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국악원 〈공감시대〉 조인호 ‧ 김원영 ‧ 한정미
한국춤의 동시대성을 견인하는 춤판
최찬열_춤비평가

최근 1, 2년 동안 한국춤 씬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꽤 거세다. 50세를 넘기지 않은 중견 안무가들과 30대 초중반, 혹은 20대 후반의 젊은 안무가들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들은 변화의 지향점을 한국춤에 동시대성과 새로운 몸짓 감각을 입히는 데 두고 있는 듯하다. 잘 알다시피 근래 국립무용단과 서울시무용단 그리고 경기도무용단 등 여러 공공무용단에서는 이 같은 과업을 이루기 위해 한국춤 씬 바깥의 젊은 현대춤 안무가들에게 힘을 빌렸다. 하지만 이와 달리, 그러니까 한국춤을 기반으로 한 공공무용단들이 젊은한국춤 안무가들을 외면한 데 반해, 전통춤과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국립국악원과 남산국악당에서는 이들을 대거 초청해 한국춤의 동시대성을 추동하는 춤판을 열었다. 새로운 감각이 돋보이는 이들의 공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이 작품 중 남산국악당의 기획 공연 〈단장〉(10월 22일, 서울남산국악당)에 참여한 이이슬과 최종인, 그리고 국립국악원이 준비해 갖춘 〈공감시대〉(10월 18~20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 초청된 한정미와 조인호 그리고 김주빈과 백진주, 김원영 등의 공연이 주목받았는데, 특히 한정미와 조인호, 김주빈 그리고 김원영의 작품으로 꾸려진 〈공감시대〉의 두 번째 날(10월 19) 공연은 최근 한국춤의 변화 양상과 동시대성을 눈에 띄도록 드러내어 보인 상징적인 무대였다.


보이기만을 위한 춤과 동시대 춤

춤 단체 우보만리의 대표 조인호의 최근 춤 길 행보는 예사롭지 않다. 지난 9월 제25회 세계무용축제에서 노동을 주제화한 진지한 공연으로 춤 보는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던 조인호는, 불과 한 달 뒤 〈공감시대〉 무대에서 신작 〈오직 나의 이름으로〉을 선보인다. 전작이 오롯이 춤으로만 주제를 형상화한 공연이라면, 이번 공연에서 조인호는 자신의 춤 행위와 춤추는 몸을 꼼꼼하고 차분하게 살피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곧 이번 공연 〈오직 나의 이름으로〉는 춤과 춤추는 몸에 대한 반성적 사유가 도드라진 공연이었다.






조인호 〈오직 나의 이름으로〉 ⓒ국립국악원




세 명의 출연자가 다소곳하게 걸어 나와 삼각형 모양으로 퍼져 무대 바닥에 앉으면서 공연은 시작된다. 무대 중앙에는 검은 두루마기 차림에 부채를 든 조인호가 앉고, 무대 하수 뒤쪽에는 소복 차림에 생황을 든 연주자가 앉는다, 또 무대 상수 뒤쪽에는 구식 양복을 입고 장고를 든 퍼포머가 앉는다. 이들은 모두 객석 쪽으로 등을 두고 있다. 생황이 나지막이 아리랑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하면, 춤꾼이 살그머니 일어나 춤으로 이에 화답한다. 살포시 발은 내딛고 지그시 팔을 들어 올리는 등 단순하고 단조로운 한국춤 동작을 구사할 뿐이지만, 정갈하면서도 멋들어진 춤꾼의 춤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지화자 좋네, 지화자 좋아’ 구수한 노래와 장구가락이 가세하면서 춤은 경쾌해지고, 이윽고 음악이 자진모리장단으로 넘어가면, 춤은 더 활발해지면서 흥과 신명을 더한다. 그러다 불현듯 음악이 멎고, 춤꾼도 추던 춤을 멈춘다. 그들은 꼼작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난 듯 보인다. 한동안 무대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그렇게 정지 동작으로 있던 세 출연자는 입고 있는 외투, 곧 두루마기와 소복 그리고 구식 양복을 벗는다. 그리고 이것을 깔끔하게 포개어 접는다. 마치 작심을 하고 옛것과 작별하듯, 이들의 행위는 다소 근엄하고 경건하다. 그리고 각자 지니고 있던 악기와 부채도, 갠 의상과 함께 무대 중앙에 놓는다.




조인호 〈오직 나의 이름으로〉 ⓒ국립국악원




출연자는 이제 모두 검은 일상복 차림새이다. 그리고 춤꾼은 보이기만을 위한 춤을 추지 않겠다고 다짐한 양 더 이상 한국춤을 추지 않는다. 그 대신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연주자가 무대 중앙에 앉아 생황을 불고, 두 명의 퍼포머는 무대 양쪽에 각각 나뉘어 서서 무대 밖을 응시하고 있다. 이들은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내민 채 무대 바깥을 향해 ‘음음’ ‘아아’ 소리를 내며 신음한다. 몸에 새겨진 과거의 흔적을 고통스럽게 지워내는 듯하다. 그리고 한 명의 퍼포머가 대사하기 시작한다. ‘나는 새끼손가락’ ‘나는 손’ ‘나는 손바닥’, 한 문장으로 된 대사를 계속 읊조리면서 퍼포머는 손가락을 펴고, 손바닥을 바라보며, 팔을 길게 뻗어 들어 올린다. 또 ‘나는 한걸음’ ‘나는 팔’이라고 말하며 걸음을 내딛고 두 팔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자기 몸과 움직임을 찬찬히 살펴보는 성찰의 퍼포먼스로 보인다. 그러다 그들은 무대 바닥에 새겨진 크고 둥근 조명 빛 둘레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고, 뛰기 시작한다. 멋들어진 한국춤은 온데간데없고 자기 몸을 느끼고 살피는 행위에 수반되는 퍼포먼스만 펼쳐질 뿐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무대 중앙에 놓여 있던 춤 의상과 반주 악기를 무대 뒤로 치워버린다. 보이기만을 위한 춤은 더 이상 추지 않겠다고 결단한 것이리라.






조인호 〈오직 나의 이름으로〉 ⓒ국립국악원




그리고 무대 중앙에 선 퍼포머들은 비슷한 대사와 퍼포먼스를 이어간다. ‘나의 눈은 두 개’ ‘나의 귀는 두 개’ ‘나의 심장은 하나’ 그리고 ‘나의 팔은 두 개지만 때로는 4개가 된다’고 말하며, 두 퍼포머의 몸은 겹치고 서로 기대며, 또 교차한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생황 소리에 맞추어 느리게 진행되던 퍼포먼스는 조인호의 웃음 띤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끝난다. 어떤 깨달음이 있은 듯한 다소 냉소적인 웃음이다.




 

조인호 〈오직 나의 이름으로〉 ⓒ국립국악원




조인호는 탐색 중인 듯하다. 새로운 춤 길을 찾아 나선 그의 춤 여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이번 공연에서 그가 보여준 바에 따르면, 한국춤의 동시대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는 동시대 젊은 한국춤 안무가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으로 보인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조금도 다름이 없기에, 조인호는, 그리고 젊은 안무가들은 기존의 구태의연한 춤 창작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는 말이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조인호의 〈오직 나의 이름으로〉은 연주자와 배우, 그리고 춤꾼이 다 함께 공연 행위에 참여하면서 춤과 퍼포먼스, 대사와 노래 등을 적절하게 섞어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미장센을 구축한 문제적 공연이었다.


철학하는 춤

알티밋무용단의 제2회 정기공연 무대에 올랐던 〈Am o te, am a me〉(아모 테 아마 메)에서 정신분석학의 나르시시즘적 자아의 무의식을 강렬하면서도 표현적인 몸짓 언어로 탐구했던 김원영이 이번 공연 〈생멸(生滅)의 관찰〉에서도 묵직한 철학적 주제를 섬세한 춤으로 진지하게 형상화했다. ‘땡그랑’ 검은 옷을 입고 무대 중앙에 서 있는 퍼포머가 놋그릇을 쳐 소리를 울린다. 모든 이의 시선과 관심을 한 곳으로 집중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는 놋그릇을 들고 천천히 무대 중앙을 돌아 뒤쪽으로 간다. 그리고 김원영이 신문지 더미를 한 손에 받쳐 들고 조용하게 등장한다. 그는 무대 바닥 정중앙에서부터 신문지를 한 장 한 장 깔기 시작한다. 신문에는 세상 사람의 일상과 삶이 모두 담겨 있다. 그러기에 하나하나 차례로 바닥에 깔리는 신문지처럼 세상 사람의 하루하루도 버려지듯 지나가는 것이리라. 또 신문에 난 기사가 언제나 별반 차이가 없듯, 우리의 일상도 변화가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감정의 기복이 없이 무관심하고 예사롭게 신문지를 깔고 있는 김원영의 모습은 차이 없이 반복되는 삶을 따분하게 사는 세상 사람과 같아 보인다. 우리의 일상 삶은 언제나 그렇게 의미 없이 흘러갈 것이다. 구슬픈 구음과 무덤덤하게 퉁퉁 튕기는 듯한 거문고 가락이 이러한 분위기를 한층 강화한다.






김원영 〈생멸(生滅)의 관찰〉 ⓒ국립국악원




그 사이 하수 뒤쪽으로 여성 춤꾼이 서서히 등장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다가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기도 한다. 그리고 신문지가 깔려 형성된 큰 원 안으로 차분히 걸어 들어온 그녀는 무대 중앙에서 김원영과 마주 보고 앉는다. 신문지가 깔려 형성된 둥근 원은 우리의 일상적 삶을 규정하는 틀로 보인다. 그 안에서 둘은 두 팔을 모아들며 무대 천장을 바라보고, 한 손을 가슴에 얹은 채, 다른 한 손을 사선 방향으로 곧게 뻗으며, 무심히 손끝을 바라보기도 한다. 손으로 바닥을 훑다가 급하게 거둬들이고, 주먹 쥔 두 손을 마치 벽돌을 쌓듯, 차례로 쌓아 올리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엎드려 몸통을 틀며 두 손으로 질서정연하게 놓인 신문지를 흐트러뜨린다. 둘은 앉은 채 서로 기대고, 상대의 두 팔을 잡고 당기다가, 또 각자의 춤을 추는데, 호흡이 실린 춤은 유려하고 고요하게 흐르다가 급격하게 꺾이기를 반복한다.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급격한 변화와 균열이 생긴 것일까.








김원영 〈생멸(生滅)의 관찰〉 ⓒ국립국악원




급기야 둘은 몸서리치듯 몸통을 비틀면서 차례로 일어나고, 그 순간 무대 바닥에 가지런히 깔린 신문지는 사방으로 흩어진다. 뒤죽박죽된 일상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김원영이 바닥에 드러누운 여성 춤꾼의 두 팔을 잡고 돌리는 등 다소 거친 둘의 군무는 계속된다. 그리고 둘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엉금엉금 기어서 널브러져 있는 신문지 밖으로 나간다. 거기서 그들은 신문지들이 함부로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게 엉망이 된 무대를 지긋이 응시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삶을 관조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내 널브러진 신문지 속으로 다시금 들어선다. 일상적 삶의 관성을 뿌리치기에는 힘에 부친 듯, 그들은 신문지 위에서 빠른 타악기 장단과 거문고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함께 먼 곳을 본다. 그들이 언뜻언뜻 아득히 바라보는 그곳은 아마 삶 너머 어디쯤, 곧 프로그램 북에서 김원영이 말하는 그곳,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맞물려 영원히 순환하는 생(生)과 멸(滅)이 갇혀 있는 찰나 속일까. 김원영의 이번 공연 〈생멸의 관찰〉은 삽시간에 읽히고 쓰레기가 되어 버려질 신문을 주 오브제로 활용하며 삶과 일상 너머의 생성과 소멸의 ‘관계’라는 진중한 철학적 주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형상화한 공연이었다.


물질성에 천착하는 춤

2021년 제35회 한국무용제전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공연 〈사자〉에서 독특한 몸짓 감각으로 굿의 엑스터시 체험을 주제화했던 한정미는 이번 공연 〈완벽한 불완전〉에서는 전작과는 판이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다. 무대 상수 앞과 하수 뒤에 각각 서 있던 두 춤꾼이 마주 보며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와 무대 중앙에서 만난다. 둘은 서로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헤어졌다가 찾은 제 짝을 만난 것처럼 뺨을 붙이고 비빈다. 똑같은 의상을 입고 있는 두 명의 춤꾼은 둘이지만 하나처럼 보인다. 만나자마자 서로가 상대방의 목덜미를 잡고 요리로 가자, 저리로 가자 실랑이하며 끌고 간다. 옥신각신하며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상대를 데려가기 위해 힘겨루기하다가, 상대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 붙잡기도 한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둘이 꼭 껴안는다. 둘 사이에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수시로 교차하며 작용하는 듯하다. 구심력이 강하게 작용할 때 둘은 하나처럼 한 몸이 되고,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할 때 둘 서로에게서 멀어지고자 한다. 포용과 배척, 작용과 반작용, 멀어짐과 가까워짐을 반복하며 둘의 춤은 지속된다.




한정미 〈완벽한 불완전〉 ⓒ국립국악원




다가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다가가기를 반복하던 둘은 서로 만족스럽지 않아 언짢거나 불쾌한 듯 몸짓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두 손을 어깨에 올린 채 어깨를 빠르게 돌리고, 두 손의 팔꿈치를 붙여 비비고, 탁탁 부딪치며 어떤 일을 부당하다고 여겨 따지거나 반대하는 듯한 몸짓말을 반복해서 수행한다. 말을 듣지 않는 상대에게 낮고 강경한 목소리로 빠르고 떠들썩하게 자꾸 이야기하지만, 말 듣는 이는 못 들은 척 짐짓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한 손은 머리에, 또 한 손은 어깨에 올리고 몸통을 비스듬히 능글맞게 서 있다. 그러면 다른 춤꾼이 무릎을 꿇은 채 애원하듯 다시 팔꿈치를 비비고, 두 어깨를 앞뒤로 애타게 돌린다. 그러면 상대는 두 손으로 허벅지를 강하게 털며 짜증 난 반응을 보인다. 둘은 그렇게 상대에게 어필하기 위한 일련의 동작을 구사하는데, 이는 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몸짓말로 보인다. 이를테면 이 장면에서 움직임은 춤이라기보다는 아기자기한 동작들로 짜진 몸짓말에 가까워 보인다.






한정미 〈완벽한 불완전〉 ⓒ국립국악원




미주알고주알 몸짓말로 대화하던 둘이 이번에는 팔과 다리를 교차하고, 엇갈리게 놓고, 엉키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마치 같은 종류의 물질이 합치는 것처럼 정답고 친밀하게 서로 어울린다. 하지만 곧바로 한 명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러면 다른 한 명이 기거나 굴러서 그에게 다시 다가가기를 반복한다. 끈끈하고 차져 자꾸 달라붙는 두 춤꾼의 춤은 흡사 같은 종류의 물질이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현상을 표현하는 것 같다.






한정미 〈완벽한 불완전〉 ⓒ국립국악원




그러다 둘은 같은 자세로 앉아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하면서 몸을 바닥으로 조금씩 누이기 시작한다. 바람이 천천히 빠지는 풍선처럼, 또는 바닥으로 녹아내리는 액체성 물질처럼, 둘은 무대 바닥에 푹 퍼져 누웠다가 다시 호흡을 다잡고 몸을 곧추세우며 일어나 앉는다. 몸에 착 달라붙은 시스루 룩 상의에 군데군데 검은 점이 박힌 점토질 질감의 의상을 입은 두 춤꾼은 같은 종류의 물질처럼 시종일관 떨어졌다가 붙기를 되풀이하면서 때로는 싸우듯 또 때로는 화기애애하게 춤을 춘다. 끈질겨서 자꾸 끊으려 해도 잘 끊어지지 않는 두 춤꾼의 안무를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두 움큼의 진흙이 한데 합쳤다가 분리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과 같이 흐르는 액체도 아니고 딱딱한 고체도 아닌, 그 둘 중간쯤 진흙의 물성과 같은 진득진득한 액체성이 느껴지는 춤이다. 한정미의 이번 공연 〈완벽한 불완전〉은 물질성에 천착하며 얻은 동작을 동시대적인 감성으로 콘셉트에 부합하게 알맞게 엮어 짠 세련된 공연이었다.

최찬열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

2022. 12.
사진제공_국립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