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용단의 ‘NEXT STEP’ 무대 (1)
국립무용단의 ‘넥스트 스텝’(2022년 4월 20~22일, 국립극장 달오름)은 안무자 육성 프로젝트 공연이다. 2018년 시작해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한 이 공연은 리서치 과정부터 콘셉트의 개발과 구축, 그리고 조명과 무대 디자인, 연출까지, 그러니까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각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무대를 완성해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무용단 내외부에서 찾아낸 가능성 있는 젊은 안무가를 마음을 기울여 여러모로 배려하고, 그들을 한국춤을 이끌어갈 대표 안무자로 키우는 데 있어서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다. 한국춤의 미래 세대를 위한 국립무용단의 노력이 오롯이 담긴 의미 있는 기획공연인 셈이다. 그러기에 오래전부터 관객과 관련 전문가의 깊은 관심을 끌었던 이번 공연에는 세 작품, 곧 최호종의 〈야수들〉과 박소영 〈라스트 댄스〉, 그리고 정보경의 〈메아리〉가 무대에 올랐다. 동시대 감성을 담은 세 작품은 각기 자기만의 색깔과 개성을 뽐냈는데, 먼저 무대에 오른 최호종의 〈야수들〉은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발랄하면서도 위트 있게 풀어내는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불화와 화합의 춤
극장에 입장하면, 무대 좌우를 가로지르며 길게 설치된 투명 아크릴 컨테이너가 눈에 들어온다. 회랑 같기도 하고 어느 집 거실 같기도 하다. 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칸이 나뉜 컨테이너는 마치 긴 영화 필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주위가 모조리 검은 극장 공간과 대조적으로 컨테이너 안은 온통 하얗다. 단 무대 뒤쪽으로 난 출입문 하나를 제외하고, 바닥도 벽도, 그리고 조금 후 차례로 등장하는 4명 춤꾼이 입고 있는 새하얀 의상도. 선한 인간의 마음속 한편에 지녔을 법한 순백의 순수함이 전해지는 세련되고 참신한 미장센이다.
하지만 묵직하게 낮게 깔리며 울려 퍼지는 음악을 배경으로 삼아 등장하는 춤꾼들이 조성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네 발 가진 짐승처럼 천천히 기어서 무대를 가로질러 양옆으로 지나가는데,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굶주린 짐승처럼 오가던 그들이 마치 사냥감을 노리듯 정지 자세를 취할 테면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도 한다. 그러다 기어가던 한 춤꾼이 엎드렸던 몸통을 곧추세우고 살며시 직립해 가만히 선다. 그리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 재차 걸음을 옮긴다. 이른바 진화론에서 말하는 바처럼, 동물에서 인간이 되는 진행 경로를 아주 짧게 현시하는 장면이다.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동물성이 내재한다는 것을 시사하며, 앞으로 발생할 사건과 극적 상황을 넌지시 비쳐 보이는 것이다. 본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공연이 펼쳐질 장소와 환경,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성격 등을 미리 짐작하게 하는 인트로(intro) 신이다.
최호종 〈야수들〉 ⓒ국립무용단 |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춤꾼들이 도도하게 무대를 가로지르며 지나간다. 그런데 허리를 곧게 세운 채 홀로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은 모두 손에 가위를 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밝고 환한 무대에서 풍기는 산뜻함과 별개로 섬뜩하고 오싹한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그러다 바삐 가던 여성 춤꾼 한 명이 무대 옆에서 쑥 나온 익명의 손들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그 손들에 떠밀려 쓰러진다. 그러자 그는 손으로 바닥을 긁고,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거칠게 몸부림친다. 화가 잔뜩 난 고양이 같다. 잠시 히스테리컬한 움직임을 이어가던 그가 고개 떨군 채 얌전히 서 있자, 가위를 든 남성 춤꾼 한 명이 무대 뒤쪽으로 난 출입문을 열고 등장한다. 그는 여성 춤꾼의 옷을 가위로 군데군데 잘라 구멍을 내고, 잘린 천 조각을 여성 춤꾼의 입에 물린다. 아마도 가위는 동물적 본능에 따른 인간의 모진 말이나 거친 행동을 나타내는 메타포일 것이다. 상대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내고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지만,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위협적인 모습을 감정의 변화가 전혀 없이 무관심하고 예사롭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혹은 현대 사회의 가족주의에 내재한 폭력성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춤 만든 이의 심정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최호종 〈야수들〉 ⓒ국립무용단 |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이러니저러니 시비를 벌이다 점차 날을 세우며 거칠게 싸우는 부부처럼, 그들은 악다구니를 부리며 가위를 뺏고 뺏기는 위협적인 듀엣 춤을 이어 간다. 발로 여성의 몸을 이리저리 굴리고 뒤집는 춤은 폭력적인 뉘앙스를 은근히 드러낸다. 짐승들의 싸움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 춤이다. 급기야 기진맥진한 여성 춤꾼은 한 손을 남성 춤꾼에게 잡힌 채 짐승처럼 기면서 무대 밖으로 끌려 나간다. 살벌한 부부 싸움의 광경을 가벼운 터치로 담담하게 소묘하듯 그리고 있는 춤이다. 말하자면 이번 공연 〈야수들〉은 가족이나 소공동체 안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폭력성을 들춰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춤 만든 이는 이를 결코 심각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외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움직임이 주를 이룬 놀이나 유희 형식의 춤으로 가뿐하게 그리고 있다.
최호종 〈야수들〉 ⓒ국립무용단 |
암전 후, 남성 춤꾼 한 명이 무대 왼쪽에서 등장해 손뼉을 마주쳐 소리를 내면 무대는 갑자기 밝아진다. 오른쪽 무대에는 화병이 놓인 크고 둥근 테이블이 있고, 그 옆에는 작은 의자 하나가 있다. 또 왼쪽 무대에는 일인용 소파 하나와 작은 테이블이 있고, 그 옆에는 전등이 세워져 있다. 그 춤꾼에게 이끌려 나머지 춤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몸은 서로 뒤엉켜 그로테스크한 동물 형상을 하고 있다. 천 조각을 모두 입에 문 채 한 덩어리를 이룬 그 모습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 속의 한 단면처럼 보인다. 옹기종기 모며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지만 서로 외면하며 말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가족의 일상적 삶을 단순한 포즈 하나에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꽃병을 매만지는 등 일상적 동작만 무기력하게 하던 그들 중 한 명이 손뼉을 마주치면서 쓰러지면, 다른 세 명의 춤꾼은 강아지처럼 바닥을 기다가, 쓰러진 그 남자 주위로 모여든다. 그들은 가위로 남자의 옷을 잘라낸다. 마치 그의 살점이라도 도려내는 듯하다. 그러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일어나 함께 서로를 안으며 하나가 되기도 하지만, 또다시 돌변하여 서로의 옷을 무심히 잘라낸다.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폭력을 가하는 모습이다. 그것이 무관심이든, 아니면 말이나 물리력에 의한 폭력이든, 일상에서 늘 일어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폭력을 간략한 퍼포먼스에 담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연 중에 종종 춤꾼이 갑자기 박수하는 행위가 목격된다. 흥미로운 점은 박수가 갑작스러운 장면 전환과 조명 색깔의 변화, 또는 돌발적이거나 즉흥적인 춤꾼의 행동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박수하는 춤꾼은 극의 진행 속도와 변화 등 공연 상황을 무대 밖에서 조율하는 연출가의 역할을 대신해 이를 공연 중에 극 내부에서 수행한다. 춤꾼의 연출가-되기인 셈이다. 이는 공연에 몰입하는 관객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며 순간적으로 공연 공간을 낯설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이른바 서사극의 소외 효과, 곧 ‘낯설게 하기’ 기법이다. 춤 만든 이는 의도적으로 무대 공간을 낯설게 하여 관객의 과도한 감정이입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며, 그들이 무대 상황에, 나아가 현실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작인 〈풍경〉과 〈더 룸〉(The Room)에서 비슷한 기법을 자주 구사했던 연출가 김설진과의 협업이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이들이 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잘라낸 천 조각이 걸레인 양 그것으로 바닥과 테이블 위, 소파를 닦던 여성 춤꾼이 화병에 꽂힌 꽃을 보며 문득 회상에 잠긴다. 애틋하게 사랑하던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 것일까, 남녀는 알콩달콩 사랑의 듀엣 춤을 한동안 추다가, 밀고 당기고, 토라지고 붙잡고, 싸우고 화해한다. 그사이에 조명 빛은 여러 가지 색깔로 다채롭게 변하고, 테이블과 소파 등 오브제도 빠르게 바뀐다.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과 오브제의 빠른 교체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람의 마음과 상황 변화에 따라 냉정과 열정 사이를 수시로 오가는 사랑의 열기를 대변해 보여주는 듯하다.
최호종 〈야수들〉 ⓒ국립무용단 |
마침내 그들은 각자 혼자가 된다. 네 개의 의자를 나란히 놓고 떨어져 앉은 채 제 주장만 소리높여 외치고, 팔과 다리 동작이 주를 이루는 절도 있는 춤을 추고, 가위로 자기 옷을 자르다가 한명 한명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허리를 깊이 숙인 채 상체를 허우적거리며 다시 무대로 나온다. 퍽 지친 사람들처럼 보인다. 제풀에 화가 나고 지쳐 자학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처럼, 또 하루하루를 그저 사는 무기력한 사람들처럼 집 청소를 하고 가구를 옮기면서 놀거나 장난치다가, 또다시 거칠게 논쟁하고 다툰다. 제 주장이 관철되지 않아 몹시 화가 난 사람처럼 무대 여기저기를 기어다니고 테이블 위에 올라 짐승처럼 포효할 때, 그들은 흡사 동물이다. 춤꾼들이 어떨 때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또 다른 때는 동물처럼 휘젓고 다니는 무대는 사람의 동물-되기와 동물의 사람-되기가 교차하는 낯설고 생경한 장소로 변한다.
하지만 이 낯섦은 서사극에서 낯섦과 다르게 다가온다. 의도된 낯섦, 연출된 낯섦과는 결이 다소 달라 보이는 낯섦이다. 춤 만든 이들은 관행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일상 삶에서 우리가 무심코 놓치고 있는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 다른 지각으로 일상을 대하고, 여기서 절단해낸 삶의 숨은 면을 무대에 구현했기에 낯설다는 말이다. 의식보다는 새로운 지각으로 일상적 삶을 반성한 결과이리라. 달리 말하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는 삶 혹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삶과 거리를 두기 위해, 이를 피하기보다는 도리어 이런 삶에 한층 더 깊이 빠져듦으로써 지각한 삶의 실재 풍경을 충실히 가시화한 결과가 외려 낯선 무대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기에 이 무대가 간혹 낯설고 초현실주의적인 뉘앙스를 띤다고 할지라도, 이는 의식이 아니라 새로운 지각을 통해 구현한 왜곡 없는 실재이다. 일상적 감성을 철회하고 대면한 삶의 실재를 발랄하게 형상화하면서 우리의 습관적 삶을 낯설고 역설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젊은 감각이 돋보인다.
최호종 〈야수들〉 ⓒ국립무용단 |
볼레로 음악에 맞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4명의 춤꾼은 각자의 주장만 줄기차게 펴고, 그러다 갈등이 고조되면, 테이블 주위로 흩어져 동물처럼 기고, 앞다투어 테이블에 올라 화난 짐승처럼 울부짖기도 한다. 이때 투명 아크릴 컨테이너가 무대 천장으로 올라가 사라지는데, 그 순간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맞은편 아파트 거실 창문 너머나 영화 필름 속에서가 아니라 마치 내가 속한 공간, 곧 우리 집 거실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실감 나게 다가온다. 재차 테이블 주위에 모인 그들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일제히 테이블을 돌고 자리를 바꿔가면서 끈질기게 제 주장만 펼친다. 그러다 간혹 짝을 이뤄 껴안기도 하던 그들이 마침내 테이블을 옆으로 치워버리고 넷이 함께 부둥켜안으며 한 덩어리로 화합한다. 야수적 본성이 극한으로 치달을 즈음 극적으로 발현되는 인간성이 도드라져 보이는 엔딩 씬이다. 기세가 약한 감이 있는 클라이맥스이지만 메시지는 잘 표현되는 4인무이다. 최호종의 〈야수들〉은 안무와 무대 디자인, 조명과 의상, 그리고 연출의 협업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 우리 내면과 소공동체에 잠재한 폭력성을 유쾌하면서도 재치 있게 드러낸 깔끔한 공연이다.
▶ 다음 호에 계속
최찬열
한국춤과 현대춤, 전통춤과 탈춤을 추었고,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다.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하다가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