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2 올해의 신작 (4) 미나 유
길을 감춘 역설적인 시선
김채현_춤비평가

올해의 신작 프로그램에서 미나 유는 〈더 로드〉(The Road)를 올렸다(3월 31일 ~ 4월 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삶의) 길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공연에서 길은 분명찮았고 아예 발견되지도 않았다. 길을 내세우면서도 길을 감춰버리는 지독한 아이러니가 완연하다. 오래 삶을 겪어온 원로 안무자의 정동이 감지되는 한편으로 삶을 향한 미나 유의 시선은 어쩌면 모질다 할 만큼의 냉정한 인상을 던진다. 이런 면에서 〈더 로드〉는 올해의 신작 무용 부문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유별난 시각의 공연작일 것이고, 때문에 올해의 신작에서 원로가 신진들과도 어깨를 겨루며 자극제로 작용하는 방안이 계속 고려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미나 유 〈더 로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옥상훈



〈더 로드〉에서는 조리정연한 전개가 드물다. 일례로 2인의 출연자가 사각 조명 박스 안에서 상대방의 동작을 거울 보듯이 서로 유사하게 해낸다. 그들의 개별 동작은 아주 격한 편이고 서로 대치하고 갈등하는 모습들을 보이는데, 둘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 상황을 거듭하다가 헤어지고 퇴장한다.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갈등하거나 아니면 소통을 도모해보다 그만두는 장면은 서너 가지로 전개된다. 그리고 예닐곱 명의 출연자가 등장해서도 대개는 접촉이 뜸한 상태에서 거울 동작 같은 동작들로 서로 관찰하고 멈칫하며 배회하는 모습들을 보이다 그만두기 일쑤이다. 2인, 3인, 그리고 다수가 등장한 장면들에서 공연 전개 도중에 반복되다가 중단되는 순간들이 자주 연출되었다.



미나 유 〈더 로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옥상훈



공연 말미에 분위기가 일변하여 봉고 리듬이 섞인 열대 음악의 반복되는 흥겨운 리듬에 사람들은 저마다 몸을 신명나고 부드럽게 구사한다. 서로 둥글게 모여 몸을 굽혀 원을 이루고선 상체를 일으키며 원을 크게 만든다. 각자 신명난 몸짓으로 퇴장한 그들이 다시 줄 서서 느리게 들어오며 어둠 속에서 각자 제자리에서 배회한다. 여성의 다소 처연한 느낌의 노래가 들리며 그들은 주로 바닥을 주시하거나 주변에서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모습들이다. 미나 유가 그려내는 삶에서 신명의 수명은 매우 짧다.



미나 유 〈더 로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옥상훈



전체적으로 언뜻 뜬금없고 산만해 보이며 심지어 지겨움을 유발할 이러한 구성에서는 삶의 엇박자를 비롯하여 삶의 미규정성(未規定性), 소통이 어려운 상황이 간파된다. 공연의 도입부에서 대형 투명 비닐 속에 천 같은 것이 잔뜩 우겨 넣어진 짐을 짊어진 남성이 비틀거리는 부분은 그 뒤로 비춰지는 날카로운 전자파 도형 이미지와 함께 삶의 역경을 나타낼 것이다. 담백해 보일 이 부분은 상투적인 연출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배경 음악으로 아랍권의 두 여자 가수의 노래가 등장한다. 삶의 희망, 세상의 평화를 갈구하는 노래들인데, 음량이 너무 낮아 그 음조를 제대로 식별하기 어려웠고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 반복되는 여러 양상의 움직임들도 서로 유사한 편이어서 서로 간에 색깔과 분위기를 달리하는 점이 약했고 제각각의 임팩트는 옅은 편이었다.



미나 유 〈더 로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옥상훈



앞서 등장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반복하는, 즉 앞의 장면들을 수시로 인용하는 구성법은 〈더 로드〉에서 두드러진다. 안무자 자신의 전작들에서 이런 사례를 접한 기억은 한 번 있었고, 일반적으로도 드문 줄로 안다. 안무자의 이전작 〈구토〉(嘔吐)의 전반부에서 출연자가 독무로 무대를 질주하며 횡단하는 상황을 폭발적으로 지어내는 것을 여러 출연자가 잇달아 교대로 장시간 해낸 적이 있다. 안무자가 의도적으로 택한, 말하자면 반복적 자기 인용은 〈더 로드〉에서 삶의 미로(迷路)를 강조한다. 빨간 풍선을 든 여자를 중심으로 너댓 명이 대거리하는 부분에서 빨간 풍선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만한 신호나 길잡이 같은 역할도 해내지 못한 채 그냥 풍선에 머물 뿐이고 검정 안대를 쓴 남자를 인도하려 여자가 애쓰지만 무위에 그친다. 몽드리앙의 추상화에서 흔한 사각형 같은 도형들이 색색의 박스 조명으로 하나씩 또는 한번에 여러 개가 바닥에 수시로 비춰진다. 삶의 여러 양상과 상황이 은유하는 장면들이다. 〈더 로드〉는 삶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지속적으로 미궁에 빠뜨린다.





미나 유 〈더 로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옥상훈



딸꾹질을 하는 순간처럼 장애물이 시시각각 틈을 보는 삶의 길이 연상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한 남성이 빠른 전자 굉음에 따라 선 상태로 몸을 부들부들 비트는 경련의 동작을 상당히 오래 지속한다. 이어 화살표 모양의 붉은 조명이 비춰지자 다른 남성이 어두운 바닥에서 몸을 비틀며 헤매는 동작을 거듭한다. 두 사람이 접근하는 상태에서 또 다른 남성이 등장해서 몸 비틀기를 하다가 두 사람에게 접근하면서 마침내 세 사람의 움직임이 스타카토 식으로 빠르게 분절되며 지속되는 순간이 이어진다.



미나 유 〈더 로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옥상훈



근 5년 전에 미나 유가 올린 〈구토〉는 구원의 과제를 제기하였다. 질주하는 사회, 휩쓸리는 사회, 말하자면 속도에 매몰된 문명을 그야말로 속도감을 주요소로 부각시킨 공연으로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더 로드〉는 이와는 아주 상반된 요소를 기반으로 삶의 본성을 터치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이 점에서 몇 해 사이에 변신을 도모하며 대조적인 작업들을 멈추지 않는 열의를 보게 된다. 미나 유에게서 이 열의는 사실 단순하지 않으며 오래 이어진 작업의 연속선상에서 해석될 점이다. 30년 전 1992년 발표한 미나 유의 소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오늘의 로미오, 줄리엣이 등장하였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그들이 처한 상황을 그려내면서 미나 유는 사회적 동향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맥락은 미나 유의 춤을 추동해온 동력을 강하게 시사한다. 〈더 로드〉를 관통하는 아이러니 또한 미나 유의 비판 의식을 배경으로 할 것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3. 7.
사진제공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