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4 시댄스는 캐나다, 폴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룩셈부르크, 체코, 호주의 초청작들로 해외 부문 라인업을 선보였다. 올해 초청작들에서는 이즈음 해외에서 회자될 시그너처 혹은 매스터급 무대작들이 띄지 않은 편이었다. 모던댄스 단계를 이미 옛것으로 밀쳐내고 컨템퍼러리댄스가 통상의 무대를 이루는 오늘날의 댄스신에서 시그너처가 대세를 좌우하는 것도 아니다. 한두 편의 시그너처가 가질 힘이 분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외 다수들의 체력도 존중되는 것은 컨템퍼러리의 강점이기도 하다. 컨템퍼러리 무대를 흐르는 역설이자 정신이다. 한편, 여느 해에 비해 시댄스의 규모는 줄었고 단 하루 공연이 많아 관람 일정 맞추기도 수월치 않은 편이었다. 올해 시댄스에서 접한 작품들 가운데 해외작 3편과 국내 신인작 1편을 짚어본다.
Human Body Expression 〈몸〉 ⓒ2024SIDance |
캐나다의 HBE(Human Body Expression) 단체가 올린 〈몸〉(안무 길현아)은 올해 시댄스의 개막작이었다. 〈몸〉은 다음과 같은 명료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소개되었다. “만약 언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언어 없는 소통은 오늘뿐 아니라 인간-인류의 항구적 관심사이자 으레 상상을 자극한다. 그런 면에서 이 공연의 주제는 보편성을 갖는다. 한국과 캐나다의 댄서들이 절반씩 모두 10명으로 구성된 출연진의 움직임은 상체 위주 동작들과 뒤섞이면서 자기들 사이의 소통에 다다르기에 전념하는 모습을 펼쳤다.
Human Body Expression 〈몸〉 ⓒ2024SIDance |
하지만 〈몸〉 공연 내내 소통의 노력들은 멀게만 느껴졌다. 왜 그럴까. 가령 해외 오지에서, 우리 주변의 다문화 현장에서, 심지어 젖먹이와 있을 적에 언어가 쓸모없어지는 경험들은 흔하다. 그런 경우에 손짓 발짓 등속의 몸언어(그리고 태도, 표정)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또 그런 경우에 우리가 춤언어로 소통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는가. 공연작 〈몸〉에서 언어를 대신한 것은 춤언어였다. 춤언어의 고유한 역할과 가치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즉 언어가 사라진 일상 속에서 춤언어가 몸언어를 대신하는 경우는 희소하다. 공연작 〈몸〉을 주도한 것은 춤언어였고 몸언어는 간과되거나 소홀히 다뤄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로 인하여 “만약 언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라는 주제 의식은 현실감이 떨어졌고 춤언어 속의 그 열띤 움직임들도 도무지 무슨 드라마를 펼치려는 것인지 공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생경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공연이 시종일관 막연해서 곤혹스러웠다고나 할까. 다시 말해 춤언어의 제한은 물론 춤언어만으로 전달되는 추상성으로 인해 객석과의 소통-공감도가 낮았던 〈몸〉은 예컨대 일상의 몸언어를 안무의 윤활유로 십분 활용하는 것을 일순위로 고려해볼 일이었다.
사라 발칭어 & 이사야 윌슨 〈거대 구조〉 ⓒ2024SIDance |
이번 시댄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거대 구조〉(Megastruture)는 룩셈부르크의 사라 발칭어와 이사야 윌슨의 남녀 2인무이다. 제목과는 달리 무대에서는 거대 구조물이 부재하고 반주 음향과 음악도 조명 조작도 없이 그저 흰 조명 아래 두 사람은 캐주얼 차림에 하얀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고 공연 시간도 25분 정도로 길지 않다. 춤무대치고는 두 사람의 몸 말고는 많은 것이 결핍되고 비워진 이 현장에다 붙인 타이틀이 거대 구조라니 반어법적 위트가 도드라진다. 중도에 서너 차례 나눠지는 가벼운 입맞춤에서는 그 두 남녀가 어느 절친한 관계 속에 있음이 감지된다. 그것을 연인 관계라 해도 무방할까. 극한의 몸놀림을 시시때때로 동반하는 그들의 엉킴으로 미루어 그것은 연인 관계라 불릴 만큼 원만한 것일까.
사라 발칭어 & 이사야 윌슨 〈거대 구조〉 ⓒ2024SIDance |
일상(실제 현실)에서건 무대(가상 현실)에서건 몸과 몸의 엉킴은 언제나 예사롭지 않고 느낌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거대 구조〉에서는 단출한 엉킴이 아니라 무릎꿇어 걷기, 무릎꿇어 뒤로 눕기, 사지 구부리기의 동작과 몸짓, 상대방에게 매달리기와 같은 유별난 동작들과 더불어 두 사람이 뒤엉키는 순간들이 연속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지하거나 걷는 휴지부가 삽입되긴 하지만 무슨 순간이 이어질지는 두 사람만이 알고 있다. 두 사람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게 힘겹다 할 움직임들의 모양을 교체해가면서 둘이서 마치 연체동물인 양 한 몸을 이루다가 곧 두 몸으로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상대방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주시한다. 상대를 의식(해야)하는 긴장감은 그 같은 몸과 움직임의 양상으로 표출되며, 실제 연인들의 실존적 고초(苦楚)는 과장되게 말해 그러함 직하다. 타인에겐 사소할지언정 당사자에게 이 관계는 거대한 구조(메가스트럭처)이다.
사라 발칭어 & 이사야 윌슨 〈거대 구조〉 ⓒ2024SIDance |
〈메가스트럭처〉는 어느 연인의 고백록이다, 도저히 요약 단정할 수 없는. 움직임에서 이미 젠더를 초월하여 갈등의 소지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무의미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구축과 해체를 번갈으면서 갈등과 결합이 요원한 그런 것으로 시종한다. 그럼에도 갈등의 늪이 연속되는 것은 생명의 의지와 의욕을 긍정하는 때문이겠다. 정교함을 능가하는 주도면밀함에서 엿보이는 내공이 상당하고 철저한 계산이 내면을 관통하는 리듬감을 뒷받침한다. 짧다면 짧다 할 동안의 묘사가 짧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고, 어느 커플의 복잡한 이면을 계속 상상토록 유도하는 은유의 역할을 보게 된다. 한 마디로 독특하다. 공연 막바지에도 커플은 객석을 빤히 정시하는데, 마치 당신의 메가스트럭처가 여기에 있다고 아르켜주는 듯하다. 〈거대구조〉에서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 안무는 냉철한 면이 두드러져서 도리어 그 어느 연인을 향해 연민을 돌이키도록 한다.
가브리엘 마룰로 〈벌집〉 ⓒ2024SIDance |
이탈리아의 가브리엘 마룰로는 〈벌집〉에서 생태학적 접근을 제시하였다. 대여섯 명의 남녀 무용수를 통해 생물종의 위기를 경고하는 이 공연은 테크닉 바탕의 움직임보다는 몸 전신으로 서사를 전개하는 면모를 보였다. 소매틱적 시각에서 주축을 이루는 몸의 동태는 현란함과는 거리를 두고서 서사를 성찰하도록 한다. 검정 휘장에 감싸인 커다란 큐브 형태의 철구조물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어떤 서광을 찾아 어두운 무대를 집단적으로 배회하는 양상을 보인다. 종지부에 이르러 자주, 연두, 남색, 금색의 기다란 천들과 함께 집단은 우주와 합일을 이루며 빛을 찾은 듯하다. 안무자의 진실성이 다가오는 대목이다. 미켈란젤로의 그림 〈성가족〉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소갯말처럼 공연 분위기는 일종의 성스러운 염원을 저변에 깔았고 출연진들의 누드는 표현 매체로서 나름의 타당성을 갖는다. 음향 및 소품과 일체화를 이루는 분위기에서 오페라적 발상이 감지된다. 전반적으로 올드패션한 구성 감각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는데, 굳이 오페라적 발상이나 소매틱적 시각 때문은 아닐 듯하다. 소매틱적 시각이 깊이를 갖고 몸의 원초적인 면을 활성화시키는 데 강점이 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될 것이다. 말하자면 소매틱적 시각이 그러한 감각을 시대 감성과 어울리도록 업그레이드시킬 방도를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공연이다.
임희종 〈도깨비 꿈터〉 ⓒ2024SIDance |
올해 시댄스에서 국내작으로서 이채를 띠었던 것으로는 임희종의 〈도깨비 꿈터〉가 꼽힐 것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상업화가 진전되면서 한양 도성에 사람들이 밀려들자 덩달아 도깨비도 늘어났다는 일화에서 착안하여 〈도깨비 꿈터〉는 오늘 이 시기 한국 도시를 배경으로 청년 도깨비들을 등장시킨다. 공연은 서울 남산한옥마을 구내의 남산국악당 잔디밭에서 진행되었으며, 잔디밭 여기저기에 미리 배치된 항아리들 속의 태블릿에서 공연 관련 디지털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 영상들은 ‘멀티태스킹’ ‘식비를 아끼는 법’ ‘여름 나는 법’ ‘숨막힘’ 등 오늘 청년들이 사회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강박 관념들을 자신들의 몸짓으로 풀어내었으며 30분 남짓의 공연도 이런 기조에 따라 전개되었다. 오늘의 그 도깨비들은 검정색 고쟁이 바지에다 검정색 셔츠를 걸치고 검정색 안대를 뒤집어쓰고 나타나 그들대로의 어울림을 30분 남짓 한바탕 벌이고 사라진다. 남산국악당 잔디밭이 쾌적한 분위기였을지라도 도깨비들의 어울림이 즐거움을 자제한 것은 오늘의 청년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옥외 환경을 춤과 접목시켜 오늘의 청년 문제를 환기한 점에서 〈도깨비 꿈터〉는 주목할 만하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