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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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익숙한 강강술래는 휘영청 달 밝은 밤, 노래를 부르며 빙빙 도는 원무(圓舞)이다. 선창자가 일상을 담은 가사를 다채롭게 메기면, 단순한 후렴을 다 같이 부르며 빙글빙글 도는 이 춤에는 갖가지 놀이가 동반된다. 거북을 닮은 남생이나 개구리나 들쥐 흉내 내기, 청어(鯖魚)를 줄에 줄줄이 엮기와 풀기, 멍석 말기와 풀기, 지천에 널린 고사리꺾기, 손과 발치기, 기와 밟기, 문 통과하기, 후미 꼬리잡기 따위를 소재로 하는 놀이로, 노래와 더불어 이 땅 민중의 생활감정을 고스란히 안고 있으며, 단순한 윤무를 보다 다양한 형태로 이리저리 변화시키는 구실을 한다.
둥근 달빛 아래의 원무는 세계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 춤의 유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강강술래가 왜군 퇴치를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그보다 오래된 고대 놀이 문화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진 이 원형(圓形)의 춤은 한국 민중의 고달픈 삶을 보다 신명난 삶으로 전환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지난 3월 3-4일 발표된 국립부산국악원무용단(예술감독:정신혜) 정기공연작 〈강강, 맺는 강강 푸는 강강〉은 강강술래와 더불어 한국인의 시간관념을 모티브로 한다. 시간관이란 무엇인가? 음과 양이 만나 세계와 인간의 시간이 시작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 다시 봄을 맞이하는 순환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봄에서 또 다른 봄으로 무수히 이어지는 원형의 시간은 단순 반복이 아니다. 생물체가 성장하고 진화하듯 보다 건강한 삶으로 변화하며 순환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낙천적이고 순환적인 시간관념을 한국 민중의 고달픈 삶을 한 단계 고양된 삶으로 전환시킨 원무 강강술래와 연결 짓는 것이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강강, 맺는 강강 푸는 강강〉 ⓒ국립부산국악원 |
작품은 모두 3장 구성이며, 앞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다. 대극장에 해당하는 연악당 후면에 대형 스크린을 병풍처럼 펼쳐 놓고 있으며, 중앙 턴테이블(회전무대)을 비스듬히 올려 세트처럼 활용한다. 그리고 앞쪽 오케스트라피트에 많은 수의 관현악단을 배치한다. 프롤로그는 스크린 가득 별빛이 쏟아지면서 시작된다. 돌출된 회전무대를 따라 춤꾼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느린 강강술래를 하며 천천히 돈다. 맞잡은 손이 풀어지면, 제각각 자전하며 퇴장하고, 무대에는 주인공 남녀만 남게 된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강강, 맺는 강강 푸는 강강〉 ⓒ국립부산국악원 |
후면에 흰 원과 검은 원이 떠 있다. 방향을 바꾼 회전무대는 나지막한 산비탈 같고, 그 위에 여자 주인공 ‘강’과 남자 주인공 ‘강’이 서 있다. 1장은 음과 양을 상징하는 이들의 이인무로 진행된다. 앉기와 서기, 숙이기와 제치기, 올리기와 내리기와 같이 상반된 동작을 한동안 이어간다. 움직임 패턴이 감기와 풀기로 변화하면서 둘은 하나로 엉키고, 흰 원과 검은 원도 하나가 된다. 음과 양이 만나 세계와 인간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표현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적 발레를 연상시키는 두 남녀의 유려한 나풀거림은 무게감 있는 내용과 부조화를 이루며 속절없이 흘러간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강강, 맺는 강강 푸는 강강〉 ⓒ국립부산국악원 |
단순한 전개를 보인 앞서와 달리, 2장은 네 장면(scene)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봄이다. 스크린 가득 연두와 노랑 빛깔이 넘쳐난다. 강강술래의 한 부분인 남생이놀이 변주곡과 함께 춤이 시작된다. 원래 이 놀이는 빙글빙글 돌다가 몇몇이 원안으로 들어가 남생이를 흉내 내며 흥겹게 노는 것이다. 팔과 다리를 벌려 풀쩍풀쩍 뛰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는데, 남생이를 모방하는 듯하다. 이어 넷씩 손을 잡고 사뿐히 이동하다가, 중앙에 모여 치맛자락을 펼쳐 든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과 함께 촘촘히 디딤새를 박고, 좌우에서 남자들이 등장한다. 별다른 행위 없이 퇴장하면, 움켜진 치맛자락을 뿌린다. 이후 흩어진 여인들은 씨 뿌리기를 연상시키는 몸짓을 반복한다.
두 번째는 여름이다. 무대 전체가 진분홍으로 물들고, 문지기놀이, 꼬리잡기, 덕석몰이가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문지기놀이는 빙빙 돌다가 선두 둘이 손을 올려 문을 만들면, 나머지가 그 아래를 통과하는 것이다. 꼬리잡기는 선두가 후미를 잡아채는 놀이이다. 덕석몰이는 서로 손을 맞잡은 상태에서 한 사람을 중심으로 멍석을 말 듯 똘똘 뭉치는 것이다. 작품은 3가지 놀이를 변주하고, 여자 주인공은 그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놀이하듯 춤춘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강강, 맺는 강강 푸는 강강〉 ⓒ국립부산국악원 |
알록달록 색동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면서 가을이 시작된다. 산비탈처럼 세워진 원형 턴테이블 위에 여자들이 반복적으로 손을 올렸다 내린다. 쌍쌍춤이 주위를 에워싸고, 여자주인공은 그 사이사이를 오간다. 이후 문지기놀이와 청어 엮기가 펼쳐진다. 청어 엮기는 원무 도중에 행하는 놀이로, 맨 앞사람이 둘째와 셋째 사람의 맞잡은 팔 밑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다음 사람도 차례차례 이와 같이 한다. 이때 오른손이 왼쪽 어깨 위에 감기게 되는데, 청어를 엮은 형태가 된다. 즉 어로작업을 모사한 놀이인 것이다.
두 가지 놀이 이후, 여자주인공을 비롯한 다섯이 승강무대에 올라타 제자리 뛰기, 돌기, 치맛자락치기를 반복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절정임을 알리듯 휘몰아치는 음악과 함께 전원 손과 발을 치며 무대 중앙에 모인다. 여름에 이어 가을 장면에서도 여자주인공은 분주하게 다니며 마임조의 춤을 이어간다. 그러나 표현의 내용이 무엇인지 식별하기는 어렵다.
스크린의 색동이 흑백으로 변화하며 겨울을 알린다. 전원 저 멀리 하늘을 응시하고, 기와 밟기를 시작한다.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등을 굽혀 기다란 길을 만들고, 그 위를 걸어가는 것이다. 여자 주인공은 서지 않고, 등이 만든 길을 괴로운 듯 기어간다. 그 여정은 지루하고, 불안하며, 왜 괴로운지 알 길이 없어 공감하기 어렵다. 마침내 등에서 내려온 그녀는 여전히 슬픔에 차 있고, 파도치는 영상과 함께 전원 몸부림친다. 이후 하나 둘 신발을 벗고 무대를 떠나고, 홀로 남은 주인공은 신발을 바라본다. 신발 위로 환한 조명이 비취고, 그 신을 감싸 안는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강강, 맺는 강강 푸는 강강〉 ⓒ국립부산국악원 |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던 음악이 잠잠해지고, 장구 소리가 도드라진다. 3장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봄을 열어 제치는 대목으로 굿거리장단으로 시작한다. 흥겹게 춤추던 여자주인공이 신을 신으면, 하나둘 등장하여 신발을 신는다. 한배가 빠른 자진모리장단으로 변화하고, 전원 껑충껑충 뛰다가 강강술래를 시작한다. 큰 원으로 돌다가 작은 원으로 분화되기도 하고, 일렬을 짓기도 한다. 이 같은 대형 변화는 주로 무대 앞에서 오밀조밀 진행되어 답답함을 준다. 이후 전원 턴테이블 위에 올라선다. 천천히 회전하는 그 위에서 앞서 연희한 여러 놀이를 갈라 쇼처럼 짤막짤막 보여준다. 이후 희열에 찬 그들은 무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 퇴장한다.
회전하던 턴테이블이 다시 멈춰서고, 여자주인공과 함께 남자주인공이 그 위에 선다. 에필로그는 1장과 유사하게 이인무로 시작한다. 둘의 대무가 이어지는 동안, 후면에 떠 있던 원은 두 개가 된다. 이후 휘감아 흐르는 선형과 무수한 원이 스크린을 메우고, 전원 출연하여 자진 강강술래를 하며 끝을 맺는다. 한국인의 순환적 시간관념과 원무 강강술래가 맞닿아있음을 강조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상이 주가 된 전개는 다소간 작위적이라고 하겠다.
신작 〈강강, 맺는 강강 푸는 강강〉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시각적 화려함을 제공한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음악(이정호, 강한뫼 작곡)과 함께 청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같은 시청각적 쾌감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겠다.
우선 강강술래는 여럿이 노래 부르며 빙빙 돌다가 S자 라인을 그려 풀어주고, 다시 중심을 향해 똘똘 뭉쳤다가 푼다. 또 손을 흔들며 줄줄이 문을 통과하기도 하고, 등에 올라타 걷기도 하며, 어로작업을 흉내 내며 줄줄이 엮기도 하고 풀기도 한다. 그러다 힘이 들면 풀썩 주저앉아 손뼉을 치며 각종 모사춤을 구경하기도 하고, 흥이 오르면 함께 추기도 한다. 즉 강강술래는 노래‧춤‧놀이‧노동이 하나로 뒤엉킨 것으로, 이리저리 다채롭게 이어지는 대형과 함께 신바람 나게 놀아 제쳐 삶의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춤, 즉 집단 신명의 춤이다.
강강술래를 소재로 한 작품은 대형 스크린 사용으로 인해 백 스테이지(back stage) 활용이 어렵다. 그리고 중앙 턴테이블을 세트처럼 활용함으로써 대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여지가 많지 않다. 때문에 강강술래의 부분 부분을 파편화하여 화려하게 이미지화하는 것에 주력한다. 이로써 이 춤의 핵심인 대형의 묘미와 집단신명을 환기시키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다음은 작품의 또 다른 소재가 된 순환적 시간관이다. 한국인은 일 년을 24절기로 나누고, 석 달을 단위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구분했다. 그리고 각 계절마다 농사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의례와 놀이와 속신(俗信)이 있었다. 작품의 사계 속에서 전통사회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으며,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계절감 역시 발견하기 어렵다. 영상이 부여하는 화려한 색감이나 음악에 따라 계절 변화를 짐작할 뿐이다. 이로써 봄에서 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순환적이고 낙천적인 시간관념을 공감하기 어려웠으며, 강강술래와의 상관관계 또한 막연하고 피상적으로 다가왔다.
국립부산국악원은 전통의 보존과 더불어, 꾸준히 창작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우수 작품의 레퍼토리화를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선 대중의 호응과 더불어 작품의 내실을 보다 견고히 다질 필요가 있다 하겠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