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유경 〈만가滿歌〉
춤의 생명, 춤추는 이의 본성과 춤의 근본
권옥희_춤비평가

애써 꾸민 흔적이 없는 춤에 고요한 기가 응결되는, 그것은 마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일러 고요함이라 하고, 고요함을 일러 생명을 회복한 것이라 한다”는 노자철학의 체현인 듯. 춤은 그렇게 내내 담담하고 고요하였다. 고 김소희 선생의 구음에 춤은 얹은 장유경의 ‘입’춤 인상이다.



장유경 〈만가滿歌〉 ⓒ옥상훈



장유경의 〈만가滿歌〉(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10월 19일). 무대를 54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오른 ‘선살풀이(장유경류)’로 연다. 고 김소희선생의 ‘뱃노래’ ‘새타령’ ‘상주아리랑’ ‘방아타령’ 그리고 ‘구음(입소리)’ 5곡에 ‘색을 입히고 서사를 부여’, 5장으로 구성한 춤을 본다.

소리가 달랐다. 1991년에 녹음된 김소희 선생의 음반 재작업에(입체음향) 품과 공을 들였다. ‘소리 그 자체로 충만한..,’ 소리 예술에 대한 예(禮)일 수도. 사람들은 다른 전망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기도 한다. 장유경에게 불모의 상태, 즉 고정된 춤(삶) 무대는 없다. 아마 녹음음악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도 기어이 춤적 힘을 일으키는 자리를 만들어 낼 작가라는 그 지점에 예술적 신뢰를 둔다.



장유경 〈만가滿歌〉 ⓒ옥상훈



춤 장르가 다른 중견들(강미이, 이영재, 장수경)과 군무진의 배치가 이채로운 1장, ‘뱃노래’-그렇게 세상을 춤추다. 몸에 남아있는 춤의 기억을 제각각의 춤언어로 풀어낸다. 다리를 길게 뻗는가 하면 깊게 몸을 말고, 토슈즈를 신고 조용하게 무대를 돈다. 무대를 비운 시간이 적지 않으나 이들에게 춤은 삶의 근원을 형성하는 실체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 보인다. 다만 같은 무대에서 추는 춤이 종내 어디에 닿을지는 알기 어렵다. 정작 닿는 길도 멀지만, 춤 장르를 하나로 꿴 춤을 그려내고, 이름을 짓는 일이 이렇게 또 어렵다. 세 명의 춤을 마치 호위하듯 조용히 무대에 스며들어 추는 인상적인 군무의 잔상이 오래 남는다. 손에 든 작은 라이트와 무대조명이 교차하면서 퍼지는 빛과 색의 파장이 ‘뱃노래’에 실려 출렁였다. 춤을 지향한 의지였건, 무대를 향한 오랜 춤의 사색을 무대로 이끈, 장유경이 (대구)춤의 스펙트럼을 넓힌 장이었다.



장유경 〈만가滿歌〉 ⓒ옥상훈



2장, ‘새’-가락이 넘실거리다. 앞 장의 춤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무대로 가득 날아든다. 머리에 깃 장식을 한 여덟 명이 무리지어 추는 춤. 양팔을 들고 너울거리는, 음악을(새타령) 평면적으로 해석한 동작과 달리 다양한 춤구성이 이채롭다. 물러가는 춤과 다음 춤이 무대를 엿보는 머뭇거림을 통해 한 사람의(김소희) 소리에 얹은 춤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좋은 연출이었다.



장유경 〈만가滿歌〉 ⓒ옥상훈



3장,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가로로 길고 얇은 보라 빛과 푸른색이 겹치는 조명. 그 아래 알미늄 재질의 긴 봉이 듬성, 촘촘하게 걸려있다.

자신의 몸집보다 큰 보따리를 머리에 얹은 남자(김용철), 마침내 고갯마루에 올라선 듯, 힘겹게 서 있다. 앞섶 자락을 허리 뒤로 돌려 질끈 묶고, 맨발이다. 고갯마루에서 내려오듯 발을 떼자 천장의 설치물이 같이 내려온다. 보따리를 내려놓고 추는 삶(춤)의 신산함. 장식이 없는 춤은 은유도 상징도 아닌 것이 되어 춤 자체로 신산한 삶을 가볍게 떠오르게 하는 마법같은 순간을 보여준다. 무대 뒤, 깊은 곳에 서 있는 또 다른 남자(이진모)와 그의 뒤에 서 있는 앞장에서 ‘새’를 춤춘 여자. 이진모가 무대에 머리를 박고 거꾸로 선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두 발. 김용철이 보따리를 풀어헤친다.(은유다) 색채가 영롱한(혹은 누추한) 천 더미. 얼굴을 묻는다. 힘들게 이고 건너온 춤의 보따리(시간)의 풀어헤치는 행위는 새로 써야할 춤에 대한 실천의지로 읽는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보따리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남자. 바닥에 발을 내려놓지 못하고 거꾸로 서 있는 남자. 이들이 진 짐에서 삐져나오는 내밀한 슬픔을 엿보았다면 과한 해석일까.

3장, ‘아리랑’ 고개는 반드시 힘겹게 넘어야 한다는 맥락에 갇힌 해석을 경계하는 무대장치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 장이었다. 춤(삶)을 전망하고 끌어당기며, 마치 설계하듯 청승과 한의 정서를 교환하고 조응하며 춤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신파는 허락 않겠다는 듯, 차게 빛을 내며 소리와 춤의 변화에 따라 압박하듯 오르내리며, 감정의 과잉을 조절해주는 감각적인 장치였다.



장유경 〈만가滿歌〉 ⓒ옥상훈



4장, ‘방아’-장단으로 노래하다. 남자 여섯, 직육면체의 상자를 메고 들고 들어와 무대에 나열한 뒤, 위에 올라선다. 내리꽂히듯 이들을 비추는 조명. 위에서 제자리 뜀을 뛴다. 무대로 뛰어내려 선 뒤 추는 춤. 많은 숫자의 핀 조명이 내리 꽂히는 무대에서 힘껏 자유롭게 춤을 춘다. 대구 한국창작춤의 미래를 본다. 전통 속에서 무한히 자유로운 이들의 춤. 놀랍다. 균형 있는 춤 자리를 차지하게 될 더 큰 춤의 세계를 자신들의 몸(춤)의 감각 속에 펼쳐놓은 춤이었다. 퇴장하며 어둠속에서 ‘끙’하고 힘을 쓰며 내는 자유로움과 위트에 웃음이 터지는 객석. 이들의 춤만큼 자유로운 이들의 과 위트에 웃음이 터지는 객석.



장유경 〈만가滿歌〉 ⓒ옥상훈



마지막 5장, ‘입’-입소리에 춤을 얹다. 어둑한 무대, 수건을 손에 들고 성큼성큼 무대로 걸어 나오는 장유경. 무대 가운데 앉아 수건을 정성들여 펼쳐놓는다. 경계와 고귀함을 의미하는 오방색의 중심인, 노랑색이다. 펼쳐놓은 수건은 물이거나, 거울이기도. 가채를 풀어 정갈하게 매만져 다시 얹는다. 이미 ‘그 자체로 충만한...’ 소리에 춤을 얹고자 하는 이가 그 소리에 대한 존경과 예 또는 스스로 경계하는 의미로 읽힌다. 하수 쪽으로 돌아 무대 한 가운데 선다. 내리누르는 듯한 무거운 징소리를 시작으로, 고 김소희선생의 구음이 흐른다.

제자리에서 깊게 내리는 굴신으로 시작되는 춤. 팔을 들었다가 툭 놓치고 다시 들고 툭 놓기를 반복. 땅에 뿌리를 내리듯, 제자리에서 추다가 한발 한발 앞으로 걷는다. 간결한 푸른 색 조명이 흰색의상의 조화. 두드러진 장구장단에 멈춰 선 뒤, 두 팔을 들고 제자리에서 휘익 뒤 돌아선 뒤, 춤을 춘다. 고요한 춤의 뒤태. 그 사이(퇴직한 뒤) 춤이 깊어졌다. 넓고 깊은 온통 검은 무대 배경에 흰색의상, 오랜 시간 온 몸(춤)으로 익힌 춤이 당당하고 고아하다. 노랑색 수건을 꺼내 어깨에 얹고 추다가, 목에 두른다. 앞섶자락을 뒤로 질끈 묶고, 자진모리장단에 흥을 싣는다. 절제된 흥. 고 김소희선생의 입소리에 춤을 얹어보고 싶다는 자신의 심정에 진실하였고, 그 춤 시간 앞에서 진실하였던 것 같다. 진실한 춤의 세계 안에서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을 확인한 무대였다. 장유경의 춤은 기교가 넘치지도 화려한 춤사위를 나열하지도, 춤과 춤 사이를 정밀하게 계산하여 춘 것도 아니지만 그의 춤에서 깊은 넓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진실의 끝에 이르려는 노력이 생생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 점검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하여 춤의 평정 속에 지혜를 보고, 춤의 기교가 사라진 뒤에는 자유로이 춤으로 돌아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춤꾼이 춤을 잘 출 수 있는 것은 기본 전제이나, 이보다 더 높은 경계를 추구해야 한다. 바로 자신의 예술적 개성이다. 〈만가〉(滿歌)는 남을 따라 가기보다 늘 춤으로 새로 길을 내는 장유경 춤의 시작이자, 서 있는 곳이자, 가 닿고자 한 곳을 한 번에 보여준 무대였다.

수십 년 동안 춤을 붙들고 춘 장유경의 춤이 그 세월에 값하는 어떤 보편적 가치와 힘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그의 춤이 어디에도 가두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만가〉는 장유경이 춤작가로, 무용가로, 교육자로 한 인간의 성의를 다함으로써, 스스로의 춤의 의지와 힘들이 서로 북돋으며 성장하고 완성되어 온 장소로 만들었음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춤 기운을 성의 있게 지펴놓은 1장의 세 명의 중견무용가와 군무진. 춤 인연의 마음이 어디에 닿을지 알길 없는 3장 ‘아리랑’에서 춤춘 중견의 두 남자무용가. 춤 마음과 성의가 끊이지 않은 춤과 대구 남자춤의 중심으로 우뚝 선 2장과 4장까지. 앞으로도 장유경의 춤은 춤의 변주에 따라 그것이 어디에까지 가 닿을지는 알 수 없다. 장유경의 바람대로 춤 인연이 좋은 세상을 향한 바람이 되고, 지혜에의 희구가 되기를.

노자가 생명의 정신을 본성과 근본에 입각하여 말한 것처럼, 춤의 생명 또한 춤추는 이의 본성과 춤의 근본에 입각해 있음을 확인한 무대였다. 마지막, 춤을 춘 장유경이 먼저 무대 인사를 한 뒤, 출연진들을 차례로 무대에서 맞는다. 그들에게 깊이 절을 하며 경의를 표한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

2023. 11.
사진제공_장유경무용단,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