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근 학교 폭력과 공교육 현장의 붕괴는 사회적 이슈이다. 어린시절 사회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길러야 할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은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문제이며, 최근 묻지마 폭력 같은 사회문제도 어찌 보면 어린시절 학교폭력이나 사회적 왕따 등 교육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 김성훈의 신작 〈GRIMENTO〉(그리멘토)(9월 7~10일, 세종S씨어터)는 끊임없이 대두되는 학교폭력의 실상을 파헤쳐 보고 있다. 얼마전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도 학교폭력을 당한 주인공이 가해자 무리를 처절하게 복수하는 통쾌하지만 씁쓸한 현실을 다루었다. 드라마의 특성상 소재를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되갚으나, 김성훈은 평범한 방관자들에게 초점을 두고 나름 봉합할 여지도 내놓는다. 방관자들의 실천적인 행동이 피해자를 극한에서 구해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번 김성훈과 정구호의 협업은 전작들과는 달리 시사적인 주제를 처음 다룬 시도이다. 작품을 통해 학교폭력 문제 해결의 키를 방관자들에게 옮기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공조를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치열하게 몸으로 쏟아내는 아우성과 전율로 현실의 심각성이 환기되며 창작진의 소기 목적은 달성했지 싶다. 그러나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현실과 유사한 몸짓 재현에 충실할 뿐 예술이란 렌즈로 비춰봐야 하는 당위성은 희미하다.
김성훈-정구호 〈GRIMENTO〉 ⓒ세종문화회관 |
‘그리멘토’(grimento)는 회색의 뜻인 프랑스어 gri와 순간이란 뜻의 라틴어 memento의 합성어로 회색 빛의 순간, 기억이라고 한다. 교실이 배경인 무대에서는 가해자들과 한 명의 피해자 그리고 다수의 방관자가 설정되어 있다. 배경 스크린에 단어들(‘아무 일도 없는듯’, ‘작은 꼬투리’, ‘Please let me in’, ‘Can not’ )이 나열되며 사실적이고 직설적인 행위가 춤의 주요 기반이 된다. 6장으로 구성된 차별, 조롱, 폭행, 무관심, 방치, 갈등, 치유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전개로 연극을 표방하진 않으나 연극보다 더한 극적 감정선이 구축된다. 비주얼 디렉터를 맡은 정구호는 여섯 톤의 미묘한 회색 빛깔로 변화를 주었다고 하나 주제선과 몸짓서사가 강렬해서 크게 인지되진 않는다.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한 회색 톤의 교실 공간에는 16개의 책상과 의자만 질서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책상과 의자는 여러 정황을 마련하는 중요한 오브제로 사용된다. 그것들은 폭행의 도구로, 죽음의 타워로, 바리케이드이자 불편한 쉼터가 되기도 한다.
김성훈-정구호 〈GRIMENTO〉 ⓒ세종문화회관 |
회색 교복을 입은 무표정한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책걸상에 밀착된 동작을 하고, 때론 무기력해 보이는 여러 포즈를 취한다. 일련의 군무는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이 당면한 현실이자 작은 사회임을 직감하게 한다. 이 작은 교실에도 위계가 있고 영문도 모른 채 왕따로 지명된 아이는 가해자의 가학성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15명의 동작과 한 템포 느리게 움직이는 한 댄서(피해자)에게 서서히 어둠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이다. 책상을 뒤로 다 밀어 부치고 전체 무리에서 배제된 학생에게 본격적인 폭행이 구사된다. 역동적이고 빠른 속도로 마치 토끼몰이를 하듯 (피해자)댄서를 몰아 부치고 실제로 머리채를 잡거나 짐짝처럼 몸을 던지며 그의 인격이 마모되어 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웅크린 채 발버둥 치는 댄서를 보는 내내 여러 현실의 사건들이 오버랩 되어 아프고 무겁다. ‘폭력’ ’폭행’ ‘Violence’ 같은 타이포그래피가 현란하게 마치 활자로 공격하듯 전체 배경에 빽빽하게 투사되며 관객까지도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 반면 밀쳐진 책상과 의자 속에 숨어 이 모든 과정을 방관자들은 응시할 뿐이다. 조롱으로 시작하여 신체와 정서적 폭행이 극에 달할 즈음 방관자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김성훈-정구호 〈GRIMENTO〉 ⓒ세종문화회관 |
애써 무관심으로 서로(가해자들과 방관자들) 간 침범하지 않았던 공간의 구획선인 바리케이드가 무너진다. 책걸상을 제치고 방관자들이 서로 연대해 가해자 무리와 대치한다. 회유와 갈등이 오가며 긴장감이 고조되는 동안 피해자 학생은 높게 쌓은 책상 위로 올라가 죽음을 암시한다. 댄서의 축 쳐진 어깨와 머리에서 버겁고 의문투성인 현실의 무게가 느껴진다. 생을 마감하려 하는 순간 누군가 그의 손을 잡고 피해자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방관자인 학생들이 작지만 용기 있는 행동으로 교실의 분위기는 전환된다. 책상을 맞대고 서로를 마주보며 관계가 회복되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해 학생은 자기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객석에서 관객이 올라와 그를 안아주고 이어 가해자도 방관자도 모두가 그를 안아주나 피해자의 기억과 몸에 각인된 상처는 회복되지 않아 보인다. 회색 빛의 순간, 기억이라는 ‘그리멘토’ 제목이 함축된 와닿는 장면이다. 작품이 마무리되나 싶더니 영상에 “그들은 우리의 자식이고 형제이고 친구입니다”라는 문구와 학교폭력 신고 및 상담 전화번호가 안내된다. 상당히 당황스러운 엔딩으로 교육 홍보용 제작물로 보여서 앞선 몰입감이 깨져버린다. 이 방법이 최선인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성훈-정구호 〈GRIMENTO〉 ⓒ세종문화회관 |
상상력의 산실인 작품이 창작되는 여러 방식은 저마다 의미가 있다. 선도적인 기술과 융합하여 시대에 맞는 사유체계를 창출하는 실험이나 장르 간의 경계를 해체한 협업들과 춤이 지워질 정도로 기존의 관습적 몸짓을 거부하며 개념에 몰입하는 퍼포먼스 양상이 최근 현대춤 창작의 주요 흐름이지 않나 싶다. 이러한 물줄기에서 김성훈은 작정하고 명징한 메시지 구현에 방점을 둔 춤극 스타일을 택했다. 설정된 상황과 어휘에 걸 맞는 간결한 춤 동작들이 우리의 일상 언어로 환원되어 내용이 이해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반면 현실의 이면이나 실태를 다르게 보는 이질적인 시선은 기대하기 어렵고, 현실 인식도 밋밋하고 단조로워 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다수 관객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며 학교폭력이란 당면한 사회 문제를 생각하기에는 적절했다.
김성훈-정구호 〈GRIMENTO〉 ⓒ세종문화회관 |
또 한 가지 김성훈이 혹여나 정구호 디자이너의 무게에 가려지거나 비주얼에 맹목적으로 흡입되어 제 역할을 못할지 우려했다. 그간 정구호와 국립무용단과의 협업(〈묵향〉 〈향연〉 〈산조〉)은 한국춤 이미지 변신에 큰 역할을 하며 팬덤이 형성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정구호 특유의 디자인 감각과 색감으로 정갈하고 패셔너블한 춤무대를 구현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공공단체와 정구호의 협업이 유행처럼 잦아지며 때론 엇비슷한 유사품처럼 보이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더구나 최근 서울시무용단과 협업한 〈일무〉에서는 전통 정재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정구호가 디자인한 무대에 춤이 종속된 인상마저 들었다. 이것이 과연 온전한 컬래버레이션인지 의문이 지속되는 가운데 관람한 정구호와의 협작은 다행히도 김성훈의 세련된 감각과 댄서들의 출중한 춤이 주도적이었다. 당연한 것이 걱정이 되는 불균형한 협업의 실태가 필자만의 과도한 우려일까? 무용가들이 자신의 지분이자 춤 정체성이 모호해지지 않는 협업을 하길 희망하며, 모쪼록 서로의 존재감이 기울어지지 않길 바란다.
사회적 이슈에 둔감하지 않는 작업은 필요하고 학교폭력과 같은 직면한 문제를 춤으로 재조명하는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굳이 춤을 통해 추구하는 예술적 적정성을 찾기는 모호했다. 교훈적인 현실 재현에만 머문다면 이는 교육프로그램이지 예술작품이라 하기에는 난감하지 않는가! 현실문제를 다룬다고 동시대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듯 춤이라는 장치의 청진기로 문제를 진단하는 예리하고 비판적인 사유가 강화된다면 가능성 있는 작품이 되지 싶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