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차세대열전에서 선보인 배효섭의 〈외계인간〉(12.11. 서강대메리홀)은 무용수의 체력이 소진되기 직전까지 견디는 과정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노동의 운동성과도 결이 다르고, 기존의 에너지를 다루는 감각과도 차별이 있는, 본능적인 의지와 결부된 필사적인 운동성으로 난무한 날 것의 작업 방식이 신선했다. 애써 생각을 포장하지 않는 직관적인 표현과 집요하게 몸을 던지는 우직함으로 배효섭은 60분 동안 집중력 있는 전개를 보여주었다.
배효섭 〈외계인간〉 ⓒ김동환 |
무대바닥에는 흙이 가득 깔려있고 건초들이 널려 있으며 손전등 이외에는 어떤 빛도 장치도 없는 문명과는 먼 분위기이다. 드럼소리와 전자음의 긴박감과는 다른 속도로 무대를 배회하는 원시인(외계인간?)에 가까워 보이는 댄서들의 호흡이 대조를 이룬다. 플라톤의 〈향연〉 중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에 등장한 괴기한 인간의 형상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안무가의 작품노트를 참고해 보면 전반부의 전개가 이해된다. 두 개의 머리에 네 다리를 가진 한 몸의 인간은 신에게 도전할 만큼 강한 힘을 가졌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제우스가 그들의 몸을 둘로 갈라놓는 이야기가 묘사된다. 마치 직립보행 이전의 생명체로 보이는 이현석과 배효섭은 점차 두 발과 두 손을 가진 모습으로 분리되어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모방하는 모양새이다. 먹이를 찾는 건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건지, 땅을 탐색하다가도 서로가 힘을 과시하려는 본성을 불쑥 드러낸다. 어깨를 맞대어 싸우는 행동이 그것으로 하나의 몸뚱이였던 원형으로 복귀하려는 욕구를 가감 없이 표현한다.
실제 작품은 플라톤의 〈향연〉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에로스의 표면적인 외형만 취했을 뿐, 깊숙하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힘이 센 존재가 되기 위해(한 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방점을 두었다. 한 눈에도 땅을 일구는 동물 같기도 하고, 자기 영역을 지켜내려는 수컷의 힘겨루기로 점철되는 전반부는 강인해 지기 위한 생명체들의 자기 보존 본능의 움직임이 포진되어 있다.
배효섭 〈외계인간〉 ⓒ김동환 |
장면전환,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인 흰 셔츠에 블랙 팬츠를 입은 댄서들은 과도한 욕구를 채워가는 사람들로 보인다. 셔츠가 터질 정도로 건초를 빵빵하게 채워 넣는 행위로, 왈츠 곡에 맞춰 과장된 포즈로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연기로 탐미를 추앙한다. 메탈음악에 촉각적으로 반응하며 리듬을 즐기다가도 이내 대립하는 양상으로 전반부와 유사하게 인간의 본성을 전시한다. 따라서 욕망을 성취한 자들의 자축방식이 의도된 부자연스러움으로 고되게 비춰진다.
배효섭 〈외계인간〉 ⓒ김동환 |
후반부는 흙을 파고 길을 내어 물을 댄다. 미끄러운 비눗물 장치를 이용해 댄서들이 제대로 설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다. 댄서들은 서로를 붙잡으려 하나 미끄러지고, 온전히 서려 하나 제대로 설 수 없다. 두 댄서의 집요한 시도에도 하염없이 넘어지며 에너지가 소진되는 무한 반복된 행위로 수행하는 댄서나 지켜보는 모두가 힘이 든다. 한계치에 다다른 댄서는 쓰러지고 무대는 격한 호흡만이 진동한다. 흡사 노동의 강도를 넘어선 몸의 한계치에 다다르기까지 달려보는 투쟁에 가깝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사력을 다한 필사적인 몸짓은 거칠지만 어떤 미사여구보다 강렬한 의지를 표명하는 춤으로 구체화된다.
배효섭 〈외계인간〉 ⓒ김동환 |
배효섭의 〈외계인간〉은 안무가의 작업 노트 내용과의 연관성도 헐겁고, 특별한 형식이나 해석을 양산할 장면도 풍성하지 않다. 그럼에도 작품에서 주지되는 점은 신화적 욕망을 보편적인 힘의 논리로 수렴하여 오직 몸으로 부딪쳐 설득력 있게 관철시킨 점이다. 판타지를 빌어 본능적인 힘(욕망)을 다루었고, 힘을 과시하려는 인간 속내를 들여다보려 했으며, 생존하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발휘하는 ‘힘쓰기 전략’으로 배열하여 구사했다. 따라서 관객은 작품의 저변을 관통하는 물리적인 힘의 강도와 정신적인 힘의 균형에 따른 경쟁적 속성이 대조되는 장면마다 집중할 수 있었다. 더불어 우직할 정도로 반복되는 몸짓(넘어지고 일어서기)은 숭고한 이상을 향한 도전정신이 아니라, 오직 살아가기 위해 버텨내는 오늘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의미를 생성한다.
의도된 미학적 기호나 안무가 아니더라도, 기존의 교육된 테크닉을 구사하지 않고도, 초인적인 힘을 쓰며 ‘버티고’ ‘대립하고’ ‘지탱하는’ 역동적인 신체의 행위만으로도 말보다 어떤 것 보다 강력한 삶(춤)의 의지를 품어내었다.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되고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새어 나는 소리만으로도 환기되는 생동적인 몸과의 마주함이랄까.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