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춤의 동시대성을 추동하는 젊은 춤꾼들(4)
알티밋무용단 제2회 정기공연 무대에 올랐던 이전 작품 〈침 혹은 피〉에서 인간 내면의 성적 본능을 직설적으로 거침없이 장면화했던 배진호가, 이번에는 이와 비슷한 성향을 띠지만, 이것보다는 한층 정제된 상징성을 내포한 공연 〈갈라〉(7월 26~2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선보였다. 2023년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의 폐막작인 이 공연은 삶의 화려함과 그 이면의 어두운 진실, 밤의 진모를 제시하는 공연이었다. 그런데 삶의 어두컴컴한 참모습은 오직 금기의 언어와 위반의 기호를 통해서만 드러나기라도 하는 듯, 배진호는 이를 괴기스러운 움직임과 관능적인 몸짓에 담아서 한 편의 ‘갈라쇼’처럼 장면화해 보여준다.
하지만 프롤로그 장면은 사뭇 점잖게 시작한다. 막이 올라가지 않은 무대 앞쪽 중앙에 남녀 춤꾼 두 명이 서 있다. 무대 양옆에서 각각 등장한 그들은 아마도 모르는 사이일 것이다. 남성 춤꾼은 객석을 바라보며 무뚝뚝하게 서 있고, 여성 춤꾼은 그의 사선 뒤쪽에 등을 보인 채 돌아서 있다. 무심하게 서 있는 그들은 애써 서로를 무시하는 듯하다. 잠시 후, 무슨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바지 한쪽을 걷어 올린 채 서 있던 여성이 먼저 고개를 까딱까딱하고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한다. 이에 반응하듯 남성이 짐짓 태연한 척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두루 살피더니 허공을 살짝 쳐다본다. 그러다 둔탁하면서도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둘은 객석 쪽으로 등을 둔 채 나란히 선다. 서먹서먹한 둘 사이에 살짝 친밀감이 감돈다. 잠시 그렇게 서 있던 둘이 이윽고 몸을 틀어 마주한 채, 상체를 튕기고 부드럽게 웨이브 동작을 하는 등 서로 대거리하며 주거니 받거니, 발랄하게 춤을 추면, 그 순간 메인 막이 올라간다. 막 뒤에는 이미 몇몇 춤꾼들이 나와 있고, 무대 양옆 앞쪽에서도 다른 춤꾼들이 신나게 등장한다. 흡사 클럽에 입장하는 연인처럼 남녀는 무대 중앙으로 이동해 이들과 합류한다.
배진호 〈갈라(GALA)〉 ⓒ배진호 |
〈갈라〉에서 배진호는 우리 삶의 중요한 두 측면을 극단적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곧 공연은 수미일관한 서사 구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종종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양면성, 곧 매우 밝고 활기찬 생의 약동과 그 이면의 몹시 쓸쓸하고 슬퍼 억누를 수 없는 격정적 감정을 세차고 치열하면서도 광기 어린 몸짓에 실어 대조적으로 현시한다. 이를테면 〈갈라〉는 때로는 축전 같은 인생을 즐기다가 불현듯 그지없이 우울감에 사로잡히는 인간 삶의 양면성을 명확하게 구별해 드러내 보임으로써, 한없이 기뻤다가 이내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장육부가 뒤틀리며 아찔해지는 순간의, 극과 극을 오가는 인생의 급경사를 제대로 실감하게 하는 공연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갈라 같이 즐겁고 흥겨운 인생의 한 극점이 그려진다. 축전 같은 일상을 즐기는 인생의 화려한 갈라쇼가 펼쳐지는 것이다. 무대 앞쪽에서 시작된 춤이 뒤쪽의 춤꾼들과 합세하면서 점점 기세를 올린다. 제법 큰 원형을 이루며 무대 중앙에 둥글게 모인 그들이 두 손을 가슴팍에 모으고 허리를 숙인 채 두 발을 차례로 옆으로 쭉쭉 내밀며 몸통을 돌리다가, 무대 전면에 일렬횡대로 서서 손과 상체 동작 위주의 격렬하면서도 일사불란한 군무를 이어간다. 그러다 그들이 다 함께 무대 뒤로 자리를 옮기면, 무리에서 빠져나온 춤꾼 한둘이 다른 이들 앞에 나서서 자랑하듯 춤추고, 군무가 열을 이룬 채 양편으로 갈라서면 그 사이에서 보란 듯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그들이 한 무리를 이뤄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즈음, 갑자기 음악이 멎고, 춤꾼들도 추던 춤을 일제히 멈춘다. 아무런 소리도, 미동도 없는 무대는 한동안 깊은 적막에 잠긴다. 화려함과 그 이면, 둘 사이의 틈이 열리는 순간이다. 어쩌면 이 틈으로 허무감이 밀려들 것이다.
배진호 〈갈라(GALA)〉 ⓒ배진호 |
그런데 춤꾼들에게 갈라는 열정적으로 준비한 무대에 올라,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을 치른 후, 남은 여분의 에너지마저 다 소진하는 뒤풀이로 마감하는, 공연 과정 전체에 해당하는 즐겁고 흥이 나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 모든 과정을 끝내고, 혼자가 된 그들이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에 잠기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는 비단 공연 과정에 국한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모든 일에 열성과 성의를 다해 살아가는 우리 삶의 매 계기가 이러한 과정의 반복일 것이다. 이를테면 〈갈라〉의 첫 번째 집단 군무는, 공연할 때든 인생을 살 때든, 상반되는 인생의 두 극점을 시시때때로 오가며 반복되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 곧 생동하는 삶의 의지가 거리낌 없이 분출되는 춤이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배진호는 이를, 곧 생기가 가득 찬 우리 삶의 긍정적 측면을 클럽에서 떼춤을 추는 듯한 집단 군무로 치환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춤이 멎은 뒤 곧바로 찾아오는 잠잠하고 조용한 적막의 순간은 그 이면의 부정적 측면, 곧 공허함이 드러나는 사이의 시공간일 것이다. 말하자면 화려함과 공허함, 그 둘 사이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사이의 시공간을 창출함으로써 삶과 인생의 어두운 심연을 드러내 보이는 대목이다.
배진호 〈갈라(GALA)〉 ⓒ배진호 |
가만히 서 있던 춤꾼들이 모두 무대 뒤로 걸어 들어가, 눕거나, 퍼질러 앉거나 서 있다. 감정이 격렬하게 솟구치는 한바탕 춤 잔치가 끝난 뒤 휴식을 취하는 것이리라. 그러다 그들 중 두 명이 무대 전면으로 나오더니 무기력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꼬꾸라져 무대 바닥에 얼굴을 묻고 엎어진 채 뒤척이다가 일어난 한 명이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며 손으로 제 얼굴을 때리고, 또 다른 한 명이 마치 발작하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을 벌린 채 쓰러져 괴로워한다. 그러다 팬티만 입고 선 남자의 등에 기대어 엉기던 여자가 갑자기 다른 남자에게로 뛰어가 그의 곁에 눕고, 다른 여자가 그 남자의 발을 잡아끌어 다른 데로 이동하면, 끌려가는 그 남자의 손을 붙잡으며 저지하더니, 다시 엎드려 있는 다른 남자의 등에 올라타기도 한다. 깊은 절망과 체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이들의 허무주의적 정서가 짙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뒤이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다른 여성 춤꾼 한 명이 한쪽 다리를 절며 무대 전면으로 나와 두 팔을 펴고 선 채 울고, 그 뒤쪽에서는 한 남성 춤꾼이 엎어져 누워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유사 성행위를 하기도 한다. 서로 기대고 엮이고 뒤엉키다가 때로는 발작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주체할 수 없는 공허감을 해소하는 사람들처럼 보이고, 맥락 없는 행위를 이어가는 그들은 흡사 집단 환각 상태에 빠진 사람들 같다. 요컨대 니힐리즘적인 삶의 진풍경을 마치 사건적 상황처럼 장면화한 파편적이면서도 지극히 자극적인 이들의 춤과 행동들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흐뭇한 ‘갈라’가 끝난 뒤의 공허감을 달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배진호 〈갈라(GALA)〉 ⓒ배진호 |
무대 전면 양옆에서 두 명의 춤꾼이 뒷걸음질로 등장해 무대 중앙에서 등을 맞대고 선다. 다소 웅장하면서 드라마틱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린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쥐어짜듯이 비틀던 둘이 무대 바닥에 드러누워 발작을 일으키면, 다른 또 한 명의 춤꾼이 살며시 등장해 그들 사이에 서서 먼 곳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면 몸과 팔을 심하게 비틀던 두 명의 춤꾼이 이제 인상을 찡그리며 혀를 길게 늘어뜨린 채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위태위태하게 일어나더니, 아무런 감정도 없이 서 있는 그의 곁을 비틀거리며 맴돌다가, 다시 쓰러져 무대 바닥을 뒹굴기도 한다. 또 온몸을 내던지더니 무대 바닥에 등을 붙인 채 몸통을 튕기면서 옆으로 이동하는 기이한 행동도 한다. 인간 실존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무의식적 본능을 쥐어 짜내듯 드러내 보이는 그로테스크한 움직임과 괴기스러운 고난도의 몸짓들이 강력한 정동을 촉발하면서도 헛되고 부질없어 보이는 삶의 한 단면을 정묘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유사 성행위가 난무하는, 그야말로 무질서한 난장판이 연출된다. 다 함께 몸을 거칠게 흔들던 군무가 원형을 이룬 채 쓰러지면, 그들 가운데서 남녀 춤꾼 둘이 서로 어르고, 만지고, 부둥켜안기도 하고, 또 한 명의 춤꾼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괴성을 지르고 두 어깨를 우쭐거리는 기이한 동작을 하다가, 급기야 누워있는 남성 위에서 이상야릇한 소리를 지르며 유사 성행위를 한다. 그러면 다른 춤꾼들이 하나둘 서서히 일어나 등을 보인 채 허공을 올려다보며 무대 뒤쪽으로 옮겨가고, 그 끝자락에 남은 둘이 부둥켜안거나 몸이 엉킨 채 재차 동성 성행위를 이어간다. 그러다 미친 듯한 표정과 괴이한 행동을 이어가던 둘과 무리가 합류하여 무대 여기저기에서 날뛰며 소리 지르다가, 다 같이 무대 전면에 일렬로 선 채 팔과 다리, 머리채와 상체를 거칠게 흔들고,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발작적인 동작을 지속하더니 서서히 지쳐간다. 노골적인 성 표현과 에로틱한 몸짓들이 동반되는 집단 엑스터시 상태의 카오스나 무질서, 혹은 난장을 통해 남아도는 몸의 과잉 에너지를 하염없이 소비하는 인간상이 그려지는 엔딩 씬이다.
배진호가 생각하는 갈라는 축제나 카니발인 듯하다. 그것도 이른바 연일 지속하는 음주가무(飮酒歌舞)와 도취 상태에서 집단 난교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는 연행 현장인 고대의 바쿠스(Bacchus)나 디오니소스(Dionysos) 카니발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그들의 춤은 새로운 활동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절정에 이르기 위해 섹스에 탐닉하는 인간들처럼, 혹은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기 위해 집단 황홀경 상태에 빠져드는 사람들처럼, 몸의 잉여 에너지 그 자체를 순수하게 비생산적으로 소진하는 듯하다. 곧 〈갈라〉의 마지막 집단 춤은, 기성의 가치와 사유 체계를 뒤집는 전복의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가 말하는바, 인간과 세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생산과 축적이 아니라 소비와 상실임을 역설하는 듯하다. 인간이 겉으로는 생산성과 유용성을 지향하는 생산적인 노동에만 몰두하는 듯하지만, 실은 끝없이 소비에 탐닉하는 존재자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무의식에 자리 잡아 은밀히 작동하는 인간의 성본능을 솔직하면서도 과감하게 형상화한 배진호의 〈갈라〉는, 언뜻 보기에 실존의 존재 이유를 성 유희에서 찾는 것 같은 치기가 엿보이고, 삶에 대해 무모한 문제 제기만 하는 공연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려 이는 실제 삶에서 난관에 봉착한 그가 일탈을 감행하며 새로운 탈출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암중모색 중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렵고 까다로우면서도 괴괴한 몸동작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빼어난 춤꾼들의 춤의 향연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생의 아포리아를 돌파하기 위한 실존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퇴폐적인 듯하지만 깔끔하고, 저급한 듯하면서도 고급 취향이 드러나는 오묘한 몸짓 감각과 독특한 감성을 겸비하고, 실험성이 강한 공연을 연달아 선보이며 한국춤의 동시대성을 추동하는 배진호는 분명 그만의 춤 지대를 일구는 문제아이자, 기존의 한국춤 전통과 권위에 도전하는 이단아로 보인다.
최찬열
한국춤과 현대춤, 전통춤과 탈춤을 추었다. 국립모스크바대학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소속 민족인류학연구소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다시 미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