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올해의 신작’ 사업은 창작력 증진에 초점을 맞춘 목적 사업이다. 사업의 효율성을 진작할 방안을 춤계가 머리를 맞대고 모색해야 할 것이다. 사업의 결과에 대해 여러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데,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주체는 춤계가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위가 주관하는 사업이라 하지만 춤 작품의 속성과 동향에 대해 전문성을 갖추었다 보기 어려우므로 작품 선정 심사 작업을 춤계의 전문인들에게 일임한다. 그러므로 심사 과정과 내용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말로서, 춤 장르의 특성이 춤 창작력의 이면을 이룬다면 춤 작품 선정 심사 작업 또한 춤 장르의 특성을 반영하는 선에서 다른 장르의 심사 작업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게 옳지 않을까 한다. 즉, ‘올해의 신작’ 사업의 일반적 심사 과정을 굳이 고수할 필요가 있겠는지 주관 기관은 다시 자문할 필요가 있다.
3년 전의 일로서 2019 올해의 신작 사업에 대해 여러 지적이 있었다(〈춤웹진〉 좌담, 2020년 4월호). 당시에 심사위원의 장르 이기주의가 심사를 망친다는 의견이 있었고, 또한 춤 현장의 동향에 어두운 사람이 심사를 어느 정도로 감당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심사 작업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무튼 최근에 들어 이런 지적은 좀 줄어든 편이다. 그것을 개선이라고 쳐야 할지 모르겠으나, 올해의 신작 사업은 보완할 점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이 좌담에서는 창작의 핵심에 다가가고 창의력을 깨우치는 심사 현장의 질문과 소통, 넉넉한 심사 인터뷰 시간, 사업 신청 서류와 전체 심사 결과의 전면 공개, 사후 평가와 내실 있는 관리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리고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을 레퍼토리로 만드는 게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문예위가 경직된 행정 마인드를 벗어나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할 때이다.
2022 올해의 신작을 소개한 팸플릿에서는 출품 단체들이 해당 작품의 창작에 대해 고심한 것을 간파해내기는 어려웠다. 결국은 작품들이 사업을 상징하겠지만, 비록 실패작에 그쳤다 하더라도 고심하는 바에서 더 공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고심하는 바를 춤계의 과제로 공유할 수도 있다. 이렇게 공유하는 것이 주변에 끼칠 파급력을 고려해보기 바란다. 창작의 결과물인 작품에 대해서만 몰입하는 시각보다는 창작의 동기와 과정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계기로서 작품 소개가 따라야 하겠다.
시나브로가슴에 〈태양〉
시나브로가슴에의 〈태양〉(안무: 이재영, 2월 10~1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무대 조명등 수십개를 둥근 모양으로 엮어 무대 앞에 설치한 발상으로써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객석을 압도하는 감을 강하게 조성하였다. 여기서 둥근 모양은 태양을 상징할 터인데, 작품은 일본 희곡 작가(마에카와 도모히로) 원작 〈태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한다. 번안극 〈태양〉은 국내에서 공연된 바 있고 안무자는 그 연극에서 움직임을 담당하였다. 원작 〈태양〉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훨씬 전인 2012년에 발표되었다. 어떤 바이러스로 인해 인구가 급감하고 바이러스 항체를 가진 신인류가 탄생하면서 인류가 신인류와 구인류로 나눠지는 시대가 도래한다. 정치, 경제의 중심을 차지한 신인류이지만 태양 아래에서는 살 수 없으며 어느날 신인류가 살해되면서 마을의 구인류는 봉쇄된다. 10년 후 봉쇄가 풀리면서 서로 교류를 시작한다는데, SF 소재의 연극으로서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서사이다. 사회를 구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인간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자는 동기에서 집필된 희곡으로 국내에서 주목 받은 바 있다.
시나브로가슴에 〈태양〉 ⓒ2022 ArkoCreate/Sang Hoon Ok |
그런데, 이재영의 안무작 〈태양〉에서 연극의 서사는 전혀 찾아지지 않는다. 조명등 즉 태양은 그들을 비추지 않으며 태양 장치 너머의 무대는 흐릿한 암흑의 정경이고 거기서 인간들 간의 관계가 전개된다. 그러다 박성율과 이재영이 응시하거나 서로의 몸을 겹치는 등의 동작이 보이고 이재영의 로봇 같은 동작, 그에 비해 박성율의 좀 자연스런 동작이 눈에 들어오며 두 사람의 밀착과 떨어짐, 마주보기 그리고 서로 손잡기 등의 동작이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안무작 〈태양〉만의 서사를 감지하기는 수월치 않으며 두 사람의 동작 사이에 대조점도 분명찮아 보인다. 더욱이 안무작 〈태양〉이 원작 희곡과 연관이 있다는 소개를 염두에 두고 둘 사이에 과연 관계가 있는지 자문해보면, 태양 형상 조명등이 서서히 부분적으로 위치를 달리하며 켜지다가 나중에는 조명등들 전체가 밝아졌다가 잠시 후 꺼지는 것 이외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더 생각해보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굳이 원작 희곡을 내세울 이유에서부터 공감대가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나브로가슴에 〈태양〉 ⓒ2022 ArkoCreate/Sang Hoon Ok |
노네임소수 〈White〉
노네임소수의 〈White〉(안무: 최영현, 2월 25~2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인간의 감정을 색에다 비유해서 감정의 소용돌이를 묘사하려고 한다. 이전 안무작에서 그는 감정의 극대화된 상태를 그려내는 데 검정을 염두에 두었고 이번에는 하얀색으로 감정의 시작과 끝을, 감정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몸이 작동하는 데 따라 다룬다고 밝혔다. 공연은 마크 로스코의 색면 회화를 연상시키는 붉은 띠 모양의 네온이 가로로 그려진 투명 아크릴 판이 등장하는 부분, 형광등과 하얀색의 크고 작은 입체 구조물들에서 출연자들이 관계를 형성하는 부분, 얇은 투명 비닐막이 공중에서 내려와 휘날리며 어떤 상태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부분의 셋으로 크게 나뉘어 전개된다.
노네임소수 〈White〉 ⓒ2022 ArkoCreate/Sang Hoon Ok |
첫째, 둘째 부분에서 사람들 사이의 친밀감은 찾아볼 수 없으며 무대에서는 강한 긴장감이 감돈다. 붉은 띠가 강렬한 아크릴판이 바닥까지 내려오고 다시 올라갈 사이에 아크릴판 앞뒤로, 또는 그 위에서 남성과 여성이 움직임으로 여러 관계를 보인다. 아마도 감정을 발단시키는 관계를 묘사했을 이 부분에서 출연자들의 움직임과 상호 관계에서 그 맥락을 추정해볼 단서가 뚜렷하지도 않다. 붉은 띠의 아크릴판이 사라지며 전개되는 둘째 부분에서 하얀 구조물이 여러 구도로 조합되고 구조물은 회전되거나 세워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구조물 위로 올라가서 미끄러지거나 서로 당기는 등의 동작을 취하며 사이사이에 광란하는 남자, 탈의하는 여자의 모습이 삽입되어 서로의 관계를 나타낸다. 어떤 대립과 낙오 같은 상태가 지속되다가 사람들은 구조물에서 떨어져 오케스트라 피트로 사라졌다. 출연자들의 배역을 추정해볼 단서가 여기서도 분명치 않다.
노네임소수 〈White〉 ⓒ2022 ArkoCreate/Sang Hoon Ok |
셋째 부분을 보면 허공에서 너울대는 얇은 투명 비닐막에 백색의 조명빛이 투과된다. 한 남자가 그리고 두 남자가 비닐막을 두고 배회하거나 통과하고 또 비닐막이 공중에서 흩날리도록 하며 팬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비닐막이 출렁인다. 마침내 비닐막이 바닥에 깔리며 물결치듯 하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바닥의 비닐막만 흩날린다. 비닐막이 흩날리고 사람이 부재하는 상태를 통해 어떤 감정이 해소되는 종결 상태를 시사하는 것으로 의도되었을 셋째 부분에서 작품의 서사 내용을 확인할 단서를 찾아보려 해도 역시 여의치 않다. 전체 세 부분 사이의 연관 관계마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납득하기 어려워서, 공연을 보는 이는 전달받을 감정, 음미해볼 감정의 시각적 양상이 무엇인지 도무지 초점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것 같다. 단적으로 〈화이트〉에서 감정을 짚어내기란 말 그대로 쉽지 않았으며, 관객의 위치에서 해부, 재검토되어야 할 점이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모든컴퍼니의 〈On the Rock〉(안무: 김모든, 2월3~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암벽타기를 소재로 한다. 암벽타기가 우리들의 신체적 한계에 도전하는 장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여기서는 개개인이 현실에서 부닥치는 구속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수용된다. 무대 정면에 설치된 벽체에는 의자, 테이블, 시계, 소형 벽장 등속이 부착되어 있어 그것이 실내의 벽임을 말해주며 따라서 무대 공간은 일단 실내의 공간이다. 그러다 공연 막바지에 이르러 보름달이 휘영청하니 떠오른 아래에서 갈색조 빛살무늬 조명이 비춰지면 그곳은 옥외 공간의 암벽으로 탈바꿈한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모든컴퍼니/ChadPark |
회색조의 무채색 의상을 걸친 사람들이 한둘씩 등장하여 자기대로 오가며 조용히 배회하는 것으로 공연이 열리며, 아직 벽체는 어둠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한동안의 배회 끝에 날카로운 금속 굉음이 울려퍼지면서 암전된 후 밝아진 현장에서 벽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금속 굉음은 일상을 깨뜨리며 그들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 직면할 것임을 예고하는 편이다. 이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움직임은 몸의 물리적 강도를 최대한 끌어내어 실내 공간 속의 그들이 회피하기 어려운 순간들과 씨름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몇해 전부터 스포츠를 소재로 자기 레퍼토리를 개발해온 김모든다운 열성이 진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라 하겠다. 주로 사람들의 접촉에 의해 이뤄지는 움직임들은 서로에게 안기거나 떠받치는 동작을 기초로 해서 서로 붙잡거나 엉키거나 겹쳐지는 동작들이 여러 품새로 지속되었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모든컴퍼니/ChadPark |
〈온 더 락〉은 운동 움직임을 소재로 하면서 피지컬리티를 움직임의 기본 속성으로 취하는 동시에 움직임을 다양한 모습으로 매끈하게 구현하여 객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움직임을 주시하고 수용하면서 그 순간을 즐기도록 하는 물리적 구성이 돋보인다. 홀로 있거나 한 둘이 있을 때 벽체에서는 부착된 테이블이 불거져 나오기도 하고 바닥에는 날카로운 사선 무늬들의 조명, 탐조등들의 조명이 비춰지는데, 이 모두는 (세상과 개인의) 불안정한 상태를 암시한다. 또한 실내 벽체 오르기를 반복해서 시도하고 무대 중앙에 놓인 구조물과 홀로 고군분투하고 허들 장치를 넘으려는 데서는 험난한 사정이 감지된다. 그러던 중에 두 여성이 서로 엉키는 동작을 하는 중에 현실 속 변화와 영향력을 갈구하는 여자 목소리가 낮게 결들여졌다. 막바지에 사람들은 어둠을 뚫고 벽타기로 벽 너머로 사라지고 보름달만 남는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모든컴퍼니/ChadPark |
공연 전반에 걸쳐, 무대 중앙의 구조물과 고군분투하고 허들을 넘고 서로의 몸들이 엉켜 꿈틀대며 결합하는 모습들 등에서 몸의 물리적 강도에 못지 않게 현실의 장애 또는 트라우마를 헤쳐나가려는 의지가 강하게 환기된다. 반면에, 그런 의지가 객석에 설득력 있게 전달되려면 그런 의지의 맥락 배경이 더 도드라지게 표현될 필요가 있었다. 의자 등 생활비품이 벽에 부착되어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이 들도록 하고 테이블이 불쑥불쑥 들락대면서 앞서 언급한 대로 불안감이 곁들여진다. 이런 순간들이 상당히 짧게 처리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삶의 장애물에 대처한다는 의지에 못지않게 예컨대 불안감 같은 ‘현실의 감춰진 실제 속성’을 훨씬 더 투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즉, 겉으로 보이는 상식적 세상살이와 그 극복의 몸짓에 못지 않게 그 이면을 감정이나 움직임으로 더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작품이 추구하는 장애물 극복 의지와 이런 의지를 일으키고 심화시키는 현실의 내적 실상 사이에 균형이 약했던 때문에, 공연은 집중성과 명료함을 갖춘 한편으로 단조롭다는 느낌을 주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