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춘천공연예술제 춤 공연
대중성과 동시대성 그리고 로컬의 감각을 담은 춤 축전
최찬열_춤비평가

2022년 8월 9~20일 춘천인형극장 대극장과 축제극장몸짓 등에서 열린 춘천공연예술제(축제감독 이윤숙) 춤 공연(8월 9~13일)에는 한국춤 3팀, 현대춤 7팀, 커뮤니티댄스 1팀 등 모두 11개 팀의 작품이 참여했다. 주최 측이 분류한 바에 따르면 이 작품들은 4개의 섹션별 공연으로 나뉜다. 곧 동시대 춤을 선도하는 장르별 ‘시그니처’ 공연 섹션에는 쿰댄스컴퍼니와 임정하, 시나브로가슴에와 정보경댄스프로덕션, 그리고 김성훈댄스프로젝트의 작품이 참여했고, 기존의 공연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업’ 공연 섹션에는 김정수프로젝트그룹, ImDance10, JUBIN Company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또 신진 안무가들의 공연을 선보이는 ‘파인더’ 섹션에는 탄츠테아터원스와 모든컴퍼니의 작품이, 그리고 처음부터 주최 측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기획된 작품을 소개하는 ‘아트랩’ 섹션에는 주혜영의 커뮤니티댄스가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평자가 보기에 이 작품들은 세 개의 키워드, 곧 대중성과 동시대성 그리고 로컬의 감각으로 간략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중에서 김성훈댄스프로젝트의 〈POOL〉과 김정수프로젝트그룹의 〈적당한 사람들〉은 메시지가 비교적 쉽게 읽히며 대중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대중성이 돋보이는 두 공연, 〈POOL〉과 〈적당한 사람들〉

춤꾼들이 어슬렁어슬렁 등장하며 시작하는 김성훈댄스프로젝트의 〈POOL〉(춘천인형극장 대극장, 8월 13일)은 기존의 세상에 일격을 가하는 젊은 세대의 강력한 제너레이션 펀치(generation punch) 같은 춤 공연이다. 모두 같은 종류의 짙은 옷을 입은 춤꾼들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쑥 찔러넣고,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게 후드 형 재킷의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얼굴을 가리고 익명의 무리를 이루고 있다. 무리는 불만이 가득 찬 듯, 또는 아무한테나 시비 걸듯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그러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밝은 곳으로 나오며 뭔가를 갈구하는 동작을 하다가 쓰러지기도 한다. 싸우고 투쟁하고 거칠게 반항하듯 주먹질하고 격렬하게 배틀 춤을 춘다. 또 마치 도망을 치듯 일렬로 서서 바쁘게 걸어가면 탐사 조명이 이들을 수색하듯 무대 여기저기를 훑는다. 그러다 아수라판 같은 군무가 끝나면 애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 춤꾼이 무대 중앙 전면에서 주먹 쥔 손을 허공에 대고 두드리기 시작한다. 마치 굳게 닫힌 육중한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듯 화급하게 두드리다 지쳐 고개를 숙이고, 또다시 세차게 계속 두드리다 결국 포기하고 고개를 떨군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울부짖음, 호소, 절규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이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물벼락뿐이다.






김성훈댄스프로젝트 〈POOL〉 ⓒ춘천공연예술제




무대 밖으로 잠시 나갔다가 다시 등장한 무리는 복장이 바뀌었다. 옷을 차려입은 모양새로 보아 이들은 가난한 자들의 집합체다. 이들은 무리를 이루어 무대 여기저기를 배회한다. 그러다 이들을 향해 누군가 물벼락을 안기기 시작하고, 한 번, 두 번 그리고 계속 물 봉변을 당한다. 세상이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물벼락과 같은 멸시와 조롱뿐인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무르지 않고 굳세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진흙탕 같은 세상처럼 질펀하게 젖은 무대 바닥에 자빠져 허우적거리고, 앉은뱅이처럼 처절하게 기다가 쓰려져 뒹굴지만, 두 팔 쩍 벌리고 드러누운 모습은 배짱 좋아 보인다. 힘들고 지쳐도 비틀비틀, 위태위태 다시 일어나 필사적으로 모질게 기를 쓰거나 소리 지르듯 춤춘다. 그들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맞짱 뜨며 고된 삶을 이겨내자고 울부짖는 젊은 세대의 아우성 같은 춤이다. 김정훈댄스프로젝트의 〈POOL〉은 메시지를 명쾌하게 드러내며 춤의 운동성과 역동성을 마음껏 과시하는 춤꾼들의 춤이 일품인 공연이었다.






김정수프로젝트그룹 〈적당한 사람들〉 ⓒ춘천공연예술제




김정수프로젝트그룹의 〈적당한 사람들〉(축제극장몸짓, 8월 12일)도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관객들이 힘들지 않고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 〈적당한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이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겠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적당한’ 거리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춤 만든 이는 ‘중간에 끼인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중간에 끼여 적당히 살아가는 존재자들이다. 물론 이는 그가 이론적으로 연구해 내놓은 답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냥 ‘적당히’ 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적당한’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적당한 사람들〉에서 춤꾼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간격을 조절하고, 두 팔을 벌려 다른 춤꾼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한껏 애쓴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 춤꾼들은 걷고, 뛰고, 서고, 떨어져 바라보고, 각자의 방법으로 위, 아래, 앞, 옆 등 사방팔방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러다 다른 춤꾼이 다가오면 멀어지고, 멀리서 지긋이 바라보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간격을 유지한다. 사람들은 이미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살고 있다. 세 춤꾼은 시종일관 거리를 유지한 채 춤을 춘다. 그러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소리를 지르고, 그에게서 벗어나며 간격을 유지한다. 간혹 거리를 유지하는 데 지치면 서로 어깨를 맞대기도 한다. 또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슬며시 업고, 다른 춤꾼이 업힌 춤꾼의 등위로 올라타기도 한다. 예컨대 세 춤꾼은 거리를 없애고 각자의 몸을 서로 기대고, 업고, 포개기도 하지만 공연 내내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비대면 시대에 눈에 띄게 드러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공연이다. 김정수프로젝트그룹의 〈적당한 사람들〉은 춤추기보다는 이런 콘셉트를 충실하게 구현하는 데 정성과 노력을 쏟은 공연이었다.


동시대 춤을 선도하는 두 작품, 〈생존기계〉와 〈뉴-에튜 프로젝트〉

올해 춘천공연예술제의 프로그램은 유익하고 알찼다. 프로그램의 구성과 내용이 여느 춤 축전보다 좋았다는 말이다. 요즈음 한국 춤 세계에서 보이는 일정한 경향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공연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알맞게 잘 나누어 배치한, 아담하면서도 풍성한 춤 축전이었다. 이는 한국 춤의 흐름과 맥을 꿰뚫고 있는 프로그래머 장승헌의 예리한 안목이 한몫한 결과일 것이다. 특히 현대춤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공연이 몇몇 보였는데, 그중에서 임선영의 〈생존기계〉와 임정하의 〈뉴-에튜 프로젝트〉는 동시대성이 잘 녹아든 선진적인 공연이었다.




  

ImDance10 〈생존기계〉 ⓒ춘천공연예술제




ImDance10의 〈생존기계〉(축제극장몸짓, 8월 10일)는 검은 바지를 입고 상체를 맨살로 다 드러낸 남성 춤꾼 2명의 듀엣 공연이다. 그들은 키가 알맞게 크고 몸매가 미끈하게 잘 빠졌으며, 등과 복근 등에 불필요한 살이나 지방이 없고 단단한 근육을 자랑하는 육감적인 상체를 가졌다. 조명이 들어오면 3명의 등장인물이 일렬로 서 있다. 맨 앞에는 일상복을 입은 안무자가 서고, 그 뒤로 두 남성 춤꾼이 차례로 서 있다. 그들은 일렬로 서서히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러다 안무자는 객석까지 나와 맨 앞줄 중앙 좌석에 앉고, 남성 춤꾼 두 명은 무대에 남아 듀엣 춤은 추기 시작한다. 윗옷을 벗은 남성 춤꾼 두 명의 듀엣 춤은 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는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일 수도, 동료일 수도, 부자지간일 수도 있어 보인다. 또 제목으로 유추해보건대 경쟁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듀엣 춤은 관계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채 지속된다. 그러다 간혹 그들의 춤이 한없이 다정해 보일 때, 그들은 쌍둥이처럼 보인다. 또 사랑을 나누는 남자와 여자의 몸이 한 몸처럼 엉킬 때처럼 두 춤꾼의 몸이 한데 뒤얽혀 마구 감길 때는 동성애자로 보이기도 한다. 춤 만든 이의 성적 판타지가 투영되기라도 한 듯, 이들의 이런 춤을 객석에 앉은 안무자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유심히 지켜본다. 아무튼 둘의 관계는 묘연하다. 그래서인지 둘의 춤은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한다.




ImDance10 〈생존기계〉 ⓒ춘천공연예술제




시종일관 밀도 있게 수행되는 춤은 유려하면서도 역동적이다. 또 담백하면서도 끈적끈적하다. 춤은 진행될수록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에로틱한 감정과 성적 욕망, 경쟁심과 이기심, 사랑과 질투 등등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감정, 정서, 느낌 등이 다 표출되는 이상야릇한 춤이다. 어쨌든 여성 안무자에 의해 꼼꼼하게 갈무리된 이질적인 감각의 남성 2인무는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애매한 춤 혹은 인간이 맺고 있는 그 어떤 관계에서도 두루 볼 수 있는 인정 투쟁을 형상화한 특이한 춤으로 보인다. 그러다 불현듯 둘은 전혀 예기치 않은 동작을 취한다. 곧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의 시체를 무릎에 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피에타 조각상을 연출한 것이다. 인간 세상의 모든 구질구질한 세속적 관계를 사랑과 연민의 관계로 승화해 보여주는 기묘하면서도 인상적인 이 장면은 이상적인 관계성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며, 한 번에 곧바로 정서적 고양감을 유발한다. ImDance10의 〈생존기계〉는 춤 만든 이의 섬세한 연출력과 조합이 잘 맞은 두 춤꾼의 움직임 연기가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임정하 〈뉴-에튜 프로젝트〉 ⓒ춘천공연예술제




임정하의 〈뉴-에튜 프로젝트〉는 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공연이다. 그는 기존의 춤 세계 안에서 통용되는 움직임에 바탕을 둔 자기 춤이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춤을 추면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강조한다. 그래서 춤과 춤을 구성하는 움직임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 과정을 춤 공연에 담아 보여주기로 한다. 춤과 움직임에 대한 실제 조사나 연구 과정이 무대화되어 춤 공연이 된다는 말이다. 춤 만든 이가 리서치한 바에 의하면, 춤은 여러 종류의 다양한 움직임으로 구성된다. 털기, 비틀기, 직선 운동, 곡선 운동 등등. 그렇다면 이런 모든 움직임의 바탕이 되는 원형적 움직임은 무엇일까. 임정하가 리서치 끝에 내놓은 답은 상승과 하강, 그리고 회전 운동이다. 이것들이 춤을 구성하는 모든 움직임의 근본이 되는 원형적 움직임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춤을 구성하는 원형적 움직임이 상승과 하강, 그리고 회전 운동이라면, 우리는 이 운동을 인간의 몸이 하는 운동뿐만 아니라 기‘체’, 액‘체’, 고‘체’ 등 인간 몸 이외의 다른 물‘체’, 곧 다른 모든 ‘체’(body)의 움직임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움직임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춤을 춤이게끔 하는 이런 원형적 움직임이 다른 맥락에 끼워 넣어질 때, 달리 말해 원형적 움직임을 춤꾼의 움직이는 몸이 아닌 다른 ‘체’들 혹은 다른 ‘몸’에서 발견했을 때, 이 다른 몸들의 움직임은 춤인가, 아닌가. 또 다른 몸들의 운동과 춤꾼의 움직임은 어떻게 다른가. 또는 춤꾼의 몸과 다른 몸들은 어떻게 다른가, 아니면 같은가. 이를테면 임정하의 공연 〈뉴-에튜 프로젝트〉는 춤과 춤추는 몸에 관한 존재론적 물음을 제기하는 공연이다.




임정하 〈뉴-에튜 프로젝트〉 ⓒ춘천공연예술제




이어지는 장면에서 임정하는 풍차와 같은 물체와 소형 장난감, 그리고 무대 뒤에 세 칸으로 설치된 패널에 비친 영상 이미지와 그 속의 글자, 또 조명과 빛 등의 운동이 전경화되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는 춤꾼이 빠진 춤 공연의 일종이다. 하지만 춤꾼의 움직이는 몸이 주축이 된 춤 공연보다 모자라거나 못한 점이 없다. 또한 임정하는 춤에 대한 이러한 예사롭지 않은 이론적, 실천적 접근을 통해 춤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한다. 빼어나게 구현된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그것의 모범적 사례를 실감할 수 있다. 춤꾼과 미디어와 영상, 기계와 물체, 조명과 빛, 음향과 소리, 전파 등 각종 몸이 섞여 다 같이 춤을 추다 춤꾼들만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춤꾼이 빠진 상태에서도 나머지 몸들은 여전히 운동 중이다. 상승과 하강, 회전 운동하며 쉼 없이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춤꾼이 배제된 이 장면이 춤인지 미디어아트인지, 혹은 퍼포먼스인지 행위예술인지 구별이 안 된다. 또한 그곳이 공연장인지 전시장인지, 아니면 또 다른 3의 장소인지 쉬이 판별할 수 없다. 관객들은 춤이 다른 장르의 예술과 구별할 수 없게 섞이며 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광경을 목도한다. 아름다우면서도 뜻깊은 장면이다. 춤에 관한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며 춤에 관한 새로운 사유를 촉발하고, 춤 개념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뉴-에튜 프로젝트〉는 춤 공연이면서 동시에 춤 이론인 이론적 실천이거나 실천적 이론인 의미심장한 공연이었다.


춤과 로컬의 감각

올해 춘천공연예술제에 참여한 대부분의 작품이 그랬듯이, 한국춤 3팀, 곧 정보경과 서연수, 그리고 김주빈의 공연도 춤의 동시대적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세 안무가의 춤에서는 동시에 다른 어떤 정서나 감정, 느낌 등을 엿볼 수 있었는데, 평자는 그것을 한국적 정서를 바탕에 둔 로컬의 감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를테면 로컬의 감각은 구체적인 삶과 따로 떨어지지 않은 몸적 감각이다. 세계 춤의 주류 감각, 보편적 감각에 동조하는 동시대성을 함축하면서도, 더불어 구체적인 몸적 삶에 바탕을 둔 로컬의 감각을 일정 부분 담고 있는 이들의 공연은 매우 흥미로웠다.






쿰댄스컴퍼니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 ⓒ춘천공연예술제




개막작 쿰댄스컴퍼니의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춘천인형극장 대극장, 8월 9일)는 기존의 한국춤의 구태의연한 창작 관행을 깨부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공연이다. 첫 장면은 한국춤 공연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정장 차림을 한 채 사다리를 든, 외모가 훤칠한 남성 춤꾼 한 명이 무대 중앙에서 이쪽저쪽 뭔가를 살피다, 무대 뒤쪽에 사다리를 세우고 그 위를 올라 객석을 가만히 바라본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첫 장면은 무엇보다 이 작품의 안무가 서연수와 연출가 강요찬이 춤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장센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읽힌다. 그리고 실제로 공연에서 그들은 춤추기에 집착하지 않고, 춤과 오브제와 의상 그리고 행위와 퍼포먼스, 음향과 음악, 조명 등을 적절하게 섞어 세련되고 깔끔한 장면들을 만들어 보여준다. 특히 버선과 풍경(風磬), 목탁 소리 등의 한국적 오브제와 사다리, 물뿌리개 등의 일상생활 오브제 등을 공연이 진행되는 상황이나 조건에 알맞게 배치하며 동시대적 감성이 살아 있는 한국춤을 선보이는 점이 인상적이다. 서연수는 한국춤에 동시대성을 입히는 능력이 뛰어난 안무자로 보인다. 이번 공연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는 버선을 신은 춤꾼들의 정교한 발디딤으로부터 시작해, 팔 사위, 걸음걸이, 어깨 놀림, 걷기와 뛰기, 상체의 움직임 등을 들숨과 날숨, 그리고 머금은 호흡에 실어 순차적으로 현시하며 한국춤의 진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의 한국춤 움직임과 창작 관행에서 벗어나는 독창적인 안무 메소드를 세우는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JUBIN Company 〈새다림〉 ⓒ춘천공연예술제




‘새다림’은 전통 굿에서 굿을 열기 전 굿판의 잡신이나 불결한 것을 몰아내는 의식인 부정거리의 일종이다. 곧 새다림은 신을 모시기 위해 굿판의 모든 사(邪)한 것을 물리치는 정화 의식이다. 그리고 이번 춘천공연예술제 무대에 오른 JUBIN Company의 〈새다림〉(축제극장몸짓, 8월 10일)은 전통 굿의 이런 정화 의식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현대판 부정굿이다. 첫 장면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물구나무서듯 두 발을 들고 누워서 무대 바닥에 등과 어깨만을 가까스로 붙인 채 힘겹게 이동하는 김주빈이 희미한 조명 안으로 들어오면서 공연은 시작되는데, 이 장면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혼탁한 세상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특이한 이 포즈를 거꾸로 보면, 이는 김주빈이 온 세상을 어깨에 메고 낑낑거리며 걷고 있는 형상이다. 이를테면 이 장면은 타락한 세상을 다 짊어지고 있는 김주빈의 힘든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마치 술에 취한 듯, 개처럼 세상을 향해 컹컹 짖어댄다. 어디선가 감미로운 멜로디의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나와 세상은 이미 정화가 필요해 보이는 상태이다. 그리고 김주빈은 이번 공연 〈새다림〉에서 나와 세상의 사함을 동시에 쫓아내는 부정굿을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JUBIN Company 〈새다림〉 ⓒ춘천공연예술제




어려운 자세로 나아가던 그는 막다른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 그는 사악한 세상에 유폐된 듯 혹은 밀폐된 방에 갇혀 안달 난 사람처럼 벽을 밀고, 부딪혀 보지만 더 이상 어쩔 도리 없는 지경에 처한다. 이런 그의 모습을 4명의 다른 춤꾼들이 하나둘 관심을 기울여 살피기 시작한다. 그가 갈 수 있는 길은 이제 무대 오른쪽 뒤에서 왼쪽 앞 대각선 방향으로 기다랗게 놓여 있는 하얀 천으로 만들어진 길뿐이다. 그는 그 길로 접어들어 다시 이동하게 시작한다. 그 길 끝에는 하얀 깃털에 감싸인 사자탈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김주빈은 이 사자탈을 이용해 한 판 부정굿을 펼친다. 실로 전통 탈춤에서는 사자탈을 쓰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한바탕 노는데, 이렇게 하면 부정한 것들이 물러나 액을 막고 복을 불러들인다고 한다. 김주빈은 이러한 의미가 있는 사자탈을 활용해 나뿐만 아니라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인간관계 안에 잠재해 있는 온갖 부정한 것들을 물리치고, 깨끗하게 정화된 지금-여기에서 화합의 춤판을 펼치는 것이다. 〈새다림〉은 전통 굿과 사자탈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오늘의 상황에 알맞게 활용하는 김주빈의 젊은 감성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올해 춘천공연예술제 초청된 한국춤 세 작품, 곧 쿰댄스컴퍼니의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와 JUBIN Company의 〈새다림〉, 정보경댄스프로덕션의 〈친애하는 나의 그르메〉(축제극장몸짓, 8월 12일)는 오늘 한국춤 씬에서, 한국춤의 단아함과 정갈함을 세련되게 살려낸 가장 현대적인 작품들로 보인다. 가령 〈새다림〉에서 김주빈이 무대 중앙에서 객석 쪽으로 등을 보인 채 앉아서 거문고 장단에 맞춰, 두 팔을 활짝 벌려 넘실거리고, 가볍게 어깨 짓을 하며 추는 담백한 솔로 춤과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에서 버선을 신은 춤꾼들이 무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잇달아 이동하면서 반복적으로 보여준 일련의 발동작과 팔 사위, 어깨 짓은 한국춤의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의 미를 빼어나게 발현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품어 지니고 있다.

김주빈과 서연수, 그리고 이 글에서는 소개를 약한 정보경의 공연에서 보이는 이런 춤은 한 춤꾼의 몸적 삶이 펼쳐지는 가장 구체적인 장소인 로컬의 감각을 상당한 정도로 구현하며, 글로벌화 혹은 세계화하고 있는 동시대 한국 춤 세계의 일반적 경향과는 다른 독특한 춤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구체적인 삶의 토대인 로컬의 감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중심부 감각만 지향하는 편견이 일반화하는 한국 춤 세계 저간의 추세와는 다소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춘천공연예술제에서 현대춤과 한국춤의 비중을 반대로 한다면 어떨까? 한국춤 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작업이 모든 춤을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하는 춤의 중심화 혹은 세계화에 맞서 모든 주변부 춤이 평등하게 공생 공존하는 춤 세계, 곧 로컬 춤을 창안하는 춤 실천으로 이어지는 데서, 로컬에서 열리는 춘천공연예술제가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기에 떠오른 생각이다. 그리고 이는 비슷비슷하게 진행되는 다른 춤 축전과 구별하며 춘천공연예술제 춤 공연만의 목적과 목표를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세우는 방안으로 보이기도 한다.

최찬열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

2022. 9.
사진제공_춘천공연예술제 *춤웹진