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부산국악원 ‘영남춤축제’
풍성해진 전통춤축제, 다양성·자기정체성 겸비해야
송성아_춤비평가

흔히 경상도로 불리는 영남은 동래와 수영의 들놀음(野遊), 밀양의 백중놀이, 고성‧통영‧진주‧가산의 오광대놀이, 동해안과 남해안의 별신굿, 진주‧통영 교방청의 검무와 승전무, 권번의 여러 입춤과 굿거리춤 등 춤 자산이 매우 풍부하다. 2017년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 주도로 시작된 영남춤축제는 이러한 지역 춤 전통의 계승과 중앙 편중으로 위축된 춤판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의 두드러진 변화는 지역적 울타리를 넘어, 타 지역 춤꾼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전통춤 일반을 아우르는 춤 축전으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국면 속에서 한 달간 진행된 축제(7.12.-8.13.)는 원래 목적에 부합하는 것과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양분해 볼 수 있다.

지역 원로 예술인과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정신혜) 단원이 함께 마련한 개막식1), 영남지역 대학무용과의 합동공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춤 강습회, 경상북도도립무용단‧울산시립무용단‧국립부산국악원이 함께 마련한 폐막공연 등은 지역 춤 계승과 춤판 활성화라는 원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전국적인 공모를 통해 출신지‧연령‧레퍼토리를 균형 있게 안배한 전통춤판, 〈포구락〉 〈박접무〉 〈진주교방굿거리춤〉 〈통영검무〉의 원형과 그 창작물을 한 무대에 올린 전통 대 창작2), 〈춘앵전〉 〈바라춤〉 〈승무〉 〈살풀이춤〉을 모티브로 한 한국춤 안무가전 등은 지역을 넘어 전통춤 일반을 모두 포섭한다는 점에서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미자 〈승무〉 ⓒ국립부산국악원




풍성해진 축제의 중심부는 5회에 걸쳐 30편의 홀춤을 소개한 전통춤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김미자, 지영숙, 김순선의 춤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이수자인 김미자는 한성준-한영숙-이애주로 이어진 〈승무〉를 춘다. 이 춤은 짜임새가 체계적이고, 춤사위가 잘 정리되어있다. 그리고 공연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재구성할 때, 예로부터 내려오는 법식에 따라 변형되기 때문에 원형 보존이 용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춤꾼은 故 이애주가 생전에 강조한 깊은 무릎굴신(答地低昂), 상‧하체의 자연스러운 조화(手足相應), 밖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는 시선(內觀), 비스듬히 엇나가는 이동경로와 자태(韓國的 自然美)를 안정적으로 보여준다.






지영숙 〈지전춤〉 ⓒ국립부산국악원




인천시 무형문화재 〈범패‧작법무〉 이수자인 지영숙은 〈지전춤〉을 춘다. 이 춤은 평생의 스승인 김진홍이 동해안별신굿 세습무계의 일원인 김계향에게 배워 창작한 작품이다. 그리고 진도씻김굿의 대가 故 박병천의 구음을 사용한다. 즉 영남과 호남 씻김굿에 바탕을 둔 춤이다. 원래 무속 지전춤은 흰 창호지로 만든 수 십장의 지전을 양손에 쥐고,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춤이다.

지영숙은 살풀이장단(3소박 4박자)에 맞춰 희고 긴 지전을 움켜잡기도 하고, 힘 있게 뿌리기도 한다. 움켜잡은 지전은 망자를 연상시키고, 뿌려 어루만지는 모습은 무녀(巫女)를 닮아있다. 한배가 빠른 자진모리장단으로 넘어가면, 엎고 제치고 감고 풀리는 지전은 망자와 무녀는 물론이고 관객의 맺힌 마음을 풀어내는 듯하다. 감정의 과잉 없이 지전만으로 여러 이미지를 만들고, 절로 어깨춤을 추게 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무대라 하겠다.






김순선 〈동래학춤〉 ⓒ국립부산국악원




국가무형문화재 〈동래야류〉 이수자 김순선은 〈동래학춤〉을 춘다. 탈춤의 하나인 동래들놀음은 집집마다 악귀를 쫓는 지신밟기와 대규모 줄다리기 다음에 행한 것으로, 줄다리기에서 이긴 편이 마련하는 축하연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탈놀이에 앞서, 길놀이를 하고 마을사람들이 장기자랑을 하며 집단 난무를 추는데, 그 중 하나가 〈동래학춤〉이다.

이 춤은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학을 모티브로 하지만 그대로 모방하지 않으며, 즉흥무이지만 유형적 틀이 존재한다. 또한 들판에서 춘 춤이지만, 예술적으로 정제되어 있다. 특히 영남 특유의 굿거리장단에 맞춘 디딤새는 무겁지만 경쾌하고, 흰 도포자락과 함께 펼쳐지는 춤은 단순하지만 유려하다. 김순선은 이러한 복합적인 성격을 오롯이 보여준다.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된 축제는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마감되었다. 참여 인원이 많고 여러 춤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표, 안내, 무대, 조명, 음향 등 모든 진행절차가 매끄러웠다. 국악원에서 땀 흘린 일꾼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고민해야 할 것도 있다.

문화는 교류(交流)를 통해서 발전한다. 이 점에서 다른 지역 춤의 적극적 수렴은 영남춤은 물론이고, 우리 춤 전체의 발전을 촉매 하는 유의미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중심이 빈약한 교류는 건강한 성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때문에 축제의 원 취지인 지역 전통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단순히 지역 원로예술인 춤 나열이 아니라, 장단, 형식, 내용, 의미, 미감, 재구성 방식 따위를 면밀히 살필 수 있는 기획춤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전통춤은 역사성과 가치성을 갖는다. 이 점에서 전통춤판에 오른 30명의 춤꾼은 계보와 가치를 명시할 의무가 있다. 첫해에 비해 많은 부분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불투명하거나 모호한 경우가 많다. 특히 전통에 바탕을 두고 근래 창작된 것으로, 新전통으로 분류되는 춤은 온전히 전통으로 편입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더더욱 계보와 가치를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하겠다.


───────────
1) 개막식 공연에 참여한 원로예술인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27호 〈아랫녁수륙재〉 보존회장인 석봉스님,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 보유자인 권명화, 부산시 무형문화제 제4호 〈동래한량춤〉 보유자인 김진홍, 부산시 무형문화제 제10호 〈동래고무〉 보유자인 김온경,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보유자인 이윤석 등이다. 이들의 인터뷰 영상이 먼저 나온다. 그리고 권명화를 제외한 나머지 분들이 직접 출연하여 〈법고춤〉 〈동래한량춤〉 〈산조춤〉 〈고성허튼춤〉을 추고, 중반부에 퇴장한다. 마무리를 짓는 것은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단원들이다. 한편, 병환으로 참석하지 못한 권명화의 〈소고춤〉은 단원들이 전체를 춘다.
2) 전통 대 창작 공연에 소개된 창작 작품은 손효진의 〈問門:문을 묻다〉, 김성수의 〈날개, 짓다 나비, 짓다〉, 최현지의 〈물밑소리〉, 이도영의 〈그리고, 홀〉 등 4편이다. 이들 작품은 2021년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기획공연에서 초연(12.24.)된 바가 있다. 축제 공연은 각 작품이 모티브로 삼은 〈포구락〉, 〈박접무〉, 〈진주교방굿거리춤〉, 〈통영검무〉 원형을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2022. 9.
사진제공_국립부산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