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노네임소수의 작품 〈화이트〉(WHITE)(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2. 25. 관람)는 사라짐으로 완결되는 하얀 백지 같은 무(無)의 상태를 표방하는 것 같으나 이마저도 확신할 수 없다. 2020년도 공연예술창작산실에서 선보였던 〈블랙〉(BLACK)이 침묵 속에 짓눌린 처절한 감정의 민낯을 파헤친 작품이라면, 2022년도 신작 〈화이트〉는 의도적으로 감정을 배제한 채 소멸하는 몸으로 귀결된다. 전작 〈블랙〉이 쉽사리 드러낼 수 없었던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들이 댄서들의 몸과 빛의 명암과 오브제의 절묘한 융합으로 조명되어 강한 울림을 주었다면, 본 작품은 유사한 패턴을 구사하지만 감정의 표면과 정서적 무게는 한 꺼풀 가려진다. 오히려 감정 표현은 절제되어 물리적인 몸의 상태로 대체되고, 폭력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던져진 신체 이미지들만 병렬적으로 제시된다. 전작이 상승곡선으로 감정에 가속도가 붙어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면, 본 공연 80여분의 시간은 극한의 고지에서 하강곡선을 긋는 상태로 펼쳐진다. 이것이 안무가 최영현 방식의 사라짐의 미학이 구현된 것임직 하겠으나, 비어내고 지워 보려는 신(scene)들만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큰 흐름은 추상적이나 때론 구체적이고 서정적 설정이어서 여러 결이 충돌하는 전체 분위기에 내적으로 공감하며 관람하기가 다소 쉽지 않았다.
노네임소수 〈WHITE〉 ⓒ옥상훈/노네임소수 |
작품은 투명한 아크릴 필름, 거대한 사각 덩어리 박스, 대형 비닐 오브제와의 관계 중심으로 의미가 생성된다. 무대 중앙 붉은 형광 조명 아래 투명한 필름에 짓눌린 댄서의 등판, 근육, 힘줄, 뼈 같은 부위가 강조되며, 마치 프란시스 베이컨의 고통 받는 인간을 은유한 고기(살) 덩어리 그림이 연상된다. 필름 안에 생경하게 전시된 육체는 긴장된 정서(감정)를 우회적으로 응축시켜 놓은 장면으로 강렬하다. 이어 한 댄서가 누운 댄서들의 발바닥을 딛고 중심을 잡는다. 그들을 짓밟고 서야 힘을 지탱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대상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내 버티다 무리 속으로 고꾸라진다. 여성 댄서도 협소하고 제한적인 필름 공간에서 허우적대며 올라가다 미끄러지길 반복하며 몸부림을 친다. 이외에도 여러 신들의 맥락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무대 표면과 동떨어진 투명한 필름 속 고립된 공간에서 위험에 직면한 대상들로 관찰된다.
노네임소수 〈WHITE〉 ⓒ옥상훈/노네임소수 |
이어지는 직사각형의 거대한 하얀 박스가 무대 중앙에 옮겨지는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은유하는 장치로 감지된다. 박스를 둘러싼 개개 댄서들의 몸짓은 거칠고 냉담하게 에너지가 소요된다. 마치 저마다 다른 폭력의 기억이 담긴 저장고 같다는 인상이다. 여러 신이 펼쳐지나, 형광등을 이용해 박스를 분리해 감정을 분리시켜 보려 하고, 박스에 눌린 몸을 버텨보려 하나 쉽지 않다.(전작과 표현이 유사하나 강도가 약화된 느낌이다.) 또한 무대 한켠에 모인 남성 무리는 바지를 벗고 반대편 여성은 성적 폭력을 암시하는 신이 그나마 선명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구체성보다는 때론 발작과 경련을 오가는 동작들로 산발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 불특정한 여러 장면이 중첩되어 갈 즈음 올가미 같은 박스 위에서 댄서가 추락한다. 죽음만이 일련의 장면들에서 보인 감정의 무게를 떨쳐낼 마지막 선택지일까? 한계선을 침범 당한 인간의 최후인가 싶다가도, 맥락 없이 벌어진 급작스런 선택이 당혹스러워 그들의 추락에(혹은 죽음에) 동감하기 어렵다.
노네임소수 〈WHITE〉 ⓒ옥상훈/노네임소수 |
무대는 다시 고요해지며 큰 비닐을 활용하여 서정적인 결로 이미지가 변화된다. 죽음(추락) 후 찾아오는 평화 같기도 하고, 파도의 형상일 수도, 토네이도의 흔적일 수도, 다 비워진 하얀 화이트의 상태이자 실체일지도 모르겠다. 비닐이 흔들리며 내는 볼륨 있는 형태감에 사각사각 예민하게 비닐이 스치는 소리와 음악적 결이 공명하며 관객의 상상과 맞닿을 수 있는 장치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앞 장면에서 급 전회 한 탓인지 시적이며 구도적이기도 한 비닐 신은 상투적으로 길게 느껴지며 강력한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노네임소수 〈WHITE〉 ⓒ옥상훈/노네임소수 |
전작 〈블랙〉이 관심작이라 이를 뛰어넘는 속편을 기대했고, 신작과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신작은 안무자가 개별적인 인간 감정 표현에 거리를 두어 다루었다 해도 전작보다 극한의 표현이 덜 구체적이고, 빛의 구성도 초반 이외에는 댄서의 심리적 상황과 몸을 왜곡되게 환기시킨 부분도 희미하다. 오브제로 활용된 장치와 댄서와의 관계성도 인과성이 단단하지 않다. 다져진 댄서들의 균형 감각에 기초한 춤과 퍼포먼스도 이웃의 고통보다는 익명의 타자로만 인식된다. 다시 말해, 무대의 사건과 이미지가 나랑은 무관한 이야기로 보인다는 말이다. 〈화이트〉는 너와 나의 감정으로 연민으로 동질감을 느끼기 힘든 무미건조한 무대였다. 대부분의 신 구성도 되풀이되고 내용도 불분명하여 이 작품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봐도 무척 참담한 작품이다.
굳이 찾아본다면, 전작에 비해 무대 공간 탐색 부분은 지루하지 않았다. 무대 바닥과 천장 사이 공간을 재인식하는 활동반경이 그것으로 장치와 댄서들 몸의 관계성을 통해 확장된 점이 눈에 띈다. 거대한 박스에 몸을 묶고 포물선을 그으며 동작을 수행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감정의 밀도보다는 생경하고 갑작스럽게 제어할 수 없는 상황 표현이 전작과는 차별성이 있는 부분이긴 하다. 그럼에도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면 〈블랙〉 작품과 거리가 멀지 않아 실망스런 인상마저 지울 수 없다.
노네임소수 〈WHITE〉 ⓒ옥상훈/노네임소수 |
최영현 안무자는 의식을 비워내고 몸이 사라진 상태가 ‘화이트’의 상태라 여긴 듯하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더러 있었지만, 작품은 전반적으로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이미지들이 부유한 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인상이다. 따라서 관객 스스로 선택하고 배열하여 의미를 찾아 숙제 하듯 작품을 힘들게 관람하였다. 흔히 컨템퍼러리 작품은 관객이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창작자들은 말하지만, 그렇다 해도 작품을 꿰어맞출 어느 정도의 근거와 맥락이 제시되어야 관객도 해석할 동력이 생길 것이다.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의 간과하지 못할 취약점이다. 그래야 죽음으로 내몰린 처절한 상황에 공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노네임소수만의 순도 높은 표현으로 구현한 퍼포먼스로 말이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