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선명했다.
제작진들이 내세운 콘셉트는 분명했고, 안무가들의 주제의식은 명료했으며, 공연 후의 감흥은 그 여운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아트 앤 테크’ 작업을 표방한 늘휘무용단의 2023 봄 신작 공연 〈Rest.Art ‘Oars’〉(3월 18-19일,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평자 19일 관람)는 시각적, 청각적으로 한 치도 비켜감을 허하지 않을 정도로 몰입도가 컸다.
늘휘무용단 〈Rest.Art ‘Oars’〉 ⓒ늘휘무용단 |
기술과 협업, 새로운 예술표현의 영역 확장을 표방한 기획 공연은, 그 메인이 무용과 영상의 매칭이었다. 그동안 적지 않게 ‘영상과 무용과의 접목’ 시도가 있었지만, 춤의 보조 수단으로 영상이 사용된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에 비해 이 작품은 마치 ‘춤+영상 전시회’를 보는 듯 그 합(合)이 빼어났다. 여기에 음악의 협력 또한 작품의 예술적인 완성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첼로 한 대로, 때로 녹음된 음원과 배합된 live 연주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Rest.Art ‘Oars’〉에서 댄서들의 움직임이 가세한 시각적 비주얼과 청각적 소스(source)의 융합은 마치 한 편의 ‘전시 춤 콘서트’를 보는 듯 강렬했다.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의 무대 구조와 뛰어난 음향 효과도 작품과 잘 어우러졌다. 블랙박스 극장의 특성을 고려한, 제작진들의 공들인 흔적은 작품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되었다.
늘휘무용단 〈Rest.Art ‘Oars’〉 ⓒ늘휘무용단 |
가장 눈에 띈 것은 영상과 조명, 춤과 음악이 함께 맞물린 조합이었다. 영상이 바닥에 투사될 때는 첼로만의 live 연주가, 영상이 전면 스크린에 투사될 때는 미리 녹음된 음악이 live 연주에 덧입혀지는 시도, 무대를 점한 여섯 댄서들의 움직임이 조명의 범위가 좁아지고 영상의 형상과 속도가 바뀌면, 수직과 곡선이 어우러진 형태로 완급을 조절해 변화되는 시도 등이 그런 예이다.
늘휘무용단 〈Rest.Art ‘Oars’〉 ⓒ늘휘무용단 |
전반부에서는 금빛 모래의 이미지로, 후반부에는 찐한 회색 톤으로 대비된 영상은 속도감과 색의 배합이 지나치게 과하지 않으면서, 그 차제로 예술성을 담보한다(영상 기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디지털라이징화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EASThug 제작).
현대음악가 첼리스트 지박의 음악 구성도 빼어났다. 그녀는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안무가들이 표출하고자 했던 인간 삶의 균형, 영상 속에서 읽혀지는 드라마를 첼로의 현과 몸통을 이용한 연주와 인성(人聲), 녹음된 음악을 가미해 시시각각 매칭시켰다.
늘휘무용단 〈Rest.Art ‘Oars’〉 ⓒ늘휘무용단 |
1시간 길이의 공연을 3개의 프레임으로 나눈 안무가(김민지, 최시원)들은 시청각적인 요소들을 다른 네 명 댄서들과 함께 차별화시킨 움직임으로 펼쳐놓았다.
초반부, 전면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이 없어지면서 흑막으로, 무대 바닥 역시 블랙으로 바뀌고 백색의 길이 만들어지면, 이전 댄서들의 느린 움직임은 큰 파동과 한께 속도감을 배가시킨다. 조명에 의해 구획된 삼각형 꼭지점을 점한 댄서의 춤은, 원형의 큰 탑 조명이 만들어지면 2인무로 바뀐다. 느린 팔의 움직임과 빠른 패시지의 음악이 조합되지만, 이 역발상이 만들어내는 무대 위 이미지는 오히려 신선하다.
춤과 음악의 조우는, 반환점을 돌아 여성 보컬의 등장 등 음악이 더욱 다채로워지면, 안무가들은 다섯 명의 무용수를 일렬종대로 서 있도록 해 흐르는 물소리를 더욱 청량하게 부각시킨다. 이때 투사되는 숲 속에서, 무채색의 물이 쉼 없이 흘러내리는 영상은 온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댄서들의 마음을 유추하게 한다.
늘휘무용단 〈Rest.Art ‘Oars’〉 ⓒ늘휘무용단 |
〈Rest.Art ‘Oars’〉는 마치 시노그라퍼(scenographer)가 작품 제작에 붙어 전체적으로 시각적인 것들을 섬세하게 조율한 듯 빼어난 이미지로 채색한 장면들이 적지 않다.
댄서들이 무대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있을 때 화이트 의상의 뮤지션이 점한 블랙 의자의 높이까지도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에 더해 극장 공간 전체를 빛(조명과 영상)으로 채색한 장면, 전면의 스크린과 무대 곳곳에 백색 의상을 걸친 채 서 있는 댄서들의 온 몸에 투사하는 빛의 질감은 빼어났다. 이어진 백색 댄스 플로어 위 무용수들 의상 모두를 화이트 컬러로 채색한 무대와의 대비적인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제작진이 이번 공연을 통해 표방한 ‘쉼을 통한 건강한 방향성 찾기’는 이렇듯 몇 개의 메인 장면이 바뀔 때마다 어느 한 파트만의 변화가 아닌, 영상, 조명, 춤, 음악 등 시청각적인 요소들을 통으로 차별화시키고 매칭시켰다. 그리고 이 적절한 접점 찾기가 바로 이번 공연의 성공 요인이다.
늘휘무용단 〈Rest.Art ‘Oars’〉 ⓒ늘휘무용단 |
댄서들의 움직임은 마치 춤과 음악의 즉흥적인 조합을 보는 듯 편안했다. 두 명 안무가는 댄서들의 두 팔을 활용한 상체와 굴신을 동반한 하체의 움직임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아쉬움도 있었다. 댄서들의 춤은 더 다양하게 변주되었어야 했다. 비주얼이 선명하게 부각된 종반부, 현악기의 끊어지는 튜닝 소리와 live 첼로 연주에 결합된 다섯 댄서들의 춤은 더 다이내믹하게, 무대도 넓게 사용하면서 더 강한 에너지를 분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 작업에서는,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움직임 창출과 더 많은 춤의 언어들이 더 적극적으로 영상과 음악과 소통하길 기대한다.
이번 공연은 늘휘무용단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무용과 타 장르와의 만남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가장 세밀했고, 춤 공연의 영역을 확장한 작업이었다.
장광열
춤비평가.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5년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를 위해 설립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대표, 한국춤정책연구소장, 서울과 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무용과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