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스파프)는 재기(再起)할 것인가? 그래서 재기가 가능할까? 최근 몇 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무용 부문 기획은 매우 침체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2001년 출범한 이래 해마다 가을이면 주목을 받아오던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무용 부문은 수년 전부터 웬일인지 그 열기가 현격히 떨어졌다. 심지어는 무용 부문 선정작이 어느 해에는 모두 재공연작으로 라인업되었다. 올해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향후를 전망해볼 전기(轉機)를 주최 측이 조속히 마련해서 안정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컴퍼니XY 〈뫼비우스〉 ⓒ2022 SPAF/옥상훈 |
지난 10월 열린 2022 스파프에서 가장 이색적인 공연으로 평자로선 컴퍼니 엑스와이(XY)의 〈뫼비우스〉(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들려고 한다. 몸으로만 전개하는, 아니 몸만으로 승부를 거는 공연물이다. 서커스이니까 몸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당연해 보이겠으나, 〈뫼비우스〉는 독특한 서커스이자 서커스를 능가하는 공연물이다. 〈뫼비우스〉의 현장에서 우리네 무동타기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인간탑쌓기가 연상되었다. 6~10단의 높이로 사람이 사람 위에 올라가는 인간탑쌓기(2010년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재 등재)는 아찔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용기 등으로 빛난다. 〈뫼비우스〉는 인간탑쌓기 놀이가 아니며, 다만 인간탑쌓기를 기본기의 하나로 응용한다.
인간탑쌓기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붙잡고 올라타는 과정이 무려 10단까지 반복된다. 이에 비해 〈뫼비우스〉에서는 4단까지 진행되며, 3, 4단을 이루는 과정이 특별하다. 사람을 붙잡고 올라타는 경우는 드물고, 별도의 옆 사람들이 한 사람을 양손으로 떠받쳐서 반동력으로 공중에 띄워올리면 그 사람은 2단 또는 3단에 위치한 사람의 어깨 위에 내려 앉아 곧바로 직립한다. 해체 과정에서도 사람을 붙잡아서 내려오지 않고 반동력을 이용하여 공중을 날아서 별도의 옆 사람들 팔에 안긴다. 3단을 이룰 때 2단의 사람이 공중에 뜬 사람을 양손으로 받으면 3단의 그 사람은 양손을 축으로 물구나무서기(倒立·도립)를 하는 순간도 있다.
컴퍼니XY 〈뫼비우스〉 ⓒ2022 SPAF/옥상훈 |
판단하건대, 컴퍼니 엑스와이(XY) 특유의 테크닉은 양손의 반동력을 이용한 공중 부양 능력이다. 이를 기반으로 〈뫼비우스〉에서 19명의 곡예사들은 집단의 몸으로 해낼 수 있는 장면들을 수도 없이 이어나간다. 무음악 또는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몸들이 모여들기와 흩어짐, 뭉치기와 행렬짓기를 거듭하는 순간순간에 리드미컬한 반동력에 기댄 몸의 연기가 펼쳐져서 의미를 형성해낸다. 출연진 각자 자신의 역할로써 무리를 이루고 무리는 일종의 조화스런 소우주로 다가온다. 일반적으로, 몸을 극한으로 구부려 오무리거나 공중 밧줄, 저글링 기법, 요요, 자전거에 의지해 일순간 탄성을 유도하거나 심지어 기자재를 대대적으로 활용하는 서커스가 널리 알려진 반면에 이처럼 몸만으로 전개하는 서커스는 드물다. 게다가 컴퍼니 엑스와이는 몸을 기반으로 하는, 몸에 충실한 서커스이면서도 묘기 전달에 전념하기보다 의미 전달을 염두에 둔다. 다만 출중한 아날로그 서커스를 넘어 공연물에서 읽혀야 하는 의미 형성에 더 주력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 단체의 안무가 라시드 우람단은 포스트드라마 세계에서 자기만의 사이트를 구축했다는 것이 평자의 판단이다.
컴퍼니XY 〈뫼비우스〉 ⓒ2022 SPAF/옥상훈 |
〈뫼비우스〉와는 전혀 대조적인 공연물은 에릭 부르취의 〈빛 퍼포먼스: 심연의 숲〉(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이다. 빛만으로 진행되는 공연이어서 실제로 이 공연의 출연자는 빛과 암흑이다. 생각건대, 암흑이 없다면 이 공연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공연장 입장 전에 관객은 신발을 벗어야 하고 일체의 소지품을 지니지 않은 상태에서 대기해야 한다. 시작 시간에 맞춰 입장하자 암흑을 먼저 만나므로 입장객은 잠시 허둥댈 수밖에 없고 천장에 매달린 조그만 발광체가 뿜어내는 빛줄기들이 내려박히는 바닥을 더듬어 앉거나 눕거나 서거나 각자 자유로 자리를 잡는다.
천장의 발광체가 꺼지면서 정면의 발광체가 가느다랗되 강렬한 빛줄기를 수십 가닥 뿜어낸다. 그 발광체는 아주 작은 알전구이지만 조도는 엄청 높은 듯하다. 처음부터 포그가 옅은 안개처럼 퍼져 있는 암흑의 스산한 공간 속에서 볼 것은 오로지 빛이다. 포그를 뚫고 달리는 수십개의 빛줄기들은 정지하지 않고 매우 느릿하게 회전하면서 그 공간에 들어 있는 인간에게 온갖 상념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기보다는 느끼는 만큼 느껴진다. 평소 우주 암흑, 심야, 정글, 심해, 동굴, 탄광, 골방 등에서 빛과 암흑을 느끼고 생각에 젖은 정도에 비례하여 느낌의 질감 또는 수준이 판가름날 특이한 공연이다. 관객이 없다면 이 공연 공간은 텅빈 공간이 될 터이고 그 진행을 느끼고 수용할 주체도 없을 것이며 결국 그 빛줄기들마저 여느 빛에 지나지 않을 것이리라. 그래서 인간 출연자가 없는 이 공연을 공연(이머시브 형의 공연)으로 성립시키는 것은 인간 관객이라고 말한다면, 포스트휴먼 시대를 무시하듯 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판단의 소치일까.
고물x고블린파티 〈꼭두각시〉 ⓒ2022 SPAF/옥상훈 |
무용 분야에서 선정된 고물x고블린파티는 신나는 놀이를 한 판 벌였다. 이 팀의 〈꼭두각시〉(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상여를 장식하던 목조각, 꼭두각시 놀음 인형, 남에게 조종당하는 사람 등의 의미를 갖는 제목이다. 고블린파티의 활동 가운데서도 올해는 특이하게 전통음악 연구 연주 단체 고물과 협업 차원에서 〈꼭두각시〉를 만들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오른쪽 편에 25현금, 피리, 대금, 해금, 장구와 징이 일렬종대로 비스듬히 줄지어 놓여 있어서 국악기와의 어우러진 전개를 예감케 하였다.
예닐곱 가지의 국악기가 대체로 중중모리 장단 류의 빠르게 빚어내는 사운드들이 분절된 구성으로 연주되는 속에서 세 사람의 춤꾼들 또한 짤막한 시퀀스들을 놀이하듯이 이어간다. 춤꾼들은 여러 대목에서 연주자들과 어울려 놀며 악기들에 호기심을 보이고 만지작대기도 한다. 공연 중반에 이르러 인체 관절 모형 마네킹을 갖고 들어와서 춤꾼들은 국악 사운드에 맞춰 마네킹의 입, 양팔, 양다리를 놀리거나 꺾는 등 마네킹을 놀이판의 일원으로 대한다. 연주자가 마네킹을 안고 도는 동안 그 둘레를 에워싸서 원무를 추는 부분은 퍽 인상적이다. 마네킹과 어울려 지내던 연주자가 기력을 잃고 누우면 그 위에 마네킹이 얹혀서 무대는 암전된다. 단적으로 말해 생사는 분별되지 않고 하나이다라는 암시를 전달하는 〈꼭두각시〉는 리듬감 넘치는 신명을 바탕으로 삶을 유쾌하게 깨우쳐 보였다.
5Edges 〈play / game / under fragility〉 ⓒ김채현 |
5Edges 〈play / game / under fragility〉 ⓒ2022 SPAF/옥상훈 |
장장 오후 한나절 4시간 동안 진행된 〈play / game / under fragility〉(번안하자면, 놀이와 게임의 허약한 경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춤이 얼마간의 비중을 가지며 안무가(김형민)가 4인의 연출진의 일원으로 참여한 공연이다. 무용인이 주도해서 4시간 동안 진행하는 공연물이라서 그 의의도 작지 않을 듯하다. 〈놀이와 게임의 허약한 경계〉를 일관하는 논지는, 놀이와 게임이 유사해 보여도 규칙의 면에서 놀이는 유연하되 게임은 경직되어 있으며 창의성은 불확실한 상태에서 움틀 수 있다는 것이다.
공연에서 각 단락의 취지를 대화하듯이 해설하는 대사, 그것을 정리해서 스크린에 투사한 피피티 텍스트를 연출진까지 가담해서 소개하고 관객이 간략하게 동참하며 필요한 부분에서 춤적 몸짓을 덧붙여서 공연은 진행된다. 놀이와 같은 유연성이 사회와 삶의 도처에서 체화되어야 한다는 인식(일례로, 당신이 행하는 지금의 역할을 벗어나라고 하는 대사가 수시로 반복된다)을 연출 4인과 안무가 포함 3사람의 출연진은 끈기 있게 보여주었다. 반면에 통역이 높은 비중을 점하는 이 공연에서는 때로는 대사가 불분명하게 전달되었고 4시간 분량을 훨씬 더 압축해도 무난했을 것처럼 여겨지듯이 진행에서 개선할 점도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대화에 기반을 둔 소통이 주도하는 과정들을 열의 있게 진행하여 진정성이 두드러진 공연으로 꼽힐 것이다.
김보라×기어이스튜디오의 〈동시감각〉 ⓒ2022 SPAF/옥상훈 |
이외에도 2022 스파프에 선정된 춤은 모든 컴퍼니의 〈피스트〉, 라마의 〈제너레이션〉, 김보라×기어이스튜디오의 〈동시감각〉, 오마이라이프의 〈돼지춤〉이 있었다. 오마이라이프의 〈돼지춤〉은 관람할 예정일이 이태원 참사 다음날이어서 그날 공연은 이뤄지지 않았고, 〈피스트〉는 이전에 다른 평론가에 의해 평문이 작성된 작품으로서 평자는 이번에 사정상 관람하지 못하였다. R.A.M.a의 〈제너레이션〉(세대)은 78세와 23세의 두 무용수가 출연하는 대조적인 현상에 초점을 두었다. 무대에서 둘 사이의 미묘한 흐름이 감지되며 객석의 시선은 78세의 출연자에 쏠리기 마련이었고 78세의 나이가 무색한 움직임도 보게 되며 끝에 이르러 두 출연자는 세대를 초월해서 끈끈한 합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둘 사이를 매개한다는 안무가의 몸을 무대에서는 찾을 길이 없어 아쉬움이 컸다. 워크숍 형태로 발표된 〈동시감각〉(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두 개의 스크린에 비춰진 춤추는 사람들의 가상 현실 장면들을 축으로 실제 출연자들이 유사한 움직임을 펼쳐 보였다. 여기서 가상 현실과 출연자 간의 유기적인 연결은 제대로 감지되지 않았고 바닥의 점들도 역할이 미미하는 등 기대를 벗어났다. 이로 인해 관객이 가상 현실을 목도해야 할 이유, 출연자가 반응하고 움직여서 수행해내는 역할은 불투명하였다.
크리에이티브 VaQi 〈섬 이야기〉 ⓒ2022 SPAF/옥상훈 |
크리에이티브 VaQi(바퀴)의 〈섬 이야기〉는 춤 공연작이 아니지만 잠시라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평자로서는 2022 스파프에서 소개한 전개 내용을 주시하고 관람하였다. 〈섬 이야기〉는 70여년 전 일어난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다. 평자는 이 공연을 4·3사건의 피해자 가족 또는 주변인들의 구술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다큐극’으로 이해한다. 무대에서 4·3사건에 관한 예리한 정리가 더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 평자의 판단이다. 그렇더라도 공연은 감정을 자제하며 4·3사건의 현장을 희생자 시각에서 진솔하게 전달하였고, 역사적 감성을 조리 있게 일깨우기를 의도한 연출가 이경성의 시각은 평자에게 적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히로아키 우메다 〈인텐셔널 파티클〉 〈인디비저블 섭스턴스〉 ⓒ2022 SPAF/옥상훈 |
또 다른 공연으로서, 레드캣의 〈불이 되는 숨〉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앞세운 공연으로서 평자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불이 되는 숨〉은 상식적 인식을 맴도는 대화 내용을 비롯하여 공연 내내 지구 온난화에 대해 단문단답 식의 얕은 대화를 나열해서 실망감을 가중시켰다. 일본 안무가 히로아키 우메다는 14년 만에 다시 만나는 터여서 기대가 컸었다. 이번에 갖고 온 더블 빌 〈인텐셔널 파티클〉 〈인디비저블 섭스턴스〉에서 그는 움직임과 스크린 이미지들의 동반 관계를 시각화하였다. 14년 전 자신의 첫 내한 공연에서 그는 대형의 기하학적 무늬가 조명으로 비춰지는 배경 앞에서 비보이 류의 떨림과 움직임을 연체동물처럼 펼쳐 보인 바 있고, 아직도 그의 독무는 기억에 생생하다. 이번 더블 빌에서는 변화를 거듭하는 디지털 기법에 힘입어 안출해낸 이미지들이 더 다양해졌다. 그렇지만 〈인텐셔널 파티클〉(의도를 따르는 입자)에서 그의 춤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고, 〈인디비저블 섭스턴스〉(분할불가의 실체)의 두 여성 출연자와 VR의 관계는 호기심을 자극할 정도가 아닐 만큼 평이하였다.
다원화, 복잡화 시대에 공연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뫼비우스〉와 〈빛 퍼포먼스: 심연의 숲〉처럼 인간만으로, 인간 없이도 펼쳐지는 공연의 양극단을 보는 오늘이다. 동시대의 문제적 현상과 공연 기법을 파노라마처럼 만나고 내일을 전망하는 계기로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위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춤과 연극이 공존하는 것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강점이며 여기에 ‘공연예술’의 동시대 조류가 함께 하는 정도도 높아가는 것은 긍정적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강점을 살리고 공연예술의 폭을 계속 넓히면서 내실을 다져나가길 기대한다.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