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이십삼각삼각〉
VR의 강점을 내비치는 형상화 있어야
김채현_춤비평가

게임이나 아바타 기반의 제작물에서 VR(가상현실)은 흔하고 춤과 접목하는 작업이 국내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무용×기술 융합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해 송주원 안무가가 올린 〈20▲△〉이 올해 다시 다듬어져 올려졌다(자유소극장, 2. 24-26.). 전부터 송주원은 2010년대 중반 이래 도시 공간을 장소특정적 방식으로 영상화한 댄스 필름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었고 미디어 무용 제작에 익숙한 안무가이다. 〈이십삼각삼각〉에서 내세워진 키워드는 삶의 고독과 고립이다. 안무자는 20개의 정삼각형이 모여 하나의 구(球)를 이루는 데 착안한 것 같고, 안무자 설명에 따르면 구는 세상을, 삼각은 고독한 개인을 상징한다.

〈이십삼각삼각〉은 브이알로 제작되는 데 머물지 않고 브이알 관람 앞뒤로 다소 특이하게 무대 라이브 공연이 덧붙여지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라이브 공연 관람 – 브이알 관람 – 라이브 공연 관람 순으로 계속 잇달아 진행된 전체는 편의상 1, 2, 3부로 구분해서 거론될 수 있다. 브이알 관람의 진행 사정상 1회 관람객 수는 40명 정도로 제한되었다. 1, 2부에서 1층 관객은 스탠딩 상태로, 자유소극장 2층의 관객은 착석해서 관람하였고, 3부의 후반에서는 모두들 1층 바닥에 놓인 방석에 앉아 관람하였다. 헤드셋을 이용한 브이알 관람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관람 방식에 변화를 주었을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 〈이십삼각삼각〉 ⓒAiden Hwang /국립현대무용단



1부에서 잔잔한 음향이 들리고 포그가 옅게 깔리는 무대에 형광등이 켜진 상태에서 관객들이 딱히 고정된 위치는 아니지만 대개 무대 가운데에 서 있고 형광등 조명은 켜져 있다. 관객 주변을 원을 그리듯이 도는 행동을 주동작으로 해서 예닐곱 명의 남녀 출연자들은 무리를 지어서 혹은 한 둘이서 달리기, 걷기, 넘어지기, 일어나기, 무릎꿇어 앉기, 눕기, 약간의 경련, 누워 두 다리 치켜들기, 오리걸음 걷기, 멈추기 등속의 동작들을 전개한다. 출연진들은 젊은층으로 짐작되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뚜렷하지 않다. 개인 또는 집단이 행하는 동작들 내에서 그리고 전체 동작들 내에서 인과관계가 집히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 음향은 잔잔한 분위기를 여러 차례 바꾸었으며, 전체 분위기가 그렇게 흐를 동안 관객들은 자신의 바로 앞뒤 좌우 주변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각자 나름의 호기심에 따라 두리번거리면서 응시하기 마련이었다.

1부 직후에 흰색 형광 벨트가 부착된 안전 조끼를 덧입은 조력자들이 다수 입장하여 각자 브이알 헤드셋을 관객 머리에 착용해주고 관람을 도와준다. 관객들은 1층에서는 서고 2층에서는 제자리에 착석한 상태이다. 브이알은 관람자가 몸이나 머리를 어느 정도 가볍게 움직이는 동작을 활용하는 동시에 불시에 그런 동작을 자극하기 때문에 관객들 간의 접촉을 예방하고 때로 가벼운 터치로 관람을 돕는 등 조력자는 관객들 주위에서 대기하였다.



국립현대무용단 〈이십삼각삼각〉 ⓒAiden Hwang/국립현대무용단



브이알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전반부는 하얀 의상을 착용한 어느 무용수(출연 공영선)가 서귀포로 짐작되는 해안가의 거대한 화산암벽과 그 주변의 작은 웅덩이 같은 분화구 및 바닷가, 숲을 이동해가며 자기만의 동작에 홀로 몰입하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브이알 관람답게 중간 중간에 관객은 360도 그리고 아래 위로 주변 경관을 선택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숲 장면에서는 웅크려 앉아 정지한 마네킹 같은 인체상들의 실루엣이 진회색의 이미지로 처리된 모습도 잠시 보였다. 어떤 부분에선 아이맥스 영상을 더 가깝게 보는 듯한 실감마저 든다. 여러 장소에서 무용수를 담던 카메라가 그를 쫓아 숲속의 어느 오두막집 나무 대문으로 접근하면 관객은 어떤 조그만 원룸 같은 실내로 빨려 들어가는데, 후반부이다. 부분적으로는 하얀색 물감이 옅게 덧칠해져 회화(繪畵) 같은 느낌이 가미된 원룸의 내부에서는 전자레인지, 냉장고, 싱크대, 전기밥솥, TV, 침대, 붙박이장, 책상 등속이 한눈에 들어온다.

갑작스런 장면 전환에 당황한 정신을 곧 추슬러 헤드셋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천장에 매달린 풍경이 하나 눈에 들어오고 그 풍경 소리가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맑되 썰렁하게 들린다. 원룸 내부 집기들로 미루어 보아 젊은층이 거주하는 방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 적막한 방에서 아무래도 거주자는 아닌 듯한 어떤 침입자 같은 거인의 검정 실루엣도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영상 촬영 각도에 따라 아주 높은 곳에서 저 아래 매우 낮은 곳을 바라보는 체험, 그 방을 벗어나 다른 음침한 공간을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체험 등이 여럿 이어졌다.



국립현대무용단 〈이십삼각삼각〉 ⓒAiden Hwang/국립현대무용단



브이알 관람을 끝내고 헤드셋을 반납한 후, 관객들은 1층으로 모였다. 무대 가장자리에 흩어진 관객들이 출연자들을 에워싸고 서 있는 모습들이지만 관객과 출연자는 뒤섞인 편이다. 여전히 관객은 응시하며, 무용수들은 정지와 이동을 반복하며 동작을 취하고 그러다 관객들을 방석에 앉힌다. 1부에서보다는 몸들이 닿는 집단 동작, 서로 뭉치는 빈도도 늘어난다. 관객들 앞에서 쓰러났다 일어나고 서로 간에 긴장감이 높고 어긋나는 등 고립과 불통의 느낌이 감지된다. 그러다가 대부분 누운 상태에서 일부는 수면에 들은 듯한 기미를 보이며, 일부는 관객들을 데려 나와서 마침내 관객과 출연진 모두 누운 상태가 된다. 형광등 장치가 내려오면서 공연은 끝난다. 이 마지막 부분은 고독으로 자칫 직면할 고립을 헤쳐가는 몸짓인 듯하다.



국립현대무용단 〈이십삼각삼각〉 ⓒAiden Hwang/국립현대무용단



〈이십삼각삼각〉은 라이브 무대와 브이알 관람을 함께 조합하는 구성을 지향하였다. 두 가지를 그렇게 조합할 필요가 있을지 물을 수도 있겠지만, 안무자의 의중은 존중되어야 한다. 브이알을 실감기술이라 지칭하는 것으로 미루어, 라이브 무대에 실감을 더하는 차원에 중점을 두고 브이알이 활용되었다. 무대와 스크린의 통상적인 평면적인 프레임을 탈피하고 관객 스스로 선택하는 프레임을 배가함으로써 관객의 지각에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공연 소개에 따르면, 브이알로 보여지는 원룸 내부 이미지들을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으므로 관객마다 접하는 원룸 이미지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한다. 2층에서 브이알을 관람한 때문인지 몰라도 평자로서는 라이브 무대와 브이알 영상 이미지 간의 연결점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라이브 무대와 브이알 영상이 옴니버스 관계로서 연관된다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둘 사이의 연결은 매우 느슨한 편이다. 다시 말해 브이알 안과 브이알 밖(즉, 라이브 무대) 사이의 앙상블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브리알의 안과 밖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에 놓였다고 판단된다. 마찬가지로, 브이알 안에서도 화산암벽 부분과 원룸 내부 사이의 앙상블이 옅었다. 라이브 무대와 브이알의 큰 부분들 사이에 유기적인 연계성 같은 조화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 〈이십삼각삼각〉 ⓒAiden Hwang /국립현대무용단



브이알 부분에서 전반부에 움직임이 있었지만 브이알 전체에서 브이알 기법으로 상상력 있게 처리된 움직임 또는 춤은 눈에 띄지 않아서 〈이십삼각삼각〉의 브이알과 여느 브이알 간의 차별성은 과연 무엇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썰렁한 원룸 내부 이미지를 라이브 무대에 설정해서 제시하는 것과 브이알 이미지로 제시하는 것은 최종 관람 효과 면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브이알의 원룸 이미지와 제1, 3부를 연관지어 보려고 해도, 그 연관은 앞서 말한 대로 간접적으로 추정되는 선에서 머문 편이다.

〈이십삼각삼각〉에서 두루 감지되는 것은 고독의 이미지들이다. 라이브 무대 1, 3부와 브이알에서 그런 맥락에서의 수용이 가능한 지점들이 있다. 특히 적막한 원룸 내부 이미지에서 고독의 이미지는 어떻게 보면 강렬하게 다가올 만하다. 하지만 평자가 관람한 시각에서 보면 그 이미지들은 약간의 맥락이나 구체성을 결하여 어느 익명의 그/그녀가 겪을 고독의 매우 일반적인 겉모습에 머무는 제한점을 보였다. 더욱이 공연 전체에서 고독의 양상은 상당히 모호하였다. 고독의 양상들을 무대 라이브나 텍스트 위주의 묘사보다 실감나고 감도(感度) 높게 형상화할 수 있는 기법들에서 브이알의 강점이 찾아질 법한데도, 〈이십삼각삼각〉과 그런 기법들은 거리가 멀었다.

단적으로 라이브 무대와 브이알 영상 전반에 걸쳐 〈이십삼각삼각〉은 고독을 피상적으로 처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브이알을 매개로 관객의 (춤 공연) 지각에 과연 유다른 경험이나 감각을 의미 있게 추가하였는지는 크게 재고되어야 할 점이 아닌가 한다. 새로운 매체가 다른 접근과 다른 시각을 재촉하듯이, 브이알의 도입은 있는 서사를 새로운 서사로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차제에 강조하고 싶다. 덧붙여, 20개의 삼각형이 20명의 개인들에 비유되어 작품 표제도 그렇게 설정되었던 데 비하여 정작 내용은 단출하였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3. 3.
사진제공_Aiden Hwang /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