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전춤작가전(7. 20.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이 알차게 꾸려졌다. 충청권에서 견고하게 입지를 다지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당월 서울에서 열린 춤작가전과 비교해도 별 손색이 없다. 오히려 어느 작품은 작가다운 면모가 훨씬 빼어났다. 각개 작품과 ‘어두워야만 보이는 것들’이란 전체 주제와의 연관성이 그리 조밀하진 않으나, 인간의 욕망, 사랑, 죽음에 관련된 내용들이 일면 관계가 없지도 않다. 김경신의 〈호모 루피엔스- 아이언 블러드〉와 김용철의 〈부모은중경〉은 재구성한 작이고, 김희연의 〈Wings of Love-Wounds and Hope〉와 최성옥의 〈오! 오필리아 오필리아〉는 신작이다. 작품마다의 장르적 특성과 정서적 감응의 강도는 다르나 안무가와 춤꾼들의 내밀한 사유에 동조할 수 있었다.
김경신 〈호모 루피엔스- 아이언 블러드〉 ⓒ2023 대전춤작가전 |
언플러그드바디즈의 예술감독인 김경신의 〈호모 루피엔스- 아이언 블러드〉는 2020년 ACC 현대무용 인큐베이팅 창·제작에서 만들어져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21)과 뉴욕과 시애틀 및 국내외 축제에서 초정 받은 전적이 있다. 김경신은 지속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호모(Homo) 시리즈(〈호모 루덴스〉,〈호모 파베르〉)를 발표하며 ‘호모 루피엔스’라는 자신만의 합성어(호모 루덴스와 호모 사피엔스)를 창안해 낸다. 안무자에 의하면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과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담은 용어라 한다. 전체 분위기는 시종일관 어둡고 침울하다. 로봇이 사는 세상으로 빛도 없고 산소통으로 목숨을 유지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된다. 얼굴을 가린 익명의 인간 로봇들은 수동적이고 집단적으로 활동을 할 뿐이다. 유토피아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로봇이 역으로 인간을 자칭하는 디스토피아 세상이다.
김경신 〈호모 루피엔스- 아이언 블러드〉 ⓒ2023 대전춤작가전 |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질이 상당히 거슬리는 데, 음향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된 불편함이지 싶다(그렇지 않다면 수정해야 할 부분이다). 유희하고(루덴스) 생각하는(사피엔스) 자율적인 인간의 활동과는 대비되는 로봇들의 움직임이 목적도 방향성도 없이 분주하기만 하다. 오브제로 사용되는 쇠막대기와 전등이 발산하는 빛에 따라 이들은 순응하고 지배당하는 군무로 응한다. 한 올 한 올 벗겨지는 마스크와 셔츠, 온몸을 감싼 한 댄서의 피부(의상)를 가위로 벗겨내는 퍼포먼스로 분위기는 전환된다. 그리고 인간과 로봇이 둘의 어색하지만 닮아가는 행위가 이어진다. 검정 타이즈가 벗겨지고 피부색을 드러낸 댄서를 통해 안무가는 메시지를 건네는 것 같다. 아이언 블러드가 활개 치는 세상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야 함을 경고한다.
김경신 〈호모 루피엔스- 아이언 블러드〉 ⓒ2023 대전춤작가전 |
안무자는 지표를 잃은 인간 현존을 로봇(아이언 블러드)에 투영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비관적인 미래가 인간의 욕망이 일궈 낸 결과임을 상상력을 발휘해 보여준다. 무미건조한 로봇 표상들로 관철시키는 현실 비판적인 시각은 비교적 잘 구현되었으나, 그가 호기롭게 제시한 ‘루피엔스’란 용어는 명쾌하게 각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호모시리즈를 꾸준하게 탐구한 안무가의 의도와 생각을 되뇌게 하는 데는 성공적이었다.
김용철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2023 대전춤작가전 |
천안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인 김용철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대구국제무용제(2019)와 대구 세계안무가전(2020)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김영임의 회심곡 중 ‘부모은중경’의 정취와 가사를 김용철 특유의 감성으로 풀어내었다. 무대 우편에 곧게 뻗은 붉은 빛과 김용철이 짊어 진 붉은 막대기가 일맥상통한 의미로 보인다. 죽은 부모의 시신을 은유하지 싶은 막대기의 무게는 가벼워 보이나 김용철의 몸은 무겁게 바닥으로 향한다. 순간 미묘한 감정이 교차된다. 후회와 통곡인지 아니면 돌아가시는 길에 예를 다하는지 김용철은 절제된 몸가짐으로 진지하게 수행한다. 노래 가사에 따라 아이를 업은 행위를 모방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해산의 고통도 묘사하며 부모의 노고를 떠올리는 회심곡의 흐름이 잘 읽혀진다. 부모의 은혜를 상기하는 곡과 춤이나 그리 예스럽고 구슬프지만은 않다.
김용철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2023 대전춤작가전 |
물론 곡의 분위기에 충실하면서도 안무자의 모던한 감각이 발휘된다. 한국춤으로 정련된 김정미와 김용철이나 때론 역동적이고 외향적인 동작을 과감하게 수용하여 고릿적 춤 같지 않다. 심플한 빛의 강도와 절제된 무대면 활용도 큰 몫을 해준다. 중년의 두 춤꾼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열연을 하다 상의와 하의를 탈의하고 서로를 감싸 안으며 하나가 된다.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으로 부모가 물려주신 신체와 생명에 대한 감사의 퍼포먼스이지 싶다. 몸으로 부모님께 바치는 상서(上書) 같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김희연 〈Wings of Love- Wounds and Hope〉 ⓒ2023 대전춤작가전 |
전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였던 김희연의 〈Wings of Love- Wounds and Hope〉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아다지오 곡에 맞춰 연인들이 겪을 정서를 자연스럽게 담았다. 실제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협주곡 1번이 실패한 후 몇 년을)신경쇠약증으로 시달리다 병에서 벗어나며 만든 명작이다. 몽환적이고 애잔한 무드에서 안개가 걷히듯 희망찬 선율로 점진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김희연은 곡의 흐름에 따라 두 남녀의 설레임, 아픔, 갈등, 환희 같은 감정을 발레다운 몸짓과 기교로 평이하게 풀어내었다. 함께한 전 광주시립발레단원인 정혜윤의 기량은 훌륭했다.
최성옥 〈오! 오필리아 오필리아〉 ⓒ2023 대전춤작가전 |
마지막으로 메타댄스 프로젝트 예술감독인 최성옥의 〈오! 오필리아 오필리아〉가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오필리아의 비극적인 사랑이 끝난 순간을 무대로 소환하여 관객을 그 시간으로 몰입하게 한다. 무엇보다 불가피했던 오필리아의 죽음을 밀도 있게 포착해 낸 점이 주목할 만하다. 작품은 찰나의 시간에 초점을 두는 데, 정신이 나가 죽어가는 오필리아의 모습에 매료될 만하다. 햄릿과 오필리아의 역을 감당한 김재민과 이소라의 춤과 연기도 한몫을 한다. 구체적인 서사는 없으나, 연극대사로 연동되는 햄릿(김재민)의 광기를 집약시킨 점과 꽃무늬 드레스로 연상되는 오필리아(이소라)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대본에서 무대로 나온 것처럼 이들은 각자의 공간(감옥)에 갇혀 고통을 토로한다. 그러나 이 둘은 끝내 한 공간에 있으나 마주하지 못한다. 서로의 심적 갈등이 깊어지는 구성으로 어긋난 운명이란 측면이 잘 부각된다.
최성옥 〈오! 오필리아 오필리아〉 ⓒ2023 대전춤작가전 |
햄릿에 가려진 오필리아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연민을 일으키며 동조하게 된다. 소용돌이치는 웜 홀(worm hole) 같은 영상이 나오고 이내 그녀의 죽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곳으로 걸어가는 오필리아의 감정에 동요될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화관에 잠긴 오필리아(〈Ophelia, John Everett Millais(1851)〉)가 연상되며 지독한 사랑이 종지부를 찍는 아름다운 미장센이다. 순간의 감정선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감각적인 최성옥의 안무와 능숙한 동선 배치나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연출도 부족함이 없었다. 영원한 예술의 제재인 비극적인 사랑을 몸으로 절박하게 구현해 낸 작품은 관객의 마음을 흔들 만했다. 메타댄스 프로젝트가 지역에 터를 잡고 탄탄하게 역량을 키워온 단체임을 재차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최성옥 〈오! 오필리아 오필리아〉 ⓒ2023 대전춤작가전 |
‘작가’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작가가 없는 작가전, 자족하는 작품만을 만드는 무용가에게 우리가 춤작가라 칭할 수 있을까. 창작자 개인의 이야기가 공동체에서 있음직한 고민이자 상상이고, 사회와 현실의 문제를 환기시킬 때 우리는 공감하게 된다. 예술가의 몸짓으로 시공간을 직조하고 유연한 사유로 우리(관객)의 동조를 이끄는 작품에서 작가다운 면을 발견 할 수 있다. 필자는 대전춤작가전에서 자아에만 매몰되지 않은 예술가와 시각적인 감각 표상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 작품을 만났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