섯 발레리나가 주로 율동적 조화를 다양한 대형으로 펼치는 작품으로서 담백하게 구성된 작품 구도에서 생동하는 조화미가 깔끔하게 전달되고, 그런 속에서 발레리나들 간의 정서적 합일감이 강조되는 효과가 있었다. <나 거기에 그들처럼>은 전쟁터 그리고 억압의 상황이 현저한 쿠르드 사회에서 찍은 아이들의 사진 이미지에서 착상한 2인무로서, 그 내용이 썩 명료하진 않았으면서도 두 무용수가 다양한 움직임들을 조용히 전개하면서 정겨운 정도를 더해가는 관계를 형성해나갔다.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춤 언어의 고유한 특성을 환기하면서 듀엣 무용수들 간의 호흡 즉 친밀한 사람들 간의 호흡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춤 <커플>은 남녀의 접촉 즉흥 같은 움직임들을 다채롭게 구사하면서 남녀 간의 미묘한 관계를 집중 탐구하여 남녀 관계에 대해 다양한 상상력을 품격 있게 유발하였다.

 


이수연 안무작 <그 속의 나> 원혜연 안무작 <나 거기에 그들처럼>

 

 


정정아 안무작 <커플>

 


 김경영의 <백조의 호수 조곡 Op. 20A>는 발레 <백조의 호수>의 주제곡들을 배경으로 백조들이 경쾌하며 활달하게 노니는 모습들을 통해 백조들의 놀이를 제시하여 이를 백조의 환상적 이미지보다 보다 현실감 있는 속성들, 즉 젊은 세대가 상상할 남녀의 장난기를 묘사하는 데 활용하였다.

 


김경영 안무작 <백조의 호수 조곡 작품 20A>

 


 변재범의 <잘가라 청춘>은 청춘 혹은 운명을 소재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파헤치는 데 초점을 두었으나 움직임과 내러티브 양 측면에서 묘사는 상당히 단순하였다. 작품의 깊이 혹은 재미를 위해 우선 움직임이나 몸 자세를 다양하게 설정하는 것을 비중높게 고려할 만하다. 서연수의 <녀자>는 여성의 정체성을 남녀 간의 활달한 관계에서 환기하는 독특한 내용을 제시하였다. 성숙한 여인의 조신하면서도 능동적인 모습을 동시에 전달하는 춤 사례가 드물다는 점 이외에도, 이 작품은 한국춤 움직임의 활용도가 비교적 높고 다양한 무대 구성으로 상당히 풍부한 의미를 전달하였으며 작품 의도 또한 진취적이어서 상당한 공감을 이끌어내었을 것으로 보인다.

 


변재범 안무작 <잘 가라 청춘>

 

 

 


 ‘이 시대의 우리 춤’은 예술춤에 초점을 맞춘 행사로 진행되었다. 의정부나 그 일원에 자생적인 예술춤 단체가 잘 생각나지 않는 현상황에서 이 행사의 의의는 작지 않다. 그러나 의정부예술의전당 10주년 기념 기획의 일환으로 열린 때문에 이 기획이 더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춤 또는 예술의 사각 지대인 이 지역에서 이러한 기획은 앞으로도 명분은 분명할 것이다.
 명분이나 가치만으로도 해당 행사가 존재할 수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고 오래 갈 것인지 장담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명분이나 가치에 더하여 이 행사가 의정부 지역과 동행할 수 있는 측면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그래서 기획 프로그램의 취지는 그대로 반영하되 프로그램의 명칭부터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고, 또 의정부 지역을 주제로 한 춤들의 프로그램, 의정부 지역민들이 선호하는 문화예술적 소재를 활용한 춤 프로그램, 의정부 지역민들을 비롯하여 일반 대중들이 선호하는 소재를 활용한 춤 프로그램 등 여러 면에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예술의전당 내부적으로 기획이 재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요컨대 ‘이 시대의 우리 춤’은 무엇보다 춤계의 희망사항을 반영한 점에서 적절한 출발이었다는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수도권에서 공공 공연장이 춤을 수용해들이는 창조적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2011.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