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남춤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할 터
부산‧경남을 대표하는 영남춤축제가 한여름 열기 속에서 한 달간 진행되었다(7.14-8.12). 오늘날 경상도라 불리는 영남지역은 수영과 동래의 들놀음(野遊), 밀양의 백중놀이, 통영‧고성‧진주‧가산의 오광대놀이, 동해안과 남해안의 별신굿, 진주‧통영 교방청의 검무와 승전무, 권번의 여러 입춤과 굿거리 춤 등 춤 자산이 매우 풍부하다.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은 이같은 지역 춤 문화의 계승과 위축된 춤판 활성화를 위해 축제를 마련했으며, 올해로 6회를 맞았다.
지역에 방점을 둔 초기와 달리, 전국의 여러 춤을 포섭한 축제는 동래야류를 모티브로 한 개막작 〈야류별곡: 달의 시간으로 사는 마을〉로 시작되었고, 대미를 장식한 폐막공연은 강릉‧양주‧봉산의 탈놀이였다. 202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탈춤을 앞과 뒤에 배치한 것이다.
중심부를 촘촘히 채운 것은 전통춤판, 창작춤판인 안무가전, 춤 반주음악(대풍류, 경기도무속음악)강연과 즉흥춤판을 한데 묶은 기획공연, 천하제일탈공작소(대표:이주원‧허창열)와 지역 연희패가 참여한 야외공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춤 강습, 영남지역 탈춤 연희의 지속 가능성을 탐색한 학술대회, 영남지역 춤 60년사와 현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영남춤 라운드 테이블 등이다. 이 중 메인은 전통춤판과 안무가전이라고 할 수 있다.
5회에 걸쳐 진행된 전통춤판은 전통음악그룹 판(음악감독: 유인상)의 정갈한 반주와 함께 서른 개의 홀 춤을 소개했다. 주요 레퍼토리는 국가나 시도 문화재로 널리 유통되는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 〈진주교방굿거리춤〉이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전라도의 〈승무〉‧〈민 살풀이춤〉‧〈호남살풀이춤〉, 민속과 궁중을 대표하는 〈밀양북춤〉‧〈춘앵전〉‧〈무산향〉 등을 포함시켜 다양성을 확보한다. 또한 창작된 춤이 여럿 등장하기도 한다.
전통춤판의 두드러진 특징은 두 가지이다. 먼저 하나의 춤이 여러 개로 분화(分化)됨을 보여준다. 예컨대 이매방류 〈승무〉는 전승교육사에 따라 결이 다르고, 〈태평무〉는 새롭게 지정된 보유자와 함께 두 세 갈래로 나눠지며, 〈진주교방굿거리춤〉을 비롯한 여타의 것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서, 하나의 춤에 여러 변이형태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일본전통예술은 전승과정에서 일체의 변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춤을 비롯한 한국전통예술일반은 변화하면서 전승된다. 즉 전승의 기본 틀인 전형은 유지하되, 전승자의 개성적 변용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승방식에 주안점을 둘 때, 춤의 분화와 그에 따른 변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춤판의 또 다른 특징은 새롭게 창작된 작품의 포섭이다. 故임이조의 1978년 초연작 〈화선무〉와 〈교방살풀이춤〉, 김경란의 〈구음검무〉, 박경랑의 〈영남허튼진쇠놀이춤〉, 前국립남도국악원 안무자 최정윤의 〈매향무〉, 김인수의 〈영남외북춤〉, 서한우의 〈버꾸춤〉, 김진완의 〈한량무〉가 그것이다.
흔히 한국춤 장르를 창작춤과 전통춤으로 양분한다. 창작은 새롭게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로, 자기 세계의 창조적 표현과 미적 성취를 목표로 한다. 〈화선무〉를 비롯한 작품들이 이를 겨냥한다고 보기 어렵다. 대신 전통적인 기법이나 소재에 강조점을 둔다는 점에서 전통춤 장르로 분류됨 직하다. 그런데 문화재와 관련하여 전통춤은 일정한 역사와 가치를 확보한 춤이다. 즉 몇 세대에 걸쳐 전승된 것이고, 다음 세대에게 마땅히 전해야 할 가치를 인정받은 춤이다. 이 같은 기준에서 본다면, 창작된 다수는 전통춤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이처럼 여러 고민을 아우르고 있는 전통춤판이 최종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오늘날 전통춤은 변이형태가 많고 새롭게 만든 것도 많다는 것이다. 이들을 가로지르는 핵심 문제는 전승의 기본 틀인 전형은 무엇이고, 새롭게 변형되거나 활용된 것이 무엇인가이다. 공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팸플릿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데 영남춤축제 전통춤판의 몇몇은 이를 제시한다. 김부경과 장인숙이 선보인 〈교방굿거리춤〉, 성미나가 선보인 〈구음검무〉, 이상연이 선보인 조갑녀류 〈승무〉가 여기에 해당한다.
김부경 〈교방굿거리춤〉 ⓒ국립부산국악원 |
장인숙 〈교방굿거리춤〉 ⓒ국립부산국악원 |
〈교방굿거리춤〉의 경우, 故김수악이 정립한 8개 마루(단락)를 고스란히 전승하고, 후반부 소고가락을 김경란이 변형했다고 밝힌다. 〈구음검무〉는 김경란이 창작한 솔로 춤으로, 김수악의 구음과 진주검무 동작을 활용한 것임을 밝힌다. 조갑녀류 〈승무〉는 조선의 마지막 궁중춤 교수였던 故이장선에서 故조갑녀로 이어진 남원지역 승무로, 김경란이 재구성하여 무대화한 춤임을 명시한다.
성미나 〈구음검무〉 ⓒ국립부산국악원 |
이상연 조갑녀류 〈승무〉 ⓒ국립부산국악원 |
물론 제시된 내용이 완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꾼과 관객과 연구자에게 그 춤의 전형과 변형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춤의 전파력과 생명력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교방굿거리춤〉의 김부경과 장인숙, 〈구음검무〉의 성미나, 조갑녀류 〈승무〉의 이상연은 물론이고, 장금도류 〈민 살풀이춤〉의 서정숙, 〈호남살풀이춤〉의 김미선은 모두 서울교방(대표:김경란) 동인이다. 이들 춤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상‧하체의 자연스러운 조화 속에 삶의 체취가 묻은 몸을 부각시킨다. 즉 무심히 뒤돌아선 등이나 어깨에서, 투박하게 지수는 몸짓에서 그가 살아온 또는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긴 여운 속에 한국인의 삶과 춤, 윤리와 미(美)의 관계를 반추하게 한 무대라 하겠다.
서정숙 장금도류 〈민 살풀이춤〉 ⓒ국립부산국악원 |
김미선 〈호남살풀이춤〉 ⓒ국립부산국악원 |
전통춤판은 국립부산국악원 소극장(예지당)에서 진행된 반면, 창작춤판인 안무가전은 대극장(연악당)에서 펼쳐졌다. 지역 무용학과의 잇닿은 폐과와 더불어 창작이 침체된 상황에서 3-40대 젊은 작가들이 출품한 세 작품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통에서 소재를 빌려온 작업은 재기발랄하고, 거침이 없으며, 창의적이다.
김주빈 〈새다림〉 ⓒ국립부산국악원 |
먼저 주빈컴퍼니 예술감독 김주빈의 〈새다림〉은 제주도 큰굿의 한 거리로, 일상공간을 신성공간으로 정화하는 ‘새다림’을 소재로 한다. 그런데 작품은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정화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 굿의 보편적인 짜임새인 ‘청신(請神)-오신(娛神)-송신(送神)’을 차용한다. 즉 개인의 자기 정화 과정을 신을 부르고(請神), 신과 놀고(娛神), 신을 보내는(送神) 굿의 보편적 구성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이 같은 서사는 다소간 식상한 감이 없지 않으나, 오신과 송신 대목에 등장하는 북청 사자탈의 변용이 재기발랄하다.
박인선 〈탈춤꾼의 모든 행위는 놀이가 된다〉 ⓒ국립부산국악원 |
천하제일탈공작소 동인 박인선의 솔로작품 〈탈춤꾼의 모든 행위는 놀이가 된다〉는 서양악기와 한국악기가 혼용된 밴드와 함께 탈춤의 3요소인 재담(대사), 노래, 춤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강령탈춤 이수자로 탁월한 연희 능력을 가진 박인선은 마치 스탠딩 코미디 쇼를 하듯 각각을 거침없이 풀어낸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과잉된 감정과 행위는 관객의 참여와 몰입을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 하겠다.
한정미 〈사자〉 ⓒ국립부산국악원 |
알티밋무용단 단원 한정미의 〈사자〉는 한국무용제전 최우수작품상(2022) 수상작으로, 원래보다 조금 축약된 버전이다. 봉산탈춤 사자춤을 소재로 한 작품은 사자의 정체에 대해 주목한다. 원전에서 사자는 노승을 꾀어 파계에 이르게 한 젊은 중(목중)을 벌하려 내려온 신(神)으로, 큰 방울을 머리에 단 위협적인 짐승인 동시에 인간과 대화하며 화해의 춤을 추기도 한다.
작품은 이처럼 여러 모습의 사자를 흥미롭게 그려내는데, 파도처럼 물결치는 긴 비닐을 이용하여 신화 속으로 들어간다. 신은 동굴 깊숙이 자리한 듯 하고, 강렬하고 도발적인 움직임을 이어간다. 속도감 있게 장면이 전환되고, 사자가 등장한다. 봉산탈춤 사자와 유사하나 보다 역동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순간 발목에 방울을 단 백발의 무녀가 외계인처럼 등장하여 관객의 의표를 찌르고, 무녀와 사자가 한 몸이 되어 강렬한 사자춤을 춘다. 사이사이에 군무진이 등장하여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이리저리 누비던 사자가 자리를 잡고 잠잠해지면 마무리된다.
봉산탈춤 사자의 여러 모습을 창의적으로 이미지화한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다. 그리고 신을 묘사함에 있어 3재사상이나 음양론과 같은 논리에 갇히지 않고, 새롭고 도발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조명을 이용한 강렬하고 빠른 장면전환은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했고, 코어(core)를 강조한 동작구성은 신선하다. 작가 한정미의 다음 행보를 기대케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영남춤축제 폐막공연_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보존회 〈봉산탈춤〉 ⓒ국립부산국악원 |
지역에서 전국으로 외연을 확장한 영남춤축제는 전통춤의 다양한 전개양상은 물론이고, 창작춤의 새롭고 저돌적인 경향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장(場)이 되었다. 그런데 영남 지역 춤 자산의 계승과 지역춤판 활성화라는 원취지를 고려할 때, 우리 지역 춤꾼의 참여가 적었고, 지역 색을 선명히 한 춤판도 부족했다.
춤을 포함한 문화 일반은 교류를 통해 발전한다. 즉 외부와의 교류 없이 홀로 고여 있는 춤은 발전할 수 없고 사멸한다. 이 점에서 수적으로 적은 참여를 탓할 것이 아니라, 다양해진 올해 축제를 자기 점검과 비판의 계기로 삼아 변화할 때, 영남춤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문화를 선도하는 국립부산국악원의 지속적이고 다각적인 노력과 더불어 주체인 지역 춤꾼의 성찰과 변화가 절실한 때라 하겠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