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김경란류 권번춤 예맥 ‘반월’에 대한 생각
9월에 개최된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2024’(예술감독 이종호)에서 두 편의 전통춤 공연이 있었다. 9월 11일에 올린 ‘한국의 춤 영남무악’과, 9월 13, 14일에 ‘한국의 춤- 유파전 김경란류 권번춤 예맥 반월(半月)’이다. 전통춤 공연은 서울남산국악당과 공동사업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의춤 - 유파전 김경란류 권번춤 예맥 반월(半月)’(이하 ‘반월’)은 서울세계무용축제가 근래 지속하고 있는 전통춤 유파전의 네 번째 무대로, 이전 무대는 작고한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만들었다면, 올해에는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서울교방의 대표 김경란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매년 컨템포러리 춤 작품들과 경향성들을 선보였던 서울세계무용축제에 걸맞게 이번 공연 ‘반월’은 “전통춤의 재창조, 그 최전선을 만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놓았다.
프로그램은 김부경(설향무용단 대표)이 재구성한 〈초무〉, 차명희(춘당김수악전통예술보존회 회장)가 재구성한 〈구음검무〉, 서진주(서진주선무용단 대표)가 재구성한 〈논개별곡〉, 김경란이 재구성한 〈교방굿거리춤〉, 진현실(솟을전통예술원 대표)이 재구성하고 창작한 〈춤49재 : 잠들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김지영(늘춤아카데미 대표)이 재구성한 〈동편 민살풀이(조갑녀제)〉, 김경란이 재구성한 〈서편 민살풀이(장금도제)〉였으며, 서울교방의 춤 동인들이 각 작품에 출연하였다. 모두 재구성했거나 재구성을 넘어 창작한 작품도 있었으니, 이는 현재 서울교방의 작업 흐름이기도 하다.
〈초무〉 ⓒ2024SIDance/옥상훈 |
차명희, 정연희 〈구음검무〉 ⓒ2024SIDance/옥상훈 |
서울교방은 2010년에 단체의 명칭을 정식으로 내놓기 전, 2000년대 중반부터 김경란, 차명희, 정연희, 김미선, 서정숙, 김부경 등이 모여 춤 수련을 했다. 이들은 진주권번의 예인이었던 김수악(1925~2009)의 종목을 중심으로 한영숙(1920~1989)과 최선(1935~ )의 춤들도 추었는데, 이 종목들이 당시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었다. 당시의 전통춤계는 이매방, 강선영, 한영숙, 김숙자 등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예능보유자들의 춤들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즈음 서울교방은 ‘우리춤 神市 6인전’(2010), ‘삼색살풀이전 –삼인향’(2011), ‘2012 서울교방 장고춤콘서트 樂’(2012) 등을 통해 여성 홀춤의 전통춤 종목을 다양하게 확대하기 시작했다.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교방춤 계열의 춤들이 별 감흥없이 반복적으로 추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통춤 공연에서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논개별곡〉 ⓒ2024SIDance/옥상훈 |
춤의 종목뿐만 아니라 전통춤에 대한 태도와 표현방식도 차별적이었다. 이는 서울교방의 대표인 김경란의 춤에 대한 관점들이 반영된 것이었다. 전통춤계에 정형(定型)에 갇힌 민속춤들이 춤꾼의 현장적 즉흥성이나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라고 보았으며, 춤꾼의 표현 욕구나 관객의 감상의 흥미를 가로막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교방 춤꾼들에게 2인무를 독무로, 독무를 군무로 작업하도록 독려했다. 그런 결과 조갑녀의 민살풀이춤을 15명의 군무로 안무한 〈율(律)〉(2018)이나, 김수악의 진주검무를 14명의 군무로 안무한 〈결〉(2021)이 가능했고, 주목을 받았다. 두 작품을 서울교방의 동인인 김지영이 안무했다. 각 춤의 순서와 춤사위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위치와 동선, 인원 등을 재구성하여 독무가 해낼 수 없는 또 다른 미적 성취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열린 작업 방향에 따라 서울교방 춤꾼들의 재구성 작업들이 확대되었고, 이번 ‘반월’ 공연에서 전통춤 재구성의 공연이 가능했던 것이다.
〈춤49재 : 잠들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2024SIDance/옥상훈 |
〈춤49재:잠들지 못하는 영혼들에게〉는 승무의 주요한 장단과 구성을 따랐으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별도로 설정하고, 승무의 여러 형식적인 장치들을 응용한 창작 작품이다. 불교에서 49재는 망자가 다음 생으로 가기 전에 머무는 49일간 겪는 의식이다. 무대 중앙에서 대고를 치며 아직 편안히 잠들지 못한 그들을 북소리로 부르는데, 승무 복장의 춤꾼 5인이 등장했다. 그런데 장삼 위에 각색의 어깨 띠를 둘렀다. 원래 승무에 걸치는 붉은 띠는 승복(僧服)에서 붉은 가사를 대신하는 것인데, 춤꾼들은 자신이 둘렀던 각색의 어깨 띠를 벗어서 한 춤꾼에게 모두 걸쳐놓았다. 마치 각 개인의 회한(悔恨)인 양, 세상사의 업보(業報)인 양 色色의 띠를 걸친 서정숙이 맴돌며 춤추었다. 그리고 다시 등장한 4인 춤꾼들은 어깨에 흰 띠를 두르고 나와 염불장단으로 승무를 춘다. 무념무상인 듯 고요하게 부복하며 춤추다가, 느린타령장단으로 넘어가자 흰 장삼의 춤꾼 진현실과 검은 장삼의 춤꾼 정희선이 2인무를 춘다. 이들의 2인무는 서로 장삼의 한쪽 소매를 잡고 끈질기게 연결된 듯, 마주 보거나 애돌아 감기도 하며, 마치 끊을 수 없는 인연(因緣)을 표현했다. 쌍승무에 관계성을 의미부여한 것이다. 자진타령장단에서 다소 거칠게 잠깐 북을 두드리더니, 굿거리장단에서 6인의 승무가 풀어졌다. 그리고 징소리와 함께 짓소리인듯 음악감독 유인상의 구음으로 회심곡이 짧게 지나가고, 6인의 법고 대목이 시작되었다. 북을 마주보고 치고 돌려서 치고, 대고(大鼓) 세 개를 나란히 연결하더니 잦은 북소리의 반복적인 타고(打鼓)가 이어졌다. 무대 배경에는 여러 사건 현장과 역사적 장면의 사진 컷들이 빠르게 영사되고 춤꾼들이 물러난 후에도 대고의 북면에도 사진 컷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렇게 타고가 끝나는 사이 색색의 어깨띠들을 손에 든 소녀가 등장하여 잠시 시선을 들었다가 목례하며 작품이 끝났다. 진현실 안무자가 잠들지 못하는 영혼을 향해 춤으로 올리는 진혼의 공양이라고 했듯이, 근래 세월호나 산업현장, 이태원 참사 뿐만이 아니라 역사의 여러 현장에서 억울하게 떠나간 이들을 위무하는 춤이었다. 한 편의 굿이었다. 강신무 계열의 굿판이 아니라, 남도씻김굿에서 서서히 진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들며 번져가면서 해원하는 어법과 정조(情調)의 구성이 느껴졌다.
김경란 〈서편 민살풀이(장금도제)〉 ⓒ2024SIDance/옥상훈 |
그리고 조갑녀(1923~2015)의 민살풀이와 장금도(1928~2019)의 민살풀이를 마지막 프로그램에 배치했는데, 서울교방은 이 춤들을 두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학습하였고, 나름의 해석으로 레파토리화 하였다. 김수악의 교방굿거리춤과 함께 권번춤 예맥을 영남과 호남에 걸치고 있는 것이다. 김경란은 이 공연에서 김수악의 교방굿거리춤을 추었는바, 그가 교방굿거리춤의 이수자이지만, 그날은 김경란의 〈교방굿거리춤〉을 추었다.
김경란 〈교방굿거리춤〉 ⓒ2024SIDance/옥상훈 |
김경란의 춤은 장식적 역할보다 자신의 몸과 춤에 집중한다. 공연중 무대 배경에 띠운 구술에서도 그간의 외향적인 활동을 보내고 전통춤을 수련하면서 첫 동기는 몸과 마음의 흐름에 따르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춤은 사색(思索)적이며 구도(求道)적으로 보인다. 그 생각이 춤으로 저절로 배어나올 수밖에 없으니, 춤의 시작은 대개 무표정하다. 하지만 그의 스승 김수악은 수줍고 설레는 마음으로 〈교방굿거리춤〉을 추었다. “금잔디 양지쪽 선경같이 맑은 물 … 봄맞이 가세”의 노래가사처럼 화사하고 사랑스럽게 예인의 멋을 구사하다가 소고를 들고 흥을 불러올 때는 장단을 타고 넘으며 부드럽게 소고를 놀렸다. 하지만 김경란은 묵직하고 은근하게 굿거리춤을 추다가, 소고춤에 마당정신과 해학성을 추가했다고 했다. 소고춤에는 힘이 있고, 병신춤의 한 장면을 넣었다. 그래서 김경란의 〈교방굿거리춤〉에는 김수악과 안채봉과 공옥진과 김경란이 담겨있다. 영남 춤의 기법과 권번 예인의 자세와 멋을 담은 김수악의 춤과, 맛깔난 호남춤을 추다가 나를 내던져 놀아제껴 관객을 내편으로 만들었던 안채봉의 춤과, 꼬방동네 사람들의 깊은 한을 병신춤으로 승화시켰던 공옥진의 춤과, 그리고 몸과 춤에 집중하며 허허롭고 자유롭게 춤추고자 하는 김경란의 춤이 추어졌다. 김수악의 춤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이제는 그이의 〈교방굿거리춤〉이 되었다.
한편 ‘반월’의 공연에는 화려한 제작진들이 동참하였다. 그중 영상은 필자로 하여금 각 춤들에 집중하기에 좀 불편하게 했다. 전통춤은 전통춤 자체로 자기 구조와 전개를 갖고 있으므로, 그 영상의 무늬들은 특별한 연출적 장치가 아니라면 두드러질 필요가 없다. 김경란의 구술을 전달한 대목도 좀더 세심한 연출적 배려가 필요했다. 그리고 근래의 무용 공연들은 음악, 영상, 무대장치, 의상 등이 결합한 총체적인 무대를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춤 공연에는 꼭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약간의 보조적 역할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전통춤은 춤 그대로 자기 구조와 갈등과 전개를 갖고 있는 춤이기 때문이다. 또 춤의 유파나 춤꾼마다 다른 춤의 메소드는 중요한 감상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역설(逆說), 즉 거꾸로 말해서 전통춤이 다른 매체에 너무 길들여지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반월’은 김경란과 서울교방이 현재 전통춤계에 중간 매도지로 펼친 춤판이었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